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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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의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친한 사이끼리는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만날 때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러나 늘 친구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보지 못한 기간 동안 바뀐 친구의 생각이나 전혀 들려주지 않았던 과거사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에 담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예가 아닐까 한다.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비단 타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나조차도 내 속마음을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난 뒤 곱씹지 않고서야 순간순간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특히 낯선 사람들을 이제 막 만나는 나이대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작중 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인물조차도 어리숙했던 때에 다잡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설은 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생님(1)과 부모님(2)의 이야기와 선생님이 에게 보내는 유서(3)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선생님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생기는 의 마음, 그리고 숨겨두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편지로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순수함, 혹은 어리석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p.24~25

 

많은 나쁜 행동이 있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의도성이 없는 나쁨이리라. 예를 들면, 5살짜리 동생이 내가 아끼는 책에 낙서하고 찢어 놓았다면 내 속은 끓겠지만 그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그 녀석에게는 나를 화나게 만들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는 선생님의 초연한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주 왕래함에 따라 간혹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의 뒤를 쫓은 일이었다.

 

선생님은 매달 친구의 묘를 찾아갔다. ‘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행동은 선생님이 가진 죄의식을 건드는 행위였다. 그의 초연함은 과거사로부터 용서를 구하며 마주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게는 의도성이 전혀 없었지만 선생님에게 극단적 결심의 단초를 제공했다. 선생님이 에게 털어놓으려 했을 때 는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있었고, 그 사이 선생님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선생님의 죄책감

 

나는 남한테 속았다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았지.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았던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으로 변했거든. 난 그들한테서 받은 굴욕과 손해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왔네. 아마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살겠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하지 않고 있네. 생각하면 나는 실제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일반을 증오하고 있거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 p.88

 

마지막 편지에는 선생님이 당한 두 번의 배신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배신은 숙부로부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재산관리를 숙부에게 맡겼다. 부모님 살아생전부터 돌아가신 후까지 선생님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므로, 선생님은 숙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숙부가 자신의 딸을 선생님과 결혼시키려 하면서 선생님은 한 치의 의심이 생겨났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숙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만나지 않았던 게 새로 보였다. 전에는 정말 일하느라 바쁘게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 바쁜 척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선생님은 숙부와 싸우고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의 일부만 되찾은 채 고향을 떠나왔다.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돌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 p.265

 

두 번째 배신은 도시에서 겪었다. 선생님은 지낼 곳을 찾다 어느 하숙 치는 집에 들어간다. 주인아주머니와 따님인 아가씨만 사는 집이었다. 그는 그들과 친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아가씨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새로운 하숙인을 구하자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K를 소개해 하숙을 들였다. 자신처럼 K도 마음의 안정을 얻기를 바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면서 선생님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K가 아가씨를 좋아하는 게 보이고, 아가씨와 K가 어울리는 것이 자신보다 더 친근해 보였다. 선생님은 아가씨를 얻기 위해 K를 비난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말해 K 몰래 따님을 주십사 요구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스스로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고, 그것이 선생님의 죄의식이 되었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배신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내부로 들어온 배신과 내부로부터 외부로 발현된 배신을 모두 겪은 선생님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멀리했다. 자신을 믿는 행위는 세상을 버티는 근간이다. 이것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다름없다. 언젠가 사사로운 충격만 들어와도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가 보기에 선생님은 지식인이며 세상을 통달한 듯한 초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항상 무너질 것을 염려해 충격을 피하는 성향이 겉으로는 그렇게 비추어진 것뿐이었다.

 

내가 그 감옥 안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또 그 감옥을 도저히 부술 수 없게 되었을 때 결국 내가 가장 손쉬운 노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자네는 왜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지도 모르겠지만 늘 내 마음을 죄어오는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그 힘은 내 활동을 모든 방면에서 막아내면서 나를 위해 죽음의 길만을 자유롭게 열어두고 있네.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한다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거지. - p.270

 

선생님이 편지를 보낸 이유

 

선생님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지만, 헛된 지식인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드러내지 않은 고민 끝에 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정하면서도 가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 p.151

 

그가 자신의 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심정을 에게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젊은 날과는 다르게 의 태도가 솔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찔렀더라도 선생님은 가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극단적 선택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못한 탓에 이뤄진 결과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선생님은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 동정심을 요구하는 게 아닌 배울 점을 알려주는 자세, 그리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물론 선생님의 자살은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라 무책임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야기이다. 자살자가 겪은 무게는 누군가가 평가할 만큼 하찮지 않다.

