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망명지
유종호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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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고은은 문학평론가 유종호에 대해 이런 시를 남겨 두고 있다. “그런데 그의 공부는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착실했다/젊은 날/토마스 만을 다 익혀/조심스레/루카치를 익혀/… (중략)…/시 음악 그리고 산에 깊이 귀의해/책에 귀의해/여기 조선의 중도(中道) 지식인 있다/나이 들수록 자신만만과 허망이 번갈아가며.” 유종호는 어린시절인 일제 말기부터 일흔을 바라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쉼없이 책을 읽어온 독서가이자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비평가다. 그의 산문집 ‘내 마음의 망명지’는 한국 인문주의가 다다른 어떤 지극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에게 ‘책’은 즐기고 감화를 받기 위한 매체이면서 세상에 대한 균형감각을 길러주는 지혜가 담긴 우물이다. 그는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통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믿는다. 정치인의 무분별한 당적(黨籍) 이동을 두고 ‘정치철새’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자 그는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지빠귀를 보는 열세 가지 방식’이라는 시를 꺼내든다.

거기에 “높이 북으로 날아가는 기러기에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두보의 시 ‘귀안’(歸雁)과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는다”는 정지용의 ‘고향’이 슬쩍 기어든다. 그는 철새 정치인이라는 말속에서 언어의 오염과 정치적 타락을 본다. “(철새는) 매임없는 자유의 이미지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날개였다.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의 하나가 정치적 비행과 연루됨으로써 오염되고 훼손되었음을 필자 역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생각은 ‘교양’을 통해 사회적 무질서를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영국의 문명비평가 매튜 아널드에 가깝다. 문학과 책을 통해 현실을 비춰보면서 반성하는 것, 그게 바로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주의의 힘이다. 그래서 그는 유난히 고전에 천착한다. 이 책에는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사르트르와 레비 스트로스의 저작들, 한국 작가로는 시인 정지용과 평론가 김동석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고전’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낸 작품들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고도 살아 남은 것들이야말로 읽고 음미할 만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산문집에는 수많은 인용문이 등장한다. 그 인용들은 꽤나 정확하고 적절하다. 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베토벤의 어깨를 치며 ‘노형, 안녕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라는 토마스 만의 말이 등장한다. 사랑에 대해서는 “아들아, 여인의 사랑을 조심하려무나. 저 황홀과 완만한 독약을”이라는 소설 ‘첫사랑’의 한 대목을 끌어온다. “새로 얻은 권력은 언제나 가혹하다”는 에우리피데스의 경구도 “제자리에 놓인 적절한 말”이다. 여기 등장하는 인용문과 예화들은 저자가 허투루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문학평론가로서 저자는 현실의 부침(浮沈)에 따라 성쇠를 거듭해온 이른바 순수문학에도, 참여문학에도 가담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인문주의 비평의 길을 걸어 왔다. 그는 인문주의자답게 언어, 특히 한국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미건조한 대개의 평문들과 달리 저자의 문장은 꼼꼼히 되씹을수록 맛이 살아난다. 그는 83세에 시집을 낸 미국의 한 여성시인과 80대에 그리스어를 익혀 소크라테스 연구서를 낸 저널리스트 I. F 스톤에 대해 ‘장엄한 노인들’이라는 헌사를 보내고 있지만, 정작 찬사에 어울리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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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탄생
이강숙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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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는 ‘성장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불린다. 한 예술가가 외부적인 모험과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예술가의 정신적 성숙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가 쓴 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피아니스트인 이교수는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악 학자이면서 음악 교육가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내며 이 학교를 최고의 독립 예술교육기관으로 만든 인물이 바로 이교수다. 그는 “평생 음악선생으로 살아오면서 ‘피아노 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이 소설은 음악 교육에 관한 것이라 자평했다.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한국 소설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저자가 우선 문학과 음악이라는 이질적인 장르를 넘나들며 르네상스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게 그렇다. 게다가 이 책은 전례없는 음악 교육에 관한 소설이다. 한국의 극성스런 부모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아이들을 피아노 학원으로 내몬다. 부유층 일부에서는 일찌감치 아이들을 외국의 유명 음악 교육기관에 조기 유학을 보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육 현장에서 40여년의 세월 동안 음악을 가르쳐온 이교수의 소설은 그런 풍조에 따끔한 충고가 될 듯하다. 작가는 진정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소설의 첫머리는 한 지방도시 소시민층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민영이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스승들을 찾아 나서는 장면이다. 주인공의 배후에는 ‘재야 피아니스트’인 한 노인이 있고, 그를 피아니스트로 훈련시킨 사람들은 네명의 스승들이다. 첫 스승은 피아노를 사랑하게 하고 피아노와 친숙하게 만들어준 사람이고, 두번째 스승은 피아니스트로 훈련시켜 콩쿠르에 나가도록 하는 인물이다.

