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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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마무리를 아무리 잘해도 코로나의 해로 남을 것 같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한다는 뉴스가 보이고 나의 동생은 무급휴직자로 전환되었다. 안경에 김이 서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마스크를 안 쓰던 나였으나, 지금은 근처의 마트를 잠깐 다녀와도 마스크는 필수로 착용한다. 까먹고 집을 나섰다가도 미착용을 깨달으면 되돌아와 마스크를 착용한다. 과장 좀 보태면 지갑 챙기는 건 잊어도 마스크 착용은 잊지 않는달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역대급 속도를 내고 있다지만, 생활을 안정시킬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한다. 게다가 변종까지 두둥등장하고 있다니 해결하지 못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저 손 잘 닦고 마스크 잘 쓰고 사람 접촉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코로나가 가져올 여파가 궁금해졌다.

 

예전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같이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나 싶어서 당장의 현상을 주제로 한 책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아무래도 장기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생활의 변화가 필수 불가결이다 보니 읽어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피엔스를 손에 든 이유이다.

 

자주 만날 팬데믹

 

바이러스는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만, 가끔 궁합이 딱 맞는 녀석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 p.26, 최재천 교수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하지 않을까. 팬데믹의 주기는 5, 3년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연례행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자꾸 침범하는 이상 말이다. 다양한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그들에게만 기생하던 생물들이 인간에게로 넘어오고, 여기서 조건이 맞으면 빠르게 질병화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1차 숙주는 박쥐이지만 직접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중간숙주가 천산갑이 맞다면 중국에서는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쓰므로 가공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온난화 역시 한몫 거든다. 기후가 더워지면서 열대에 머물던 세균 매개 동물들이 온대지방까지 올라오고, 시베리아에서는 동토가 녹아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드러나면서 탄저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언제든 팬데믹이 다시 선언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표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변화

 

정말 영세한 소상공인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져야 앞으로 우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존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 p.79, 최재붕 교수

 

코로나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1440선까지 폭락한 코스피지수다. 대공황까지 거론되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버티던 기업과 자영업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모든 기업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락해 그 순간만은 나라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가는 반등하여 횡보장까지 왔다. 곡소리가 안 들린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덜 들렸다. 곡소리 하지 않은 분야는 어디인가 하면 대체로 언택트라 불리는 영역이었다. , 직접 만나지 않고 일 처리 가능한 비대면 서비스가 대체로 성장하거나 살아남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의 주가 상승, 택배의 배달 물량 증가와 아마존의 추가 고용이다. 코스피 폭락 전 주당 15만 원이던 카카오는 현재 35만 원대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양이 늘었을 것이고, 아마존의 경우 감당이 안 되어 추가로 1만여 명을 고용했다. 또 자영업에서는 배달이 가능한 장사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지 못한 곳은 지금도 힘겹다고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진 시점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디지털 문명에 대한 공부는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익숙한 것에 더욱 의지하려 들면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재붕 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애써 만들지 않으면 없어지기만 할 뿐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적응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다.

 

디지털 문명하니 이런 걱정이 생겼다. 예전에 전자기기를 자주 사용하면 사고방식이 물벼룩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니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숙함이 더욱 우선시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굉장한 딜레마가 아닌가. 현시대의 가장 큰 무기는 디지털이지만, 가장 큰 적도 디지털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마 이런 걱정 역시 달라진 표준이 가져온 변화일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 경제적 주체로서 오래도록 건강히 살아남지 않을까?

 

자기중심에서 자기이해로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 p.176, 김경일 교수

 

코로나로 인해 대외활동이 강하게 제한되던 시기에, 유튜브를 켜면 보이는 콘텐츠는 몇 번 저어 만든 뭐시기였다. 달고나 커피, 크리미한 계란 후라이, 제티 초콜릿 등등. 나는 평소에도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 저런 짓을 왜 하지?’하며 봤지만, 그 안에는 꽤 큰 의미가 숨어 있었던 듯하다. 김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지향점이 변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남들이 가진 것, 다녀온 곳, 먹은 것 등을 자신도 이뤄야 만족한다고 여겼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만족한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찾아내는 만족감이 사회 분위기가 조성하는 흐름에 억지로 합류하는 것보다 더 높은 듯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디나 예외는 있어 이태원 확진자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니까.

