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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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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여름,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네덜란드 선박이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후일 ‘하멜 표류기’를 써 서구세계에 한국의 존재를 알린 하멜 일행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최초의 네덜란드인은 아니다. 그들보다 26년 전 조선에 표류해와 아예 눌러 앉은 얀 얀스 벨테브레(한국명 박연)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네덜란드인 방문자다. 올해는 하멜 일행이 한국에 당도한지 3백50주년이 되는 해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은 2003년을 ‘하멜의 해’로 정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 나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남긴 히딩크의 나라로 한국인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에는 연이은 노동파업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네덜란드 모델이 떠오르면서 또 다시 주목받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여전히 낯선 나라다. 조선후기의 문인 이덕무는 “그들은 눈이 깊고 코가 길며 머리카락이 모두 붉고 발길이가 1척 2촌인데, 항상 개처럼 한발을 든 채 오줌을 누며, 서양의 예수교를 배워 이를 믿는다”고 말했는데, 현재 우리의 인식 역시 이같은 편견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네덜란드 역사 문화기행이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네덜란드의 현재(1부)와 역사적 형성(2부)을 소개한다. 서구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비 서구 사회를 그려냈다면, 비 서구 사회는 그 역편향인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거나 반대로 맹목적 서구 추종에 빠지곤 했다. 이 책은 타문화 소개서들이 빠지기 쉬운 이같은 ‘편향’에서 벗어난 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타자는 숭배와 저항의 대상이 아닌,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던가.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일단 서로 협력해야 했다. 그들의 ‘사회적 합의’의 토대는 이같은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자본과 노동간의 대타협이 이뤄지고, 우파 정당인 자유당과 좌파 정당인 노동당의 ‘자주색 연정’이 출범한 나라.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을 뜻하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한국 사회가 네덜란드를 주목하는 것도 ‘사회적 합의’의 정신 때문이다.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독일·프랑스·영국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에서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었던 이 나라의 사례는 미·일·중·러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에게 쓸모있는 참고가 될 것이다. 프랑스인 데카르트와 영국인 로크는 이곳에 머물며 대작들을 펴냈고, 탈근대 철학의 시조가 된 스피노자는 여기에서 철학적 사유를 살찌웠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국가적 자존심은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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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대 맥월드
벤자민 바버 지음, 박의경 옮김 / 문화디자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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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는 맥도널드·MTV·매킨토시·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맥월드’라 부른다. 맥월드는 현재 세계가 도달해 있다고 믿는 테크노피아를 풍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가 1995년 펴낸 ‘지하드 맥월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그것이 초래할 역풍을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9·11 테러 이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그 이후 상황에 더 잘 들어맞는다. 저자인 바버는 메릴랜드대 교수로서 시민운동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사상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처럼 세계적 질서의 양상을 분석하는 책이지만, 그 두 책이 가진 미국중심의 시각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바버가 ‘맥월드’라는 개념을 창안한 것은 그와 대척점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마련인 ‘지하드’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하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감행하는 ‘성전’(聖戰)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언론에 의해 미국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투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쓰이곤 한다. 맥월드가 공공선을 무시하고 광포하게 이윤을 추구하면서 지하드는 테러와 같은 극단적 투쟁을 선택하게 된다.  

 

 

당초 지하드는 “정치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의 사회운동”에서 시작됐지만, “산업현대화가 가져온 획일성과 식민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되고 급기야는 테러로 귀결된다. 바버는 맥월드와 지하드를 각각 “할리우드 카우보이와 국제적 무법자”라 부른다. 맥월드가 ‘동물적 탐욕의 세계’라면, 지하드는 ‘본능적 두려움의 세계’다. 그런 점에서 두 세계는 서로의 존립을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테러는 지하드와 맥월드의 ‘기생적 변증법’에서 독버섯처럼 자란다. 바버는 “지하드와 맥월드 모두에 대한 민주주의 투쟁만이 지구를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전세계적인 시민운동의 활성화다. 맥월드의 시장논리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고, 지하드의 원리주의도 타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비관적인 현실 진단에 비해 대안은 다소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다른 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바버의 제안은 우원(迂遠)하고 답답하나마 세계를 인간화시키기 위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이성적 질서를 지상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헤겔처럼 바버는 민주주의가 세계를 구원한다는 견고한 신념 아래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의 원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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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투안 두옹 - 김상수 사진 산문집
김상수 지음 / (주)리오스테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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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안 두옹, 김상수 사진
1995년 프랑스 파리 교외의 불로뉴 숲. 한 소녀가 숲을 가로질러 달린다. 카메라 렌즈에 눈을 고정시킨 한 사내가 소녀의 그림자를 따라간다. 작고 깨끗한 야생짐승 같은 한 베트남계 프랑스 소녀 투안 두옹과 그녀를 쫓는 유달리 예민하고 실험적 감성을 지닌 사진작가 김상수. 1995년 파리의 한 지하철 역에서 투안을 우연히 만난 김상수씨는 그녀의 싱싱함에 매료됐다. 김씨는 자신의 미술전시작품 중 비디오 아트에 그녀를 출연시켰고, 그들의 인연은 그 뒤 7년여 동안 계속됐다.   

