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 매주 1시간 투자하여 최상의 기억력, 생산성, 수면을 얻는 법
톰 오브라이언 지음, 이시은 옮김 / 브론스테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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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을 달고 산다. 다양한 걱정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건강에 대한 걱정이다. 아직까진 앞자리 숫자가 2지만 얼마 안 있어 3이 될 것이고, 순식간에 4, 5, 6 팍팍 바뀌리라. 돌이켜보면 항상 짧았던 게 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부터 대비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나는 건강 문제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내가 아프다는 자각을 지닌 병세(病勢)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아픈지도 모르는 상태다. 기억과 관련된 질환을 제외한 모든 병은 전자에 속하고, 기억과 관련된 모든 병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는 그나마 낫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이 힘들어도 내가 그 사실을 알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밝은 쪽으로 반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나로 인해 고생을 하더라도 나는 모른다. 모른 채 매 순간 피해를 줄 뿐이다. 상호작용 없는 일방적 보살핌은 박탈감을 생각보다 빨리 가져올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 병은 후자에 속한 뇌 질환이다. 예를 들면 치매 같은 질환. 그래서 뇌 건강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가까운 교보문고 재고를 수시로 확인했다. 재고가 확인되자마자 나는 즉시 구매했다. 기능의학 전문가인 톰 오브라이언 박사의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는 자가면역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쉽지 않은 내용이라 내가 알아들은 만큼만 적어본다.

 

자가면역이란 면역계가 자신의 뇌와 체내 기관, 조직을 공격하는 상태를 말한다.(p.31) 우리 몸에 테러범(항원)이 들어오면 면역계는 항원을 처리하기 위해 방범대(초기 면역)를 보낸다. 그러나 방범대가 막지 못하면 면역계는 그보다 강한 특공대(항체)를 파병해 초토화시킨다. 이것이 염증 반응이다. 염증은 우리 몸을 정상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렇게 생긴 항체는 임무를 마쳤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잔당이 남았는지, 혹은 또 쳐들어오는 적이 없는지 감시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이고 남아 경계근무를 한다. 즉 염증 반응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항원이 더 생기면 염증은 더 강화되고 일련의 통제를 벗어나 멀쩡한 세포를 공격하는 지경에 이를 수가 있다. 이때부터 병은 시작된다.

 

가장 큰 면역계, ()

 

전체 면역계의 70%가 장에 모여있다. 우리 몸이 이렇게 설계된 것은 건강에 가장 큰 위협이 발생하는 곳이 장이기 때문이다. - p.78

 

우리 몸 전체에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는 미생물 군집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뇌의 약 2배에 달하는 무게로, 면역세포와 같이 장벽 표면에 위치해 영향을 끼친다. 마이크로바이옴 구성물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에 따라 건강한 면역 반응을 형성할 수도, 몸을 질병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p.82) 좋은 박테리아와 나쁜 박테리아가 균형 잡힌 상태로 있지만, 섭취하는 음식물이나 약에 의해 균형이 깨졌을 때 면역세포를 조절해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만약 나쁜 박테리아의 세력이 강해지면 장 누수를 유발하는 염증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소장의 융털이 영양분을 가려가며 흡수하는데, 이때 장벽(腸壁)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분자만 영양소로 올려보내고 큰 분자들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나쁜 염증은 이 방어벽을 허물어 흡수 가능한 영양소보다 큰 분자가 통과하여 혈류를 따라 돌아다닌다. 이것이 장 누수이다. 면역계는 큰 분자를 제거하기 위해 몸 곳곳에 염증을 일으킨다. 그러면 뇌와 신체 전반에 염증이 증가하여 알츠하이머병, 불안, 기억력 상실, 뇌 안개, 감정 기복 등이 나타날 위험이 높아진다.(p.83)

 

장과 뇌는 양방향성이라 한쪽이 안 좋으면 다른 쪽도 안 좋아진다. 뇌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으로 1개의 메시지가 내려갈 때마다, 장에서 뇌로는 9개의 메시지가 올라온다.(p.84)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뇌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장내 미생물군 수치를 감소시키고, 감소된 마이크로바이옴의 영향은 뇌로 전달되어 우울증과 같은 증상을 앓게 된다. 반대로 나쁜 음식물을 섭취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불균형을 초래한 영향이 뇌에도 끼치는 것이다. 즉 뇌로는 좋은 생각을 하고 장에는 좋은 음식을 보내야 한다는, 다소 뻔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장 누수가 뇌에 영향을 끼칠 때 섭취한 음식물이 분자 모방을 일으키면 사태는 더 악화된다. 분자 모방이란 장벽을 통과한 항원이 A-A-B-C-D 분자구조를 가졌다면 항체는 이를 없애면서 비슷한 구조의 멀쩡한 세포도 공격하게 만든다. 이러한 분자 모방이 뇌에서 일어난다면 뇌 질환의 비중이 높아짐은 자명한 결과인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우리 몸의 또 다른 면역계인 교세포가 혈액뇌장벽에서 걸러내지만, 장 누수와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혈액뇌장벽이 손상되면 뇌 누수가 발생한다.