 

아무튼, 개인이 자신만의 라이크를 찾으면서 기업도 달라진다고 한다. 원트가 지배적일 때는 대량 생산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했다. 일례로, 내가 중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교복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패딩이 교복이었다. 신발은 뉴발란스나이키 에어포스가 대세였다. 짭이라도 신으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가난해서 가지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라이크가 지배적인 지금은 소량 생산의 완판을 목적으로 둘 것이라고 한다. 개개인이 개성을 찾으며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여파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했을 터이니, 모든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만의 라이크를 찾았던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을 보면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취업이 되든 말든 행복하니까 말이다.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이다. 전염병 하나가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긴 것처럼 안일한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래 일이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책에서 석학들이 한 말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뉴스 영상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이제 BCAC로 나눠야 한다. Before CoronaAfter Corona.’ 홍기빈 교수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p.116)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방역을 잘한 나라이니 만큼 앞으로에 대한 결단도 잘 내리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물론 나도 개인적인 결단으로 공부에 힘을 더 써야겠다.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After Corona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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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는 유튜브 방송 중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진행자이신 정관용 씨가 진행한 대담집인 듯하다. 여섯 명의 석학,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교수들과 대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묶어서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해를 온전히 했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언급하지 않은 분들의 말씀은 내가 많이 부족한 경제 부분이라 따로 적지는 못했다. 읽기 쉬운 만큼 시간 내서 다시 봐야겠다. 거시적인 관점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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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가 하는 일 - 도서 편집의 세계
피터 지나 외 엮음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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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또는 그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를 붙인 편집가(編輯家)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 책날개에서

 

스스로 책을 좋아한다고 말은 했지만, 저자와 출판사, 표지, 장르 외에는 크게 관심 있지 않았다. 사실 책은 위에 언급한 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그러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다가 편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를 설득하러 다니고, 돈이 되지 않는 장르에 대해 편집가와 대표가 언쟁하고, 유명한 표지 디자이너를 섭외하려 애쓰고, 파쇄되는 책들을 보며 슬퍼하고, 자신이 메인 편집가가 되어 나온 책을 보고 기뻐하고, 그 책의 저자 소개가 잘못되어 분노하고 등등(더 있겠지만 여기까지만 보고 관뒀음). ‘정말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했다. 접한 지는 꽤 됐는데 이유 없이 미루다가 얼마 전에 읽었다. 드라마에서 내가 본 과정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물론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서 후 편집가에 대해 내가 느낀 점은 출판에 관련된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그야말로 책날개에서 언급했듯 단순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가 아닌 하나의 업을 뜻하는 ‘-()’를 붙여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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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따라 편집하는 방식도, 출간하는 책도, 원하는 저자도 전부 다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선 편집가는 하는 일이 엇비슷해 보인다. 저자를 발굴하거나 책을 입수하고, 내용을 검토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하고, 마케팅, 표지 디자인, 교정교열, 교정쇄 검토, 인쇄, 판매처 공급 등 그 과정에 참여하거나 꿰고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출판의 A부터 Z까지 편집가의 손을 거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 요즘 세상이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인 사람을 원하는 것처럼, 편집가는 자신이 맡은 장르의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출판 전반에 대한, 아울러 시장에 대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 책과 관련된 일에서 혹시 이런 일도 하나?’ 싶은 생각이 떠오르면 아마도 그런 일까지도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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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란 저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통과되면 책으로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편집가가 출판을 기획하고 그에 걸맞은 작가를 찾아 작업하는 일 말이다. ‘원고 청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문학에 한정된 관례인 줄 알았다(이래서 아는 만큼 보이는 듯.). 가끔 , 이런 주제의 책도 있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책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책이 편집가가 기획한 도서인 듯하다.

