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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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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의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친한 사이끼리는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만날 때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러나 늘 친구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보지 못한 기간 동안 바뀐 친구의 생각이나 전혀 들려주지 않았던 과거사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에 담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예가 아닐까 한다.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비단 타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나조차도 내 속마음을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난 뒤 곱씹지 않고서야 순간순간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특히 낯선 사람들을 이제 막 만나는 나이대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작중 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인물조차도 어리숙했던 때에 다잡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설은 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생님(1)과 부모님(2)의 이야기와 선생님이 에게 보내는 유서(3)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선생님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생기는 의 마음, 그리고 숨겨두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편지로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순수함, 혹은 어리석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p.24~25

 

많은 나쁜 행동이 있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의도성이 없는 나쁨이리라. 예를 들면, 5살짜리 동생이 내가 아끼는 책에 낙서하고 찢어 놓았다면 내 속은 끓겠지만 그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그 녀석에게는 나를 화나게 만들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는 선생님의 초연한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주 왕래함에 따라 간혹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의 뒤를 쫓은 일이었다.

 

선생님은 매달 친구의 묘를 찾아갔다. ‘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행동은 선생님이 가진 죄의식을 건드는 행위였다. 그의 초연함은 과거사로부터 용서를 구하며 마주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게는 의도성이 전혀 없었지만 선생님에게 극단적 결심의 단초를 제공했다. 선생님이 에게 털어놓으려 했을 때 는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있었고, 그 사이 선생님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선생님의 죄책감

 

나는 남한테 속았다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았지.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았던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으로 변했거든. 난 그들한테서 받은 굴욕과 손해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왔네. 아마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살겠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하지 않고 있네. 생각하면 나는 실제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일반을 증오하고 있거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 p.88

 

마지막 편지에는 선생님이 당한 두 번의 배신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배신은 숙부로부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재산관리를 숙부에게 맡겼다. 부모님 살아생전부터 돌아가신 후까지 선생님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므로, 선생님은 숙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숙부가 자신의 딸을 선생님과 결혼시키려 하면서 선생님은 한 치의 의심이 생겨났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숙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만나지 않았던 게 새로 보였다. 전에는 정말 일하느라 바쁘게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 바쁜 척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선생님은 숙부와 싸우고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의 일부만 되찾은 채 고향을 떠나왔다.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돌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 p.265

 

두 번째 배신은 도시에서 겪었다. 선생님은 지낼 곳을 찾다 어느 하숙 치는 집에 들어간다. 주인아주머니와 따님인 아가씨만 사는 집이었다. 그는 그들과 친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아가씨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새로운 하숙인을 구하자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K를 소개해 하숙을 들였다. 자신처럼 K도 마음의 안정을 얻기를 바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면서 선생님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K가 아가씨를 좋아하는 게 보이고, 아가씨와 K가 어울리는 것이 자신보다 더 친근해 보였다. 선생님은 아가씨를 얻기 위해 K를 비난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말해 K 몰래 따님을 주십사 요구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스스로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고, 그것이 선생님의 죄의식이 되었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배신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내부로 들어온 배신과 내부로부터 외부로 발현된 배신을 모두 겪은 선생님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멀리했다. 자신을 믿는 행위는 세상을 버티는 근간이다. 이것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다름없다. 언젠가 사사로운 충격만 들어와도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가 보기에 선생님은 지식인이며 세상을 통달한 듯한 초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항상 무너질 것을 염려해 충격을 피하는 성향이 겉으로는 그렇게 비추어진 것뿐이었다.

 

내가 그 감옥 안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또 그 감옥을 도저히 부술 수 없게 되었을 때 결국 내가 가장 손쉬운 노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자네는 왜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지도 모르겠지만 늘 내 마음을 죄어오는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그 힘은 내 활동을 모든 방면에서 막아내면서 나를 위해 죽음의 길만을 자유롭게 열어두고 있네.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한다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거지. - p.270

 

선생님이 편지를 보낸 이유

 

선생님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지만, 헛된 지식인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드러내지 않은 고민 끝에 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정하면서도 가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 p.151

 

그가 자신의 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심정을 에게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젊은 날과는 다르게 의 태도가 솔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찔렀더라도 선생님은 가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극단적 선택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못한 탓에 이뤄진 결과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선생님은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 동정심을 요구하는 게 아닌 배울 점을 알려주는 자세, 그리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물론 선생님의 자살은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라 무책임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야기이다. 자살자가 겪은 무게는 누군가가 평가할 만큼 하찮지 않다.