세번째 스승을 만나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국내의 ‘음악권력’ 때문에 콩쿠르에서 입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네번째 스승은 이제까지의 스승들이 가진 장점을 고루 갖춘 사람. 그를 만나 비로소 주인공은 음악가로 성공을 거둔다.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재야 피아니스트는 그에게 “세계무대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지 말고 자기의 예술혼을 찾아 그 혼과 평생을 같이할 것”을 당부한다.

다른 성장소설처럼 이 소설 역시 ‘스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최종적인 것은 자신 내부의 예술혼과 주체의식이다. 이는 고희를 눈앞에 둔 음악계의 거장이 오늘의 한국 음악계에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교육소설’이라고 해서 재미가 없을 거라 예단하지 말라. 저자는 문필력을 인정받아 이미 몇해 전 정식으로 등단했다. 현대소설가들의 버릇처럼 구성을 복잡하게 하거나 알듯말듯한 문장들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음악가로 살아온 그의 평생처럼 이 소설은 담백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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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2011-08-03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재 태그'에서 '피아니스트'가 있길래 저는 혹시 로만 폴란스키 영화 리뷴가 했네요..^^ 암튼 이분이(잘 모르지만) 이런 보기드문 소설까지 쓴 걸 알았군요.. "예술가의 정신적 성숙 과정"을 보여주는 교양소설은 유럽엔 괴테나 토마스 만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선 참 희유한 것 같습니다. 이문열의 몇몇 소설이 판에 박으나마 구색을 좀 갖추려 한 것 같고, 그뒤엔 뭐 있었나요? 음악 쪽은 더욱이나 기대하기 어려운듯 합니다. 클래식에 취미붙인답시고 한창 폼잡을 땐 남좋다는 피아니스트라면 무조건 다 귀동냥하기 바빴는데도 여전히 귀는 잘 트이질 않는군요..^^ 영화 <피아니스트>에 나온 쇼팽곡은 루빈스타인 것으로 어쩌다 듣는데, 그나마 익숙한 경우지요.. 또, 무려 74세의 고령으로, 영화 <샤인>에 나왔던 라흐마니놉의 '악마의 곡'을 기막히게 쳐낸 호로비츠도 어쩌다 '전율'이 필요할 땐 듣습니다..^^

모든사이 2011-08-03 08:34   좋아요 0 | URL
이강숙 선생의 소설은 그 뒤로 민음사에서 나온 <빈병교향곡> 정도를 더 읽었는데, 아주 완미한 단편들이더군요. 오랜 세월 숙성을 거친 문장이랄까요.. 서사가 그리 재밌다거나 스펙터클하진 않지만, 품위있게 나이든 분의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쪽에서의 고급은 저쪽에서의 고급이 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현의 노래 - 칼의 노래 100만부 기념 사은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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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56)은 요즘 그의 애마 ‘풍륜’을 끌고 한강변에 나간다. 그가 살고 있는 일산에서 바라본 한강 하구의 풍광은 드넓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풍륜’은 그의 몸을 싣고 전국을 누볐던 자전거다. 그는 이 자전거를 끌고 한반도 남단을 구석구석 답사하며 거기에 스민 삶의 사연들을 모아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두어 평 남짓한 그의 작업실에는 한강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재수첩을 들고 거리에 서 있었던 현장기자였다. 3년 전에는 틈 날 때마다 아산 현충사에 가서 이순신 장군의 칼을 들여다봤다. 그에게 ‘동인문학상’을 안겨준 ‘칼의 노래’는 그렇게 탄생했다. 지난해에는 예술의 전당 악기박물관에서 하루종일 악기를 들여다보는 일로 하루를 보냈다. 최근 출간된 장편 ‘현의 노래’는 “악기들 내면의 맹렬한 적막에 관하여” 쓴 작품이다. 오랜 발품 끝에 작품을 얻어내는 그의 버릇대로라면 아마도 그의 다음 작품은 ‘한강’에 관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