 

또 편집가는 의외로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책과 관련된 직업인데 독서 시간이 부족하다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보내져 오는 원고의 양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요즘은 제출된 원고뿐 아니라 웹에서 떠도는 글도 확인해야 하므로 편집가 입장에서는 볼 게 넘쳐나다 못해 대홍수일 것이다. 그래서 편집가는 퇴근 후 홀로 있는 시간대에 가방에 쟁여둔 원고 뭉치를 꺼내 읽는다고.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일해도 부유해질 수는 없으니,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직업을 고르라는 편집가도 있었다. 독서량이 줄어들고 출판 시장은 타이트해지는 현실이니까. 우리나라 어느 출판사의 블로그에서도 막내 편집가가 비슷한 글을 올렸다. 이쪽에서 일하고 싶다면 돈보다 자부심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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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서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예전에는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책은 사보기에 어려움이 있어 책방을 이용했는데, 요즘은 만화는 웹툰으로, 소설은 전자책으로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오프라인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의 영역이 더욱 커졌고, 아마존 킨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제는 전자책 시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글쓰기에 대한 장벽이 매우 낮아져 어디에나 글이 있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출판사는 시류에 발맞춰 움직여야 한다.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에 대한 적응은 필수요소이다. 더불어 편집가는 곳곳에 퍼져 있는 글들을 확인하면서 숨겨진 대작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기본값이 되었다. 출판 시장의 디지털화는 기술적인 면도 편집가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가령, 소비가 잘 되는 장르는 무엇인지, 사람들이 책의 어느 부분에서 늘어지고 어느 부분에서 집중하는지에 대한 정보 수집이 중요해졌다. 그런 정보 분석을 할 줄 아는 편집가가 이제는 더욱 중심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앞서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고 했는데, 책과 관련된 직업마저 정말 다방면으로 기술과 지식이 있어야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는 시대가 될 듯하다. 차라리 꿈에 그리는 인공지능 로봇이 얼른 도래했으면 좋겠다. 인간으로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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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가라는 직업은 흥미롭다. 뭔가 시대랑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시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며 받으니까. 현직으로 종사하고 있다면 괴로움이 상당하겠지만,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대단하고 재밌어 보인다. 자신이 편집한 책이 출간되는 기쁨과 자부심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고 할까. 워낙 게으른 성격에 무기력해서 뭐 하고 싶은 일 따위 없었는데, 출판 쪽은 한번 해보고 싶어진다.

 

책 안에는 26편의 편집가 글이 있다. 내가 너무 뭉뚱그려 감상문을 썼으니 편집가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면 읽어봐서 해되진 않을 듯하다.

 

이 책은 미국의 출판계여서 한국은 어떤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다음 기회에는 한국 편집가가 쓴 책을 읽어봐야겠다. 괜스레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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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그려진 이야기 - 그리스인들의 별자리 신화
데이비드 W. 마셜 지음, 이종인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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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수십 번도 더 보는 유형이었다. 그중 한 축을 담당했던 책이 만화로 읽는 그리스·로마 신화였다. 타이탄과 올림포스 신의 싸움,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과업, 아르고호 원정대, 프로메테우스의 불, 판도라의 상자, 헤라·아테나·아프로디테 세 여신 간의 황금사과 신경전으로 촉발된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의 여정 등등. 읽은 지 꽤 지난 지금에도 굵직굵직한 내용은 눈에 선하다.

 

또 다른 과거를 회상하자면, 해군 복무했을 때 별을 본 기억이다. 출항하면 일주일 동안 서해에 머무는데, 날이 맑으면 뭍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별들이 검푸른 하늘을 가득 메운다. 몇몇 별은 아주 밝게 빛나는데, 그것들은 나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복기하게 만드는 별자리였다. 확실히 구분했던 별자리를 꼽자면 오리온, 카시오페아, 작은 곰, 백조였다(어느 계절에 봤는지는 모른다. 형태만 기억난다.). 당시에는 담배를 피웠는데, 새벽 당직 끝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 그렇게 ㅈ 같을...이 아니고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데이비드 마셜의 하늘에 그려진 이야기는 이런 두 가지 추억을 적절히 버무려 행복한 독서를 선사했다. 아는 별자리 신화는 복습했고, 모르는 별자리 신화는 새로 배웠다. 동시에 서양철학의 근간이 그리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그들은 신화 단계에서부터 철학적이었다.

