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1 - 박재범 대본집
박재범 지음 / 비단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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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덕포라는 깡패의 장부를 봐주며 조금씩 삥땅치던 우리의 주인공 김성룡은 덴마크로 이민하기 위한 더 큰 돈을 삥땅치기 위해 TQ그룹의 경리부 과장 자리에 지원한다. 그는 실력으로 뽑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흑막이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성룡이 지원한 경리부 과장 자리는 회사 내부고발자가 의문의 사고로 의식불명이 된 까닭에 생긴 공석이었고, 검찰에 신물을 느낀 서율TQ그룹 재무이사로 와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서 가장 탈 없을 것 같은 성룡을 뽑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성룡에게도 서율에게도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성룡은 우연히 의인(義人)이 되고, 서율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은 강자에게 강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처음에는 우연으로 의인이 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행동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늘자 진심으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를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다. 성룡이 TQ그룹의 썩은 부위를 하나씩 들추자 서율은 회장에게서 꼬리 자르기에 당하게 되는데, 이때 성룡이 나서 서율을 구하고 둘은 한 팀이 되어 TQ그룹 회장 무너뜨리기에 돌입한다. 그들의 협심에 TQ그룹은 결국 정상화되고 김성룡은 덕포의 부탁으로 나이트클럽 관리자로 돌아간다. 서율은 1년간 회계재무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다 윤하경(경리부 대리)의 제안으로 TQ그룹의 CFO자리에 정식으로 지원하면서 막을 내린다.

 

2017년 초 방영한 드라마 김과장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였다. 나 역시 열광한 사람 중 하나였다. 정주행은 3번 정도, 재방송은 채널 돌릴 때마다 나오면 봤다. 평소 드라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보더라도 한 번만 보는 나였기에 채널을 돌리다 이 드라마가 나오면 멈추는 나 자신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와중에 서점에서 대본집을 발견했으니 오죽 기뻤을까. 드라마는 잡아먹는 시간이 길어 딜레마였는데 그런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대본집을 사 온 2017년 어느 봄날 저녁. 나는 밤새서 1, 2권을 다 읽었다. 원래 의도는 몇 화만 보고 자야지였으나 일단 시작한 읽기는 갈등의 고조와 해소의 짜릿함으로 인해 멈출 수가 없었다. 또 드라마를 보고 또 봤으니 등장인물들의 목소리, 표정, 몸짓, 모습까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그려졌다. 분명 영상을 보는 느낌인데 현실은 책을 읽는 모양새가 너무나도 새로웠다. 20편을 몰아보기까지 이틀이면 된다는 사실도 새로웠다. 그야말로 대본집 읽기는 신세계였다!

 

그래도 당시에는 대본집을 처음 봤기에 밤을 지새웠다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3년이 지난 최근에 독서 의욕을 달래려 다시 편 대본집의 효과는 똑같았다. 드라마 특유의 중요한 장면에서 감질나게 끝내는 게 대본이라고 다르겠는가. 억지로 참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등 흐름이 끊기지 않는 이상 대본집을 손에서 놓기란 굉장히 힘들었다. 결국 2권을 읽을 때는 전과 다름없이 밤을 지새웠다.

 

내가 생각하는 김과장의 재미 요소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성룡은 자신의 아버지가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했기에 어머니를 고생시키며 하늘로 떠나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인은 절대 정직이니 의로움이니 등을 지키면서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덴마크로 떠나려는 이유도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그나마 부패지수가 가장 적은 나라로 이민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그것이 우연이었든 불순한 의도였든)이 주변을 더 좋게 만들자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가치 역시 돈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었고.

 

서율은 어떻게든 이겨야 하고 군림해야 하는 강박을 지녔다. 쓰레기 밑에서 정의로운 척 일하느니 차라리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 짓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으로 검사를 때려치우고 TQ그룹 재무이사로 간 것이다. 그러나 때려도 때려도 부러지지 않는 김성룡과 호감이 있는 윤하경 대리로 인해 그는 기분 좋게 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경리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기계처럼 일하면서 직원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높은 양반들의 지출을 회사돈으로 메꾸는 호구짓 담당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던 그들은 김성룡의 행동에 감화되어 의지와 활력을 되찾는다.

 

반면, 반대편에 선 인물들은 일관적이다. 좋은 쪽으로의 일관성은 누구나 응원하는 바이지만, 나쁜 쪽으로의 일관성은 깊은 빡침을 불러온다. 게다가 그 나쁜 쪽이 약자를 억압한다? 아마도 주먹이 울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무시했던 유형의 인물에 의해 박살난다. 실로 통쾌한 사이다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요소는 시답잖은 연애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를 비꼬는 밈으로 이런 말들이 있다.