 

*뇌 누수, 혈액뇌장벽 손상

 

혈액뇌장벽이라는 이 방어벽의 주된 역할은 큰 분자들이 혈액을 통해 뇌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뇌의 거름망은 소장의 거름망에 비해 훨씬 미세하다. 그런데 장 내벽이 찢어지면 창자가 새어나올 수 있듯, 뇌의 거름망이 찢어지면 뇌가 새어나올 수 있다. 학자들은 이렇게 찢어진 상태를 혈액뇌장벽 손상(Breach of the Blood-Brain Barrier)이라 하고, 나는 ‘B4’라고 부른다. - p.55

 

뇌가 새어나온다니 표현이 무섭긴 한데, 아무튼 그만큼 타격이 크다는 이야기다. 뇌 누수는 혈류를 타고 온 큰 분자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다른 요인으로도 발생한다. 머리에 외상을 입는 경우 뇌 거름망이 조금씩 찢어진다. 과격한 운동으로도 뇌 거름망에 손상이 간다고 한다. 적당량의 운동은 뇌기능에 도움이 되고 혈액뇌장벽을 강화하며 혈류에 있을지 모를 종양 세포가 뇌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결국 균형의 문제이다.(p.55)

 

일단 혈액뇌장벽이 손상되면 당연한 얘기지만, 항체로 인한 염증도 발생하기 쉬워진다. 구멍 난 방어막은 막기는 어려워도 뚫기는 쉬우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혈액뇌장벽은 4시간 이내에 빠르게 치료된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상처가 그렇듯 외상이 반복되면 B4가 유지되면서 거대 분자가 침투하게 되고 뇌의 면역계인 교세포가 반응하여 문제가 되는 것들을 공격한다. 생성된 항체는 거대 분자를 비롯해 손상된 세포와 분자 모방으로 인해 비슷한 세포까지 제거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독소가 침입한다면 새로 생성되는 뇌세포보다 죽는 뇌세포가 더 많아지고, 결과는 젊은 나이에 기억력이 안 좋아지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단 B4를 겪게 되면 뇌 안의 모든 조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당신이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독소에 노출되었으며 그 독소가 어디에 축적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유전적 특성을 물려받았는지가 당신의 약한 고리를 결정한다. 결국 그것이 당신이 걸리기 쉬운 가장 취약한 질병이 된다. - p.57

 

건강을 위한 시도

 

건강을 지키거나 증진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건강 피라미드라는 사면체 구조를 제시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구조, 마음가짐, 생화학, 전자기장의 영역을 올바르게 쌓으면 나이가 들어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구조는 신체의 균형을 말한다. 올바른 자세와 적당한 운동으로 불균형 초래를 방지하는 것이다. 마음가짐은 말 그대로 긍정적 사고이다. 저자는 마음 챙김의 좋은 방법으로 명상을 추천한다. 생화학은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전자기장은 전자기기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를 말한다.

 

전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한 번에 하자니 부담감이 컸다. 부담이 크면 금방 포기하게 되므로 저자의 말을 빌려, ‘꾸준히 안타만 쳐도 경기에서 이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토대가 되는 구조는 잠자는 자세부터 시도하는 중이다. 나는 심하진 않지만 거북목 증상이 있다. 나름 곧게 편 자세인데도 주변에서 자세 수정을 도와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목뼈는 원래 활처럼 구부러져 있는데, 거북목이나 일자목처럼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신경이 드나드는 통로가 좁아져 각종 몸의 메시지 전달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고치는 방법으로 수면 자세를 신경 쓰고 있다.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잠들려고 하며 목의 원래 굴곡을 위해 수건을 두툼히 말아 목에 댄다. 미치게 불편하지만, 책에서는 매일 밤 10분씩 시도해보라고 하기에 참고 매일 시도 중이다. 언젠가는 잠들 수 있겠지.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던 부분은 생화학이었다. 이 책을 읽음과 동시에 밀과 유제품 섭취를 중단하고 설탕은 거의 안 먹는다. 밀과 유제품에는 우리 몸이 분해할 수 없는 단백질이 있다. 밀에는 글루텐, 유제품에는 카세인이다. 이 둘은 분자 모방을 일으킬 가능성도 지녔다. 자주 먹는 음식 종류도 아니고 과민반응이 나타난 적도 없지만, 안 먹으면 내 몸이 어떻게 되나 궁금한 마음에 안 먹는 것을 시도 중이다. 현재 일주일쯤 지났다. 밀과 유제품에는 쾌감 수용체에 들러붙는 요소가 있어 중독성이 있다. 그렇기에 갑작스레 중단하면 다른 중독 물질과 마찬가지로 금단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데, 내가 그런 상태를 겪었다. 며칠 동안(사실 지금까지도) 우울함과 예민함을 사방에 흩뿌렸다. 성격 탓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밀을 안 먹으면서 더 심해졌으니까……. 대충 한 달 정도 지나면 성격인지 아닌지 나올 테니 나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밀과 유제품, 설탕 섭취를 멀리하면서 동시에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몸의 내분비계 교란물질 독소를 해독하는 주요 방법은 메틸화라고 한다. 메틸화가 많이 일어날수록 더 많은 독소가 해독이 되는데, 메틸화에 가장 좋은 물질 중 하나가 녹차이다. 저자는 하루 세 잔을 목표로 하라고 말해서 나도 세 잔을 목표로 마시고 있다.