 

별자리: 신의 메시지 - 헌신

 

그리스인들은 대체로 별자리가 인간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별자리는 인간들이 따라야 할 윤리적 지침이 되었다. - p.4

 

우리 각자에게는 탄생 별자리가 주어진다. 나의 별자리는 사자자리다. 이를 가지고 운세를 보기도 하고, 관련된 물건을 사기도 한다. 동양의 십이간지처럼 정체성을 부여하는 다른 수단이 될 때도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별자리를 황도십이궁이라 불렀고, 지구를 둘러싼 천구에 자리 잡았다고 여겼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별자리가 천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전하는 메시지로, 인간으로서 지향할 것과 지양할 것을 구분해주는 기준이었다.

 

별자리에 깃든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헌신에 대한 찬양과 그에 대한 보상배신에 대한 응징과 그에 대한 경고’. 전자에는 사랑, 용기, 희생, 겸손 등이 포함되었고, 후자에는 오만, 불신, 탐욕, 속임수 등이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의 최고 덕목은 아레테arete’였다. 아레테란 삶의 모든 면에서 균형 있는 태도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면 인간이라도 별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자리가 마차부자리로, 에레크테우스라는 청년을 기념한다. 에레크테우스는 누구보다 빠르게 마차를 모는 걸출한 육체 능력을 지녔음에도 아테나에 대한 겸손하고 독실한 신앙심을 유지했다. 자신의 잘난 점을 부각하여 타인을 깔보는 오만함 대신, 타인을 이끌며 위대한 신앙심을 가질 수 있도록 헌신함으로써 아레테를 이뤘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는 인간으로서 생을 마치고 별자리에 올라 귀감이 된 것이다.

 

인간이 아닌 별자리도 있다. 크로노스의 위협으로부터 제우스를 지키고자 어머니 레아가 아기를 보모 염소에게 맡긴다. 아말테아라는 보모 염소는 제우스 말고도 자식인 쌍둥이 염소, 고아인 아이고케로스라는 염소를 함께 보살핀다. 아말테아의 아래서 헌신과 사랑으로 성장한 제우스는 성인이 되자 신의 왕좌에 앉기 위해 형제를 구하고 아버지 종족인 타이탄과 전쟁을 하게 된다. 험난한 과정에서 제우스는 형제나 다름없는 용맹한 염소, 아이고케로스의 도움을 받으며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최고 신의 자리에 앉는다.

 

최고 신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보모 염소였던 아말테아는 아레테를 이룬 인물의 왼쪽 어깨에서 가장 밝은 별 중 하나가 되었고, 아이고케로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염소자리가 되었다. 헌신은 이처럼 자신의 열과 성을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다.

 

별자리: 신의 메시지 배신

 

아폴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밤하늘에 까마귀 별자리를 두어 신들보다 자신의 탐욕을 먼저 챙기려는 자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 p.88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했던 가치가 헌신이었다면, 경계했던 것은 배신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심리에는 앞서 얘기했던 오만, 탐욕, 불신, 속임수 등이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길들인 벨레로폰은 괴기한 키마이라(키메라)를 죽이고는 신과 동급이라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곧장 올림포스로 올라갔다. 신들의 환호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제우스는 말파리를 보내 페가수스를 괴롭혔고, 벨레로폰은 괴로움에 날뛰는 말에서 추락했다. 다행히 덤불 덕에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을 비참하게 떠돌다 죽었다. 벨레로폰에 대한 별자리는 없지만, 이후 제우스의 총애를 받고 하늘로 올려진 페가수스자리를 보면서 벨레로폰에 대한 교훈을 되새길 수 있다.

 

또 다른 경고의 별자리는 오리온자리이다. 사냥꾼의 수호자리라 불리는 신성한 별자리가 어째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오리온은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사냥 실력으로 처녀의 신인 아르테미스마저 반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사랑보다 사냥을 더 좋아하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연애보다 헬스에 인생을 바친 헬창이었다. 단호박인 오리온이었지만, 그의 마음을 훔친 여인은 분명 있었다. 아틀라스의 딸들인 플라이아데스였는데,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들이 겁먹고 끝까지 오리온의 사랑을 거부했던 것이다.

