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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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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를 맞이해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국내든 국외든 떠나는 발걸음에는 낯선 곳에 닿는 기대감과 익숙한 곳을 벗어난 해방감이 담겨 있다. 새로움은 기분을 환기하고 삶에 활력을 심는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마는 그건 어디까지나 떠나고 난 이후의 일이다. 떠나기 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묘미를 즐길 줄 모르는 탓이다. 사람 많은 장소를 싫어하기도 하고, 멀리 나다니기 귀찮은 것도 있다. 물론 시간적 경제적 제약도 있음은 당연하다. 가장 큰 이유는 조용함을 좋아하는 성향이 크다. 바다를 좋아하는데, 그래서 비수기일 때, 대체로 겨울쯤 혼자 돌아다닌다. 해안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코코아를 한 모금 머금고 문학을 읽는다면 그만한 행복이 없다. 뭐 어디까지나 국내일 때 이야기이고, 해외라면 좀 달라진다. 나는 외국어를 전혀 못 하는 쫄보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말 걸어도 나에게 뇌가 있었나, 하는 상태가 되는데 외국은 오죽할까. 그래서 내 여권은 작년 여름 이후 쭉 놀고 계신다.

 

그렇다고 욕망이 없지는 않다. 떠나고는 싶지만 용기가 없다. ‘일단 그냥 떠나!’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건 네 입장에서 편한 소리고-라는 대답이 절로 나온다. 결국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라는 점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동경심 같은 게 생겨 가끔 서점 가서 여행 책자를 뒤적이곤 한다. 여행 프로그램도 가끔 보고. 그런 마음에 휴가철을 핑계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집었다.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는 얻지 못했지만 대리 만족 혹은 위로는 받았다.

 

여행의 즐거움?

 

나는 왜 여행을 즐길 줄 모를까? 아마도 나에게 여행이란 무언가를 꼭 배우거나 깨달아야 하는 행동이라는 강박증이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학도 아닌데 뭘 그리 배우려고 하는지. 여기서 배움이나 깨달음은 기술 혹은 지식이 아니라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면 전혀 몰랐던 어떤 진리를 말한다. 그게 의도적으로 가능한가?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p.22) 오히려 대놓고 깨달아야 해. 배워야 해주문을 외우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 멋진 경관을 놓치기 마련이다.

 

입대 전 겨울, 하나뿐인 나의 남동생과 제주도로 여행 간 적이 있다. 둘 다 여행은 처음이었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숙소가 흔할 줄 알았다. 비행기가 6시 출발이었기에 지방에서 올라온 우리는 24시간 패스트 푸드 가게에서 밤을 새웠다.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밥도 안 먹고 올레길 20코스를 걸었다.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약 18km쯤 되는 길이였다. 찬 바닷바람 맞으며 그 먼길을 어찌어찌 걸었고 중간에 라면집에서 문어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리고 도착한 목적지인 성산일출봉에서 숙소를 가지고 우리는 싸웠다. 1월의 성산일출봉이 성수기인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빈방은 없었고, 서로를 탓했다. 결국 나와 동생은 제주시로 택시를 타고 돌아와 다음날 첫 비행기를 예매하고 시내의 24시 카페에서 밤을 또 샌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배움을 생각하고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녀왔던 여행보다 많은 것을 배운 여행이었다. 일단 숙소는 미리 잡아야 한다는 점과 밤새우고 하는 여행은 미친 짓이라는 점, 첫날부터 무리한 일정은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배움들은 나의 여행 기본 원칙이 되었으나…… 뜻밖의 사실로 배웠다는 부분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후의 여행은 모두 헛된 느낌만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책을 읽고 나서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p.24

 

여행의 즐거움은 현재에 있다

 

그러니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은 오롯이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맞춰 생각을 바꾼다. 타지는 그곳만의 문화가 있으며, 타인은 그들만의 가치관이 있다. 그것에 맞추지 않고 나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여행 동안 괴롭게 보내겠다는 일종의 자학이지 않을까. 여행지에 가서 과거나 미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 뜻밖의 깨달음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과거는 후회를 불러오고, 미래는 걱정을 가져오니 말이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놓는다.(p.82)