 

이렇게 용기 내서 편지를 쓸 정도였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선생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은 딱 에게 보낸 편지까지였다. 자신을 비롯한 타인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이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선생님은 친구도 만나고 부인도 있고 까지 만났지만 정작 삶은 고립된 채였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한다. 겉으로는 일관성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시각각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오가고 때에 따라서는 평소 사소하게 여기던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나 어떤 것보다도 삶을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부에서는 의 아버지가 병세로 인해 몸져누워 있다. 육체에 병이 든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의 상황과 비교된다.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기에 때에 맞춰 대응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미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의 충격은 아버지의 병세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시행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더 자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처를 마주하기란 굉장히 두렵고 무섭고 힘겨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놔두거나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욱 곯으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아마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마음 챙김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 길 속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일면이라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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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 수면과 꿈의 과학
매슈 워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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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습관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서평에서 나는 새벽 기상에 도전한다고 썼다. 3주 정도 지속하면서 개운하기는커녕 피곤함만 늘어났다. 정신이 깨는 시간은 점점 더뎌졌고 집중력도 쉽게 분산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습관이 으레 그렇듯 익숙지 않은 행동에 대한 반동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20여 일이 지났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읽으면서 어쩌면 내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책을 중간쯤 읽었을 때부터 나는 새벽 기상 습관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벽 기상을 포기한 이유

 

나의 새벽 기상 문제점은 자는 시간에 있었다. 인간의 권장 수면 시간은 8시간이지만, 나는 11시 내외로 잠들어 5시에 일어났으니 약 6시간을 잤다. 권장 수면 시간보다 2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는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딩 때 유행했던 말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사당오락(四當五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안 자면 꿈을 이룬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네가 자는 동안 너의 경쟁자는 공부 중이다등등.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불량품(?)이었다. 꼬박꼬박 6시간을 자고, 그것도 모자라 쉬는 시간에도 자고, 수업 시간·야자 시간에도 졸았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뇌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수면 패턴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다른 애들보다 많이 자는데(6시간) 왜 이리도 잠이 부족할까 하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그 생각은 굳어져 최근까지도 6시간만 자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수면 부족으로 가는 코스였다.

 

수면 부족이 가져오는 문제들

 

하루 여섯 시간씩 자는 행동을 10일 동안 하니, 24시간 동안 잠을 안 잔 사람들에 맞먹는 수준으로 반응에 지장이 생겼다. 그리고 잠을 아예 못 잔 집단처럼, 네 시간 잔 집단과 여섯 시간 잔 집단도 시간이 흘러도 약해지는 기미가 전혀 없이 반응에 점점 더 지장이 생겼다. - p.200

 

수면이 부족해지면 다양한 문제가 생긴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장 적은 정도로도 발생하는 부분은 집중력이다. 얼마나 수면이 부족하든 간에 반응하는 속도가 늦어질 뿐만 아니라 짧은 순간 멈춤 상태가 되곤 한다. 미세 수면이라고 하는데, 이는 잠이 부족할수록 횟수가 빠르게 증가한다. 더 큰 우려는 누적된다는 사실이다. 꾸준하게 수면량이 부족해지면 종국에는 잠을 아예 안 잔 사람처럼 되고 만다.