 

사랑을 거절당한 오리온은 충격에 빠져 더욱 사냥에 몰두했다. 슬픔을 숨긴 몰두는 심화되면서 허세를 가져왔고, 곧 세상 어떤 짐승도 사냥할 수 있다고 외쳤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그런 허세를 견딜 수 없었고, 거대한 전갈을 불러 오리온을 공격하게 했다. 오리온은 용맹하게 전갈을 대적했으나 독침에 당할 수는 없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처녀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최고 신에게 간청해 하늘의 별자리로 올려보냈다. 그러나 제우스가 괜히 최고 신이겠는가. 뒤이어 전갈도 하늘로 올려보내 오리온을 뒤쫓게 만들었다. ‘전갈자리는 지상에서 그 별을 쳐다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만하지 말아야 몰락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p.122)’

 

이외에도 신들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며 만든 별자리도 있고,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한 별자리도 있다. 또 생물과 관련된 별자리뿐 아니라 무생물인 별자리도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천체에서 반짝인다.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일관되게 헌신과 배신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만을 꺼냈으니 누군가의 호기심 자극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해가 안 되었던 현대의 별자리 형태

 

이 책에서 고대 별자리 신화도 재밌었지만, 고대의 별자리와 현대의 별자리 모양 차이도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당최 현대 별자리를 보면서 저게 어떻게 사람이고, 동물이고, 어떻게 봐야 물건이야?’라는 생각을 매번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대에는 별 무리를 그림으로 봤다면,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실용적 사고가 주류를 차지했고, 기록이 쉽게끔 묶음으로 치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대와 현대의 별자리 취급의 차이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말한다. “천문학의 과학적 연구와 함께 고대의 별 이야기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p.218)”이라고. 개인적으로도 고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별자리가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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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는 별자리 신화, 2부는 현대의 별자리 형태, 3부는 고대인들의 농사, 목축, 항해를 도운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앞의 두 부분은 잠깐이나마 언급했지만, 3부는 스킵했다. 노잼이라 간신히 읽었기 때문이다. 역사 덕후는 아니라서 고대인의 생활상까지는 관심 없었다. 내 흥미는 아직도 신화를 선호한다.

 

이 책을 읽으니 몇 년 전에 사두었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눈에 띈다. 서사시 형식이 어색해서 미뤄뒀는데 이참에 살살 읽어볼까. 신화적 상상력은 모든 상상력의 원형인 만큼 흥미가 고갈되지 않는다. 상상력이 궁할 때는 별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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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지혜 - 삶을 관통하는 돈에 대한 사유와 통찰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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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점: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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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시대는 돈의 시대다.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재정적 피해 얼마, 뒷돈 얼마, 기부금 얼마, 물가 상승 얼마, 재산 얼마, 세금 얼마, 보험금 얼마 등등. 돈 때문에 울고, 돈 덕분에 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시대의 구성원인 나지만, 최근까지 나는 돈 혐오론자였다. , , 돈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적당을 모르는 탐욕가로 보였다. 돈에 끌려다니며 꿈을 포기한 사람들 혹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도 탐욕에 찌들어 보였다. 매번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돌아본 내 모습은 돈 예찬론자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브뤼크네르는 돈의 지혜에서 단단히 일러줬다. “돈은 죄가 없다.”

  

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뭐든지 할 수는 없다. 돈은 언제나 우리 기분에 휘둘리지, 엄밀히 말해 그 자체가 출처는 아니다. 돈이 나르시시즘, 힘을 쥐려는 의지, 종교적정치적 선전, 계급불평등, 자존심의 원동력을 빚어내는 게 아니다. 명예, 재주, 온갖 위대한 감정의 순결한 땅을 돈이 침범할 거라고? 장난하나! 돈은 기껏해야 액셀러레이터 노릇을 할 뿐, 절대로 제1원인이 아니다. - p.112 

 

흔히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가치가 아닌 도구라고 한다. 이 위치가 전복될 때 우리는 돈에 끌려다니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돈 혐오론자였던 당시 내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멸시하고 멀리해야 한다. 돈은 초연한 자세로 최소 생계유지 정도만 소유하자.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힘든 거다. 나라가 돈에 미쳐서 안 굴러가는 거다. 언제나 돈이 문제다, 돈이! ……. , 아니야. 돌아가. 