김훈은 요즘 소설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최근 처음 쓴 단편소설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1995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미문을 자랑하는 에세이스트로서 이름을 날렸다. ‘한국일보’ 기자, ‘시사저널’ 편집국장, ‘한겨레’ 부국장급 현장기자 등 30여년 동안 여러 언론사를 전전했던 그는 문장력에서 당대 제일 가는 산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자생활을 접고 마흔을 훌쩍 넘어 소설가의 길로 나선 지금 그는 단 네 편의 작품으로 최고의 작가 자리에 올라 있다. 문학평론가 김인환은 “김훈은 장편과 단편의 첫 두 편으로, 당대의 가장 으뜸가는 두 문학상을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며, 어쩌면 앞으로도 좀처럼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무후무한 기록을 오래 보유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그의 장편 ‘현의 노래’는 2001년 발표된 ‘칼의 노래’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후자가 임진왜란 당시의 무장(武將) 이순신을 다룬 것이라면, 전자는 가야의 악사(樂師) 우륵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의 사유는 3년여 세월 동안 ‘무기’에서 ‘악기’로 이동한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전쟁과 살육이라는 공통된 배경 위에 서 있다. 이순신은 전쟁영웅이었고 우륵은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기 위해 무참한 살육전쟁을 치렀던 시대의 인물이다. 김훈은 말한다.

“무기가 추악한 것이고 악기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 둘은 세계를 이루는 거대한 두 축이다. 살인의 도구와 아름다움을 실현하는 도구가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통념을 뒤집어 ‘무기’가 가진 현실적 힘을 긍정한다. 동시에 ‘악기’ 역시 이전에는 실존하지 않았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본다. “잠든 악기 앞에서 그 악기가 통과해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생각하는 일은 참담했다.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뿐이었다.”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가야의 악사 우륵은 ‘배신자’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허물어져가는 조국 가야를 배반하고 가야금과 자신의 제자 니문을 데리고 신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그를 두고 김훈은 ‘찬란한 배반’이라고 말한다. “소리는 인간이 살아서 귀로 그것을 들을 수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죽으면 음악이 있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조국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예술가다.”

김훈은 대학시절 ‘삼국사기’에서 우륵이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도망갔다는 대목을 읽는 순간 서늘한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이순신은 정사(正史)에서 말하듯 구국의 영웅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살육을 감행해야 했던 ‘고독한 무사’다. 김훈은 이순신이나 우륵처럼 한가지 목표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내건 ‘순결한’ 인물들을 동경한다. 그는 자신이 ‘완벽한 테러리스트’라고 평가하는 안중근을 좋아한다.

그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 ‘화장’은 화장품 회사의 간부로 있는 중년 사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의 아내는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고, 그가 연정을 품고 있는 여성은 자기 회사의 젊은 부하 여직원이다. 병에 걸려 밤낮으로 똥과 오줌을 싸는 아내는 그가 처한 비극적 현실이고, 싱싱한 육체와 젊음을 자랑하는 여성은 그가 실현하고픈 욕망의 대상을 뜻한다. 그 사이에 서 있는 주인공은 전립선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삶은 비극적인 것이지만 욕망의 실현은 더더욱 어렵다는 김훈식 허무주의가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다.

삶에 대한 그의 허무주의는 전작 ‘칼의 노래’와 이번 ‘현의 노래’에서도 줄곧 관통하는 주제다. 비극적 현실과 추악한 욕망 사이에서 ‘전립선염’을 앓으며 견디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한 생애다. 김훈은 자신이 ‘심한 마초’이며 ‘실패한 기자’고 ‘지독한 보수주의자’임을 숨기지 않는다. 시사저널 편집국장 재직시 한 대담 자리에서 ‘반페미니즘 발언’을 했다가 부하 기자들의 항의를 받자 서슴없이 직장을 때려치웠다.

