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 2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
최장집 지음 / 폴리테이아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노동, 노동자란 말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일용직 노동자, 봉제노동자, 농민, 청년노동자, 저소득층과 신용불량자 들이 처한 문제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고 사회구조에서 올 수도 있다는 거다.

예를 들면 1998년 <이자제한법> 폐지로 대부업체 이자율이 한때 66퍼센트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상 법령 최고 이자율을 기록한 중국 당나라 때의 60퍼센트보다 높은 수치라고 하니 자본의 약탈을 방관하고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것은 민주정부의 뼈아픈 실책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시민 생활의 실질적 향상에 기여하도록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 민주 정부의 책무라고 할 수 있음에도 그간의 민주 정부들이 그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이후 민주 정부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대표-책임의 연계 고리로부터 상당 정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표한다고 자임했음에도, 민주 정부의 정책적 책임성은 그런 방향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IMF 위기 이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조건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악화시켜 온 부정적 측면들을 포함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주 정부들은 우리 사회의 위기를 불러오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비전, 의지, 정책 대안의 부재가 반영하듯, 민주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와는 다른 대안적 경제정책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하여 민주 정부들이 세계화라는 조건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악화시키는 데 앞장섰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도, 이를 방치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사회 양극화가 급속하게 심화되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로 재구조화된 시장경제 경쟁에서의 승자들, 거대 기업들, 정치인들, 사회 엘리트와 지식인, 그리고 주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들의 세계가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 경쟁의 열패자 내지 탈락자들, 사회계층 구조의 하층에 위치하면서 점차 생산과 소비의 중심 영역으로부터 주변화되고 배제되어 가는 서민들의 삶의 세계가 광범하게 존재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이 두 세계 사이의 격차와 분리는 심화될 대로 심화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인들, 언론들이 '사회 통합'을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목표인 듯이 강조하는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 있다. 통합을 강조하는 정치적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듯 분리되고 약화되어 가는 영역, 즉 시장에서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를 통해서도 대표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다른 영역에 대한 이해와 정책을 말하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사회경제적인 문제가 정당들과 민주 정부에 의해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지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진전하기 어려울 것이다. (141-143)

 

여기에서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 온 한국 정치의 한 속성이 드러난다. 정치가 현실 생활에 기초를 둔 사회경제적 이슈 영역을 적극적으로 대면해 그 영역에서의 갈등을 해소해 가면서 정치제도 개혁이나 '역사바로세우기'와 같은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개혁 이슈를 흡수 통합해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후자의 이슈에 골몰하면서 전자의 사회경제적 과제를 방치하는 특징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간 외형적으로만 보면 여야 정당은 상호 공존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적대적 담론과 감정으로 충돌해 왔다. 그러나 별로 변한 것은 없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더욱 그렇다. 어찌 보면 여야 간 정치적 갈등의 격렬함은 현실의 가장 중요한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의 배면에서 '비결정'의 영역으로 배제되어 있는 것의 결과인 면도 크다. 

좀 더 폭넓은 이념적·정책적 스펙트럼 위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비결정의 영역에 머물거나 혹은 비갈등적 이슈로 다뤄질 때, 실제 정치 경쟁은 한정된 갈등 범위 안에서 추상적 가치와 명분의 동원에 의존하는 다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21-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로 보는 우리 역사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13
전국역사교사모임 엮음 / 푸른나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쓴 책이라 기대를 좀 하고 책을 봤다. 초판 14쇄에 개정판까지 나왔으니 꽤 많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읽은 책이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권장도서로 지정까지 했다.  

첫째 마당 원시 공동체 사회부터 넷째 마당 삼국 시기까지 서술은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다섯째 마당 남북국 시기 신라부터 조금 억지스런 내용이 나온다.  

석굴암과 불국사 같은 불사에 국가의 힘을 모두 동원했는데, 여기에는 민중의 피땀으로 생산된 엄청난 재보가 투여되었다는 얘기까지는 수긍할 수 있지만, 석가탑에 얽힌 아사녀의 슬픈 설화가 왜 왕족을 지키는 신라 호국불교문화의 성격을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다. 더욱이 "석굴암 본존불의 근엄함과 이상미가 왕을 상징하고, 악귀를 밟고 있는 사천왕과 힘자랑하는 금강역사, 팔부중상이 귀족들의 특권 유지를 위한 수호신으로서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현"(110쪽)이라니...  

불교경전에 나오는 설법장의 모습을 그 시대 동아시아에 널리 퍼진 불교도상과 양식에 따라 구축한 종교상들일 뿐이다. 팔부중상은 호법신이 아닌 청중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거의 모든 불교 경전에서 팔부중은 부처설법의 청중으로 나오지 무슨 수호신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미술을 통해 역사를 보겠다는 취지는 알지만 이런 식의 호도는 곤란하다.  