 

이렇게 용기 내서 편지를 쓸 정도였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선생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은 딱 에게 보낸 편지까지였다. 자신을 비롯한 타인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이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선생님은 친구도 만나고 부인도 있고 까지 만났지만 정작 삶은 고립된 채였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한다. 겉으로는 일관성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시각각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오가고 때에 따라서는 평소 사소하게 여기던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나 어떤 것보다도 삶을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부에서는 의 아버지가 병세로 인해 몸져누워 있다. 육체에 병이 든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의 상황과 비교된다.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기에 때에 맞춰 대응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미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의 충격은 아버지의 병세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시행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더 자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처를 마주하기란 굉장히 두렵고 무섭고 힘겨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놔두거나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욱 곯으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아마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마음 챙김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 길 속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일면이라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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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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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티스데일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은 지 얼마 안 지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을 읽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공교롭게도 둘 다 죽음을 주제로 삼고 있다. 전자가 죽음이라는 현상을 다룬 다소 무거운 느낌의 에세이라면, 후자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으로 죽음을 심각하지 않게 풀어낸 소설이다. 원제는 DEPUIS L’AU-DELÀ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지만검색을 해보니 대략 저세상으로쯤 되는 것 같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믿지는 않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죽은 후에 이러면 어떨까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고정관념 내려놓기

 

앞서 말했듯이 나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신도, 귀신도, 천국, 지옥, 극락, 영혼 등등. 아주 강력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책을 접하니, 처음 읽을 때는 몰입이 잘 안 됐다. 신선하긴 한데 뭔가 내 취향이 아닌 느낌? 찝찝한 마음에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도입부의 글을 다시 만나 밑줄을 긋고 나서야 , 내가 너무 실용서처럼 읽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상상하고, 꿈꾸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멋진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 1권 도입부

 

소설은 일단 상상력의 산물이고, 그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소설로써 즐길 수 없다. 현실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소설의 허구성을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와 사후 세계관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그 부분을 놓쳤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으나, 작가의 도입부 글은 길잃은 나의 집중력에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이후의 독서는 몰입하여 아주 신나게 읽어내렸다.

 

누가 날 죽였지?

 

누가 날 죽였지?- p.15, 1

 

강렬한 첫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대중에게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인 가브리엘 웰즈는 새 소설의 시작으로 쓸 첫 문장을 얻었다는 즐거움에 눈을 뜬다. 그러나 즐거움은 여기까지. 평소와는 다른 느낌에 자신의 주치의에게로 향한다. 그 병원에서 만난 뤼시 필리피니라는 영매에게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첫 문장은 죽은 추리소설 작가가 풀어낼 사건으로 변한다. 가브리엘은 뤼시에게 자신의 사인을 파헤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수사 도중 큰일을 겪은 뤼시가 포기를 선언하자, 가브리엘은 하나를 제안한다. 뤼시의 잃어버린 연인을 죽은 자신이 찾아줄 테니 수사를 중단하지 말아달라고. 둘은 모종의 계약 관계로 서로가 맡은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여러 인물을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만나면서 가브리엘은 자신의 죽음에 관한 진실에 닿게 되는데…….

 

스포일러는 예의가 아니므로 여기까지가 줄거리로 적당할 듯 싶다.

 

작가의 문학관

 

책이라면 으레 따분한 줄 알았는데 글자와 단어, 문장의 경계를 뛰어넘자 머릿속에 영화 스크린이 펼쳐지더니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며 말하기 시작했어요. 평행 세계로 들어간 기분이었죠. 등장인물의 목소리, 바람 소리, 차 소리, 총소리, 천둥소리가 귀에 들렸어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냄새가 맡아졌어요.당신의 이야기에 써진 그대로 느껴졌어요. 문 닫을 시간이라며 교도관이 다가오길래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더군요. 그동안 쉬지 않고 책을 읽었던 것예요. 배가 난파되고 나서 널빤지에 매달려 바다에 떠 있는 사람처럼 나는 당신이 창조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부여잡고 있었던 거죠. - p.98, 1by 뤼시 필리피니

 

소설을 보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작가의 가치관을 엿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주장은 작가가 가지고 있거나 반박하거나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작가인 만큼 글쓰기나 독서, 문학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아마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웰즈는 글쓰기를 이렇게 바라본다.