 

이렇게 수면이 부족해지면서 드러나는 다음 문제는 주관적 판단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육체는 지쳤으나 정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이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 정상 상태의 기준선이 수정된다. 지쳐 있는 상태를 정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잠을 다시 푹 자면 내려간 기준선이 회복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미 놓친 잠은 더 잔다고 해서 복구되지 않는다. 조금은 회복이 되겠지만 8시간씩 자던 때로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8시간씩 자는 행위는 정상으로 되돌린다기보다는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쪽이 맞을 듯하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참가자들은 초조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다가 한 순간에 흥분하여 들뜬 상태로 넘어갔다가, 다시 몹시 부정적인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 p.215

 

수면 부족은 감정적인 부분도 나빠지게 만든다. 뇌에는 편도체라는 감정이 촉발되는 구조가 있다. 수면이 부족해지면 이 부위가 감정 반응을 60퍼센트 이상 증폭시킨다. 동시에 뇌의 관제탑인 전전두엽은 제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감정이 폭발했을 때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한마디로 예민해진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잠이 부족한 뇌는 긍정적 및 부정적 양쪽 감정의 극단 사이를 지나치게 오락가락한다.(p.216) 보통 서로 다른 성질은 부딪히면 상쇄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그냥 이쪽 극에 서 있든지, 아니면 저쪽 극에 서 있든지 둘 중 하나이다. 부정적 감정의 극에 선다면 자살과 관계가 깊어진다. 긍정적 감정의 극에 서면 쾌락 추구가 정점에 이른다. 약물 중독이나 위험한 모험 등을 거침없이 뛰어드는 것들이 있다.

 

주요 정신질환 중에서 수면이 정상인 사례는 전혀 없다. 우울증,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가 다 그렇다. - p.218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장 새벽 기상을 포기한 이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면이 필수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잠을 못 자면 자연스레 기억력이 감퇴할 수밖에 없다. 수면 부족 상태에서 형성된 기억은 더 빨리 잊힌다. 그러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잠을 못 자니 기억력이 나빠진다. 나빠진 기억력이 정상 상태로 재설정된다. 개선의 가능성이 사라지며 수면 부족이 이어지고, 기억력은 더 나빠진다. 또 하향된 기준선으로 재설정…….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또 있다. 뇌에는 글림프계라는 노폐물 배출구가 있는데, 잠을 자는 동안 강력 세척제인 뇌척수액이 그곳을 청소한다. 여기서 제거되는 유독 잔해 중 하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성분이다. 또 타우라는 스트레스 분자들도 이 청소 과정에서 같이 처리된다. 즉 수면이 부족할 시 이러한 유독한 성분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쌓인다. 이로 인해 잠을 너무 적게 자면 알츠하이머병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수면은 면역계의 병기고에 있는 온갖 무기들을 써서 몸을 감쌈으로써 감염과 질병에 맞서 싸운다. 우리가 앓을 때, 면역계는 수면 체계를 적극적으로 자극한다.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더 오래 누워 있으라고 요구한다. 단 하룻밤이라도 수면 시간이 줄면, 눈에 보이지 않는 면역 복원력이라는 갑옷이 몸에서 너덜너덜 벗겨져 나간다. - p.263

 

마지막으로 내가 집중한 문제점은 면역계 붕괴 현상이다. 수면과 면역계는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면역계 역시 약화된다.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평균 5시간 정도 잔 사람들은 감염률이 거의 50퍼센트였고, 7시간 이상 잔 사람들은 18퍼센트였다. 독감 백신이나 간염 백신도 마찬가지로 잠을 권장 시간에 가깝게 잔 사람들은 항체 반응이 더 강했다. 여기서 또 위에서 이야기한 놓친 잠은 복구되지 않는다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얼마간 수면 부족을 겪은 뒤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규칙적으로 권장량의 수면을 취한다 하더라도 면역계가 온전하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1년 뒤까지도 특정 면역 세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강화되면 잔병치레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질병 중 하나인 암이 생길지 모른다. 잠이 부족해 교감 신경계 활성이 급증하면 면역계에게 염증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오래 지속시킨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만성 염증 상태가 되면서 암과 협업을 하게 된다. 암의 성장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실험쥐의 경우, 수면 부족 쥐의 암이 반대 쥐보다 공격적이었고, 전이되는 기관이 더 넓었다. 암이 생긴 부위의 주변 기관은 물론 뼈까지도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전이된 암은 치료가 거의 불가능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새벽 기상을 포기했다

 

이 외에도 당뇨병, 비만, 생식계 등의 문제가 있지만, 당장 나에게 와닿은 내용은 위의 것들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피하고 싶은 증상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문제들은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나의 목숨을 서서히 조여 오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죽이고 있지만 나는 내가 죽는지 모른다. 이것만큼 소름 돋는 공포가 없다. 처음으로 독서 하면서 공포의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겁도 많은데…….

