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피엔스 - 문명의 대전환, 대한민국 대표 석학 6인이 신인류의 미래를 말한다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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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마무리를 아무리 잘해도 코로나의 해로 남을 것 같다. 잠잠해지나 싶었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한다는 뉴스가 보이고 나의 동생은 무급휴직자로 전환되었다. 안경에 김이 서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마스크를 안 쓰던 나였으나, 지금은 근처의 마트를 잠깐 다녀와도 마스크는 필수로 착용한다. 까먹고 집을 나섰다가도 미착용을 깨달으면 되돌아와 마스크를 착용한다. 과장 좀 보태면 지갑 챙기는 건 잊어도 마스크 착용은 잊지 않는달까.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역대급 속도를 내고 있다지만, 생활을 안정시킬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한다. 게다가 변종까지 두둥등장하고 있다니 해결하지 못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저 손 잘 닦고 마스크 잘 쓰고 사람 접촉은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밖에 없다. 이런 행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면서 코로나가 가져올 여파가 궁금해졌다.

 

예전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같이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나 싶어서 당장의 현상을 주제로 한 책은 잘 안 읽는 편인데, 아무래도 장기화가 기정사실화되고 생활의 변화가 필수 불가결이다 보니 읽어보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피엔스를 손에 든 이유이다.

 

자주 만날 팬데믹

 

바이러스는 우리와 같이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우리한테 별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만, 가끔 궁합이 딱 맞는 녀석이 나타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 p.26, 최재천 교수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하지 않을까. 팬데믹의 주기는 5, 3년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연례행사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을 자꾸 침범하는 이상 말이다. 다양한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그들에게만 기생하던 생물들이 인간에게로 넘어오고, 여기서 조건이 맞으면 빠르게 질병화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1차 숙주는 박쥐이지만 직접적으로 전파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중간숙주가 천산갑이 맞다면 중국에서는 천산갑 비늘을 한약재로 쓰므로 가공과정에서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온난화 역시 한몫 거든다. 기후가 더워지면서 열대에 머물던 세균 매개 동물들이 온대지방까지 올라오고, 시베리아에서는 동토가 녹아 탄저병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드러나면서 탄저병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 언제든 팬데믹이 다시 선언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표준이 달라지면 생기는 변화

 

정말 영세한 소상공인부터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문명에 익숙해져야 앞으로 우리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존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게 됐죠. - p.79, 최재붕 교수

 

코로나하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1440선까지 폭락한 코스피지수다. 대공황까지 거론되며 힘든 환경 속에서도 버티던 기업과 자영업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이 파다했다. 모든 기업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락해 그 순간만은 나라 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주가는 반등하여 횡보장까지 왔다. 곡소리가 안 들린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덜 들렸다. 곡소리 하지 않은 분야는 어디인가 하면 대체로 언택트라 불리는 영역이었다. , 직접 만나지 않고 일 처리 가능한 비대면 서비스가 대체로 성장하거나 살아남은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카카오의 주가 상승, 택배의 배달 물량 증가와 아마존의 추가 고용이다. 코스피 폭락 전 주당 15만 원이던 카카오는 현재 35만 원대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양이 늘었을 것이고, 아마존의 경우 감당이 안 되어 추가로 1만여 명을 고용했다. 또 자영업에서는 배달이 가능한 장사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으나 그렇지 못한 곳은 지금도 힘겹다고 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고,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진 시점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디지털 문명에 대한 공부는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익숙한 것에 더욱 의지하려 들면서 과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디지털 문명에 적응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최재붕 교수는 시대의 변화를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애써 만들지 않으면 없어지기만 할 뿐 저절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적응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다.

 

디지털 문명하니 이런 걱정이 생겼다. 예전에 전자기기를 자주 사용하면 사고방식이 물벼룩 같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뇌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사용을 지양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니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숙함이 더욱 우선시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진다. 굉장한 딜레마가 아닌가. 현시대의 가장 큰 무기는 디지털이지만, 가장 큰 적도 디지털이라고 하니 말이다. 아마 이런 걱정 역시 달라진 표준이 가져온 변화일 것이다. 이 딜레마에서 줄타기를 잘하는 사람이 경제적 주체로서 오래도록 건강히 살아남지 않을까?

 

자기중심에서 자기이해로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회적으로 원하는 걸 계속 추구하다 보면 훨씬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훨씬 더 많이 가지고 훨씬 더 많이 빼앗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아가면서 그에 대한 역량을 발전시켜가는 사회나 문화에서는 더 적은 걸 가지고 공존하면서도 다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죠. - p.176, 김경일 교수

 

코로나로 인해 대외활동이 강하게 제한되던 시기에, 유튜브를 켜면 보이는 콘텐츠는 몇 번 저어 만든 뭐시기였다. 달고나 커피, 크리미한 계란 후라이, 제티 초콜릿 등등. 나는 평소에도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 저런 짓을 왜 하지?’하며 봤지만, 그 안에는 꽤 큰 의미가 숨어 있었던 듯하다. 김경일 교수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트(want)’에서 라이크(like)’로 지향점이 변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남들이 가진 것, 다녀온 곳, 먹은 것 등을 자신도 이뤄야 만족한다고 여겼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만족한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자신의 기호에 맞게 찾아내는 만족감이 사회 분위기가 조성하는 흐름에 억지로 합류하는 것보다 더 높은 듯하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디나 예외는 있어 이태원 확진자같은 존재가 등장했으니까.

 

아무튼, 개인이 자신만의 라이크를 찾으면서 기업도 달라진다고 한다. 원트가 지배적일 때는 대량 생산으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했다. 일례로, 내가 중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교복이었고, 고등학생 때는 노스페이스 패딩이 교복이었다. 신발은 뉴발란스나이키 에어포스가 대세였다. 짭이라도 신으면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는 가난해서 가지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아쉬운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라이크가 지배적인 지금은 소량 생산의 완판을 목적으로 둘 것이라고 한다. 개개인이 개성을 찾으며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여파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했을 터이니, 모든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만의 라이크를 찾았던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을 보면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취업이 되든 말든 행복하니까 말이다.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코로나는 변화를 강요, 아니 강제했다이다. 전염병 하나가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망치로 머리를 두들긴 것처럼 안일한 삶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래 일이란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책에서 석학들이 한 말처럼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뉴스 영상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이제 BCAC로 나눠야 한다. Before CoronaAfter Corona.’ 홍기빈 교수는 예측이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미래를 대하는 방식은 결단’(p.116)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렇게 되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방역을 잘한 나라이니 만큼 앞으로에 대한 결단도 잘 내리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물론 나도 개인적인 결단으로 공부에 힘을 더 써야겠다.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After Corona의 세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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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피엔스는 유튜브 방송 중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의 진행자이신 정관용 씨가 진행한 대담집인 듯하다. 여섯 명의 석학, 최재천, 장하준, 최재붕, 홍기빈, 김누리, 김경일 교수들과 대화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묶어서 읽기에 어렵지 않았다. 다만, 이해를 온전히 했느냐는 다른 문제니까……. 언급하지 않은 분들의 말씀은 내가 많이 부족한 경제 부분이라 따로 적지는 못했다. 읽기 쉬운 만큼 시간 내서 다시 봐야겠다. 거시적인 관점을 한국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좋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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