 

그에게 소설은 문인들의 직업어로 <인시피트>라 불리는 첫 문장과, 이것이 닦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지막 문장인 <엑스플리시트>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결정되면 플롯을 작동시키는 시계 장치를 구상하는 일만 남는다. 독자들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서서히 자신의 삶을 잊고 주인공의 삶에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장치. - p.17, 1

 

누가 되었든 글을 쓴다면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첫 문장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아 둘 명분이므로 중요하고, 마지막 문장은 글에 대한 여운과 완성도를 결정하므로 중요하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의 중심축이 되고, 중간 내용은 그 안에서 얽혀든다. , 내용이 산으로 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서평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내 경험으로는그리 길지 않지만시작과 결말을 미리 떠올려두면 작성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반대로 일단 써보자식으로 쓰면 먼 길 돌아가는 느낌이다. 나의 능력 부족이겠지만, 어쨌든 처음과 결말이라는 중심축을 정해두고 쓰는 편이 더 수월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또 다른 작가의 가치관은 문학성이다.

 

()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바로 문학의 다양성이에요. 그 자체로 나쁜 문학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장르마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따로 있을 뿐이에요.- p.40, 2

 

나는 장르문학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판타지나 추리, 라이트 노벨 등 내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을 멀리하면서부터 생긴 편견이었다. 단순하게 내가 안 본다고, 내가 싫다고 안 좋게 바라본 것이다. 언제나 고전만 옳으며 고전만 읽어야 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지만, 문제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는 점. 이해력 미달의 고전독서로 오히려 자가당착에 빠져 독서의 재미를 내려놓기까지 했었다.

 

「〈이해는 각자의 몫이라는 게 제 철학이에요.- p.299, 2

 

웰즈의 말처럼 좋은 책이 나오려면 일단 다양성이 지켜져야 한다. 쓰는 것은 작가의 몫이요,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까. 도입부에서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상상할 수 있고, 꿈꿀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준다면 장르불문 나쁜 책은 아니지 않을까. 아마도 작가는 나처럼 문학으로 편 가르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 같다. 나의 편협한 문학관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계속 고민하게 되는 부분으로 남아 있다. 좋은 문학, 나쁜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면 독서 역시 좋은 독서, 나쁜 독서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작가로서는 문학성의 다양성을, 독자로서는 독서의 다양성을 지키는 게 일단은 정도(正道)인 듯싶다.

 

살아 있는 자의 삶은 소중한 것

 

지난 서평 중 정유정의 진이, 지니에서 나는 일단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야 누구든 만날 기회가 있고, 무엇이든 할 기회가 있고, 어디든 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에 나오는 사후 세계관으로 상상한다면 역시 살아 있을 때 행복할 기회가 많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영혼 상태는 물질세계에 존재하지만 관여할 수는 없고, 환생하자니 원했던 삶이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이므로 큰 의미가 생기기 않는다. 특별한 영매를 만나 죽은 후에도 가브리엘처럼 생전의 삶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니…… 죽고 나서 심심하지 않으려면 살아 있을 때 많이 즐겁고 행복해야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독서가 자리하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인정했지만 소설은 거의 안 읽었다. 가지고 있던 편견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역시 살아 있음으로 인해 내 고정관념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다작가의 소설을 접할 때마다 하는 다짐인 그의 소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를 또 다짐해본다. (내가 살아 있고, 계속 다짐하다 보면 언젠가는 읽겠지.) 동시에 마지막 문장도 되새긴다.

 

나는 왜 태어났지?- p.313, 2

 

P.S 물론 삶도 죽음도 케바케이니 각자의 가치관으로 살고 죽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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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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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흔히 베일에 싸였다라고 표현한다. 비밀스러움에 대한 비유이다. 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의 원제는 The Painted Veil, 퍼시 비시 셀리(Percy Bysshe Shelley)의 시 첫 구절에서 따왔다.

 

Lift not the painted veil which those who live

Call Life: () 일러두기

 

책 도입부에는 오색의 베일, 살아 있는 자들은 그것을 인생이라고 부른다.”라고 쓰여 있다. 오색 역시 많은 색에 대한 비유로, 인생의 비밀스러운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님을 말한다. 우리는 painted veil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아니, 우리는 그 베일을 통해서 세상을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베일은 인생을 가리는 베일이 무엇인지 찾는 여정이다.

 

제국주의 시대의 여성인 키티는 자신의 욕망에 부합하는 상대 홍콩 총독부 차관보 찰스와 불륜을 저지르다 자신의 남편 월터에게 들키고, 그 대가로 콜레라로 인한 죽음의 도시 메이탄푸로 함께 간다. 그곳에서 세관원 워딩턴과 그의 만주족 여인, 위험을 무릅쓰고 진심으로 봉사하는 수녀원장과 수녀들, 경이로운 자연경관, 자신이 임신한 사실, 그리고 월터의 환자를 향한 헌신과 그의 죽음을 통해 그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한다. 메이탄푸에서 홍콩으로 돌아와 찰스의 유혹에 한 번 더 넘어가지만, 그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면을 더 공고히 다진다. 어머니를, 아버지를, 동생을 가엾게 여긴다. 더 이상 외면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키티의 베일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에서 가치관을 형성한다. 가치관은 베일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한다. 키티의 베일은 메이탄푸 가기 전과 메이탄푸 도착 후, 그리고 돌아온 후로 나뉜다.

