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지혜 - 삶을 관통하는 돈에 대한 사유와 통찰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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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시대는 돈의 시대다.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재정적 피해 얼마, 뒷돈 얼마, 기부금 얼마, 물가 상승 얼마, 재산 얼마, 세금 얼마, 보험금 얼마 등등. 돈 때문에 울고, 돈 덕분에 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시대의 구성원인 나지만, 최근까지 나는 돈 혐오론자였다. , , 돈 하는 게 너무 싫었다. 적당을 모르는 탐욕가로 보였다. 돈에 끌려다니며 꿈을 포기한 사람들 혹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도 탐욕에 찌들어 보였다. 매번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돌아본 내 모습은 돈 예찬론자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브뤼크네르는 돈의 지혜에서 단단히 일러줬다. “돈은 죄가 없다.”

  

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뭐든지 할 수는 없다. 돈은 언제나 우리 기분에 휘둘리지, 엄밀히 말해 그 자체가 출처는 아니다. 돈이 나르시시즘, 힘을 쥐려는 의지, 종교적정치적 선전, 계급불평등, 자존심의 원동력을 빚어내는 게 아니다. 명예, 재주, 온갖 위대한 감정의 순결한 땅을 돈이 침범할 거라고? 장난하나! 돈은 기껏해야 액셀러레이터 노릇을 할 뿐, 절대로 제1원인이 아니다. - p.112 

 

흔히 돈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며, 가치가 아닌 도구라고 한다. 이 위치가 전복될 때 우리는 돈에 끌려다니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돈 혐오론자였던 당시 내 사족을 덧붙이자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돈을 멸시하고 멀리해야 한다. 돈은 초연한 자세로 최소 생계유지 정도만 소유하자.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힘든 거다. 나라가 돈에 미쳐서 안 굴러가는 거다. 언제나 돈이 문제다, 돈이! ……. , 아니야. 돌아가. 

 

모든 체제, 모든 시대, 그야말로 도처에 돈이 존재하지만 돈은 인간 정념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지금 지구를 피로 물들이는 전쟁에서도 우리는 제국주의적 야심이나 종교적 광신을 먼저 보지, 오로지 금전적 동기만 따로 떼놓고 보는 경우는 드물다. 경제에 집착하는 우리 시대에나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우리 안의 믿음을 우리가 먼저 사물에 투입해놓고는 사물에서 그 믿음이 보인다고 놀라워하는 격이다. - p.129 

 

돈은 천박하면서도 고귀하고, 허구이자 현실이다. 돈이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고 맺어주기도 한다. 돈은 너무 넘쳐나도 두렵고, 너무 모자라도 두렵다. 돈은 악을 행하는 선일 수도 있고, 선을 행하는 악일 수도 있다.(p.11) , 휘두르는 사람 마음이다. 돈이란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신용이다. 발행한 자의 신용도가 굳건할 때에만 화폐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어느 국가기관의 신용을 담보로 거래를 할 뿐이다. 상평통보 들고 시장에 가봤자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박물관은 받아줄지도 모르겠다. 대신 화폐로서가 아니라 유물로서겠지만. 망국의 화폐로는 상거래를 할 수 없는 법이다. 요컨대, 돈은 사용자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투영할 때만 제 역할을 하는 물건인 것이다.

 

돈은 목적에도 가깝고 수단에도 가까운 것으로서, 불확실한 위치에 놓인다. 그냥 도구라고 보기엔 너무 중요하고 가치로서의 위엄을 지니기엔 하찮다. 돈은 인간관계를 원활히 할 임무가 있지만 제 역할을 박차고 완고한 주인 노릇을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돈은 언제라도 우리를 몰지각하게 만들 수 있다. 돈이 우리의 욕구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완전히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97~98 

 

생각이야 돈은 돈일 뿐이다라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인간의 마음은 홀씨와 같아서 적당한 바람만 불어주면 이리저리 휘휘 날리다가 불시착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싹 틔우고 자리 잡으면 다음 홀씨가 생길 때까지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간혹 메마른 땅이어서 시드는 경우도 있을 거고. 자본주의에서 돈바람은 제트기류다. 미풍에도 살랑이는 홀씨가 그 강도를 견딜 수 있을 리가.

 

화폐가 신용을 증명하듯이, 돈을 대하는 자세는 욕망을 증명한다. 돈은 이러저러한 정념과 얽히고설킬 때에만 소설적이기 때문이다. 돈은 단지 정념을 거울처럼 비추거나 확장시키는 역할만 한다. 돈을 말하는 것은 늘 돈이 아닌 다른 것을, 정절과 배신을, 벼락출세와 전격적인 몰락을 말하는 것이다.(p.106) 이 파급력은 인간의 본능, 생존 욕구를 건드린다. 살기 위해 물건의 역할이 바뀐다. 망치를 예로 들어볼까. 목수의 손에 잡힌 망치는 못 박는 도구지만, 살인마 손에서는……?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 역할을 생각하면 되겠다.