군사독재 시절 자신이 독재자를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썼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그저 공차는 것일 뿐인 월드컵 바람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축구공’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절감해 대선 직후 스스로 ‘한겨레’에 사표를 냈다. 김훈은 조만간 자신이 기자로서 살아왔던 시대를 작품으로 쓸 계획이다. 그는 기자로서의 자신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내가 기자생활을 했던 그 시대 전체가 실패작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기자였던 나 역시 완전히 실패한 삶이 아닌가.” 그 스스로 다음 작품은 실패한 자의 ‘후일담’이라고 예고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방송의 한 독서 프로그램에 나와 김훈의 장편 ‘칼의 노래’를 추천하며 “뭐라 할 말이 없다. 놀랍다”는 평가를 내렸다. 노대통령은 ‘놀라움’의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으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삶에 대한 김훈의 시선은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다는 것이다. 김훈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배설물의 냄새를 풍기며 추악하게 죽어간다. 김훈은 우륵의 죽음을 “오줌이 흘러 두 다리를 적셨다”고 묘사한다.

이런 비루한 죽음의 묘사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의과대 교수와 수련의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해 얻어낸 것들이다. 지독한 허무주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유에 일정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사실’에 대한 집요한 탐구 때문이다. 일산에 있는 그의 집에는 ‘현의 노래’의 배경이 되는 경남 창녕·고령 일대의 상세지도가 벽에 걸려 있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가야의 흔적을 찾아 그 지역을 일일이 답사했다. 가야의 냄새는 찾을 길 없었으나 우륵이 바라봤던 신라 시대의 ‘별’은 그때나 지금이나 반짝이고 있었다. 김훈은 자신을 실패한 기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가진 냉정한 정직성이라는 미덕은 현실을 직시해야 했던 기자생활이 남긴 유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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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가상 세계의 아이들
에티엔 바랄 지음, 송지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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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벨 옵세르바퇴르’ 기자로 주일 특파원을 지낸 에티엔 바랄은 현대 일본 사회의 독특한 특성을 해명하기 위해 ‘오타쿠’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오타쿠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전문가적 안목과 지식을 가진 열혈 매니어를 뜻한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문화산업 분야에서 일본이 보여준 성취는 바로 이들의 존재 덕분이다. 에티엔 바랄이 서울에 부임한다면 그는 ‘사이버 폐인’을 탐구대상으로 삼을 지도 모른다. 초고속 인터넷 가입률 세계 1위의 한국에서 사이버 폐인들은 전세대와는 전혀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며, 한국의 문화를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바꿔 나가고 있다.

‘폐인’은 “병이나 못된 버릇으로 몸을 망친 사람”을 뜻하는 부정적 뉘앙스의 말이다. 거기에 ‘사이버’라는 말이 붙었으니 ‘사이버 폐인’은 인터넷 중독으로 몸을 망친 사람을 뜻할 것이다. 이들은 여러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디지털 노마드 등으로 불리다 최근에는 블로그족·디카족 등 활동유형에 따라 새로운 종족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사이버 폐인’을 일컬어 ‘대한민국 신인류’라고 부른다. 이 말속에 스민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고, 거기서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대적 정체성을 찾고 있다. 황교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를 해부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의 주류집단으로 등장할 것”이다.

저자는 최근 몇년 동안 사이버 공간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를 지속해 왔다. 한국인의 행동특성과 생활양식을 규명해온 그에게 이 공간은 오늘날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한국은 인터넷이 대통령을 뽑은 나라가 아니던가. 저자는 사이버 폐인들을 네버랜드를 찾아가는 동화 피터팬 속의 웬디에 비유한다. 이 ‘웬디들’이 만드는 세상에 대해 그는 낙관한다. “사이버 신인류가 새로운 주류집단으로 등장하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더욱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그런 한국사회라면 세대 전환이라는 자연현상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겠지요.”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사이버 공간을 통제하고 검열하기 위해 내놓은 ‘인터넷 실명제’는 이들의 문화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심리분석과 생태연구는 상세하고도 흥미롭다.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을 우려하고, ‘인터넷 중독증’을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상당한 계몽의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삶에 중독됐다’라는 말이 없듯이 인터넷이 삶인 이들에게 ‘인터넷 중독증’이란 말은 애시당초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사이버 폐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책일 지도 모른다. 인류학자가 펴낸 책이 정작 연구 주제가 된 부족들에게는 읽히지 않듯이 말이다. 게다가 사이버 폐인들이 만드는 문화는 끝없이 변동중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들과 학자들이 따라잡기에는 이들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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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사 서남동양학술총서 25
김한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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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사’라는 제목은 낯설기 그지없다. 우리에게 요동(遼東)은 만주 일대의 옛 고구려 영토를 가리키는 지역 명칭일 뿐이었다. 고구려와 여진·거란·만주족 등이 거주했던 지역일 뿐 거기에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지속되는 어떤 역사를 상상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중간에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고구려사는 한국사도 중국사도 아닌 요동사’라는 저자의 주장은 자못 논쟁적이다. 이 책은 민족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학계와 과잉 애국주의로 소수민족의 역사까지도 자신들의 역사로 아우르려는 중국 사학계 양편을 겨냥한다. 동아시아사에 관한 일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인 셈이다.