 

그러면서 과거의 내가 왜 그렇게 우울했는지, 예민했는지, 자주 아팠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규칙적이진 않지만 8시간을 꼬박꼬박 자면서 더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평온함을 유지하는 중이다.

 

이번 서평에는 굉장히 무섭고 좋지 않은 이야기 위주로 썼다. 나의 가장 큰 충격이었기에. 다음번에는 수면 부족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써봐야겠다. 역시 이 책을 중점으로. 끝으로, 집나간 자식 밥은 챙겨줘도 자는 자식 밥은 안 챙겨준다는 옛말은 게으름을 비꼰 표현이지만, 아주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푹 잔 자식은 더 건강하고, 더 총명해질 수 있다. 밥처럼 잠은 보약이다.

 

P.S - 새벽 기상을 포기했지만 체념하지는 않았다. 현재 나는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일찍 잠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멈춰둔 것이다. 일시 포기라고 할까. 그것이 가능한 시기가 된다면 나는 다시 새벽 기상 습관 만들기에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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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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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맞이해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국내든 국외든 떠나는 발걸음에는 낯선 곳에 닿는 기대감과 익숙한 곳을 벗어난 해방감이 담겨 있다. 새로움은 기분을 환기하고 삶에 활력을 심는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마는 그건 어디까지나 떠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떠나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묘미를 즐길 줄 모르는 탓이다. 사람 많은 장소를 싫어하기도 하고, 멀리 나다니기 귀찮은 것도 있다. 물론 시간적 경제적 제약도 있음은 당연하다.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함을 좋아하는 성향이 크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비수기일 때, 대체로 겨울쯤 혼자 돌아다닌다. 해안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한 모금 머금고 문학을 읽는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다. 뭐 어디까지나 국내일 때 이야기이고, 해외라면 좀 달라진다. 나는 외국어를 전혀 못 하는 쫄보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말 걸어도 나에게 뇌가 있었나, 하는 상태가 되는데 외국은 오죽할까. 그래서 내 여권은 작년 여름 이후 쭉 놀고 계신다.

 

그렇다고 욕망이 없지는 않다. 떠나고는 싶지만 용기가 없다. ‘일단 그냥 떠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건 네 입장에서 편한 소리고-라는 대답이 절로 나온다.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경심 같은 게 생겨 가끔 서점 가서 여행 책자를 뒤적이곤 한다. 여행 프로그램도 가끔 보고. 그런 마음에 휴가철을 핑계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집었다.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는 얻지 못했지만 대리 만족 혹은 위로는 받았다.

 

여행의 즐거움?

 

나는 왜 여행을 즐길 줄 모를까? 아마도 나에게 여행이란 무언가를 꼭 배우거나 깨달아야 하는 행동이라는 강박증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도 아닌데 뭘 그리 배우려고 하는지. 여기서 배움이나 깨달음은 기술 혹은 지식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면 전혀 몰랐던 어떤 진리를 말한다. 그게 의도적으로 가능한가?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p.22) 오히려 대놓고 깨달아야 해. 배워야 해주문을 외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멋진 경관을 놓치기 마련이다.