 

돈의 거리는 우리와 매우 밀접해서, 관련하여 일어난 사건사고(좋든 안 좋든)는 생생하고 영향력 강하게 다가온다. 대다수의 공통된 생존 도구인 돈이 큰일을 치르면 자연스레 관심이 집중되고, 응집된 관심은 커다란 의미를 낳는다. 여기서 두 패로 갈린다. ‘돈 신봉자돈 혐오자’. 물론 중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돈 자체를 문제 삼지 않기에 빼놓도록 하자. 두 유형의 공통점은 자본에 크게 노출된 부류라는 점이다.

 

전자의 문제점은 가치 전복이다. 이들에게 돈은 내면성을 이익으로 대체함으로써 각 사람이 영적 소명에서 벗어나게끔 몰아간다. 돈은 사회생활을 변질시키고 단순한 손익 계산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결국 개인생활마저도 이기적 계산의 힘에 변질되고 만다.(p.51) 돈 신봉자는 돈을 위해서 노동자에게 갑질하고 핍박한다. 범죄는 돈으로 무마하면 된다. 오오, 돈님이 짱이시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 정서를 무시한 대가는 돈이 아니라 신봉자가 받는다.

 

그들이 부자의 풍속을 상세히 검토하고 진단하는 이유는 그냥 욕을 하기 위해서다. 그것도 반쯤은 위선적으로, 반쯤은 매혹을 느끼면서 말이다. () 누구든 금송아지에 대한 멸시를 보란 듯이 떠드는 자는 내심 돈을 애지중지한다. 그러한 거짓 경멸은 부끄러운 열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돈에 정말로 무심한 사람은 굳이 혐오를 과시할 필요도 없다. - p.68 

 

후자는 대책 없다는 게 문제다. 일단 까고 본다. 그들은 성공의 이면에 늘 수상한 합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 특히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은 이런 시각에서 특권층이 자기네들의 성공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 납부해야 하는 벌금인 셈이다.(p.63) 수상한 합의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세금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그들은 욕한다.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하고, 돈을 너무 많이 벌면 안 되고, 저들을 조사하라고 외친다. 돈은 부질없다! 금기는 실제로 완전히 금지된 것이 아니라 욕망과 쾌락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덕망 넘치는 이 모든 선언은 여우와 신포도식의 원통함을 드러낸다.(p.66) 나에게 없기 때문에 저들도 갖지 못하길 바란다.

 

돈에 시기심을 투영한 결과다. 부자들의 과정에 상관없이 현재의 나와 현재의 그들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완화하고 싶은 것이다. 위기의 시대에 금송아지를 실컷 욕하면 기분전환이 된다.(p.67) 책임 전가만큼 편한 게 어디 있을까. 자본주의에서는 늘 위기가 있고, 혐오자들은 위기의 당사자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인데 반해, 내수시장은 쪼그라들어있다고 한다. 있는 사람은 잘 살고, 없는 사람은 힘들다. 돈이 좌우한다고 느낄 만하다.

 

위기의 시대에만 욕하면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언제나 불만이다. 돈이 마구 넘쳐날 때에는 그 저열한 물질성을 주로 비난한다. 그러다 위기가 닥치고 돈에 쪼들리면 시스템 전체를 욕한다. 이러한 탄원은 이중적이다. 자본주의가 번영하면 더럽고 천박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코를 틀어막으면서 자본주의가 비틀거리면 불공평하다고 또 들고일어난다.(p95~96)

 

자선 없는 허영보다는 허영 때문에라도 자선을 베푸는 편이 낫다. 무감각하고 자족적인 이기심보다는 과시적인 선행 경쟁이 차라리 낫다. - p.274

 

가만, “돈은 죄가 없다라고 시작했는데 돈이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돈이 있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돈의 속성에 있다. 목적으로서의 돈과 수단으로서의 돈을 구분하는 선은 아무 미세해서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이 선을 계속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 소비지상주의와 광고가 하는 일이다. 필요할 때 이 선을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이다.(p.98) 공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우리는 돈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바로 정상적인 돈의 분배를 위한 공부이다.