 

현재를 즐기지 못한 여행이 생각난다. 작년 여름 베프의 제안으로 함께 코타키나발루로 생의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나는 쫄보였지만 친구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 완전히 의지하며 따라갔다. 당시 나에게는 문제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게임 중독 상태였다는 것이다. 게임을 못 하는 35일 동안 코타키나발루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게임 내 이벤트 일정을 확인했고, 못 한 시간만큼 얼마나 빡세게 던전을 돌아야 하는지를 계산했다. 아이템은 팔렸는지, 그 전에 어떤 퀘스트를 해놓거나 동생에게 맡겨 놓을 걸 하는 후회도 함께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보니 말 그대로 다녀만 온 게 되었다.

 

이와 반대 상황도 있다. 충동적으로 담양을 간 적이 있었다. 담양 터미널에서부터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나 죽녹원까지 걸었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이때는 혼자 삼각대로 사진도 찍고 천천히 주변 풍경 감상도 하면서 감정 낭비 없이 즐겼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 중 큰 고목에 손대고 찍은 사진을 볼 때면 그때의 위압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절로 겸손해지는 사진이다. 지금 쓰고 보니 자연 앞에서 겸손하자는 마음을 이때 배운 듯하다.

 

간접여행도 여행이다

 

직접 떠나야 여행만이 유일한 여행인 것은 아니다. 간접여행도 여행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행안내서 보거나 누군가의 여행기를 보는 행위, 타인이 여행하는 영상을 보는 행위가 있다. 이런 여행은 시간을 아끼고 사전 지식을 형성하고 상상력을 뭉게뭉게 피어나게 해준다. 또 전혀 의욕이 없던 곳에 대한 욕구를 심어주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큰 이점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일지 모른다. 가령 근대화 시기의 장소를 간접여행으로 경험하고 현대화된 그 장소를 가보면 내가 얻는 경험치는 배가 된다. 같은 장소지만 내가 놓쳤던 부분, 가보지 못한 장소,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장소 등 타자의 시선은 나의 여행을 더 크게 만든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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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중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해졌다. 아슬아슬한 삶의 경계에서 안정감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떠난다. 그것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와 느끼는 안정이든, 일상을 벗어나 발걸음을 낯선 곳에 디딜 때 느끼는 안정이든 간에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가장 완성도 있게 꾸며주는 행위가 바로 여행이 아닐까. 세계의 절망, 환희, 분노, 평온, 혼란……그 어떤 장면을 보더라도 촉발되는 감정은 삶이라는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 완성된 안정감으로 회귀하리라 생각해 본다. 나도 여름이 끝나면 잠깐이라도 여행을 가보고 싶어졌다.

 

P.S 가독성이 좋아 술술 읽히고 두껍지 않아 간단하게 읽기 좋다. 독서 속도가 느려터진 나도 11독을 가능하게 해준 아주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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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샐리 티스데일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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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삶을 피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있는 자라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우리는 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사색한다. 대상은 다양하다. 자신, 부모형제, 배우자, 자녀, 반려동물. 내용 또한 다양하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언제 죽고 싶은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죽은 후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대부분 그 사색의 종착역은 그렇다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을 뭉뚱그리면 죽음의 정의에 대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철학인 이상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 된다. 개인에게 머물 뿐 절대적일 수는 없다. 죽음의 가치는 남들의 생각에 달려 있지 않다. 내 죽음은 오로지 내 소관이며, 내 죽음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p.77) 그렇기에 이 글은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으며 고찰한 나만의 죽음 철학이다.