 

의학 드라마 병원에서 사랑하는 내용

법정 스릴러 드라마 법원에서 사랑하는 내용

범죄 수사 드라마 범죄자 잡으면서 사랑하는 내용

스포츠 드라마 운동하면서 사랑하는 내용……

 

메인 주제는 사랑과 거리가 멀지만 커플을 꼭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하다. 그에 반해 김과장은 메인 주제인 대기업의 부정부패를 해결하는 약자 대표 김성룡 과장에서 한치도 멀어지지 않고, 연애가 끼어들지도 않는다. 은근슬쩍 광숙이라는 인물이 하경과 성룡을 엮는 시도는 하지만 하경의 단호한 거절로 끝. 눈에 띄는 연애는 주변 인물에게서 살짝씩, 마치 조미료처럼 일어난다. 경리부 막내 상태와 광숙의 만남, 하경과 서율의 호감 정도까지만. 내세운 주제를 지킨 드라마였기에 재미와 인기를 다 얻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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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드라마가 매우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본집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김과장말고 진짜 제일 사랑하는 드라마는 김은숙 작가의 신사의 품격인데 이건 각색 소설만 있고 대본집이 없다. 아마 이런 아쉬움을 달래느라 김과장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닐는지. 드라마 대본집도 소설처럼 많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염원을 가지고 다음에는 스토브리그대본집을 읽을 것이다. 그것도 남궁민 주연인 것은 우연의 일치……겠지? 아무튼, 대본집은 드라마만큼 재밌으면서도 드라마보다 시간 활용에 있어 효율적이다. 앞으로도 쾌락을 누리고 싶을 때 게임이나 유튜브 대신 드라마 대본집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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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집중 - 집중력을 지배하고 원하는 인생을 사는 비결
니르 이얄 지음, 김고명 옮김 / 안드로메디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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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쓰는 서평이다.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자라고 계속 다짐해도 한 번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란 어려웠다. 독서만 그랬으랴.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면서 하기 싫은 마음에 몸부림쳤다. 독서를 하든 공부를 하든, 집중을 요구하는 행동을 시작하면 그것을 제외한 세상 모든 일이 재미있었다. 공부하다 말고 갑자기 뉴스가 궁금해지거나 잠깐 보자는 마음으로 켠 유튜브로 반나절을 보내는 등 딴짓에 심취했다. 하루는 잠깐 켠 게임으로 밤을 새운 적도 있다. 그러다 보면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처럼 시간에 쫓기듯 하루 분량의 공부를 억지로 끝내고 후회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마디로 공부도, 독서도 제대로 하지 않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초집중을 집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선택한 의도는 집중력을 다시 높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집중력을 넘어 ()’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나 같은 집중력 거지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제목인가. 그러나 이미 집중력 파산 상태였던 나였기에 들어가는 글에서 며칠을 보냈다. 독서 10, 유튜브 3시간 비율로 읽었으니……. 아무튼, 매우 더딘 초반을 지나고 어느 부분에서 감동한 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집중력도 점차 회복되었고, 행동도 한참 열심히 지내던 때로 되돌아갔다. 덕분에 시간 관리와 마음에 탄력이 생겼다.

 

초집중은 목표에서 멀어지게 하는 딴짓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본짓에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계획한 시간에 계획한 행동만 한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후 2시간 동안 공부를 계획했는데 유튜브를 잠깐 본다면 딴짓을 한 것이다. 계획한 공부를 마친 후 30분 유튜브 시청을 계획해서 보는 것이라면 본짓에 속한다. ‘초집중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정신이란 참으로 나약해서 본짓이 내 마음을 괴롭힌다면 곧장 딴짓에 유혹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초집중으로 가는 길을 4단계로 나누어 알려준다.

 

1단계: 내부 계기 정복

 

문제는 딴짓 그 자체가 아니라 딴짓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 p.41

 

요즘 흔한 딴짓은 스마트폰 사용이다. 공부나 일하기 싫을 때 가장 가까우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잠깐만 봐야지 하고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흥미로운 영상을 계속 연계하여 추천하고, 뉴스 제목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와중에 나의 뇌는 귀찮은 짓 그만하고 편하게 쉬기를 바란다. 그렇게 제 할 일을 마치지 못했거나 결과물이 나쁘면 우리는 스마트폰을 욕한다. 스마트폰만 없었다면 제대로 집중해서 제때 끝냈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딴짓에는 별문제가 없다고 한다.