 

저자는 돈은 기본적으로 중립이라는 전제를 고수하면서 돈을 통해서 인간 조건을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은 돈의 아첨꾼들과 돈의 적들이 공유하는 신기루다. 돈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든 과대평가하든, 두 입장 모두 돈을 단단히 잘못 알기는 마찬가지(p.112)’라고 말한다.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의 분배가 문제인 것이다.(p.109)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은 증가한다. 세금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내가 나라를 위해 세금을 냈지만, 낸 만큼의 혜택을 못 받는다고 느껴진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브뤼크네르는 도덕 혁명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잇는 리치 오블리주를 일깨워야 한다. 경제학 용어 중에 베블런 효과가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에게서 유래한 용어로, 부유한 자들이 과시를 위해 소비를 멈추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을 자선에 적용하는 것이다. 세금은 우리를 우리 몫을 떼였다는 불쾌감을 안고 사는 수동적 시민으로 만든다. 반면, 자선은 우리가 액수와 용도를 정할 수 있는 일종의 자발적 세금이다.(p.277)

 

미국의 빌 게이츠가 기부하듯이, 기업들의 과시가 소비나 소유에서 자선으로 돌아서면, 더 원활한 돈의 재분배가 나오지 않을까. 지금도 많은 기업이 기부는 하고 있지만, 그 방면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기업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기부하면 당당하게 환호받는 시대야말로 자선의 플라이휠(Flywheel)이 속도를 늦출 수 없는 구간에 들어서는 길이다.

<내가 만든 '이기적 이타주의 플라이휠'>

 

 

이러한 도덕 혁명을 기업 선에서만, 혹은 부유한 자들 선에서만 보는 것도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도덕 혁명을 다른 말로 풀면 이기적 이타주의라고 할 수 있다. 돈은 내가 남을 돕기 위해 있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일단 먹고 살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 생존부터 돈이 들기에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때 지성을 견고하게 다지지 않으면 위에서 말한 홀씨가 불모지에 불시착한다. 이기적 이타주의자가 아닌 이기주의자가 될지 모른다.

 

좋은 사회는 재능과 자질을 평준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여 자기 역량을 더 잘 펼 수 있게 하는 사회다. - p.213 

먼 길 돌아온 내 결론은 이렇다. 돈 공부는 단순히 경제금융부동산 등의 벌기만 하는 공부가 아니다. 나 하나만을 위한 공부 역시 아니다. 더 나은 사회관계망을 만드는 일이고,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다. ‘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기에 돈 공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추신 - 돈이란 개념이 만국공통이라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무래도 프랑스 철학가이다 보니 내용 대부분이 서양사고 중심이라 정서적으로 무심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읽혔다는 것은 세계화 덕분인가?ㅋㅋ

 

추신2 - 책의 띠지에 사람은 돈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철학자가 된다.”라고 써있길래 나도 나만의 견분철학(犬糞哲學)을 책 내용에 기대서 펼쳐보았다. 이불킥하고 싶을 때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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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 - 세상을 바꾸는 건 열정이 아닌 냉정이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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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감정과 충동으로 하는 것이 아님. 효율을 비교해 그럭저럭이 아닌 최고의 기부단체를 선택해야 함.

 

-저자는 모금액의 사용처와 성과가 불분명한 거대 규모의 기부단체에 기부하는 것보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모금액 사용처가 투명하고 성과가 분명한 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함.

 

-효율을 비교할 때는 ‘QALY’라는 지표를 사용해 가장 높은 효율의 단체를 정할 수 있고, 이것만으로 판단이 안 될 때는 기대효과를 통해 비교해 볼 수 있음.

 

-진로를 결정할 때도 효율적 이타주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 가령 철수가 의사가 되어 빈민구호활동을 할 때의 이타적 효율과 다른 실력자가 철수 대신 의사가 되었을 때의 효율을 비교해 숙고할 수 있고, 혹은 전자와 철수가 의사인 것은 같지만 의료행위로 번 돈을 기부하는 행위 중 어떤 부분이 더 비용효율성이 높은가를 통해 진로 결정이 가능함.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기부자 스스로의 가치판단이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독서 후 생각이 바뀜. 개인의 가치판단은 기부단체에 대한 관심도를 평가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것. 그러나 그 부분이 기부단체의 효율성을 높여주진 않음. 때문에 냉정한 이타주의가 필요하고 생각됨.

 

-저자는 머리말에 우리는 남을 도우려고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곤 한다. 숫자와 이성을 들이대면 선행의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탓에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라고 말했음.

 

-필자 역시 이성과 숫자를 따져가면서 하는 기부행위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었음. 변명이지만, 그래서 위선적으로 하느니 안 하는 게 낫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기부는 생각도 안 함. 더해서 남들이 하겠지’, ‘나 하나쯤이야 안 해도 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나에게 있어 목숨값까지는 아닌 만 원의 가치가 빈곤국가에서는 목숨값이 될 수 있고, 이것이 모이면 누군가의 인생을 확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됨. 이 돈이 모이면 점점 심화 중인 지구온난화를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름.

 

-현재는 백수라 원하는 만큼 기부는 못 하지만, 용돈을 쪼개서 조금씩이라도 기부하는 습관을 만들 예정. 기부는 뭔가 대단한 이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닌 듯. 내 안의 이타주의가 꿈틀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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