 

메이탄푸 가기 전

 

그래서 앞으로 일이 년 후면 딸의 아름다움도 빛바랠 것이며 젊은 여자들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딸에게 상기시켰다. 가스틴 부인은 집안에서 말을 에둘러 하는 법이 없었으므로 곧 결혼 시장에서 값이 떨어질 거라고 딸에게 일침을 가했다. - p.39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남편을 닦달해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려 한 어머니와 그 채근에 지쳐 무기력하게 돈만 벌어오는 역할의 아버지였다. 못생긴 동생 도리스와 비교해 어머니의 후원을 듬뿍 받은 키티는 이기심과 허영심이 가득하게 자랐다. 동생의 결혼 들러리가 되기 싫어 자신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월터와 황급히 결혼해 조급함을 회피하긴 했지만, 허영심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그녀는 월터와의 결혼 생활에 금세 질렸다. 월터는 세균학자로, 사회적 명망이 거의 없는 직업이었고 게다가 내향적인 성격이라 키티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행동에도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찰스는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 키티에게 있어 남자의 위신은 곧 자신의 체면이었고, 결혼은 그것을 이룰 수단이었다. 월터는 그에 부합하지 못했고, 찰스는 딱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월터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가끔 그가 그녀를 사랑하도록 그녀가 허용하기만 한다면 어떤 모욕이라도 감내할 각오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찰스를 향해 느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쭐함이 전율처럼 그녀의 몸에 퍼지는 동시에 그렇게 굴욕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남자에 대한 희미한 혐오감 또한 솟아났다. - p.82

 

이기심에서 발로한 가치관은 모든 기준을 자신에게 맞추기 마련이다. 키티와 찰스의 불륜을 알게 된 월터는 그에 대한 대가로 그녀에게 메이탄푸로 같이 가기를 제안한다. 그곳은 콜레라로 인해 죽음이 만연한 도시였다. 키티가 당연히 거절하자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단다. 키티가 찰스의 이혼 서류를 가져오면 자신도 그녀와 이혼하고 메이탄푸에는 혼자 가겠다는 것이다. 자살 행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키티는 찰스에게 급히 달려가 모든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감이었다. 키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찰스는 이혼하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그의 아내 도로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키티는 체념하고 월터와 메이탄푸로 떠난다. 그러면서도 찰스에 대한 애정은 접히지 않았다.

 

메이탄푸 도착 후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해 뜨기 직전의 경관으로부터 경이로움을 경험하고, 처음으로 시체를 보고,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 예컨대 세관원으로 있는 워딩턴과 가문을 뒤로하고 수녀가 되어 자발적으로 죽음의 땅에 온 수녀원장과 그녀를 따르는 수녀들, 역시 가문을 버리고 워딩턴에게 헌신하는 만주족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월터의 환자를 향한 헌신을 극찬하면서 키티의 가치관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키티는 모든 인류가 저 강물의 물방울들처럼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서로에게 너무나 가까우면서도 여전히 머나먼 타인처럼, 이름 없는 강줄기를 이루어, 그렇게 계속 흘러흘러, 바다로 가는구나.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인간이 너무나 딱했다. - p.205

 

경이로운 자연과 목격한 죽음 앞에서 그녀는 그들의 감정싸움이 덧없게 느껴졌다. 월터와 화해하고 싶었지만, 그가 받아들이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의 임신에 대해 월터가 자신의 아이냐고 물었을 때, 키티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자신의 이기심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월터에게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를 이해했다. 그가 그녀를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p.183) 월터가 콜레라로 인해 숨을 거두자 워딩턴과 수녀원장의 제안으로 메이탄푸를 떠난다.