호족들의 영향을 받아 세운 부도들을 "중앙의 특권에 도전하는 지방 호족 세력의 문화적인 특색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부도는 정형화되고 규격화된 불교 조형물의 틀을 깨고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116쪽)고 해석했는데, 부도 양식이나 거기에 돋을새김된 조각들에는 신라 왕릉 호석에 보이는 십이지상과 같은 중앙(경주) 양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설도 있다. 정형과 규격에서 벗어났다고 단정하여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고려 시기로 오면 뜬금없는 서술도 눈에 띤다. 청자의 아름다움을 서술하다가 갑자기 이자겸이 읊었다는 시를 얘기하고, 이 사람이 농민을 괴롭히고 저 혼자 고귀한 척했다면서 왕과 문벌귀족들의 풍류 뒤에는 백성들의 뼈아픈 고통이 있었다고 하면서 마무리한다. (130~132쪽)

이자겸 얘기나 백성들의 고통을 얘기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청자의 아름다움을 말하다가 그 당시 사회상으로 넘어가는 서술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뒤에는 또 고려 무신들이 상감청자 문양을 좋아했던 이유를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면서 민중들의 희생과 그에 대비되는 속세를 떠나 한가롭게 이상세계에서 노닐고자 했던 무신들의 안일함을 말한다.(136-139쪽)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지배층의 방탕함이 위대한 공예품을 낳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불화를 서술하는 곳에는 오류도 보인다. 아미타내영도에서 아미타 여래 눈에서 빛이 나와 죽은 사람을 맞이하여 극락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는데(146쪽), 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에 있는 계주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미륵하생경 변상도에 나오는 왕과 신하, 시종, 백성들의 신분 차이가 그림 속에서 옷차림이나 위치로 반영되어 있다고 했는데(147쪽), 이것도 경전내용을 충실하게 서술한 것일 뿐 확대해석은 곤란하다.  

조선 시기로 넘어가서 분청 사기가 신진사대부의 기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 서술은 아예 잘못되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다 백토만 덮어씌운 자기다. 따라서 분청사기만으로는 그 어떤 사회적 해석도 위험하다. 그러면 모든 청자에 그런 해석을 덧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기 인화문(도장무늬) 분청사기는 사대부가 아닌 왕실에서 쓰인 자기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170쪽에 나오는 "녹지(綠地 푸른 숲) 무늬"와 "조화(鳥花 새와 꽃) 무늬" 분청 운운한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다. "박지(剝地 배경을 파낸)"와 "조화(彫花 무늬를 파낸)"로 고쳐야 한다. 좀더 길게 설명하자면 박지기법은 백토를 바른 뒤 배경을 파내어 무늬만 남기는 것이고, 조화기법은 백토에 무늬를 음각하는 것이다.  

진경산수화를 서술하는 곳도 조선성리학과 노론 세력과 연결하여 서술하고만 있는데(185-186쪽), 조선성리학보다는 오히려 실학 사상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이면 좋겠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설명한 192쪽도 아쉽다. 도대체 뭐가 "상것들이 어찌 흉내라도 내겠느냐는 우월감과 기득권 수호 의식을 나타낸 것"인가? "사대부 계층의 회화인 남종화의 서권기, 문자향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사의 정신의 강조는 바로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계층과 공감이나 화합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자부심이자 또한 위기 의식의 반영이었다."는 말도 그 자체는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세한도>를 말하면서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너무 억지이며, 사대부 계층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쓸데없는 혐오감만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김정희가 귀양살이 할 때 다른이는 다 등돌려도 제자 이상적은 변함없이 김정희를 찾아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그림에 어떻게 그런 해석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개정판을 내려면 미술사학계의 성과를 더 많이 살펴보고 이를 반영한 다음에 내야하는데, 너무 성급하게 낸 것이 아닌가 한다.  

전체적으로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아 비판만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세종이 왕실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높이고 특권을 옹호하기 위해 한글과 여러 책들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나 각각의 시기마다 백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서술한 것은 폭넓은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회 비판적 서술들은 미술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류층은 이렇게 누릴 때 민중들은 쎄빠지게 고생했다>는 결과론은 가능하지만 미술과 사회구조에 꼭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책 편집을 보자면 어려운 용어를 보충 설명하기 위해 (  )를 너무 남발하여 글을 읽을 때 맥이 자주 끊긴다. 각주나 미주로 처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글상자를 마련하여 옆에다 설명을 붙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글월도 수월하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좀더 쉽게, 입말도 쓰면서 부드럽게 서술하는 게 좋겠다.  

완전하게 다시 개정해야 하는 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곡마단주 2010-05-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서 다 뵙게 되는군요. ㅋㅋㅋ

돌궐 2010-05-12 22:55   좋아요 0 | URL
뉘신지...

곡마단주 2010-05-13 23:51   좋아요 0 | URL
알면서...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 22 | 23 | 24 | 25 | 26 | 2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