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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의 힘
이영만 지음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게서 ‘최고경영자’(CEO)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에겐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린다. 연습생 출신이었지만 20대 초반에 이미 국가대표 야구팀의 4번타자를 지냈다. 30대 후반부터 ‘감독이 직업이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는 한국시리즈 10회 우승(4회 연속 우승 포함), 정규 시즌 승률 55.7%와 포스트시즌 승률 56%라는 기록을 세우고 야구선수로는 최초로 CEO가 됐다. 야구팀 감독에서 기업경영의 전면으로 나선 것이다. 아니 그는 감독 시절부터 이미 ‘CEO’였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스포츠 기자 이영만씨가 쓴 ‘김응용의 힘’은 김감독을 ‘다이아몬드의 마에스트로’로 묘사한다.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세심하고, 뱀처럼 냉정하고, 어느 순간엔 여우보다 더 교활하다. 위장술에도 뛰어나고 심리전에도 밝다. 겉모양은 우격다짐이지만 그것 역시 위장일 때가 많다. 모두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야구판의 승리라는 원칙을 위한 것들이다.” 저자는 김감독의 양병술(養兵術)과 지략(智略)·경영법을 현장 기자의 감각으로 포착해냈다.
김감독의 독특한 경영술 중 하나는 ‘침묵과 무표정’이다.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열어도 아주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성적이 부진했을 때 그는 당시 상황을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고 짧게 요약했다. 이 개그 아닌 개그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저자는 이 침묵과 무표정 전략이 독특한 카리스마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하면 그는 말로 야단치지 않는다. 대신 운동장 구석에 있는 드럼통을 쾅쾅 부숴(?) 버린다. 그의 무표정과 침묵에 선수들은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그는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2년째인 1983년 해태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했다. 해태는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첫 감독 김동엽씨가 한달만에 물러날 만큼 잡음이 많은 팀이었다. 김응용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의외의 선수인 양승호를 4번타자로 내세웠다. 부동의 4번타자였던 김봉연과 김성한·김준환 등 당시 해태의 거포들은 항의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김감독 특유의 ‘기부터 죽이는 전법’이다. 결국 김봉연을 비롯해 해태의 강타자들은 무릎을 꿇는다. 해태는 그해 절대 열세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일궈냈다.
저자가 정리하는 김응용 감독의 ‘뚝배기 경영술’은 다채롭다. 김감독의 특징인 ‘침묵하라’는 것에서부터 확신을 가지고 강공하라, 칭찬하지 말라, 연줄은 끝났다, 어제의 스타를 믿지 말라 등 그의 감독생활에서 뽑아낸 지혜를 저자는 매끄럽게 요약해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불꽃튀는 그라운드에서 뚝심과 추진력을 보여줬던 김감독의 내면과 에피소드를 읽는 것이다. 단순한 듯 복잡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웠던 한국 야구의 문제적 인물, 김응용의 면모가 복합적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