 

왜 죽느냐는 원초적 의문을 탐색하는 과정은 종교나 과학,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설사 만족할 만한 답을 찾더라도 대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런 탐색 과정을 뭐라고 부르든, 죽음의 이유에 대한 탐색은 각자가 수행해야 하는 과업이다. 죽음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타인의 임종 자리에서 강요해선 안 된다. 세상의 풍파는 함께 겪을지라도 빠져나가는 길은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 - p.135

 

죽음을 오독(誤讀)하다

 

나에게 있어 죽음은 숨이 멎는 순간이다. 더 이상 산 사람에게 관여할 수 없고 몸의 처리만 남은 상태. 육신도 정신도 소멸하며 무()로 변환되는 상태. ‘좋은 죽음은 임종을 맞이했을 때 지나온 인생에 미련이나 후회가 남아서는 안 된다. 남더라도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 삶에 대한 집착을 주변 사람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며 가능한 한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어렵겠지만 해내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지막 도리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나와 연관된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면 좋겠고, 나 역시 죽음이 도래했을 때 이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잘못 읽고 있었다. 오로지 철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봤다. 생각 내에서만 맴돌았으며 현상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괴로워 보이고 겪기 싫고 안쓰럽게 여겨졌다. 건방지게도 전생(全生)으로써의 죽음이 아니라 일면으로써의 죽음으로 판단했다.

 

죽어감

 

좋은 죽음을 규정하기보다는 죽음을 둘러싼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게 낫다. - p.64

 

이 책의 부제는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이다. 나에게는 정말 실질적 조언으로 다가왔다. 단 한시도 깊이 떠올리지 않았던 죽어감에 대해 관점을 돌리도록 도와주었다.

 

생애는 두 가지 선이 평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가 걸어가는 삶의 선’. 다른 하나는 우리와 같은 속도로 그어지는 죽음의 선’. 인간은 삶과 죽음을 나란히 두고 살아간다.

  

 

언젠가 삶의 선이나 죽음의 선이 기울어 교점이 생기면 죽음을 맞이한다. 그 과정에서 기울어진 선을 나는 죽어감의 선이라고 이름 지었다. 각도가 넓어질수록, 길이가 길어질수록 죽어가는 시간은 늘어난다.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은 이가 급격히 쇠약해지며 보호자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누가 되었든 힘든 시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 힘겨운 과정을 견뎌내려면 현상을 바라보는 확실한 관점을 세워야 한다. 죽음과 죽어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부정적으로 바라보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치관의 문제는 언제나 실상을 빗나가기 쉽다. 인생의 앞날을 모르듯 그 끝의 앞날 또한 모르는 법이다. 우리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p.96) 하지만 현상으로서 죽음과 죽어감은 다르다. 실질적인 공부를 한다면 당사자도 보호자도 조금이라도 더 후회 없는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이에게 배려를

 

우리는 그날을 가능한 한 늦추고 싶어 한다. 엄마나 아빠가 기계에 의지한 채살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우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다들 우리에게 얼른 결정하라고 다그치지만 우리는 결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결정을 내려본 경험이 전혀 없다.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 p.175

 

죽음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살아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지만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가능성이 없는데도 가능성을 요구하거나 가능성이 있는데도 가능성을 거절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내가 이런 상황에 빠졌다면 대혼란이 올 것만 같다. 코로 튜브를 꽂아 영양분을 계속 주입하며 강제로 생이 연장되면서 죽어가는 이는 갈증을 호소하고 불편함을 호소하고 괴로움을 호소한다. 바라보는 보호자도 그 모습에 괴로워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저자의 의견에 백번 동의했다. 당사자를 존중하라. 보호자는 중용과 프라이버시, 침묵과 웃음 등 일상생활에서 놓칠 수 있는 온갖 일들의 옹호자요, 죽어가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p.98) 죽어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이야기를 경청하고 처리하기 힘들어하는 일들을 해줘야 한다. 혼자 있고 싶다면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함께 있고 싶다면 같이 잠드는 일도 좋다. 죽음은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므로 가능한 한 당사자가 괴롭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보호자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은 죽어가는 사람의 갈증 호소일 듯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친할머니께서도 임종 직전 매 순간 갈증을 호소하셨다. 그때마다 고모들은 요양원 간호사를 불러 물을 마시게 해도 되냐 물었지만, 그들은 솜에 적셔 입술에 축여줄 뿐이었다. 나는 단순히 일반인처럼 마실 수 없어 그렇게 하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양원 간호사들은 죽어가는 이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방했던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임종을 앞둔 환자는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아야 오히려 더 편안하다. 그들도 때로는 갈증을 느끼지만, 물이나 음료가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p.167) 알면서도 물 적신 솜을 할머니의 입술에 묻혔던 까닭은 보호자들에 대한 배려였다. 죽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물을 마시지 않아야 더 편안해 질 수 있다. 수분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나의 반성, 그리고 결심