 

전자기장은 참 난감하다. 전자파와 질병은 인과관계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상관관계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금 세상에 안 쓸 수도 없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잘 때만큼은 내 몸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 정도. 이 부분은 아직 마음을 못 정했다. 마음가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주 우울해하고 걱정도 많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낙천적이라 금방 또 훌훌 털고 내 할 일 한다. 굳이 내 마음 챙김을 꼽자면 잠들기 전에 쓰는 일기가 감정 분리에 큰 도움을 준다. 의식의 흐름대로 감정이나 사건을 쭉 풀어 놓으면 그것들이 다시 떠오르거나 하지 않는다. 명상도 좋다고 하니 나중에 공부해볼 요량이다.

 

그 외에도 자가면역질환을 발생시키는 요소는 차고 넘친다. 이미 우리는 미세먼지라는 극악무도한 존재와 매일 인사하고 있다. 주유소나 공사장을 지나며 맡는 기름 냄새는 벤젠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할 때 주는 플라스틱 제품은 비스페놀 A(BPA)이고, 혹여나 누군가 담배를 핀다면 연기에는 카드뮴이 담겨 있다. 오염된 바다에서 잡은 생선은 수은을 한가득 함유 중이다. 이쯤 되면 그냥 사는 게 지옥인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건강보다 큰 자산은 없다는 말이 있으니 한 번쯤 자신의 건강상태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식재료와 주의사항, 그리고 글루텐 프리 레시피까지 언급하고 있으니 참고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이런 말 쓰기 전에 나도 틈틈이 다시 읽어야겠다. 그것이 내가 걱정하는 나의 뇌 건강을 지키는 길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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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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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유명한 명언이 있다. “인생은 B(Birth)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인간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으며 기회비용의 갈등 사이에서 헤매고, 더 나아가 순간을 사는 존재이다.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까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순간에 결정된다. 고민을 오래 할 수는 있어도 선택을 오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선택은 다양한 과거를 만드는 방향으로 삶을 나아가게 한다. 세상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많은 표현이 있다. 어제-오늘-내일, 과거-현재-미래, --……. 하지만 어떤 표현도 순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방금 막 실천한 순간으로부터 여러 시간 개념을 창출하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을 구성한다. 그러니 우리는 매 순간을 활용할 자격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서평을 너무나도 쓰기 싫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고 또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 그렇지만 다시 또 힘을 내본다. 히스 형제의 순간의 힘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기로 마음먹은 이 순간이 내 인생에 어떤 결정적 순간이 될지 모른다. 막연함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글을 쓰고 나면 일말의 보람참이 올라온다. 우리의 기억에 깊이 각인되는 장면은 세 가지 중 하나가 충족될 때 생긴다. 변화의 계기가 되는 전환점과 중간 과정을 알 수 있는 이정표, 그리고 문제가 되는 구덩이이다. 서평을 쓰는 것은 나의 전환점이다. 쓰고 있는 상태는 이정표이고, 쓰기 싫은 마음은 구덩이이다. 전환점은 표시하고, 이정표는 기념하고, 구덩이는 채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순간 중심적인 사고의 핵심이다.(p.48)

 

그러면 다시 질문이 생긴다. 어떻게 표시하며, 기념하고, 채울 수 있을까. 책에서는 네 가지 핵심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고양’, ‘통찰’, ‘긍지’, ‘교감의 순간이다. 나는 서평을 쓰며 이 네 가지 순간을 경험하는지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자.

 

고양의 순간

 

고양의 순간을 이룩하려면 3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감각적 매력을 증폭하는 것, 둘째는 위험보상을 높이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각본을 깨트리는 것이다(각본을 깬다는 것은 특정 경험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린다는 의미다…….) 고양의 순간을 창출하려면 이 3가지 요소가 전부 필요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2가지는 포함되어야 한다. - p.77

 

감각적 매력은 겉으로 느껴지는 포인트다. 음식이라면 맛, 향수라면 향기, 옷이라면 디자인이나 맵시를 말한다. 더 맛있거나 더 향기롭거나 더 맵시가 나게 만들면 감각적 매력은 증폭한다. 위험보상을 높인다는 것은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압력이 가해진다는 의미다.(p.78) 즉 컴포트존(안전구역)에서 벗어나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에 따른 보상을 높이는 방안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각본을 깨트리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닌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끔 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서평 작성에서 내가 느끼는 고양의 순간이 있을까. 감각적 매력은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거나 더 나은 문장이 써지면 증폭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분히 의식적 노력을 해야 한다. 위험보상은 서평을 작성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높아진다. 너무 쓰기 싫은데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컴포트존을 벗어난 상태니까. 각본 깨트리기는 지금 같은 경우이다. 절대 못 쓸 것 같아 포기와 체념으로 범벅된 정신에 그래도 해보자, 하며 구덩이를 채우는 순간. 적어도 위험보상과 각본 깨트리기가 나의 행위에 고양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부분은 적당히의 침투다. 절정을 창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든 적당히가 스리슬쩍 침투하기 쉽다.(p.80) 서평은 나에게 있어서 의무가 아니므로 매번 귀찮게 여겨진다. 일주일에 최소 1편이라는 계획을 세우긴 했지만, 계획을 세운 자도 나요, 실행하는 자도 나이니 안 써도 되는 합리화가 자꾸 끼어드는 것이다. 또 서평이라는 게 쉬운 일도 아니므로 대충 쓰자는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여기서 나만의 괴리감이 머릿속을 휘도는 게 느껴진다. 책을 좀 더 소화하기 위해 독서 후 서평을 쓰는 것이지 단순한 자기만족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데……. ‘적당히만 물리쳐도 고양의 순간은 금세 찾아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통찰의 순간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기 전에는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진실이란 문제점 또는 단점에 대한 진실을 가리킨다. 번개 같은 통찰을 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 p.126