 

입대 전 겨울, 하나뿐인 나의 남동생과 제주도로 여행 간 적이 있다. 둘 다 여행은 처음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가 흔할 줄 알았다. 비행기가 6시 출발이었기에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는 24시간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밤을 새웠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밥도 안 먹고 올레길 20코스를 걸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18km쯤 되는 길이였다. 찬 바닷바람 맞으며 그 먼길을 어찌어찌 걸었고 중간에 라면집에서 문어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도착한 목적지인 성산일출봉에서 숙소를 가지고 우리는 싸웠다. 1월의 성산일출봉이 성수기인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빈방은 없었고, 서로를 탓했다. 결국 나와 동생은 제주시로 택시를 타고 돌아와 다음날 첫 비행기를 예매하고 시내의 24시 카페에서 밤을 또 샌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배움을 생각하고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보다 많은 것을 배운 여행이었다. 일단 숙소는 미리 잡아야 한다는 점과 밤새우고 하는 여행은 미친 짓이라는 점, 첫날부터 무리한 일정은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배움들은 나의 여행 기본 원칙이 되었으나…… 뜻밖의 사실로 배웠다는 부분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후의 여행은 모두 헛된 느낌만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책을 읽고 나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p.24

 

여행의 즐거움은 현재에 있다

 

그러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은 오롯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맞춰 생각을 바꾼다. 타지는 그곳만의 문화가 있으며, 타인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다. 그것에 맞추지 않고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여행 동안 괴롭게 보내겠다는 일종의 자학이지 않을까. 여행지에 가서 과거나 미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 뜻밖의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는 후회를 불러오고, 미래는 걱정을 가져오니 말이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p.82)

 

현재를 즐기지 못한 여행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 베프의 제안으로 함께 코타키나발루로 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나는 쫄보였지만 친구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완전히 의지하며 따라갔다. 당시 나에게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게임 중독 상태였다는 것이다. 게임을 못 하는 35일 동안 코타키나발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게임 내 이벤트 일정을 확인했고, 못 한 시간만큼 얼마나 빡세게 던전을 돌아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아이템은 팔렸는지, 그 전에 어떤 퀘스트를 해놓거나 동생에게 맡겨 놓을 걸 하는 후회도 함께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보니 말 그대로 다녀만 온 게 되었다.

 

이와 반대 상황도 있다. 충동적으로 담양을 간 적이 있었다. 담양 터미널에서부터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 죽녹원까지 걸었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이때는 혼자 삼각대로 사진도 찍고 천천히 주변 풍경 감상도 하면서 감정 낭비 없이 즐겼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 중 큰 고목에 손대고 찍은 사진을 볼 때면 그때의 위압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절로 겸손해지는 사진이다. 지금 쓰고 보니 자연 앞에서 겸손하자는 마음을 이때 배운 듯하다.

 

간접여행도 여행이다

 

직접 떠나야 여행만이 유일한 여행인 것은 아니다. 간접여행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행안내서 보거나 누군가의 여행기를 보는 행위, 타인이 여행하는 영상을 보는 행위가 있다. 이런 여행은 시간을 아끼고 사전 지식을 형성하고 상상력을 뭉게뭉게 피어나게 해준다. 또 전혀 의욕이 없던 곳에 대한 욕구를 심어주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큰 이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일지 모른다. 가령 근대화 시기의 장소를 간접여행으로 경험하고 현대화된 그 장소를 가보면 내가 얻는 경험치는 배가 된다. 같은 장소지만 내가 놓쳤던 부분, 가보지 못한 장소,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장소 등 타자의 시선은 나의 여행을 더 크게 만든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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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해졌다.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떠난다. 그것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와 느끼는 안정이든, 일상을 벗어나 발걸음을 낯선 곳에 디딜 때 느끼는 안정이든 간에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가장 완성도 있게 꾸며주는 행위가 바로 여행이 아닐까. 세계의 절망, 환희, 분노, 평온, 혼란……그 어떤 장면을 보더라도 촉발되는 감정은 삶이라는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 완성된 안정감으로 회귀하리라 생각해 본다. 나도 여름이 끝나면 잠깐이라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P.S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히고 두껍지 않아 간단하게 읽기 좋다. 독서 속도가 느려터진 나도 11독을 가능하게 해준 아주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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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의 힘 - 끊임없는 자극이 만드는 극적인 성장
켈리 맥고니걸 지음, 신예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다 작은 돌멩이가 발바닥 밑으로 숨어드는 것부터 밑 빠진 독처럼 불어나는 부채까지 스트레스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스카이다이빙처럼 어떤 극한 도전마저도 스트레스 작용이라고 하니, 어쩌면 사는 게 스트레스라는 말은 적절한 삶의 축약 표현이 아닌가 싶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 역시 이런 맥락에서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말만큼 쉽지 않다는 것과 스트레스는 해롭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당장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지?’ 같은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되니까.