 

독서 후, 나는 한 가지 후회가 생겼다, 친할머니의 죽음과 관련해서. 당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셨다. 병세가 악화되어 거동이 불편해지기 전까지 교회와 관련된 일은 빼놓지 않고 다니셨다. 언제나 독서대에 성경을 펼쳐 놓으시고 읽으시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일어나셨을 때, 잠드시기 전, 매 식사 전 정성스레 기도를 올리셨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싫어해서 당신의 신실함에 아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할머니를 따라 종교를 가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종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내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행동은 언제나 침상에 누워만 계신 할머니께 성경을 읽어드리지 못한 부분이다. 부끄럽게도 당신을 찾아뵈어 옛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하는 몸을 배배 꼬며 억지로 듣는 척했다. 그 잠깐의 시간을 같이 있기가 힘들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할머니의 죽어감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공부해볼 겸 성경을 낭독해볼 텐데,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러면 성경에 대한 할머니의 견해도 들어볼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지식의 지평도 조금은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런 후회를 안고 다른 죽어감을 마주하게 된다면, 또는 내가 죽어감의 선에 올라서게 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요구를 탐색하고 내 요구 또한 명징하게 드러낼 것이다. 죽어가는 동안만큼 시간이 소중해질 수 있을까. 나의 직감은 없으리라 단정한다. 죽어가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대로,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대로 온 에너지를 쏟아부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죽어감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들 모두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그 죽어감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죽은 사람이 될 때,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무슨 말이 필요치 않다. 환자는 문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p.204)

 

죽음을 숙고하는 것은 실제로 저항을 숙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을 준비가 될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 두려움을 오래, 아주 오래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 즉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 p.60

 

죽음을 정독하려면 죽음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죽어감 역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육신이 영원히 멈추는 그 순간까지 사색은 멈출 수 없다. 삶에 대한 고민을 살아있을 때 한다고 죽음과 죽어감의 고민을 죽었을 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을 여기저기 권하려고 한다. 철학적인 고민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현상에 관한 고찰은 보편적인 영역이니까.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언제 올지도 모른다. 어떻게 맞이할지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누구나 예약된 시신이라는 사실이다. 정말 시신이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 행운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내가 감동한 문학적인 문장들

 

죽음은 모빌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모빌 조각이 하나 움직인다. 조각 하나가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다른 조각도 차례로 움직이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다 지나간 뒤에도 모빌은 한동안 더 돌아가다 서서히 멈춘다. - p.160

 

일본어 조오지(じょうじ)’는 항상 존재하는 것, 혹은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것(everlasting)’이라고 옮기고 싶다. 이 단어의 이미지는 흔히 달(moon)로 그려진다.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 - p.176

 

애통(grief)은 바로 ,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내가 이걸 하면 넌 저걸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저렇게 대답했는데. 손을 뻗으면 늘 거기 있었는데. 이젠 손을 뻗은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했다. - p.267

 

도자기는 결국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 p.292

죽음은 모빌을 움직이게 하는 바람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모빌 조각이 하나 움직인다. 조각 하나가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다른 조각도 차례로 움직이면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바람이 다 지나간 뒤에도 모빌은 한동안 더 돌아가다 서서히 멈춘다. - p.160

일본어 ‘조오지(じょうじ)’는 항상 존재하는 것, 혹은 변치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변치 않는 것(everlasting)’이라고 옮기고 싶다. 이 단어의 이미지는 흔히 달(moon)로 그려진다.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 - p.176

애통(grief)은 바로 ‘어, 뭐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상태이다. 너무나 익숙했던 것이 사라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눴던 일상까지 전부 다 사라졌다. 내가 이걸 하면 넌 저걸 했는데,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넌 저렇게 대답했는데. 손을 뻗으면 늘 거기 있었는데. 이젠 손을 뻗은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진실이 거짓으로 변했다. - p.267

도자기는 결국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우리는 영원히 살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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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2
김필균 지음 / 제철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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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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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기의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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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다윈과 동급이라 할 수 있다. - p.22
 