 

딴짓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딴짓을 안 하려면 스마트폰을 없애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부 계기이고, 대부분은 현실도피를 위해 딴짓을 하게 된다. 그럼 왜 현실도피를 하려는 걸까. 책에서는 네 가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인간이 만족하지 못하게끔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권태로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다. 둘째는 부정 편향으로 좋은 사건보다 나쁜 사건을 더 잘 기억하고 강하게 관심을 갖는다. 셋째는 반추로 나쁜 경험을 자꾸 곱씹는다. 다음을 대비한 전략이 될 수도 있지만, 잦은 반추는 자기 책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마지막은 쾌락 적응이다. 간신히 얻은 값진 행복이어도 인간은 그것에 적응한다.

 

현실도피 하게 만드는 요인이지만, 위의 심리적 요인이 없었다면 인간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에게 저런 요인이 있기에 살아갈 욕구도 목표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불만이야말로 정상적인 상태다. - p.49

 

나는 여기서 감동했다. 불만을 터뜨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불만족스럽다는 감정에는 불안, 초조, 조급, 우울 등도 포함되었다. 이런 상태로 공부와 독서에 접근하니 당장 해결은 안 되면서 시간만 잡아먹는 느낌이 들어 자꾸 현실도피를 했다.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비하를 엄청 많이 했다. 그러나 행복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불만을 가진 상태가 정상이라니, 가뭄에 단비 같은 말이었다. 이 부분을 기점으로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한껏 가벼워진 마음이 더 가벼워지는 내용도 있었다. 어떻게든 공부를 끝내고 가진 쉴 때면 의지력을 다 썼다라는 핑계를 댔다. 유명한 무 실험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쉬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쉬는 경우가 잦았다. 남은 계획을 포기했다. 그러나 캐럴 드웩이 발표한 논문에서 자아고갈의 징후는 의지력이 유한한 자원이라고 믿는 참가자에게서만 나타났다고 결론을 내렸다.(p.68)’ 나는 곧장 스스로 세뇌하기 시작했다. 의지력에 한계란 없다고. 더불어서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매일 위로하고 칭찬하고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기를 잘 위로하는 사람일수록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p.70)’ 행복이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될 순 없지만, 깊어진 불만으로부터 생기는 우울을 방지할 수는 있다. 그러다 보니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행동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2단계: 본짓을 위한 시간 확보

 

시간을 쓸 때는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산출물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어쩔 수 있는 투입물에 신경을 쓰자는 것이다. - p.87

 

여기 단계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시간별로 할 일을 계획하자. 책에서는 타임 박스형 계획표에 시간대별로 할 일을 분배해 행동할 것을 권한다.

 

나는 매일 데일리 플랜을 적으면서 생활하고, 또 취준생이라 본짓에 쓸 시간은 충분해서 이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관계는 뭐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중에 궁해지면 다시 읽을 요량이다.

 

3단계: 외부 계기 역해킹

 

게임, 메신저, 끙끙거리는 개, 말 거는 가족……. 나를 자극하는 외부 계기를 꼽자면 이 정도려나. 앞서 얘기했던 스마트폰도 외부 계기에 속한다. ‘딴짓과의 싸움에서 상당 부분은 외부 계기와의 싸움이다.(p.111)’ 그렇다고 모든 외부 계기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금연을 예로 들어 짧은 응원 문자가 금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결정적 질문에 대답해 좋은 외부 계기와 나쁜 외부 계기를 구분하라고 한다.

 

이 계기가 나를 지원하는가, 지배하는가? - p.113

 

지원한다면 외부 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지배한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최대한 끊기로 한다.

 

여러 나쁜 외부 계기 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SNS와 메신저였다. 친구가 많지 않아 연락이 오는 경우가 드물지만, 한 번 오면 꽤 오랜 시간 붙들고 있게 된다. SNS는 확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은근한 기대로 금세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금방 답하거나 확인하고 다시 집중해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세계정보관리저널논문에는 사무직 노동자가 이메일을 확인한 수 다시 업무를 보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기까지 평균 64초가 걸린다고 나와 있다.(p.122)’ 수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 낭비되는 시간은 같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극단적으로 해결했다. SNS는 죄다 탈퇴하고 삭제했으며 메신저마저 삭제했다. 그랬더니 나를 방해할 은근한 기대도 연락도 없어졌다.