 

통찰의 순간은 구덩이를 채울 실마리를 얻는 순간이다. 내가 겪고 있는 불만이나 불편에 대해 통찰이 번뜩이면 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이런 순간을 불만의 실체화라고 했다. 우리가 어떤 경험을 통해 불만의 실체화를 경험할 때 문제의 본질을 깨닫게 되고 해결의 수순으로 나아가게 된다.

 

내가 가진 불만의 실체화는 망각이었다. 읽을 때는 아하! 했지만 막상 그 책에 대해 쓰려고 하면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서평을 쓰기에 무리가 있었다. 쥐어 짜내다 보면 정신적으로 지치기만 하니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가도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서평을 쓰기 전에 그 책에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타이핑해 문서로 옮겨 놓는다. 내 스스로 밑줄 모음이라고 부르는데, 축약된 재독을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기억을 되살리기 부족할 때는 차례를 훑어보면서 회상하거나 밑줄 모음을 제외한 부분을 빠르게 훑는다. 그러면 다시 읽을 때의 감각이 깨어나고 서평에 대한 구덩이를 채울 의지를 되찾는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자기통찰자신의 욕구와 역량에 대한 성숙하고 심오한 이해 능력이라고 부른다. 자기통찰은 바람직한 대인관계에서 삶의 사명감에 이르기까지 긍정적 결과와 상호관련성을 지닌다. 자기통찰과 심리적 안녕감은 불가분의 관계다. - p.135

 

불만의 실체화를 넘어서서 매 순간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확장하는 것이다. 자기를 확장한다는 것은 실패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다.(p.136) 실패는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을 할 때 발생한다. 즉 의식적으로 컴포트존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내 한계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실패한다면 현재의 내 역량의 정도와 해결 방안을 깨달을 수 있고, 반대로 성공한다면 나의 위치가 더 높아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 고양의 위험보상 높이기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통찰과 고양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공상만으로는 통찰을 이뤄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서평을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해도 쓰지 않는 이상 잘 쓰는지 못 쓰는지 알 수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야지만 내 역량을 체크할 수 있는 것이다. 통찰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 행동이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명심하라.(p.137)

 

더 말할 것도 없이 서평은 자기 확장의 일환이다.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체화하여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패의 위험이란 독서를 제대로 했는지, 뭔가를 깨달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쓰고 있지 않은가. 일련의 반성 역시 현재 작성으로 인해 가능했다.

 

자기 확장이 보장해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주는 것은 배움이다. 자기통찰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성가신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극복할 수 있는가? - p.152~153

 

긍지의 순간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 몇 주 또는 몇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달성 가능한 것 중 기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발굴하여 축하할 만한 성과는 무엇일까? - p.193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인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서 인정받는다면 자존감이 팍! 상승하는 긍지의 순간을 겪는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어떤 일을 지속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지속하는 과정 속에는 동기가 뒤따라야 한다. 한 번의 인정이 평생의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동기를 자극해줘야 하는 부류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날 선 한 마디에 풀이 죽기도 하고 빈말인 칭찬에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나 같은 부류는 긍정의 순간을 지속적으로 느껴야 하는데, 타인의 인정을 매번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서평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다. 물론 다 쓰고 난 다음에야 블로그에 업로드하면 낯선 이의 하트를 받을 수야 있겠지만 그것은 차후의 일이고, 쓰는 동안은 놀고 싶은 욕망과 맞서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이정표를 기념하는 일이다. 내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자축함으로써 내적 동기를 끌어올린다. 서평을 쓰면 나는 독서기록 달력에 파란 동그라미를 그린다. 이번 달의 서평 개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또는 블로그의 서평 게시물을 훑는다. 그러면 참 귀찮아하면서도 열심히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의욕이 생긴다.

 

이것을 이정표 효과라고 한다. 주자가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도 4시간 기록을 초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마지막 500미터에 전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이정표는 철저하게 자의적 기준으로 결정된다. - p.199

 

이정표 효과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것만 쓰면 내가 계획한 일주일 서평 1편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주말이 가버리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쓰게 된다. 성공은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이정표는 우리가 최후의 채찍질을 할 수 있게 강요한다. 왜냐하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고, 애초에 우리가 그것을 선택한 것도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표는 실현 가능하고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결정적 순간을 가리킨다.(p.199) 이정표를 따라 내 일을 실현하고 나면 내가 부여한 책임에 최선을 다했다는 뿌듯함도 생긴다. 서평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행동이기에 귀찮음을 물리치고 쓰는 것이다.