 

내가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고개 드는 해소법이 있다. 바로 흡연이다. 물론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니코틴이 뇌를 속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저 회피성으로 의존한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지연(止煙)’ 기간을 갖는다. 언제 다시 필지 모르므로 금기시하거나 끊는 게 아닌 잠시 멈춰두는 것이다. 지난달, 위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러다 책장에서 언젠가 구매해둔 켈리 맥고니걸의 스트레스의 힘을 발견했다. 일단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문제

 

이와 동시에 스트레스라는 단어의 포괄적 특성 때문에 생기는 이점도 있다. 인생의 매우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데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사용되므로,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삶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한다. - p.19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란 무조건 해롭고 안 좋다고 생각했다. 즉각 해소하지 못할 때는 그것으로 인해 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걱정이 가시질 않았다. 장시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기력해지고 구내염이 도졌다.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버텼지만, 그럴수록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나에게 스트레스란 정말이지 만병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사후해석으로 버틸 만했다.’ 큰 병이 생기지 않았고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그럼에도 스트레스에 대한 믿음이 안 바뀌었다.

 

왜 바뀌지 않았을까? 나는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부분만 받아들였다. 단 한 번도 스트레스의 이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긍정적인 부분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거니와 자극적인 기사들은 부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해 내 눈길을 끌었다.

 

스트레스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때란 강도가 매우 높아 생존에 위협이 될 때인 듯하다. 우리가 접하는 대다수의 해로운 영향 정보는 실험쥐 연구에서 제공하는 것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 세워진 쥐에게 비슷한 강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긴 징후를 관찰한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기에 의미 있는 연구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일상적 스트레스의 강도와는 확연히 다르다. , 강도 높은 스트레스가 가져오는 결과를 일상적 스트레스까지 포괄하여 생각하게끔 된 것이다.

 

보다 낮은 강도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떤 대상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가령, 어떤 일에 대한 실패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한없이 강한 스트레스가 촉발되어 세상 모든 곳에서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실패가 뼈 아프긴 하지만 뭔가를 배웠거나 이점을 발견했다면 스트레스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저자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힘은 이런 양면성에 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볼 수 있을 때 스트레스는 이롭게 다가온다.

 

사고방식 중재

 

코르티솔은 당분과 지방을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하며 신체 및 뇌 에너지 활용 능력을 향상시킨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에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소화나 성장 등의 생리 기능을 억제시킨다. 반면 DHEA는 신경 스테로이드의 일종으로 두뇌 발달을 돕는 호르몬이다. 테스토스테론이 신체 운동을 통해 신체가 더욱 건강해지게 돕듯이, DHEA는 스트레스의 경험을 통해 뇌가 더욱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돕는다. 게다가 코르티솔의 영향을 일부분 상쇄시키기도 한다. 예컨대 상처 회복 속도를 높이고 면역 기능을 강화한다. - p.36

 

스트레스 호르몬 중 대표적인 호르몬은 코르티솔‘DHEA’이다. 둘 다 인간에게 중요하므로 호불호의 선택사항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코르티솔 비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만성피로, 만성두통, 불면증,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높은 수치의 DHEA는 불안감, 우울증, 심장질환, 신경퇴화를 비롯해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질병들의 발생 비율을 감소시킨다.(p.37)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막상 호르몬 관리라고 하면 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은 놀랍게도 매우 간단하다. ‘사고방식 중재인데,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스트레스는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다. 모의 취업 면접 참가자들에게 실험해본 결과, 도움이 된다는 정보를 들은 사람들은 DHEA를 더 많이 분비했다고 한다. DHEA 수치가 올라가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p.37)

 