 

게임과는 최근에 결별했다. 과연 게임이 나에게 무슨 도움을 주는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게임을 하면 즐거움은 잠깐이고 곧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루 동안 게임에 대해 심사숙고한 결과 지우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고, 현재 내 컴퓨터에는 설치한 게임이 없다. 스마트폰에는 단 하나의 게임만 남아 있다. 아직까지는 미련이 남았고, 종료해도 자동으로 성장되는 터라 놔두는 중인데, 지울 날이 머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외부 계기는 반려견과 가족이다. 반려견은 자꾸 무릎 위에 올려달라고 끙끙거린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개를 끌어안고 있기란 힘겹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현재는 그냥 무릎 위에 올려놓는다. 끙끙거리는 소리보단 더운 게 낫다. 가족이 유발하는 외부 계기는 방해 금지 표시를 준비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눈에 띄는 형광색 조끼나 화려한 머리띠 등으로 자신이 지금 집중 상태임을 어필하라는 것이다. 나도 조만간 아주 화려한 무언가를 준비해 방해 금지 모드를 차릴 예정이다.

 

4단계: 계약으로 딴짓 방지

 

사전 조치를 도입하기 가장 좋은 시점은 초집중 모델의 앞선 세 단계를 모두 실행한 후다. - p.173

 

딴짓을 유발하는 계기를 정리했다면 최종적으로 집중하기 위한 사전 조치를 해야 한다. 충동을 이기기 위해 미래의 선택을 차단하는 것이다. 저자는 세 가지 사전 조치를 제시한다.

 

첫째는 노력 계약이다. 노력 계약은 원치 않는 행동을 하기 어렵게 해 딴짓을 방해하는 것이다. 공부할 때 가장 원치 않는 행동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행동이다. 스마트폰의 딴짓 경로는 시간 확인버릇처럼 누른 포털 앱뉴스 서칭종료 후 다른 앱……순서로 진행된다. 아예 켜지 않으면 괜찮은데 일단 손이 가면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서 자주 이용하는 앱이 포커스. 정해진 시간이 끝나지 않으면 앱을 종료할 수 없고, 중간에 멈출 시 실패로 간주한다. 나는 그 실패 기록이 찝찝해서 앱을 실행하면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을 끊는다.

 

다음은 가격 계약이다. 목표의 성공 여부에 돈을 건다. 성공하면 돈을 잃지 않지만, 실패하면 돈을 잃는다. 손실 회피 편향을 이용한 전략이다. 저자는 운동을 가지 않으면 100달러를 태우게 되는 가격 계약을 했고, 그 결과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격 계약은 몇 가지 제약을 갖는다. 1) 외부 계기를 피할 수 없는 행동은 가격 계약으로 바꾸기 어렵다, 2) 가격 계약은 단기적인 일에만 사용해야 한다, 3) 가격 계약은 무섭다, 4) 가격 계약은 자책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나는 여기서 1, 2, 3, 4 전부 해당하기에 가격 계약을 사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럴 돈도 없고.

 

마지막은 정체성 계약이다. 인간은 동사를 강조한 것보다 명사를 강조했을 때 그 행동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나는 공부한다보다는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체성은 장래에 우리 뇌가 어려워할 법한 선택을 미리 내리게 함으로써 의사결정의 효율을 높이는 인지적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p.190)’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인식이 내 행동을 바꾼다. - p.190

 

그러니까 우리가 계획한 일을 하기 전에 나는 초집중자이다혹은 나는 집중을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정체성으로 계획을 잘 지키면 선순환이 형성된다. ‘계획을 잘 지킬수록 정체성이 강화되는 것이다.(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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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초집중을 위한 4단계를 내 중심으로 요약한 내용이다. 나에게 아직 덜 중요한 직장이나 육아에 관한 내용은 생략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기 전후가 확실히 다르다. 딴짓의 빈도는 물론 계획한 일을 마치는 시간도 줄었다. 독서가 더뎠던 이유가 공부할 때 집중하지 않고 딴짓을 너무 많이 해 늦은 시간까지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분량을 마치고 나면 지쳐서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의지력 한계도 믿었다.). 지금은 저녁 먹기 전에 끝마치고 나머지는 나의 자유시간으로 누린다. 지속적으로 이렇게 집중할 수 있다면 나의 공부 결과도 좋지 않을까. 그렇기를 바라며 나의 정체성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다.