 

교감의 순간

 

웃음은 사회적 반응이다. () 우리가 웃는 것은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서다. 우리는 웃음을 터트림으로써 실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같은 의견이야. 나도 너와 같은 집단이야.’ - p.236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들을 때였다. 당시 내 옆자리에 앉은 분께서 내가 블로그에 올린 서평을 다 읽으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칭찬도 해주시고 질문도 해주셨는데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내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이것이 내가 겪은 교감의 순간일 것이다.

 

교감은 감정의 상호작용이다. SNS에 글을 올리는 행위도 늘어나는 하트에서 호의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도파민 분비가 일으키는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소위 인싸라는 소속감을 갖게 된다. 누군가 날리는 하트는 크게 의미 있지는 않지만 지속할 결심을 주기에는 좋은 윤활유라고 생각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가는 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용기를 북돋아 준다.

 

예전에 내가 쓴 서평이 평소보다 많은 하트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자극을 받아 서평을 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했던 게 떠오른다. 곧 시들시들해졌지만 말이다. 지금은 서평을 써도 누군가와 나눌 무엇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교감으로 인한 내적 동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요즘은 그저 자아성찰과 자기확장을 위해서 쓰고 있다. 그러면 왜 공개된 블로그에 작성하는가. 첫째는 용기를 내보는 것이고, 둘째는 교감을 거부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시물을 공개한 것만으로도 교감이 이뤄지는 게 아닐까. 언제든 누구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간 쓴 모든 서평에 대해 그렇듯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고양, 통찰, 긍지, 교감 순으로 나열했지만 사실 이 네 가지는 유기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극대화된다. 하소연 같은 글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의미가 상당히 깊다. 다른 서평을 쓸 때 이 글을 떠올리며 전보다는 빠르게 문제점을 해결해나가고 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변하거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순간이면 된다.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라면 쓰고서 경험치를 얻는 쪽이 낫다. 지금 이 순간이 내 태도에 새로운 방향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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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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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의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친한 사이끼리는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만날 때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러나 늘 친구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보지 못한 기간 동안 바뀐 친구의 생각이나 전혀 들려주지 않았던 과거사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에 담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예가 아닐까 한다.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비단 타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나조차도 내 속마음을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난 뒤 곱씹지 않고서야 순간순간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특히 낯선 사람들을 이제 막 만나는 나이대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작중 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인물조차도 어리숙했던 때에 다잡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설은 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생님(1)과 부모님(2)의 이야기와 선생님이 에게 보내는 유서(3)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선생님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생기는 의 마음, 그리고 숨겨두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편지로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순수함, 혹은 어리석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p.24~25

 

많은 나쁜 행동이 있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의도성이 없는 나쁨이리라. 예를 들면, 5살짜리 동생이 내가 아끼는 책에 낙서하고 찢어 놓았다면 내 속은 끓겠지만 그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그 녀석에게는 나를 화나게 만들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는 선생님의 초연한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주 왕래함에 따라 간혹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의 뒤를 쫓은 일이었다.

 

선생님은 매달 친구의 묘를 찾아갔다. ‘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행동은 선생님이 가진 죄의식을 건드는 행위였다. 그의 초연함은 과거사로부터 용서를 구하며 마주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게는 의도성이 전혀 없었지만 선생님에게 극단적 결심의 단초를 제공했다. 선생님이 에게 털어놓으려 했을 때 는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있었고, 그 사이 선생님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선생님의 죄책감

 

나는 남한테 속았다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았지.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았던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으로 변했거든. 난 그들한테서 받은 굴욕과 손해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왔네. 아마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살겠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하지 않고 있네. 생각하면 나는 실제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일반을 증오하고 있거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 p.88

 

마지막 편지에는 선생님이 당한 두 번의 배신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배신은 숙부로부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재산관리를 숙부에게 맡겼다. 부모님 살아생전부터 돌아가신 후까지 선생님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므로, 선생님은 숙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숙부가 자신의 딸을 선생님과 결혼시키려 하면서 선생님은 한 치의 의심이 생겨났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숙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만나지 않았던 게 새로 보였다. 전에는 정말 일하느라 바쁘게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 바쁜 척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선생님은 숙부와 싸우고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의 일부만 되찾은 채 고향을 떠나왔다.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돌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 p.265

 

두 번째 배신은 도시에서 겪었다. 선생님은 지낼 곳을 찾다 어느 하숙 치는 집에 들어간다. 주인아주머니와 따님인 아가씨만 사는 집이었다. 그는 그들과 친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아가씨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새로운 하숙인을 구하자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K를 소개해 하숙을 들였다. 자신처럼 K도 마음의 안정을 얻기를 바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면서 선생님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K가 아가씨를 좋아하는 게 보이고, 아가씨와 K가 어울리는 것이 자신보다 더 친근해 보였다. 선생님은 아가씨를 얻기 위해 K를 비난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말해 K 몰래 따님을 주십사 요구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스스로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고, 그것이 선생님의 죄의식이 되었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배신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내부로 들어온 배신과 내부로부터 외부로 발현된 배신을 모두 겪은 선생님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멀리했다. 자신을 믿는 행위는 세상을 버티는 근간이다. 이것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다름없다. 언젠가 사사로운 충격만 들어와도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가 보기에 선생님은 지식인이며 세상을 통달한 듯한 초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항상 무너질 것을 염려해 충격을 피하는 성향이 겉으로는 그렇게 비추어진 것뿐이었다.