 

모든 체제, 모든 시대, 그야말로 도처에 돈이 존재하지만 돈은 인간 정념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지금 지구를 피로 물들이는 전쟁에서도 우리는 제국주의적 야심이나 종교적 광신을 먼저 보지, 오로지 금전적 동기만 따로 떼놓고 보는 경우는 드물다. 경제에 집착하는 우리 시대에나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우리 안의 믿음을 우리가 먼저 사물에 투입해놓고는 사물에서 그 믿음이 보인다고 놀라워하는 격이다. - p.129 

 

돈은 천박하면서도 고귀하고, 허구이자 현실이다. 돈이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고 맺어주기도 한다. 돈은 너무 넘쳐나도 두렵고, 너무 모자라도 두렵다. 돈은 악을 행하는 선일 수도 있고, 선을 행하는 악일 수도 있다.(p.11) , 휘두르는 사람 마음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신용이다. 발행한 자의 신용도가 굳건할 때에만 화폐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어느 국가기관의 신용을 담보로 거래를 할 뿐이다. 상평통보 들고 시장에 가봤자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박물관은 받아줄지도 모르겠다. 대신 화폐로서가 아니라 유물로서겠지만. 망국의 화폐로는 상거래를 할 수 없는 법이다. 요컨대, 돈은 사용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투영할 때만 제 역할을 하는 물건인 것이다.

 

돈은 목적에도 가깝고 수단에도 가까운 것으로서, 불확실한 위치에 놓인다. 그냥 도구라고 보기엔 너무 중요하고 가치로서의 위엄을 지니기엔 하찮다. 돈은 인간관계를 원활히 할 임무가 있지만 제 역할을 박차고 완고한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돈은 언제라도 우리를 몰지각하게 만들 수 있다. 돈이 우리의 욕구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완전히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97~98 

 

생각이야 돈은 돈일 뿐이다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인간의 마음은 홀씨와 같아서 적당한 바람만 불어주면 이리저리 휘휘 날리다가 불시착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싹 틔우고 자리 잡으면 다음 홀씨가 생길 때까지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간혹 메마른 땅이어서 시드는 경우도 있을 거고. 자본주의에서 돈바람은 제트기류다. 미풍에도 살랑이는 홀씨가 그 강도를 견딜 수 있을 리가.

 

화폐가 신용을 증명하듯이, 돈을 대하는 자세는 욕망을 증명한다. 돈은 이러저러한 정념과 얽히고설킬 때에만 소설적이기 때문이다. 돈은 단지 정념을 거울처럼 비추거나 확장시키는 역할만 한다. 돈을 말하는 것은 늘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정절과 배신을, 벼락출세와 전격적인 몰락을 말하는 것이다.(p.106) 이 파급력은 인간의 본능, 생존 욕구를 건드린다. 살기 위해 물건의 역할이 바뀐다. 망치를 예로 들어볼까. 목수의 손에 잡힌 망치는 못 박는 도구지만, 살인마 손에서는……?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 역할을 생각하면 되겠다.

 

돈의 거리는 우리와 매우 밀접해서,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사고(좋든 안 좋든)는 생생하고 영향력 강하게 다가온다. 대다수의 공통된 생존 도구인 돈이 큰일을 치르면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되고, 응집된 관심은 커다란 의미를 낳는다. 여기서 두 패로 갈린다. ‘돈 신봉자돈 혐오자’. 물론 중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돈 자체를 문제 삼지 않기에 빼놓도록 하자. 두 유형의 공통점은 자본에 크게 노출된 부류라는 점이다.