사고방식 중재는 스스로 할 수도 있다. ‘가치관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굳건히 하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스트레스를 대하는 것이다. 가치관을 기억하고 있으면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고 통제력을 벗어난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전환, 즉 우선사항들을 이행하고 이를 확장시키는 원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p.122) 예를 들면, 나의 현재 가치관은 성장이다. 그 관점으로 일기를 쓰면서 재확인하고 굳혔다. 그러다 보니 조금은 변한 부분이 생겼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싫어하는 유형을 웃으며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감정싸움을 하거나 혼자 씩씩댔을 텐데. 서평을 쓸 때도 비슷하다. 언제나 이만한 스트레스가 없음에도 내가 보고 익힌 것을 아웃풋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다소 재밌어지기까지 한다. 덩달아 성격까지 밝아지는 느낌이다.

 

아마도 몇 가지 스트레스 반응 덕분이라 생각한다. 보통 해소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면 투쟁-도피 반응이 먼저 발현된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언제까지나 싸우거나 도망치면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해결이 안 되면 더 큰 스트레스가 되어 다가온다. 이와는 반대로 도전 반응배려-친교 반응’, ‘전환-관철 반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전 반응은 자신감을 증가시키고 행동을 유발하며 경험에서 교훈을 얻도록 도와준다. 이에 비해 배려-친교 반응은 용기를 북돋아주고 배려심을 유발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해준다.(p.89) 전환이란 스트레스 수용과 스트레스의 근원에 대한 사고방식의 변화가 복합된 것이다.(p.270) ‘관철이란 심지어 역경에 직면했을 때조차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낙천주의를 유지하는 것이다.(p.271) 정리하면, 가치관을 굳건히 세웠다면 스트레스 상황을 전환해서 해소가 아닌 이용할 수 있게 바라봤고, ‘관철하여 나에게 어떤 긍정적 의미가 있는지 찾았다. 그것을 내재화시키기 위해 도전으로 대하면서 타인을 도와줄 수 있다는 배려-친교의 마음을 가지려고 했다. 한마디로 이기적 이타주의자의 마음가짐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성장형 사고방식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긍정적인 면을 보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우리가 스트레스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의 일환이다. 과거의 역경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의 어려움에서 성장의 용기를 발견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포용하고 전환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 p.299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회귀했다. 주제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법이지만, 언제든 극복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갖지 않고서는 관점을 바꾸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고방식에 가장 가까운 행동은 반성이다. 책의 핵심은 스트레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모두 인정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기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세 없이는 불가능하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라면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으므로 스트레스 상황을 자주 복기해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찾아야겠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내 속에서 고정형 사고방식이 고개를 들었다. 막막하다는 감정이 항상 앞서 있었고, 일시적 해방감을 위해 담배를 물었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배울까보다 어떻게 버틸까를 더 고민했던 것 같다. 언제 또 그런 스트레스가 올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사고방식 중재는 누군가의 한마디로도 가능하기에, 저자는 스트레스의 힘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가 이미 사고방식 중재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결국 내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안 믿어서 손해를 봤으니, 지금부터 믿기로 결심했다.

 

P.S 내용은 좋은데 오탈자나 편집 실수가 거슬렸다. 번역가나 편집자, 출판사에 다소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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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북] 할머니의 여름휴가 창비 빅북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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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의 초복이 지났고, 장마 시즌이 다가왔다. 며칠 간 비가 오락가락해 후덥지근한 날씨의 연속이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몸은 이미 땀에 절어 있고. 장마가 지나가면 또 다시 작년의 공포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0도 언저리의 기온. 그런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바다로 탈출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성격 탓에 바다를 좋아해도 사람 많을 때는 가지 않는다. 광활한 수평선과 파도의 오고감, 그리고 파도 소리에 대한 느긋한 감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여름 바다는 멀리 하게 된다.

 

다음주면 끝나는 '독서심리상담'에서 얻은 정보 중 빅북(Big book)'안녕달' 작가가 있었다. 빅북은 말 그대로 보통의 책보다 세 배 가량 큰 책이고, 안녕달 작가는 주로 바닷가가 배경인 그림책을 짓는다. 빅북에 관심이 생겨 찾다보니 두 요소가 결합된 그림책을 찾았다. 바로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바닷가 그림을 크게 보니 내가 다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표지부터 시원한 바닷가가 배경인 이 책은 강아지와 함께 사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스포일러 주의!!!!!