대학생 시절, 과제가 너무 하기 싫었다. ‘문예창작과’의 특성상 레포트의 대부분은 창작이었다. 단편 소설, 시, 비평, 동화, 시나리오, 희곡……. 과제마다 기한은 널널했다. 보통 2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다. 문제는 항상 레포트 어셈블로 도래했다는 점이다. 여력이 없던 나는 선택과 집중으로 관심 분야 외 과제를 포기했다. 관심 분야는 구상하는데 기한을 다 쓰고, 제출 하루 이틀 전에 핫식스의 힘으로 밤새우며 과제를 마쳤다. 미루고 미루어 데드라인에 걸쳐 끝낸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라는 시공을 초월한 금언(金言)도 미루기의 고수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이유 없이 미루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이 볼 때는 게으름으로 보이겠지만, 당사자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치밀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합리화로 보이는가. 그렇다면 제대로 봤다. 미루기는 대체로 정신승리를 위한 합리화에 불과하다.
 
저자도 자신의 글쓰기를 미루는 행위를 합리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합리화가 왜 타당한지 풀어낸다. 미루기를 연구하는 교수 조 페라리의 대화를 통해, 로마의 위대한 왕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 귀의를 미루지 않아 성인이 된 가상의 인물 ‘엑스페디투스’를 통해,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통해, 희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통해, 메모가 아포리즘으로 유명해진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를 통해, 펜실베이니아의 ‘폴링워터’라는 별장을 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통해 미루기가 얼마나 위대한 행동인지 설명한다. 아니, 위대하진 않더라도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고 있다.
 
주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미루다’를 검색하면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정한 시간이나 기일을 나중으로 넘기거나 늘이다. by 네이버 사전
 
그러니까 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당장 말고 나중에 하겠다는 뉘앙스이다. 여기서 나는 미루는 행위와 하지 않는 행위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일이 지나더라도 어떻게든 해냈다면 그것은 미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결과물이 없다면 그것은 하지 않은 것이다. 위에 저자가 예로든 인물들은 전부 당장 무엇을 하진 않았지만 결과물들이 있는 존재들이다. 다빈치가 주조하려고 했던 대형 청동상 <그린 카발로>가 구상에서 그쳤어도 미뤄졌다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다양한 결과물 덕분이다. 다빈치 사후 500년이 지나 그의 구상은 미국의 미술품 수집가 찰스 텐드가 고용한 조각가 니나 아카무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러니 이 역시 미뤄진 결과물이다.
 
그 중 ‘엑스페디투스’만 예외다. 기독교에 귀의하려고 하자 까마귀로 변장한 악마가 조금만 더 미루라고 종용한다. 그는 까마귀를 짓밟아 죽이고 곧장 기독교인이 되었다. 악마의 유혹을 뿌리쳤기에 성인이 되었을까? 이 인물이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된다. 무엇이 되었든 미루지 않고 모든 일을 곧장 실행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 인물은 가상이고 성인인 것이다.
 
누군가는 주변에 미루지 않고 곧장 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저자가 다윈이 걸었던 산책로에서 했던 고민을 보면 다시 없다는 확신이 든다.
 
이 길을 따라가면 해야 하는 일을 미뤄야 한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길 위의 모험을 미뤄야 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무언가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 p.231
 
현실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 때 다른 일은 미뤄지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서평을 쓰면 독서를 미룬다. 설거지를 하면 청소를 미룬다. 선택은 포기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미루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미루기와 포기의 차이는 나중에라도 그 행동을 한 결과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즉, 미루기의 합리화 조건은 현재의 평가가 아니라 미래의 평가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자타공인 합리화의 전문가지만, 결과 없이는 미룬 게 아니라 ‘하지 않음’이다.
 