 

지난 몇 주 동안 그녀가 깨달은 것은 남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때론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는 언제나 비열한 짓이라는 점이었다. - p.282

 

메이탄푸 떠난 후

 

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 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웠기를 바랐다. 어떤 미래가 그녀의 몫으로 준비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것이 닥쳐오든 밝고 낙천적인 기백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음을 느꼈다. - p.329

 

홍콩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키티는 찰스의 아내 도로시 타운센드를 만난다. 불편한 마음에 도로시의 호의를 거절하려 하지만, 그녀의 간곡한 요청에 마지못해 도로시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키티와 찰스는 재회한다. 그녀는 찰스를 멀리 대하려 하지만 그의 집요함에 또다시 굴복한 자신을 책망한다. 스스로를 돼지라고 하면서. 다음 날 키티는 홍콩을 떠날 채비를 하며 찰스에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당신은 정말이지 허영 덩어리에다가 바보천치, 내 인생에 닥친 커다란 불운이에요.”(p.312) 영국으로 가는 도중 키티는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는다. 집에 도착해 바라본 죽은 어머니에게서 그녀는 깊은 애정은 느끼지 못하고 무가치한 것에 집착한 당신을 불쌍하게 여긴다. 자신에게 안겨 울음을 터뜨리는 동생을 못생겼다는 이유로 등한시한 과거를 미안해한다. 그리고 드디어 어머니에게서 해방된 아버지의 체념 어린 태도에서 가슴 시림을 느낀다. 그녀는 지방 법관으로 발령된 아버지와 동행하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딸이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딸이 저지르지 않도록 키우고 싶어 한다. 그저 어떤 남자의 연인으로서의 여자가 아닌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여인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키티는 과거를 묻고 희망과 용기로 나아가기를 결심한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과 어리석은 짓들과 그녀가 겪은 불행이 아마도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닐 것(p.329)이기 때문이다.

 

키티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신이 가진 베일을 걸쳐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선은 사상이 될 수도, 편견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걷어내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베일의 종류를 바꿀 수는 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내면을 살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성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언제나 누구든 실수하고 잘못하고 오해할 수 있다. 여기서 반성하지 않는다면 과거는 다시 그렇게 행동하는 베일이 될 것이고, 반성한다면 그런 행동을 지양하는 베일이 생길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나의 내면에 베일을 씌우진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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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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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왜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딱 떨어지는 대답은 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 있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아직 방황 중입니다!”

  

2018722일부터 2019131일까지. 하루 16시간씩 게임에 빠져 지냈던 날들이다. 6개월 동안 책 한 글자 들여다보지 않았고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오롯이 게임만 했다. 중독끈(?)이 짧아 게임중독자였다고 고백하기엔 현역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인다. 그 언저리에서 빙빙 돌았다고 해야겠다. (그래도 당시 게임 내의 엔드 컨텐츠를 거의 다 이뤘다.)

  

어디선가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삶을 왜 살았는가 하면 살아야 하는 목적은 모르겠고 살고는 싶었는데 그때 나를 살리는 것은 게임이었다.’ 굉장히 단순하고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그런 경험을 가지고 정유정 작가의 진이, 지니를 보니 아직 고민 중인 내 방황에 얼마간 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주인공은 셋이다. 젊은 부랑자 김민주와 영장류 사육사 이진이, 그리고 보노보 지니. 진이는 화재가 난 불법 사육장에서 구조대를 치고 도망간 지니를 구한다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하고 지니의 몸에 진이의 영혼이 들어간다. 사고 현장 근처 산골짜기 정자에서 노숙하던 민주와 우연히 맞닥뜨리면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사흘간의 여정을 그린다.

 

각자 삶에 대한 방식: 민주

  

나는 그따위로 살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건 결과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빈둥대는 걸로 보여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할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 p.37

 

민주는 자신의 의지대로 성장하지 않았다. 초중학교는 교육청에서, 고등학교는 중학교 성적이, 대학은 수능성적이 일러주는 곳으로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아버지가 원한 언론사, 어머니가 바란 대기업, 차선책이라던 공기업까지 다 떨어지고 공무원 시험마저 3년째 낙방했다. 아버지에게서 개자식이나 간장 종지라는 말을 들었다. 나름 최선을 다했어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은 민주는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 참다못한 가족이 그에게 집에서 나가주길 요구했다. 집을 떠나 고시텔 생활을 하다가 그마저도 방세를 낼 수 없게 되자 부랑자 생활을 하던 끝에 무곡으로 향했다. 무곡의 망아산을 올라 도착한 영장류센터에서 민주는 이진이를 처음 본다. 그녀에 대한 첫느낌은 다정한 그녀였다. 이 감정이 남아 보노보에 빙의된 진이를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비록 처음에는 돈을 요구했지만). 살고는 싶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민주에게 진이는 목적을 제공해주었다.

 

고른 물건들을 쟁반에 담고 카운터로 향하자 간장 종지가 재잘대기 시작했다. 괜한 일로 신세 망치지 마.