 

나는 초집중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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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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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마무리를 아무리 잘해도 코로나의 해로 남을 것 같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한다는 뉴스가 보이고 나의 동생은 무급휴직자로 전환되었다. 안경에 김이 서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마스크를 안 쓰던 나였으나, 지금은 근처의 마트를 잠깐 다녀와도 마스크는 필수로 착용한다. 까먹고 집을 나섰다가도 미착용을 깨달으면 되돌아와 마스크를 착용한다. 과장 좀 보태면 지갑 챙기는 건 잊어도 마스크 착용은 잊지 않는달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역대급 속도를 내고 있다지만, 생활을 안정시킬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한다. 게다가 변종까지 두둥등장하고 있다니 해결하지 못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저 손 잘 닦고 마스크 잘 쓰고 사람 접촉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코로나가 가져올 여파가 궁금해졌다.

 

예전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같이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나 싶어서 당장의 현상을 주제로 한 책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아무래도 장기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생활의 변화가 필수 불가결이다 보니 읽어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피엔스를 손에 든 이유이다.

 

자주 만날 팬데믹

 

바이러스는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만, 가끔 궁합이 딱 맞는 녀석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 p.26, 최재천 교수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하지 않을까. 팬데믹의 주기는 5, 3년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연례행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자꾸 침범하는 이상 말이다. 다양한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그들에게만 기생하던 생물들이 인간에게로 넘어오고, 여기서 조건이 맞으면 빠르게 질병화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1차 숙주는 박쥐이지만 직접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중간숙주가 천산갑이 맞다면 중국에서는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쓰므로 가공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온난화 역시 한몫 거든다. 기후가 더워지면서 열대에 머물던 세균 매개 동물들이 온대지방까지 올라오고, 시베리아에서는 동토가 녹아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드러나면서 탄저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언제든 팬데믹이 다시 선언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표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변화

 

정말 영세한 소상공인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져야 앞으로 우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존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 p.79, 최재붕 교수

 

코로나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1440선까지 폭락한 코스피지수다. 대공황까지 거론되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버티던 기업과 자영업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모든 기업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락해 그 순간만은 나라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가는 반등하여 횡보장까지 왔다. 곡소리가 안 들린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덜 들렸다. 곡소리 하지 않은 분야는 어디인가 하면 대체로 언택트라 불리는 영역이었다. , 직접 만나지 않고 일 처리 가능한 비대면 서비스가 대체로 성장하거나 살아남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의 주가 상승, 택배의 배달 물량 증가와 아마존의 추가 고용이다. 코스피 폭락 전 주당 15만 원이던 카카오는 현재 35만 원대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양이 늘었을 것이고, 아마존의 경우 감당이 안 되어 추가로 1만여 명을 고용했다. 또 자영업에서는 배달이 가능한 장사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지 못한 곳은 지금도 힘겹다고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진 시점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디지털 문명에 대한 공부는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익숙한 것에 더욱 의지하려 들면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재붕 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애써 만들지 않으면 없어지기만 할 뿐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적응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다.

 

디지털 문명하니 이런 걱정이 생겼다. 예전에 전자기기를 자주 사용하면 사고방식이 물벼룩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니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숙함이 더욱 우선시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굉장한 딜레마가 아닌가. 현시대의 가장 큰 무기는 디지털이지만, 가장 큰 적도 디지털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마 이런 걱정 역시 달라진 표준이 가져온 변화일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 경제적 주체로서 오래도록 건강히 살아남지 않을까?

 

자기중심에서 자기이해로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 p.176, 김경일 교수

 

코로나로 인해 대외활동이 강하게 제한되던 시기에, 유튜브를 켜면 보이는 콘텐츠는 몇 번 저어 만든 뭐시기였다. 달고나 커피, 크리미한 계란 후라이, 제티 초콜릿 등등. 나는 평소에도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 저런 짓을 왜 하지?’하며 봤지만, 그 안에는 꽤 큰 의미가 숨어 있었던 듯하다. 김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지향점이 변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남들이 가진 것, 다녀온 곳, 먹은 것 등을 자신도 이뤄야 만족한다고 여겼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만족한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찾아내는 만족감이 사회 분위기가 조성하는 흐름에 억지로 합류하는 것보다 더 높은 듯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디나 예외는 있어 이태원 확진자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니까.