 

전자의 문제점은 가치 전복이다. 이들에게 돈은 내면성을 이익으로 대체함으로써 각 사람이 영적 소명에서 벗어나게끔 몰아간다. 돈은 사회생활을 변질시키고 단순한 손익 계산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결국 개인생활마저도 이기적 계산의 힘에 변질되고 만다.(p.51) 돈 신봉자는 돈을 위해서 노동자에게 갑질하고 핍박한다. 범죄는 돈으로 무마하면 된다. 오오, 돈님이 짱이시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 정서를 무시한 대가는 돈이 아니라 신봉자가 받는다.

 

그들이 부자의 풍속을 상세히 검토하고 진단하는 이유는 그냥 욕을 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반쯤은 위선적으로, 반쯤은 매혹을 느끼면서 말이다. () 누구든 금송아지에 대한 멸시를 보란 듯이 떠드는 자는 내심 돈을 애지중지한다. 그러한 거짓 경멸은 부끄러운 열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돈에 정말로 무심한 사람은 굳이 혐오를 과시할 필요도 없다. - p.68 

 

후자는 대책 없다는 게 문제다. 일단 까고 본다. 그들은 성공의 이면에 늘 수상한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 특히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은 이런 시각에서 특권층이 자기네들의 성공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 납부해야 하는 벌금인 셈이다.(p.63) 수상한 합의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세금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그들은 욕한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돈을 너무 많이 벌면 안 되고, 저들을 조사하라고 외친다. 돈은 부질없다! 금기는 실제로 완전히 금지된 것이 아니라 욕망과 쾌락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덕망 넘치는 이 모든 선언은 여우와 신포도식의 원통함을 드러낸다.(p.66) 나에게 없기 때문에 저들도 갖지 못하길 바란다.

 

돈에 시기심을 투영한 결과다. 부자들의 과정에 상관없이 현재의 나와 현재의 그들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완화하고 싶은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금송아지를 실컷 욕하면 기분전환이 된다.(p.67) 책임 전가만큼 편한 게 어디 있을까. 자본주의에서는 늘 위기가 있고, 혐오자들은 위기의 당사자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인데 반해, 내수시장은 쪼그라들어있다고 한다. 있는 사람은 잘 살고, 없는 사람은 힘들다. 돈이 좌우한다고 느낄 만하다.

 

위기의 시대에만 욕하면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언제나 불만이다. 돈이 마구 넘쳐날 때에는 그 저열한 물질성을 주로 비난한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고 돈에 쪼들리면 시스템 전체를 욕한다. 이러한 탄원은 이중적이다. 자본주의가 번영하면 더럽고 천박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코를 틀어막으면서 자본주의가 비틀거리면 불공평하다고 또 들고일어난다.(p95~96)

 

자선 없는 허영보다는 허영 때문에라도 자선을 베푸는 편이 낫다. 무감각하고 자족적인 이기심보다는 과시적인 선행 경쟁이 차라리 낫다. - p.274

 

가만, “돈은 죄가 없다라고 시작했는데 돈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돈이 있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돈의 속성에 있다. 목적으로서의 돈과 수단으로서의 돈을 구분하는 선은 아무 미세해서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 선을 계속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소비지상주의와 광고가 하는 일이다. 필요할 때 이 선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다.(p.98) 공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돈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바로 정상적인 돈의 분배를 위한 공부이다.

 

저자는 돈은 기본적으로 중립이라는 전제를 고수하면서 돈을 통해서 인간 조건을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은 돈의 아첨꾼들과 돈의 적들이 공유하는 신기루다. 돈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든 과대평가하든, 두 입장 모두 돈을 단단히 잘못 알기는 마찬가지(p.112)’라고 말한다.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의 분배가 문제인 것이다.(p.109)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은 증가한다. 세금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내가 나라를 위해 세금을 냈지만, 낸 만큼의 혜택을 못 받는다고 느껴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브뤼크네르는 도덕 혁명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잇는 리치 오블리주를 일깨워야 한다. 경제학 용어 중에 베블런 효과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에게서 유래한 용어로, 부유한 자들이 과시를 위해 소비를 멈추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을 자선에 적용하는 것이다. 세금은 우리를 우리 몫을 떼였다는 불쾌감을 안고 사는 수동적 시민으로 만든다. 반면, 자선은 우리가 액수와 용도를 정할 수 있는 일종의 자발적 세금이다.(p.277)