안다.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일단 시작하면 돌이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비루하나마 사회적 궤도 안을 맴돌던 내 삶이 완전히 전복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끈질기게 울리는 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동어반복적이고, 자기증폭적인 소리였다.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 p.271

 

각자 삶에 대한 방식: 진이

 

모퉁이를 하나 돌면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 믿음은 내 삶을 지탱해온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바로 신앙을 버리는 짓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자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 p.303

  

진이는 앞만 보고 살아왔다. 삶이란 길이 여러 모퉁이를 꺾어야 한다면, 그녀는 모퉁이 너머를 미리 추측하지 않았다. 낙관적인 결론이 있으리라 여기며 굳건히 걸었다. 빚을 남기고 죽은 아버지 대신 홀로 진이를 강하게 키운 어머니가 가르친 방식이었다.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살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 p.293

 

그래서 죽음에 가까운 사고를 겪으면서도 그녀는 지니 안에 있으면서도 살기 위해 바둥거렸다. 민주에게 무리하면서까지 자신의 본체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한 이유였다. 하지만 지니의 기억을 훑으며, 그것도 자신이 킨샤사에서 못 본 척 도망친 밀렵된 보노보가 지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죽어가는 자신이 살아 있는 지니의 삶에 침범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침입자 주제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간절한 것에 대해서.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이는 지니에게 삶을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각자 삶에 대한 방식: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언젠가 죽는다라는 명제 빼곤 정해져 있는 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정확한 시일을 모르니 아주 확실한 미래도 아니다. 이런 태도가 예전에는 이상한 사상을 심어주었다. ‘어차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대충 살아야지’,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을 노려보자같은 중2병 사상. 부끄럽게도 게임 열심히 하던 시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게임 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치환하면서부터는 운명을 믿지 않는 태도는 같으나 다른 사상이 심겼다. ‘정해진 것은 없으니 내가 꾸릴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고, 지금의 선택이 나중의 나를 만든다.’ 방황하고 있어도 건강한 삶을 지낸다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린 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정유정 작가는 진이, 지니를 통해 나에게 일단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위로해주었다. 민주가 박탈감과 무기력을 겪었으면서도 살아 있었기에 진이와 지니를 만났던 것처럼, 진이가 지니를 통해 생명을 유지했기에 죽음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처럼.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답을 구가하는 만큼이나 어렵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하다. 살아야 한다. 살아 있어야 한다. 사춘기 때의 혼란도, 대학 시절에 겪은 우울증도, 몇 달 전까지의 게임 중독도 지금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요즘 나의 방황도 살아 있다면 인생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생각 하나

  

개인적으로 사는 것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는 것살아내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것’. 뭐가 낫고 뭐가 별로의 문제는 아니다. 각자의 지향점이 아닐까.

  

살아가는 것은 세상 흐름에 삶을 맡긴다. 위험이나 두려움에 얽히지 않고 무난함이 목적이다. 보통 평범하게, 라고 말하는 그것. 하지만 발전만큼 어려운 게 유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은 인생이다. ‘살아내는 것은 극복하는 삶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의 반대를 극복하고, 기존을 극복한다. 창발성이 필요한 태도라 역시 쉽지 않다. 나는 사실 이렇게 살고 싶다.

 

하지만…… 현재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선을 넘어가기 위해 나름의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이 역시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는 게 뭐가 어려워?’하겠지만, 그래, 일부한테는 쉬울 수 있겠다. 하지만 민주 같은 입장이라면, 우울증을 겪고 있다면, 나처럼 방황하고 있다면? 지니의 삶을 진이가 훔칠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폄하하면 안 된다. 그에게 그 삶이 최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든 걸 용인하며 살 수는 없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에야.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폄하하는 부류는 욕먹어도 싸다. 반성하지 않는 무례함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유정하면 서스펜스 스릴러의 몰입도와 문장력이 대표적이다. 그녀의 전작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이 그랬다(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는 아직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이번 소설은 다른 장르다. 띠지에도 나왔듯이 따스하고, 다정하고, 뭉클한내용이다. 그래서 방심했다. 만약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정유정 작가가 감동물이라고? 서스펜스와 스릴은 느낄 수 없겠군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 당장 갖다 버려도 좋다. 그녀의 문장력은 이미 장르를 초월했으니까.