 

내가 그 감옥 안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또 그 감옥을 도저히 부술 수 없게 되었을 때 결국 내가 가장 손쉬운 노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자네는 왜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지도 모르겠지만 늘 내 마음을 죄어오는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그 힘은 내 활동을 모든 방면에서 막아내면서 나를 위해 죽음의 길만을 자유롭게 열어두고 있네.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한다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거지. - p.270

 

선생님이 편지를 보낸 이유

 

선생님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지만, 헛된 지식인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드러내지 않은 고민 끝에 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정하면서도 가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 p.151

 

그가 자신의 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심정을 에게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젊은 날과는 다르게 의 태도가 솔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찔렀더라도 선생님은 가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극단적 선택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못한 탓에 이뤄진 결과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선생님은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 동정심을 요구하는 게 아닌 배울 점을 알려주는 자세, 그리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물론 선생님의 자살은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라 무책임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야기이다. 자살자가 겪은 무게는 누군가가 평가할 만큼 하찮지 않다.

 

이렇게 용기 내서 편지를 쓸 정도였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선생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은 딱 에게 보낸 편지까지였다. 자신을 비롯한 타인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이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선생님은 친구도 만나고 부인도 있고 까지 만났지만 정작 삶은 고립된 채였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한다. 겉으로는 일관성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시각각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오가고 때에 따라서는 평소 사소하게 여기던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나 어떤 것보다도 삶을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부에서는 의 아버지가 병세로 인해 몸져누워 있다. 육체에 병이 든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의 상황과 비교된다.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기에 때에 맞춰 대응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미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의 충격은 아버지의 병세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시행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더 자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처를 마주하기란 굉장히 두렵고 무섭고 힘겨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놔두거나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욱 곯으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아마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마음 챙김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 길 속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일면이라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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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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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서평에서 나는 새벽 기상에 도전한다고 썼다. 3주 정도 지속하면서 개운하기는커녕 피곤함만 늘어났다. 정신이 깨는 시간은 점점 더뎌졌고 집중력도 쉽게 분산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습관이 으레 그렇듯 익숙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20여 일이 지났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읽으면서 어쩌면 내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부터 나는 새벽 기상 습관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기상을 포기한 이유

 

나의 새벽 기상 문제점은 자는 시간에 있었다. 인간의 권장 수면 시간은 8시간이지만, 나는 11시 내외로 잠들어 5시에 일어났으니 약 6시간을 잤다.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는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딩 때 유행했던 말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사당오락(四當五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 자면 꿈을 이룬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네가 자는 동안 너의 경쟁자는 공부 중이다등등.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불량품(?)이었다. 꼬박꼬박 6시간을 자고, 그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에도 자고, 수업 시간·야자 시간에도 졸았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뇌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수면 패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다른 애들보다 많이 자는데(6시간) 왜 이리도 잠이 부족할까 하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그 생각은 굳어져 최근까지도 6시간만 자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수면 부족으로 가는 코스였다.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문제들

 

하루 여섯 시간씩 자는 행동을 10일 동안 하니, 24시간 동안 잠을 안 잔 사람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반응에 지장이 생겼다. 그리고 잠을 아예 못 잔 집단처럼, 네 시간 잔 집단과 여섯 시간 잔 집단도 시간이 흘러도 약해지는 기미가 전혀 없이 반응에 점점 더 지장이 생겼다. - p.200

 

수면이 부족해지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적은 정도로도 발생하는 부분은 집중력이다. 얼마나 수면이 부족하든 간에 반응하는 속도가 늦어질 뿐만 아니라 짧은 순간 멈춤 상태가 되곤 한다. 미세 수면이라고 하는데, 이는 잠이 부족할수록 횟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더 큰 우려는 누적된다는 사실이다. 꾸준하게 수면량이 부족해지면 종국에는 잠을 아예 안 잔 사람처럼 되고 만다.

 

이렇게 수면이 부족해지면서 드러나는 다음 문제는 주관적 판단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육체는 지쳤으나 정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이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 정상 상태의 기준선이 수정된다. 지쳐 있는 상태를 정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을 다시 푹 자면 내려간 기준선이 회복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미 놓친 잠은 더 잔다고 해서 복구되지 않는다. 조금은 회복이 되겠지만 8시간씩 자던 때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8시간씩 자는 행위는 정상으로 되돌린다기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쪽이 맞을 듯하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참가자들은 초조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한 순간에 흥분하여 들뜬 상태로 넘어갔다가, 다시 몹시 부정적인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 p.215

 

수면 부족은 감정적인 부분도 나빠지게 만든다. 뇌에는 편도체라는 감정이 촉발되는 구조가 있다. 수면이 부족해지면 이 부위가 감정 반응을 60퍼센트 이상 증폭시킨다. 동시에 뇌의 관제탑인 전전두엽은 제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감정이 폭발했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한마디로 예민해진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잠이 부족한 뇌는 긍정적 및 부정적 양쪽 감정의 극단 사이를 지나치게 오락가락한다.(p.216) 보통 서로 다른 성질은 부딪히면 상쇄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그냥 이쪽 극에 서 있든지, 아니면 저쪽 극에 서 있든지 둘 중 하나이다. 부정적 감정의 극에 선다면 자살과 관계가 깊어진다. 긍정적 감정의 극에 서면 쾌락 추구가 정점에 이른다. 약물 중독이나 위험한 모험 등을 거침없이 뛰어드는 것들이 있다.