 

아무튼, 개인이 자신만의 라이크를 찾으면서 기업도 달라진다고 한다. 원트가 지배적일 때는 대량 생산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했다. 일례로, 내가 중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교복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패딩이 교복이었다. 신발은 뉴발란스나이키 에어포스가 대세였다. 짭이라도 신으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가난해서 가지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라이크가 지배적인 지금은 소량 생산의 완판을 목적으로 둘 것이라고 한다. 개개인이 개성을 찾으며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여파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했을 터이니, 모든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만의 라이크를 찾았던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을 보면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취업이 되든 말든 행복하니까 말이다.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이다. 전염병 하나가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긴 것처럼 안일한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래 일이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책에서 석학들이 한 말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뉴스 영상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이제 BCAC로 나눠야 한다. Before CoronaAfter Corona.’ 홍기빈 교수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p.116)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방역을 잘한 나라이니 만큼 앞으로에 대한 결단도 잘 내리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물론 나도 개인적인 결단으로 공부에 힘을 더 써야겠다.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After Corona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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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는 유튜브 방송 중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진행자이신 정관용 씨가 진행한 대담집인 듯하다. 여섯 명의 석학,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교수들과 대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묶어서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해를 온전히 했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언급하지 않은 분들의 말씀은 내가 많이 부족한 경제 부분이라 따로 적지는 못했다. 읽기 쉬운 만큼 시간 내서 다시 봐야겠다. 거시적인 관점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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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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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읽었다. 문학을 하도 안 읽어 버릇했더니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위기절정부터는 깊이 몰입해 읽어 7월의 독서 시간을 아꼈다. 역시 소설의 꽃은 위기와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면 등장인물 성격과 그에 따른 행동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주로 다루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한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읽었는가. 그녀의 세 번째 작품 맨스필드 파크도 묘사가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위기부터 시작해 발단으로 돌아가는 요즘 소설과 달리 옛 소설 특유의 느릿한 발단,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고 변명한다. 거기다 집중력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니, 이게 제일 컸구나. 아무튼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분이시지만, 제인 오스틴 선생께 나의 소홀한 태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맨스필드 파크는 워드 가의 세 자매 결혼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둘째(레이디 버트럼)가 결혼을 제일 잘했고, 첫째(노리스 부인)는 보통이며 막내(프라이스 부인)가 가장 가난하다. 막내의 질투로 세 자매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가 사는 것에 비해 자식이 늘어난 프라이스 부인이 화해를 청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세 자매는 친교를 회복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노리스 부인이 막내에 대한 배려인 척하며 버트럼 경에게 막내의 딸을 집안에 들여 후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 그 결과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포츠머스의 가난한 집을 벗어나 맨스필드 파크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이 벌이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며 종국에는 각자에게 걸맞은 결론으로 끝맺는다.

 

굵직한 등장인물을 나열하자면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와 버트럼 가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 버트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럼 경과 부인인 레이디 버트럼’, 첫째 아들 톰 버트럼’,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줄리아’, 패니의 첫째 이모인 노리스 부인’, 노리스 부인의 남편이 죽고 목사관의 새 주인으로 온 그랜트 부부’, 그랜트 부인의 남동생 헨리 크로포드’, 여동생 메리 크로포드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이야기를 이끈다. ‘패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되듯 온 탓에 눈치도 보이고 무시당해 굉장히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버트럼 일가 중 누구도 패니를 사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둘째 사촌오빠인 에드먼드가 패니를 배려하여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산책도 함께 했다. 그는 패니를 위해 자신의 세 마리 말 중 하나를 패니가 탈 수 있는 얌전한 암말로 교환까지 해 올 정도로 사촌 동생을 위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패니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남자는 에드먼드뿐이었다.

 

에드먼드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망나니 같은 형을 두었으니 아버지 버트럼 경이 사업으로 안티과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 대행으로 집안을 돌보았다. 집안의 평판에 위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예의 없는 언행을 극도로 경멸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곧은 심성이라도 사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눈앞이 흐려지는 법이다. 맨스필드에 크로포드 남매가 오자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의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활달한 성격에 매료되고 만다. 패니는 옆에서 그런 에드먼드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니, 이유인즉슨 에드먼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로포드 양 역시 에드먼드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는 재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남에게 주어지는 목사 서품을 받아 영지의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크로포드 양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외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의 예의 없는 언행은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지방 목사는 재산도 얼마 없으며 사회의 시선에서도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드먼드 앞에서 목사직을 비꼬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에드먼드는 완강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에드먼드에게서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품이나 외모가 너무 훌륭한 그였다. 크로포드 양이 관심을 완전히 접지 않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설득하면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고 욕심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전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톰이 중병을 앓고, 그녀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와 에드먼드의 첫째 여동생이자 러시워스 부인인 마리아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에드먼드가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톰의 병환을 에드먼드가 목사직을 포기하고 재산 상속받는 기회로 삼기를 바랐고, 또 눈만 감으면 야반도주도 아무 일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손한 태도에 에드먼드는 절망했다. 그는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이 그녀의 성정은 원래 착하나 가정교육과 주변 사람이 망쳤다고 되풀이했다. 그것도 잠시, 대부분 시간이 약인지라 에드먼드는 크로포드 양을 잊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목사직에 전념했다.