  

지승호 작가와 정유정 작가의 인터뷰집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까지 읽고 나면 그녀의 작품에 대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동시에 이런 필력이 어떻게 나왔는지도. 진이, 지니독서는 정유정 작가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P.S 한기준이 나와서 반가웠다. 28을 읽으면 한기준의 태도가 확 이해가 간다. 그러니 그녀의 작품은 전부 읽자.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조만간 읽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나는 그따위로 살지 않았다. 시험에 떨어졌다는 건 결과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빈둥대는 걸로 보여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뭘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할 일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 p.37- P37

고른 물건들을 쟁반에 담고 카운터로 향하자 간장 종지가 재잘대기 시작했다. 괜한 일로 신세 망치지 마.

안다.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일단 시작하면 돌이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비루하나마 사회적 궤도 안을 맴돌던 내 삶이 완전히 전복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머릿속에서 끈질기게 울리는 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동어반복적이고, 자기증폭적인 소리였다.

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 p.271
- P271

모퉁이를 하나 돌면 지금보다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그 믿음은 내 삶을 지탱해온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 가장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바로 신앙을 버리는 짓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자 유일한 것이었으므로. - p.303- P303

삶은 살아 있는 자의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전력으로 살아야 한다고. 살아 있는 한, 삶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 p.293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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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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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대소설의 시대11장을 읽고 난 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다. 내가 뱉고 내가 놀라 책에 기록해 두었다. 김탁환 작가의 존재만 알았지, 이전의 책은 읽어볼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유명할수록 읽어야 하지만, 오히려 유명세 때문에 읽지 않고도 읽은 느낌을 받았다. , 죄송합니다. 변명입니다. 아무튼 처음 읽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이었기 때문에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었는지 모른다.

 

제목만 봤을 때는 소설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느낌을 받았다. 백탑파 시리즈를 모르니 그럴 수밖에……. 다 읽은 지금, 이 느낌이 크게 엇나가진 않았다. 정조대왕 때를 배경으로 산해인연록이라는 대소설에 얽힌 사건을 의금부 도사 이명방의 시점으로 풀어가는 내용이다.

  

이명방과 규장각 서리 김진은 대작가 임두를 찾아간다. 임두를 후원하는 혜경궁과 의빈의 요구 때문이었다. 산해인연록199권에서 다섯 달째 진전이 없으니 원인을 알아오라고 했다. 임두를 만난 둘은 작가의 잃어버린 수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장소를 추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진은 소설의 진전 없음이 꼭 수첩 때문만은 아니라고 여겼다. 임두가 매병(치매)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정황을 확실히 하려고 하는 와중에 대작가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그것도 200권의 절반만 집필한 채. 이대로 미완 되면 안 된다는 의빈의 말에 김진은 임두의 두 제자, 수문과 경문에게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다. 옆에서 보고 배웠으니 내용도 꿰고 있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제자들은 15일 동안 궁궐에서 두문불출하며 집필에 매진했다. 그러나 실력은 엉망진창. 실망한 의빈에게 김진은 한 번의 기회로는 아쉬우니 다시 기회를 요청했다. 그렇게 얻어낸 한 달을 얻어 둘에게 제안하자, 수문과 경문은 기겁했다. 사흘만 쉬게 해달라고. 김진은 단칼에 잘라낸 후 결정을 위한 하루 말미를 주었다. 그의 의도는 두 제자의 감시였다. 이미 둘 중 하나가 임두의 행방을 아는 범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명방에게는 경문을, 야뇌 백동수에게는 수문을 미행하도록 부탁했다. 미행의 결과로 규장각 서리 화광 김진은 산해인연록사건을 풀어낸다.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는 조선 후기 버전의 셜록 홈즈다. 추리 장르의 요소를 갖기에 줄거리를 다 풀어낼 수 없다. 읽는 재미를 망칠 순 없지. 저 줄거리마저 스포라면……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임두에 대해

 

조선 후기는 전기에 비해 신분의식이 약해지고 있었다. 특히 정조 때에는 서얼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기에 파격적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그래도 조선은 조선이다. 유교의 국가였고 남성 중심 사회였다. 당연히 여성에 대한 선입관이 만연했을 터이다. 그 와중에 작중 인기 넘치는 대소설 산해인연록23년간 지은 대작가 임두는 여자이다. 여자 이름 치고 임두는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나 역시 이명방처럼 당연히남자겠거니 했다. 디귿 발음이 주는 닫힌 느낌 때문에. 나의 편견은 여자의 이름은 부드러워야 한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임두의 집필실을 둘러보던 이명방이 작가를 보고 놀란 마음을 김진에게 털어놓을 때 공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김진의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선입견을 주기 싫어서였네. 소설의 기준이 중요하지, 소설가가 서생인가 노파인가를 먼저 알 필욘 없어. 자네가 계속 산해인연록은 연경에 다녀온 서생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기에, 직접 임 작가님을 만나 보기 전까진 말을 아꼈다네. 원한다면 집필에 여념이 없는 여인들을 이제부터라도 소개해 주지.” - 1p.43