‘파리의 투안 두옹’은 이런 두 사람의 인연에서 탄생한 책이다. 투안이라는 동양계 여인을 등장시켜 그녀와 파리, 프랑스 문화에 대한 김씨의 에세이를 뒤섞은 독특한 사진산문집이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18세의 앳된 소녀였던 투안은 이제 20대 중반의 의사가 됐다. 이국에서 만난 한 소녀가 10대를 거쳐 20대의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그녀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성찰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프랑스에서 만난 미술가들과의 대담, 한국 문화계를 향한 김씨의 독설도 포함돼 있다. 
 

김상수씨는 영화 ‘학생부군신위’의 시나리오 작가로 대종상을 받기도 했으며, 직접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로도 유명하다. 소설을 발표했는가 하면 설치미술과 사진작가 노릇도 하고 있는 전방위 문화게릴라다. 어떤 에콜에도 속하지 않은 채 고집스럽게 자기 세계만을 고수해온 문화계의 이단자다. 이 책도 스스로 출판사를 세워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낸 끝에 만들어냈다. 그의 책은 주류 문화계와 결별한 채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방외인’(方外人)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김씨가 담아낸 투안의 이미지는 젊은 여성을 담아낸 많은 사진들처럼 ‘성적인’것은 아니다. 그의 사진은 20대의 젊음이 가진 생기발랄함과 순수한 열정을 투명하게 담아낸다. 투안의 사진에는 미묘한 슬픔의 흔적이 촉촉히 배어 있다. 그같은 인물의 ‘아우라’는 파리의 거리들과 적절히 뒤섞여 절묘한 엑조티시즘(exoticism)의 향기를 뿜어낸다. 인물을 그저 한 피사체로만 여겼다면 이같은 존재감은 실감나게 표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을 ‘사진산문집’이라는 흔한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에세이의 원래 의미가 ‘세계와 삶에 대한 시론(試論)적 글쓰기’라면, 이 책은 사진과 글을 통한 인물과 문화에 대한 에세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한 인물의 표면을 통해 내면을 읽어내고, 그가 속한 문화의 본질에까지 육박하는 ‘에세이’ 말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두 사람의 ‘마음의 친교’를 들여다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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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올드 데이스 - 휴먼 다큐멘터리 1
박규원 지음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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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보다 흥미로운 것이 또 있을까. 더구나 그가 전쟁과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살아갔던 인물이라면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1930년대의 상하이는 망명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동양문화와 서양문화가 혼융되면서 엮어낸 ‘상하이의 황금시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상하이 올드데이스’는 이 황금시대의 절정기에 영화황제로 등극했던 한국인 김염의 삶을 조명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일제의 침략과 국공 내전·문화대혁명 등 격동기의 중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간 그의 생애는 서사시적이다.

한국에서 한 가족의 생애는 단순한 가족사에 그치지 않는다. 40대의 한국인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조부모는 식민지 치하의 삶을 살아야 했고, 부모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빈곤의 50, 60년대를 거쳐 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족 3대의 운명은 곧 한국 현대사 자체이기도 하다. ‘상하이 올드데이스’의 저자와 주인공의 가족사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김염은 독립운동가의 아들이고 그의 가족은 일제 침략과 국공 내전, 6·25와 분단의 와중에서 미국과 중국·북한과 남한에 뿔뿔이 흩어졌다. 평범한 40대 주부인 저자 박규원은 자신의 작은 할아버지인 김염의 삶을 통해 그들 가족과 역사 속 인간의 운명에 대해 되묻고 있다.   

 

주인공 김염의 아버지 김필순은 세브란스 의전 1회 졸업생으로 서양의학 교육을 받은 첫세대 양의사다. 그는 ‘105인 사건’에 연루돼 중국으로 망명, 치치하얼(齊齊哈爾)에서 조선인 이상촌 건설을 위해 힘썼던 인물이다. 아버지 김필순이 일본인에게 독살당하자 가족들은 중국 전역으로 떠돌게 되고, 둘째 아들 김염은 가난 속에서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29년 쑨유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롼링위와 함께 출연한 ‘야초한화’로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됐다. 이후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해 중국의 ‘영화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아리랑’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는 “나는 김염에게서 육체의 아름다움 너머에 깃들인 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염은 매력적인 배우이기도 했지만, 당대의 배우들과 달리 항일정신이 투철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도 문화대혁명의 광기를 피하지는 못했다. 최고의 영화배우에서 기계수리공으로 전락했고, 위수술이 잘못되어 죽기 전 20년 동안 산송장으로 지내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그의 삶은 극도의 궁핍과 화려한 성공, 정치적 성공과 좌절 사이를 오가는 파란만장한 생애였다.  


이 책은 8년간의 성실한 답사와 취재로 복원된 ‘논픽션’이지만, 저자는 김염의 입을 빌린 1인칭 소설 형식을 취해 극적 효과를 꾀하고 있다. 김염의 생애가 주는 감동도 크지만, 그의 삶을 복원하려는 저자의 의지와 노력도 눈물겹다. 간혹 비치는 혈연 사이의 끈끈한 애정고백은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을 다룬 책들이 경박한 처세학과 공허한 성공기에 그치고 있는 요즘, 역사적 인간의 묵직한 생애를 다룬 이 책의 가치는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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