 

주요 정신질환 중에서 수면이 정상인 사례는 전혀 없다.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다 그렇다. - p.218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장 새벽 기상을 포기한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면이 필수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잠을 못 자면 자연스레 기억력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수면 부족 상태에서 형성된 기억은 더 빨리 잊힌다. 그러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잠을 못 자니 기억력이 나빠진다. 나빠진 기억력이 정상 상태로 재설정된다. 개선의 가능성이 사라지며 수면 부족이 이어지고, 기억력은 더 나빠진다. 또 하향된 기준선으로 재설정…….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 있다. 뇌에는 글림프계라는 노폐물 배출구가 있는데, 잠을 자는 동안 강력 세척제인 뇌척수액이 그곳을 청소한다. 여기서 제거되는 유독 잔해 중 하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성분이다. 또 타우라는 스트레스 분자들도 이 청소 과정에서 같이 처리된다. 즉 수면이 부족할 시 이러한 유독한 성분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쌓인다. 이로 인해 잠을 너무 적게 자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수면은 면역계의 병기고에 있는 온갖 무기들을 써서 몸을 감쌈으로써 감염과 질병에 맞서 싸운다. 우리가 앓을 때, 면역계는 수면 체계를 적극적으로 자극한다.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더 오래 누워 있으라고 요구한다. 단 하룻밤이라도 수면 시간이 줄면,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 복원력이라는 갑옷이 몸에서 너덜너덜 벗겨져 나간다. - p.263

 

마지막으로 내가 집중한 문제점은 면역계 붕괴 현상이다. 수면과 면역계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면역계 역시 약화된다.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평균 5시간 정도 잔 사람들은 감염률이 거의 50퍼센트였고, 7시간 이상 잔 사람들은 18퍼센트였다. 독감 백신이나 간염 백신도 마찬가지로 잠을 권장 시간에 가깝게 잔 사람들은 항체 반응이 더 강했다. 여기서 또 위에서 이야기한 놓친 잠은 복구되지 않는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얼마간 수면 부족을 겪은 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규칙적으로 권장량의 수면을 취한다 하더라도 면역계가 온전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1년 뒤까지도 특정 면역 세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강화되면 잔병치레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질병 중 하나인 암이 생길지 모른다. 잠이 부족해 교감 신경계 활성이 급증하면 면역계에게 염증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오래 지속시킨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만성 염증 상태가 되면서 암과 협업을 하게 된다. 암의 성장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실험쥐의 경우, 수면 부족 쥐의 암이 반대 쥐보다 공격적이었고, 전이되는 기관이 더 넓었다. 암이 생긴 부위의 주변 기관은 물론 뼈까지도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전이된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새벽 기상을 포기했다

 

이 외에도 당뇨병, 비만, 생식계 등의 문제가 있지만, 당장 나에게 와닿은 내용은 위의 것들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피하고 싶은 증상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문제들은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목숨을 서서히 조여 오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죽이고 있지만 나는 내가 죽는지 모른다. 이것만큼 소름 돋는 공포가 없다. 처음으로 독서 하면서 공포의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겁도 많은데…….

 

그러면서 과거의 내가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예민했는지, 자주 아팠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규칙적이진 않지만 8시간을 꼬박꼬박 자면서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번 서평에는 굉장히 무섭고 좋지 않은 이야기 위주로 썼다. 나의 가장 큰 충격이었기에. 다음번에는 수면 부족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써봐야겠다. 역시 이 책을 중점으로. 끝으로, 집나간 자식 밥은 챙겨줘도 자는 자식 밥은 안 챙겨준다는 옛말은 게으름을 비꼰 표현이지만, 아주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푹 잔 자식은 더 건강하고, 더 총명해질 수 있다. 밥처럼 잠은 보약이다.

 

P.S - 새벽 기상을 포기했지만 체념하지는 않았다. 현재 나는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멈춰둔 것이다. 일시 포기라고 할까. 그것이 가능한 시기가 된다면 나는 다시 새벽 기상 습관 만들기에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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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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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맞이해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국내든 국외든 떠나는 발걸음에는 낯선 곳에 닿는 기대감과 익숙한 곳을 벗어난 해방감이 담겨 있다. 새로움은 기분을 환기하고 삶에 활력을 심는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마는 그건 어디까지나 떠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떠나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묘미를 즐길 줄 모르는 탓이다. 사람 많은 장소를 싫어하기도 하고, 멀리 나다니기 귀찮은 것도 있다. 물론 시간적 경제적 제약도 있음은 당연하다.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함을 좋아하는 성향이 크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비수기일 때, 대체로 겨울쯤 혼자 돌아다닌다. 해안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한 모금 머금고 문학을 읽는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다. 뭐 어디까지나 국내일 때 이야기이고, 해외라면 좀 달라진다. 나는 외국어를 전혀 못 하는 쫄보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말 걸어도 나에게 뇌가 있었나, 하는 상태가 되는데 외국은 오죽할까. 그래서 내 여권은 작년 여름 이후 쭉 놀고 계신다.