  

임두 역시 여자임을 안 밝혔던 것은 아니다. 밝혔던 적이 있으나 맹비난을 받았던 기억이 있기에, 인생의 역작 산해인연록만큼은 그런 대우를 받게 하기 싫어 남자 같은 필명을 사용한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에 대해 김영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알쓸신잡 통영편에서 한 이야기였는데, ‘여류작가라는 칭호는 멸칭(蔑稱)이다. 작가에 남녀노소가 있을 리 없건만 사회적 통념은 작가를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은 여류작가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셨다고. 작가뿐일까. 직업에서의 성()은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추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자의 세상, 여자의 세상이 아니라 인간의 세상이다. 인본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지 않도록 내 자신을 경계하고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덜 나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임두라는 이름을 보고 남자라고 생각했던 편견에 대해 임두는 한마디 한다.

 

이름을 놓고 소설 찾지 말고, 소설 읽은 뒤 이름을 가늠해 봐. 이름은 한낱 허깨비니까.” - 1p.127

 

비평하는 사람 중에는 소설과 작가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도 하고, 사회와도 연결되어있다고도 하고, 소설 그 자체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문학은 문학으로써 먼저 즐기면 좋겠다는 쪽이다. 판단은 임두의 말대로 소설 읽은 뒤에 하면 된다. 왜냐, 읽고 나면 분명 무슨 느낌이나 여운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찾아가다 보면 작가 때문인지, 사회 때문인지, 소설 속 사건 때문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을 읽는 매력이지 않을까.

 

※조선의 여인들

  

참담한 심정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지. 모름지기 소설은 한가한 나날의 심심풀이지만, 뜻밖에도 슬픔을 견디는 버팀목이 되기도 하니까. 이야기를 주고받을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가장 끔찍한 선택은 피하는 법이지.” - 1p.82

 

자궁(慈宮, 혜경궁)은 자신의 필사 궁녀였다가 후궁으로 올라온 의빈을 통해 임두를 후원했다. 산해인연록의 창화 공주를 죽이지 말 것이라는 하나의 조건을 걸고.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이다. 남편을 잃은 심정과 아들의 위태로운 목숨에 대한 걱정을 달래기 위해서 그런 조건을 내건 듯했다. 조선의 여인상은 정숙하고 정절을 지키는 게 최고의 덕이었다. 궁에서 생활하며 왕의 어머니는 오죽했을까. 심정을 대놓고 토로할 상황도 위치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를 위로할 방책은 소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짧은 소설이 아니라 기나긴 슬픔을 달랠 만큼의 길이인 대소설 말이다.

  

“() 이 나라 이 동네 이 가문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매순간 주어진 예법대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각종 차이를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여인들을 담고 있는 소설 또한 소중하다네. 크고 강하다고 멋지고 작고 약하다고 시시한 게 아니란 걸세.()” - 1p.46

  

꽉 막힌 예법에 숨통을 틔워주는 소설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소설 속 주인공의 삶과 죽음에 이입하면서 잠시나마 해방을 느낀다. 그렇게 삶이 이어진다.

  

끝이라 체념한 순간, 이어지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생 하나는 소설. 소설이 끝나도, 그 소설을 쓴 작가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의 인생은 이어진다. 그리고 가끔은 소설이 끝난 뒤 새로운 소설이 이어지기도 한다. - 2p.157

  

대소설의 시대는 각 장()을 차지한 대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대소설을 빼면 싱거워진다. 아니,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대소설이 많이 읽힌 시대이기도 하고 대소설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목이 대소설의 시대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소설을 이야기하는 소설인 만큼, 소설을 대하는 자세를 새로 다질 수 있었다. 나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일지, 어떤 위로를 주는지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신난다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 말고,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느끼는 게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내 독서 이력에도 대소설의 시대가 꽃피길 다독이며 이명방이 의빈에게 한 말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읽기 전엔 모르는 것, 그게 바로 소설이 아니옵니까?” - 1p.68

 

P.S 1권의 몇 군데 오류가 있었다.

p. 64, 김진이 김진을 소개한다. ???
p.183, 박제가가 이명방(청전)에게 김진(화광)의 호를 부른다. ???

p. 257, 수문이 김진에게 산해인연록이어쓰기 면접을 보는데 자신과 수문을 언급한다. ???

p.188, 호환(虎患)을 호한이라 오타난 것은 그냥 넘어갈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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