저자인 김한규 서강대 사학과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한국 혹은 중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로 환원되지 않는 ‘요동 역사공동체’라는 개념이다. 저자는 7백4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통해 요동 지역의 역사에 드리워진 ‘민족국가적 관점’이라는 장막을 걷어내려 한다. “고구려라는 국가는 바로 이 요동이라는 제3의 영역에서 건립된 국가였다. 즉 고구려는 한국의 국가나 중국의 국가가 아닌, 요동의 국가로 역사상에 출현했다.”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민족주의적 역사 연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같은 주장에 내포된 폭발력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벌써부터 ‘요동 역사공동체’라는 저자의 시각은 한국 사학자들의 비판목록에 올라 있다.

이 책의 출간은 중국 사학계 입장에서도 불편한 일일 것이다. ‘역사상의 요동’이라는 개념을 담은 저자의 발표문은 한·중 국제 학술대회에서 “한·중 우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발표를 거부당했다. 저자의 또다른 저작 ‘한중관계사’는 중국어 번역을 마치고도 “제국주의 침략에 복무하고 민족 분열주의의 주장을 위한 설법”으로 평가돼 중국에서 출간할 수 없었다. 역사학이 현실정치에 상당한 정도로 복속돼 있는 중국 사학계의 현실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국쪽 사정도 비슷하지만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고구려사를 포함한 요동 지역의 역사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새로운 사실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사료로 직접 사실을 전달하는 서술양식”을 택했다는 게 김교수의 말이다. 말하자면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라는 역사가 랑케식 실증주의인 셈이다. 한·중 양측에 현존하는 1차 사료들을 토대로 요하(遼河) 유역에 예맥계의 조선·부여·고구려, 숙신계의 말갈·여진·만주, 동호계의 선비·거란·몽골 등 여러 세력이 명멸했다는 것을 논증해 내고 있다. 그는 고구려의 경우 요동국가로 출현했다가 평양성으로 천도하면서 요동과 한국을 아우른 통합국가로 발전했다고 본다.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대해 한·중 역사학계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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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1-08-2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제목이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까 만주 몽골의 역사군요. 김한규의 견해는 소수의견 이긴 하지만 아주 새로운 의견은 아닙니다.

유명한 것은 것은 프랑스 사학자인 르네 그루세가 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L'Empire des Steppes, 1939. 김호동·유원수·정재훈 옮김, 서울, 사계절, 1998.) 인데 출판연도가 1939년이라는게 놀랍죠. 고유명사가 많아서 읽기가 괴롭긴합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청사를 지배자인 만주 민족의 입장에서 보는 움직임이 있는데 국내에 번역된 것은 이블린 S. 로스키, 구범진 옮김, 최후의 황제들 – 청 황실의 사회사 가 있읍니다

지금까지의 중국역사 기술이 중국 한민족 중심이었다면 북방민족을 하나의 큰 변수로 보고 다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아주 바람직하다고 보고 흥미진진하기도 합니다. 중국사에 대한 큰 시각 교정효과가 있고 한국사도 다시 보입니다.

번역 안된 것으론 Peter Perdue 의 China March West 가 있는데 강희제의 신강지역 점령이 주제입니다. 소위 중국의 동북공정이 뿌리가 어디 있나 알 수 있는 책이죠.

다만 너무 전문적이어서 청사나 중국사에 관심이 없으면 읽기 힘든 점이라는 게 단점입니다. 님께서 두꺼운 책을 힘들게 읽었을 것 같군요. 흥미있어 보이는 책인데 미국에서 이 책을 구하는 건을 그림의 떡일것 같군요.

모든사이 2011-08-21 09:44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나온지 벌써 꽤 됐으니 이제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새롭다는 것은 아마 이런 시각이 '국내 학자'에 의해서 제기되었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외국의 학자들은 더 '보편적' 시각에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