 

가장 악독한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인 크로포드 양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이다. 이 자식은 극에서도 그렇지만 읽고 있는 나도 기만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랜트 부인의 동생으로 찾아온 헨리는 누나의 소개로 버트럼 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트 부인은 마리아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동생인 줄리아와 잘해보기를 바랐다. 헨리의 바람기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등장하자 마리아와 줄리아 모두 그에게 반했다. 잘생기진 않았으나 다부진 몸매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과 행동이 숙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었다. 한번에 눈치챈 이 자식은 대놓고는 줄리아에게, 은밀히는 마리아에게 관심을 줬다. ‘대놓고은밀히가 나란히 있으면 십중팔구 진심은 후자에 통한다.

 

크로포드 양은 헨리에게 장난치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경고하지만 진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기남의 특권 정도로 여겼다. 헨리는 결국 마리아와 줄리아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맨스필드 파크를 떠난 것이다.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사랑하진 않지만 예정되어 있었던 러시워스 씨와 결혼했고, 줄리아는 원래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간 언니에게 고소함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했다. 헨리가 사라지면서 맨스필드 파크에 평화가 깃들었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부인이 되어 신혼여행을 떠났고, 마음이 풀어진 줄리아도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에드먼드와 패니, 이모부와 두 이모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헨리가 돌아왔다. 그는 마리아와 줄리아가 없자 패니가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패니는 자신의 매력에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패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나기로. 패니를 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진심이 되어갔다. 유혹되지 않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패니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차차 그녀를 배려하며 행동했다. 그녀가 대화를 거부하면 즉각 멈췄다.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오빠 윌리엄이 진급에 거듭 실패하자 자신의 숙부이자 제독인 크로포드 경을 설득해 윌리엄의 진급을 도왔다. 윌리엄이 복귀할 때 그는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함께 가기를 청했다. 패니가 포츠머스의 본가에서 지낼 때 (그녀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 친부모 집이었지만 힘들어했다.)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주고 맨스필드 파크로 돌아갈 때는 자기 남매와 함께 돌아가기를 청했다. 패니는 그의 지속된 호의에 점차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감정이 차차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도 이 자식에서 어쩌면으로 변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자식은 개자식이 분명했다. 결국 마리아와 야반도주하며 버트럼 가에 먹칠한 것이다. 결국, 패니의 안목이 옳았다. 한순간 패니와 헨리의 이어짐을 응원한 나 자신에게도 쌍욕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헨리의 자폭으로 맨스필드 파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번외로 가장 싫었던 인물은 패니의 첫째 이모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며 잘되면 자기 덕분, 안 되면 남 탓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또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뭐 하나 하면 생색이란 생색을 그렇게 낸다. 패니가 쉬는 꼴은 한순간도 참지 못하며 패니가 말을 하면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긴다. 사실 패니를 들였던 것도 자신의 남편 노리스 씨가 중환에 시달리기에 그가 죽으면 적적할 테니 일단 버트럼 가에 들여 키우다, 노리스 씨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 살면 된다는 이유로 버트럼 경을 설득했었다. 그러나 정작 노리스 씨가 죽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패니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뭐 덕분에 패니의 결말이 아름다웠지만, 그 행태가 괘씸했다. 노리스 부인의 결말은 그에 걸맞았다. 마리아와 러시워스 씨가 맺어진 것은 노리스 부인의 노력이었다. 가장 아낀 조카도 마리아였다.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노리스 부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 책임으로 이혼하고 온 마리아와 함께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 생활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오냐오냐 키워진 터라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데, 둘의 케미는 기대할 만한 정도이리라.

 

소설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므로 여성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의 여성상이나 생활상을 중심으로 봐도 재밌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표면적으로 즐긴 까닭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인물과 사건뿐이다. 이렇게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것으로 됐다고 여긴다.