 

미국의 빌 게이츠가 기부하듯이, 기업들의 과시가 소비나 소유에서 자선으로 돌아서면, 더 원활한 돈의 재분배가 나오지 않을까. 지금도 많은 기업이 기부는 하고 있지만, 그 방면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기업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기부하면 당당하게 환호받는 시대야말로 자선의 플라이휠(Flywheel)이 속도를 늦출 수 없는 구간에 들어서는 길이다.

<내가 만든 '이기적 이타주의 플라이휠'>

 

 

이러한 도덕 혁명을 기업 선에서만, 혹은 부유한 자들 선에서만 보는 것도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도덕 혁명을 다른 말로 풀면 이기적 이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내가 남을 돕기 위해 있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일단 먹고 살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 생존부터 돈이 들기에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때 지성을 견고하게 다지지 않으면 위에서 말한 홀씨가 불모지에 불시착한다.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아닌 이기주의자가 될지 모른다.

 

좋은 사회는 재능과 자질을 평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여 자기 역량을 더 잘 펼 수 있게 하는 사회다. - p.213 

먼 길 돌아온 내 결론은 이렇다. 돈 공부는 단순히 경제금융부동산 등의 벌기만 하는 공부가 아니다. 나 하나만을 위한 공부 역시 아니다. 더 나은 사회관계망을 만드는 일이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돈 공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추신 - 돈이란 개념이 만국공통이라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무래도 프랑스 철학가이다 보니 내용 대부분이 서양사고 중심이라 정서적으로 무심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읽혔다는 것은 세계화 덕분인가?ㅋㅋ

 

추신2 - 책의 띠지에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라고 써있길래 나도 나만의 견분철학(犬糞哲學)을 책 내용에 기대서 펼쳐보았다. 이불킥하고 싶을 때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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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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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감정과 충동으로 하는 것이 아님. 효율을 비교해 그럭저럭이 아닌 최고의 기부단체를 선택해야 함.

 

-저자는 모금액의 사용처와 성과가 불분명한 거대 규모의 기부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모금액 사용처가 투명하고 성과가 분명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함.

 

-효율을 비교할 때는 ‘QALY’라는 지표를 사용해 가장 높은 효율의 단체를 정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 판단이 안 될 때는 기대효과를 통해 비교해 볼 수 있음.

 

-진로를 결정할 때도 효율적 이타주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 가령 철수가 의사가 되어 빈민구호활동을 할 때의 이타적 효율과 다른 실력자가 철수 대신 의사가 되었을 때의 효율을 비교해 숙고할 수 있고, 혹은 전자와 철수가 의사인 것은 같지만 의료행위로 번 돈을 기부하는 행위 중 어떤 부분이 더 비용효율성이 높은가를 통해 진로 결정이 가능함.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부자 스스로의 가치판단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독서 후 생각이 바뀜. 개인의 가치판단은 기부단체에 대한 관심도를 평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그러나 그 부분이 기부단체의 효율성을 높여주진 않음. 때문에 냉정한 이타주의가 필요하고 생각됨.

 

-저자는 머리말에 우리는 남을 도우려고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곤 한다.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라고 말했음.

 

-필자 역시 이성과 숫자를 따져가면서 하는 기부행위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었음. 변명이지만, 그래서 위선적으로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기부는 생각도 안 함. 더해서 남들이 하겠지’, ‘나 하나쯤이야 안 해도 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나에게 있어 목숨값까지는 아닌 만 원의 가치가 빈곤국가에서는 목숨값이 될 수 있고, 이것이 모이면 누군가의 인생을 확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됨. 이 돈이 모이면 점점 심화 중인 지구온난화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름.

 

-현재는 백수라 원하는 만큼 기부는 못 하지만, 용돈을 쪼개서 조금씩이라도 기부하는 습관을 만들 예정. 기부는 뭔가 대단한 이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닌 듯. 내 안의 이타주의가 꿈틀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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