 

어느 날 며느리와 손자가 찾아온다. 손자는 바다에 놀러갔다온 자랑을 할머니에게 하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지만, 며느리가 일축해 버린다. 그러자 손자는 할머니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바로 소라였다.

할머니는 소라에서 바다를 느꼈고, 손자는 그것을 선물로 드린다. 며느리와 손자가 떠나고 다시 혼자 남은 할머니는 티비로 시간을 보낸다. 그때 소라에서 나온 게 한 마리를 강아지가 쫓는데, 그러다 소라 속으로 쏙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결심을 하고, 휴가 채비를 한 채 강아지와 소라 속으로 들어간다.

수영복, 수박 반 통, 강아지, 그리고 바닷가. 할머니는 완벽한 휴가를 누린다.

 

강아지, 갈매기와 수박을 나눠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기념품 가게도 들린다. 소라 속에서 돌아온 할머니는 시원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림책, 빅북

 

그동안 나는 그림책을 '애들 보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고정관념은 독서심리상담 수업을 수강하면서 역전되었다. 오히려 어른부터 봐야 할 장르가 그림책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왜 그런가. 일단 접근이 쉽다. 글보다 그림의 역할이 커서 직관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특히 그림책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복잡하지 않다. 행동이나 표정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편하다. 설명이 없기 때문에 독자가 상상력으로 해석할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문학이 으레 그렇듯, 같은 그림책이어도 읽었을 때의 심리상태나 주변 상황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책을 주제로 사람들과 (독서모임처럼) 이야기를 나눈다면 장서(長書)만큼이나 생각과 감성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여기에 빅북(Big book)이 더해진다면? 화룡점정, 금상첨화, 완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마다 제각각이겠지만, 내 사촌 동생 중 아직 한글을 못 뗀 동생은 그림책을 구석구석 보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한글을 얼추 읽는 동생은 글밥을 슉슉 읽고는 책장을 넘긴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림에는 초점을 모은다. 반면, 내가 경험한 어른들은 대체로 글만 읽고 휘리릭 넘겨버린다. 그림책인데 그림을 안 본다. 마치 미술 전시회에서 작품 아래에 붙은 설명만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 격이다.

 

하지만 빅북은 이런 점을 상쇄시켜준다. 책의 크기 덕분에 장면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본의 아니게 눈알을 굴려 구석구석 살피게 된다. 그러면 보통 그림책에서 지나쳤던 부분을 발견할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한 감정선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책이 주는 감성의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수업에서 들은 바, 빅북이 주는 효과로 아이들의 상상력과 관찰력을 기르는 데 탁월하다고 한다. 동시에 빅북을 보는 연령이 높아져도 그 효과가 없어지지 않는다. ,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으면서도 나이가 어릴수록 극대화되는 것이다.

 

독서심리상담 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빅북의 값어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라고. 내가 구매한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이 결코 가벼운 가격은 아니다. 일반서 약 3권 값보다 비싸니까. 그러나 거기서 오는 정서의 안정감과 느낌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깊다. 사실 현실적으로 여러 권을 사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력이 된다면 몇 권 더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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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 그림책을 접한 건 독서심리상담 수업 중 선정 도서였던 왜냐면…』 덕분이었다. 그때 그림체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빅북을 고르던 중 안녕달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좋은 점을 알고 구매했음에도, 내 마음의 절반은 어린 사촌 동생에게, 절반은 처음 보는 가족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푹 빠졌다.

 

서해쯤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가 멀지 않아 직접 바닷가에 가서 보고 듣는 게 좋겠지만, 그속에 섞여 있는 별개의 음성들이 거슬린다. 동해는 뭐 뉴스 보면 엄두도 안 나고. 그래서 사람들 빠질 때까지 바닷가 여행은 미뤄두기로 결심했다. 대신 올여름은 할머니의 여름휴가빅북 그림책을 펼쳐 놓고 더위를 논할 예정이다. 언제든지 아름답고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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