 

이성과 감성은 읽고 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자매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하나는 감성적이어서 둘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다가 각자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감정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정말 즐겁게 읽어 두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도 올곧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헨리 같은 한량 위컴이 나온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답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해하면서 시작되어 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맨스필드 파크보다 오만과 편견이 더 재밌었다. 묘사에 있어서는 이 책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어쨌든 오스틴 선생의 책은 읽는 재미가 확실하니, 구비해둔 다른 소설 몇 권도 차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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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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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가엾게 여긴다. 제일 안타깝고, 제일 불쌍하고, 제일 억울하다. 또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게 여긴다. 제일 멍청하고, 제일 무능하고, 제일 답답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태도로 문학을 읽는다. 문학은 대체로 이런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있으니 읽는 책마다 내 얘기 같아 주인공과 상황에 나 자신을 곧잘 투영한다. 주인공은 인간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니 여기에 공감하는 내 모습은 가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지하 인간처럼.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인 지하 인간은 젊은 시절 속세에 질려 지하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지하에서 일명 모두 까기를 시전하며 여러분은 멍청하고 자신은 합리적이라고 합리화하며 지낸다. 전면에 나서면 비웃음당할 것이 뻔하니 그곳에서 글로써 세상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1부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하에서 쓴 이야기이고, 2부는 그가 어째서 지하생활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어낸다.

 

내가 그와 동일시한 부분은 상당히 찌질하다는 점이다. 아싸의 특징은 다 가지고 있다. 자기만 잘났고 다른 사람은 무시해도 그만인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무시하는 타인에게 멸시당한다. 그는 속으로 복수를 생각한다. ‘이런이런 상황에서 나는 저런저런 행동을 할 거야!’ 생각은 아주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문제는 생각에서 그친다는 것뿐.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겁도 나고 걱정도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너희가 가여우니 이번만 참아 준다. 다음부터는 내가 어울리나 봐라.’ 그 후 그는 타인들과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하고 이 생각의 고리는 반복된다. 전형적인 아싸가 인싸와 어울리고 싶어하는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젊을 적 모습일 뿐이다. 지하생활자가 된 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분노와 열등감을 지니고는 있지만, 사상은 진화했다. 그는 세상을 복잡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러분2x2=4라는 사실에 집중하고, 세상은 수학적이라며 단언할지 모르지만, 지하 인간이 보기에 인간이란 족속은 일관성이 없어서 2x2=4와 같은 답을 항상 가져오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므로, 2x2=4처럼 답이 있는 공식화는 살아가는 게 아닌 죽어가는 일이 된다.

 

「그리고 누가 알겠느냐마는 (장담할 순 없으니까.)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이지, 어차피 2x2=4가 될 수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x2=4는 이미 삶이 아니라, 여러분, 죽음의 시작이 아닌가. - p.56」

 

그의 찌질한 젊은 시절과 복잡계적 시선이 무슨 상관인가. 갖다 붙이기 나름이겠으나 젊은 시절 그의 찌질함은 표면적인 부분이고,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지 않다. 생각이나 감정이 마음대로 조종이 되던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거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 속내의 알 수 없음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지금은 정답으로 여겨지는 말들이다.

 

젊은 시절 그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 표현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관성과 정답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그의 변덕은 수치스러운 행위였기에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거나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괴로워했고 외로워졌다. 보편적인 시선에 어긋난 그가 대화할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친구 잡으러 갔던 유곽에서 리자를 만났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골려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려였던) 작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아무도 그를 의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으나 리자는 예외였다. 그는 신이 나서 그녀를 자신의 집까지 초대했다. 다음날 자신의 섣부른 결정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하인과 싸운 도중에 리자가 찾아왔고,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그녀를 속였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번에는 몹쓸 말을 내뱉어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리자는 슬픔에 잠긴 채 그의 집을 떠나고, 그는 뒤늦게 후회하며 쫓아가지만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이 또한 공식화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적어도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인 듯하다. 생각으로는 굉장히 이성적이지만, 감정에 휘둘려 당치도 않은 말로 기회를 날려버린다. 혹은 자존심으로 인해 기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덕이나 갈등이 없다면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변덕을 부정하고 일관성을 옹호하기보다, 차라리 변덕을 인정하고 반성해 변덕의 폭을 좁히는 게 더욱 살아있는 결정이리라.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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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읽는 문학마다 현재 나의 감정을 대변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읽는 것일까. 한때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다. 지금은 도피 차원에서 문학을 읽고 있다. 뭐로 보나 진지하게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세상 살아감에 있어 기술만으로 살 수 없고, 이성만으로 살 수 없으니 정신에 지지대를 세워주기에는 문학이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게 아닌가. 물론 이 생각도 지하 인간의 말처럼 언제 또 변해 문학을 등한시할지 모르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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