미루기에 미덕이 있다면, 그건 분명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왜 하고 있는지(또는 우리가 안 하고 있는 일을 왜 안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을 미루는 건 세상이 내게 바라는 일이 정말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p.39
 
그러나 이런 합리화가 불안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더 나은 결과가 생길 것도 같고, 다른 길이 있을 것도 같아 당장 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이 일로 인정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내면이 방어기제로 미루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완벽주의라며 포장한다. 설득력은 있지만, 하지 않음을 설득할 수는 없다. 이런 미루기는 다윈이나 다빈치처럼 나은 방향이 아닌 자멸적 결과로 향한다. 실천은 하나도 없이 생각에서만 그친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감정을 통한 지연은 수정해야 할 문제이다.
 
이 책이 왜 인문교양으로 분류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합리화의 동물이니까 인문교양인 건가? 유우머라면 납득이 가지만, 나는 그냥 참고문헌 많은 에세이라고 생각한다. 애덤 그랜트의 『오리지널스』에서 나온 것처럼 전략적 지연, 미루기의 과학적 근거를 기대했으나…… 하기 싫음에 대한 자기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다. 하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오리지널스』의 4장만 따로 보는 게 낫다. 그나마 마무리를 잘해서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수준이다.
 
오늘 구매하고 교보문고 내 카페 자우에 앉아 1일 1독 하는 마음으로 완독했다. 불행은 내가 이 책을 구매했으며 밑줄을 그었다는 점이고, 다행은 재독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나는 오늘 다른 책 독서를 미뤘다고 생각하련다. 이 또한 자기합리화 마무리인가? ㅋㅋㅋz

이 길을 따라가면 해야 하는 일을 미뤄야 한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길 위의 모험을 미뤄야 한다. 어떤 선택을 내려도 무언가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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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 독립근무자의 자유롭고 치열한 공적 생활
서메리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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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점: 9/10

평 점: 9/10

구매/대여처: 교보문고 구매(오프라인)

 

 

  이 책을 집은 이유는 순전히 팬심 때문이었다. 영어 학습에 꽂혀 있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서메리작가를 처음 봤다. 차분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자신의 학습 방법을 설명하는 모습에 반했다. 책 사러 교보문고에 도착하자마자 메리 졓아! XD”하면서 구매했다.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장르 불문 사는 편이니, 팬심이 취향을 압도하는 것 같다.

 

 <초판을 사서 받은 한정판 에코백. "도비는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그렇다. 서메리 작가는 도비의 삶을 살았던 것이었다.>

 

  나는 사회경험이 전무하다. 취업 경력도 없고, 알바 경력도 없고, 대인관계도 미약하다. 그래서 내 사회적 체질이 어떠한지 알 겨를이 없었다. 산 책이라고 무조건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이기에 사자마자 펼쳐봤는지 모르겠다. 부족함을 알아야 호기심이 동하고, 호기심이 동해야 관심이 생기는 법이다. 그렇게 펼쳐본 책은 가볍게 읽기 좋으면서도 위로도 되고 조언도 되었다.

 

  저자가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되어 안정기까지의 여정을 담긴 책이다. 퇴사한 이유와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준비, 고충, 예비 프리랜서에게 전하는 조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사를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생각할 거리를 전했다. 가령, 퇴사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질문은 회사 체질이 아닌가였다. 업종이나 업무,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비슷하게 힘들어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든 생각이었다.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체력이 아무리 넘쳐도, 땅콩 알러지 있는 사람이 땅콩을 참고 먹을 순 없다. 아니, 심하면 목숨 걸린 문제라 먹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그런 체질이 개인의 결함으로 생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자기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저자는 말한다. , ‘회사 체질은 직장인의 행복과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현주소를 묻는 질문이다.

 

  만약 저자처럼 회사 체질이 아니라면? 두 번째 고민할 질문은 먹고살 기술이 있는가이다. 저자는 영문학과를 나와 번역으로 길을 잡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기술을 새로 배워야 했다. 더불어 일러스트레이터와 1인 출판사까지 하면서 불안에 대비했다. 어쨌든 생계를 유지하려면 수입이 있어야 하고, 그게 창업이든 프리랜서든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실력이 없으면 누가 찾아줄까. 어쩌면 가장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다.

