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북] 할머니의 여름휴가 창비 빅북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의 초복이 지났고, 장마 시즌이 다가왔다. 며칠 간 비가 오락가락해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몸은 이미 땀에 절어 있고. 장마가 지나가면 또 다시 작년의 공포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0도 언저리의 기온. 그런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바다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성격 탓에 바다를 좋아해도 사람 많을 때는 가지 않는다. 광활한 수평선과 파도의 오고감, 그리고 파도 소리에 대한 느긋한 감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여름 바다는 멀리 하게 된다.

 

다음주면 끝나는 '독서심리상담'에서 얻은 정보 중 빅북(Big book)'안녕달' 작가가 있었다. 빅북은 말 그대로 보통의 책보다 세 배 가량 큰 책이고, 안녕달 작가는 주로 바닷가가 배경인 그림책을 짓는다. 빅북에 관심이 생겨 찾다보니 두 요소가 결합된 그림책을 찾았다. 바로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바닷가 그림을 크게 보니 내가 다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표지부터 시원한 바닷가가 배경인 이 책은 강아지와 함께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며느리와 손자가 찾아온다. 손자는 바다에 놀러갔다온 자랑을 할머니에게 하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지만, 며느리가 일축해 버린다. 그러자 손자는 할머니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바로 소라였다.

할머니는 소라에서 바다를 느꼈고, 손자는 그것을 선물로 드린다. 며느리와 손자가 떠나고 다시 혼자 남은 할머니는 티비로 시간을 보낸다. 그때 소라에서 나온 게 한 마리를 강아지가 쫓는데, 그러다 소라 속으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휴가 채비를 한 채 강아지와 소라 속으로 들어간다.

수영복, 수박 반 통, 강아지, 그리고 바닷가. 할머니는 완벽한 휴가를 누린다.

 

강아지, 갈매기와 수박을 나눠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기념품 가게도 들린다. 소라 속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림책, 빅북

 

그동안 나는 그림책을 '애들 보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은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수강하면서 역전되었다. 오히려 어른부터 봐야 할 장르가 그림책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왜 그런가. 일단 접근이 쉽다. 글보다 그림의 역할이 커서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그림책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복잡하지 않다. 행동이나 표정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편하다. 설명이 없기 때문에 독자가 상상력으로 해석할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문학이 으레 그렇듯, 같은 그림책이어도 읽었을 때의 심리상태나 주변 상황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독서모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면 장서(長書)만큼이나 생각과 감성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여기에 빅북(Big book)이 더해진다면? 화룡점정, 금상첨화, 완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내 사촌 동생 중 아직 한글을 못 뗀 동생은 그림책을 구석구석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한글을 얼추 읽는 동생은 글밥을 슉슉 읽고는 책장을 넘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림에는 초점을 모은다. 반면, 내가 경험한 어른들은 대체로 글만 읽고 휘리릭 넘겨버린다. 그림책인데 그림을 안 본다. 마치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 아래에 붙은 설명만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격이다.

 

하지만 빅북은 이런 점을 상쇄시켜준다. 책의 크기 덕분에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본의 아니게 눈알을 굴려 구석구석 살피게 된다. 그러면 보통 그림책에서 지나쳤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한 감정선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책이 주는 감성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수업에서 들은 바, 빅북이 주는 효과로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기르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동시에 빅북을 보는 연령이 높아져도 그 효과가 없어지지 않는다. ,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으면서도 나이가 어릴수록 극대화되는 것이다.

 

독서심리상담 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빅북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라고. 내가 구매한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이 결코 가벼운 가격은 아니다. 일반서 약 3권 값보다 비싸니까. 그러나 거기서 오는 정서의 안정감과 느낌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깊다. 사실 현실적으로 여러 권을 사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된다면 몇 권 더 사고 싶다.

(null)

안녕달 그림책을 접한 건 독서심리상담 수업 중 선정 도서였던 왜냐면…』 덕분이었다. 그때 그림체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빅북을 고르던 중 안녕달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좋은 점을 알고 구매했음에도, 내 마음의 절반은 어린 사촌 동생에게, 절반은 처음 보는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푹 빠졌다.

 

서해쯤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가 멀지 않아 직접 바닷가에 가서 보고 듣는 게 좋겠지만, 그속에 섞여 있는 별개의 음성들이 거슬린다. 동해는 뭐 뉴스 보면 엄두도 안 나고. 그래서 사람들 빠질 때까지 바닷가 여행은 미뤄두기로 결심했다. 대신 올여름은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 그림책을 펼쳐 놓고 더위를 논할 예정이다. 언제든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