 

그렇다고 욕망이 없지는 않다. 떠나고는 싶지만 용기가 없다. ‘일단 그냥 떠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건 네 입장에서 편한 소리고-라는 대답이 절로 나온다.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경심 같은 게 생겨 가끔 서점 가서 여행 책자를 뒤적이곤 한다. 여행 프로그램도 가끔 보고. 그런 마음에 휴가철을 핑계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집었다.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는 얻지 못했지만 대리 만족 혹은 위로는 받았다.

 

여행의 즐거움?

 

나는 왜 여행을 즐길 줄 모를까? 아마도 나에게 여행이란 무언가를 꼭 배우거나 깨달아야 하는 행동이라는 강박증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도 아닌데 뭘 그리 배우려고 하는지. 여기서 배움이나 깨달음은 기술 혹은 지식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면 전혀 몰랐던 어떤 진리를 말한다. 그게 의도적으로 가능한가?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p.22) 오히려 대놓고 깨달아야 해. 배워야 해주문을 외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멋진 경관을 놓치기 마련이다.

 

입대 전 겨울, 하나뿐인 나의 남동생과 제주도로 여행 간 적이 있다. 둘 다 여행은 처음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가 흔할 줄 알았다. 비행기가 6시 출발이었기에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는 24시간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밤을 새웠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밥도 안 먹고 올레길 20코스를 걸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18km쯤 되는 길이였다. 찬 바닷바람 맞으며 그 먼길을 어찌어찌 걸었고 중간에 라면집에서 문어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도착한 목적지인 성산일출봉에서 숙소를 가지고 우리는 싸웠다. 1월의 성산일출봉이 성수기인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빈방은 없었고, 서로를 탓했다. 결국 나와 동생은 제주시로 택시를 타고 돌아와 다음날 첫 비행기를 예매하고 시내의 24시 카페에서 밤을 또 샌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배움을 생각하고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보다 많은 것을 배운 여행이었다. 일단 숙소는 미리 잡아야 한다는 점과 밤새우고 하는 여행은 미친 짓이라는 점, 첫날부터 무리한 일정은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배움들은 나의 여행 기본 원칙이 되었으나…… 뜻밖의 사실로 배웠다는 부분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후의 여행은 모두 헛된 느낌만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책을 읽고 나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p.24

 

여행의 즐거움은 현재에 있다

 

그러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은 오롯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맞춰 생각을 바꾼다. 타지는 그곳만의 문화가 있으며, 타인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다. 그것에 맞추지 않고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여행 동안 괴롭게 보내겠다는 일종의 자학이지 않을까. 여행지에 가서 과거나 미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 뜻밖의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는 후회를 불러오고, 미래는 걱정을 가져오니 말이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p.82)

 

현재를 즐기지 못한 여행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 베프의 제안으로 함께 코타키나발루로 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나는 쫄보였지만 친구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완전히 의지하며 따라갔다. 당시 나에게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게임 중독 상태였다는 것이다. 게임을 못 하는 35일 동안 코타키나발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게임 내 이벤트 일정을 확인했고, 못 한 시간만큼 얼마나 빡세게 던전을 돌아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아이템은 팔렸는지, 그 전에 어떤 퀘스트를 해놓거나 동생에게 맡겨 놓을 걸 하는 후회도 함께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보니 말 그대로 다녀만 온 게 되었다.

 

이와 반대 상황도 있다. 충동적으로 담양을 간 적이 있었다. 담양 터미널에서부터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 죽녹원까지 걸었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이때는 혼자 삼각대로 사진도 찍고 천천히 주변 풍경 감상도 하면서 감정 낭비 없이 즐겼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 중 큰 고목에 손대고 찍은 사진을 볼 때면 그때의 위압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절로 겸손해지는 사진이다. 지금 쓰고 보니 자연 앞에서 겸손하자는 마음을 이때 배운 듯하다.

 

간접여행도 여행이다

 

직접 떠나야 여행만이 유일한 여행인 것은 아니다. 간접여행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행안내서 보거나 누군가의 여행기를 보는 행위, 타인이 여행하는 영상을 보는 행위가 있다. 이런 여행은 시간을 아끼고 사전 지식을 형성하고 상상력을 뭉게뭉게 피어나게 해준다. 또 전혀 의욕이 없던 곳에 대한 욕구를 심어주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큰 이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일지 모른다. 가령 근대화 시기의 장소를 간접여행으로 경험하고 현대화된 그 장소를 가보면 내가 얻는 경험치는 배가 된다. 같은 장소지만 내가 놓쳤던 부분, 가보지 못한 장소,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장소 등 타자의 시선은 나의 여행을 더 크게 만든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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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해졌다.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떠난다. 그것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와 느끼는 안정이든, 일상을 벗어나 발걸음을 낯선 곳에 디딜 때 느끼는 안정이든 간에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가장 완성도 있게 꾸며주는 행위가 바로 여행이 아닐까. 세계의 절망, 환희, 분노, 평온, 혼란……그 어떤 장면을 보더라도 촉발되는 감정은 삶이라는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 완성된 안정감으로 회귀하리라 생각해 본다. 나도 여름이 끝나면 잠깐이라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P.S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히고 두껍지 않아 간단하게 읽기 좋다. 독서 속도가 느려터진 나도 11독을 가능하게 해준 아주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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