 

  체질을 알고 기술과 실력이 생겼을 때 필요한 덕목은 책임감과 인내심이다. 비단 저자가 말하는 프리랜서 분야에만 해당하는 덕목은 아니다. 책임감은 인간관계의 핵심인 신뢰가 달린 문제다. 인내심은 생의 모든 부분에 절대적이다. ‘책임감과 인내심이란 자질은 부와 명예는 몰라도, 최소한 생계 걱정을 하지는 않도록 도와줄 마법의 열쇠다(p.262)’라는 말은 저자의 조심스러운 성격이 전하는 겸손한 표현이다. 대가들의 이력을 보면 책임감과 인내심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계가 유지됨의 시작이 책임감과 인내심이라면, 부와 명예를 이루는 것도 이 두 가지 요소가 핵심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덧붙일 요소가 있다면 겸손과 자기계발, 적확한 메타인지라고 생각한다. 결국, 졸꾸정신이 전부고 끊임없는 독서가 전부다.

 

  본인의 사회적 체질 파악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고 하는데, 생리적으로 편한 환경에 놓여야 스스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의 생업을 찾는다면, 흔히 말하는 놀면서 일한다아니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산다라는 생활패턴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체질은 어떠할까. 위에 적었듯이 직장 경험이 없으니 회사 체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예전에는 뭐든 혼자 하는 게 좋았고, 타인은 거슬리는 존재였다. 내 행동에 대한 평가는 나만이 옳았다. 지름길이 있다고도 생각했고,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타인에게서 나에게 부족한 점을 배우는 게 행복하고, 실력을 키워 내가 가진 능력을 나누고 싶다. 개인주의자에서 벗어나 이기적 이타주의자를 지향한다. 부족함에도 아웃풋 독서의 일환으로 꾸준히 서평을 쓰려고 노력하고, 더 깊이 생각해보려고 한다. 서메리 작가가 했던 것처럼 의식적인 연습으로 실력을 키우려고 한다. 아직은 개인 체질이지만 어울림 체질로 개선할 예정이다. 무던히 노력해야지.

 

  저자가 직접 겪은 현실적 조언은 내게 놀라움을 주었다. 4대 보험의 유무로 갈리는 금융업계의 태세전환. 만약 퇴사를 준비 중이라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은행 업무는 총정리해서 끝마치라고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퇴사 전의 처리속도에 비해 퇴사 후 10배가량 늘어난다고. 번역가의 단가도 새로웠다. 내 주변에 번역가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추천해주고 싶다. 번역가가 아니더라도 퇴사 후 이직이 아닌 진로를 꿈꾼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한때 나에게도 프리랜서라면 프리랜서인 소설가를 꿈꾼 적이 있었다. 재능신화의 노예이며 고정형 사고방식의 화신이어서 졸꾸하지 못하고 포기했더랬다. 소설가만 포기하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 모두를 포기했다. 너무 안일하고 단순하게 생각한 탓이다. 서메리 작가가 느꼈던 것처럼 나도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곧 바뀔 예정인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시점이 오기 전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엉겁결에 내 인생이 그 자리에 고정돼 버릴까 두려워하고 있다(p.35). 이제는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먹고살 기술을 공부하고 책임감인내심을 기르면서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생각이 생겼다. 졸꾸하면서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언젠가 글쓰기로 생계유지 정도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가지면서 좋은 글을 써준 서메리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것.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멈춰 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자세히 관찰했어야 했다.- P16

회사의 규모나 업계, 업무의 성격과 관계없이 비슷한 성격의 괴로움을 느낀다면, 나는 특정한 회사가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 자체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게 아닐까? 한마디로 ‘회사 체질’이 아닌 것 아닐까?- P29

따라서 본격적인 도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진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결정하고 뛰어들 필요가 있었다.- P48

업계를 막론하고 한 분야의 프로라면, 그것도 경력과 평판이 전부인 프리랜서라면 기술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고 납기에 맞추지 못한다는 건 애당초 자격 미달이었던 것이다.- P97

무제한의 자유라는 동전의 뒷면에는 그만큼 큰 불안이 존재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보호해 줄 사람도 없다는 뜻이다.- P211

이렇게 다양한 업계의 현실을 조금씩 체험하는 동안 내가 깨달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프리랜서에게 책임감과 인내심보다 중요한 자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P260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재주가 아니라 취미와 호기심이다.-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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