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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의 심리학 - 지루함이 주는 놀라운 삶의 변화
제임스 댄커트.존 D. 이스트우드 지음, 최이현 옮김 / 비잉(Being)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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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내게 괴로운 시간이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게임에 손댔던 날 이후로 스케쥴 관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늘 하던 공부에 염증을 느끼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도피 차원에서 게임을 했지만, 종료하면 불쾌감이 몰려왔다. PDS를 정리하며 하루를 되돌아볼 때마다 우울함이 짙어 졌다. 어제는 27시간 동안 깨어 있다 잠들기까지 했다.


나는 예전처럼 그냥 우울한 시기의 도래로 치부했다. 내 감정기복이야 워낙 고점과 저점을 자주 왕복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래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27시간 깨어 있었던 것도 의욕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다행히 이번 주 독서 책으로 『지루함의 심리학』을 고른 덕분에 회복이 빨랐다. 책에 의하면 나는 ‘지루함’에 갇힌 상태였다.


지루함의 현대적 정의는 ‘뭔가를 원하지만 만족스러운 활동에 참여할 수 없어서 아쉽고 불편한 마음’으로, ‘우리가 정신 능력을 발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p.35).’ 지루함은 다양한 동기(단순반복,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난이도, 주체성 결여, 낮은 정서 인식력 등)로 유발될 수 있는데, 이 감정 자체는 우리에게 무익 · 무해하다.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루함이라는 감정 자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고통처럼 지루함도 잠재력을 발휘할 행동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신호다(p.79).’ 이 신호가 이익일지 손해일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이번 주 동안 지루함의 신호에 부정적, 긍정적 반응을 모두 실행했다. 부정적 반응은 앞서 이야기한 게임, 그리고 스트리밍 방송에 정신을 쏟았다. 물론 돌아온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지루함과 불안, 불쾌 등 부정적 감정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하나의 행동으로 싹 씻겨 나갔다.


〈노마드 코더〉의 ‘트위터 클론 코딩’을 공부하면서 나는 프로필 사진 편집 기능과 피드 내 프사 노출 기능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에 손도 대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할 수 없다는 마음 사이의 괴리가 지루함을 유발한 것이다. 밤낮이 바뀌어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손을 댔다. 날이 밝도록 고민하고 코딩한 결과, 내가 원했던 기능을 구현해냈다.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 정신 차렸을 때는 거의 8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 뿌듯함과 만족을 경험하고 나니 지루함이 가셨다.


지루함이 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돌고 나니, 그제야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루함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점도 새삼 알게 되었다. 나 같은 부류는 지루함을 느끼는 빈도가 잦음은 물론, 더 자주 ‘꾸물거린다.’ 계획을 실행하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이러한 원인은 ‘의미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계획을 짜긴 했지만, 내 삶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은 행동이라 하기 싫어 지고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앞으로도 지루함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채 우울모드에 빠져 무의미한 행동에서 허우적댔을 것이다. 이제는 약간이나마 대응할 수 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지루함을 자주 느끼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몰입하여 지루함을 해결하는지 알게 된 까닭이다. 이런 면에서 살짝 메타인지가 상승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감탄사가 나오거나 임팩트가 강한 책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얻는 게 큰 책이다.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용어도 없었던 덕분에 지루함에 갇혀 허우적대면서도 완독할 수 있었으니까. 책이 전한 내용을 유념하면 자기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듯하다. 이제는 지루할 때마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합리화하지 말아야지. ‘지루함은 바로 행동하라는 신호(p.69)’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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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 좀비 섬의 비밀 마인크래프트 공식 스토리북
맥스 브룩스 지음, 손영인 옮김 / 제제의숲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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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사촌 남동생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중 하나인 《마인크래프트(이하 ‘마크’》를 엄청 좋아한다. 산문 독서 촉진 겸 선물로 사줬는데, 그만 제목을 잊고 중고로 같은 책을 또 선물했다. 졸지에 두 권을 갖게 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 시리즈 새 책을 선물하고 중고는 내가 받아왔다. 받아온 김에 읽었다.


나는 ‘마크’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3D 멀미가 심해 조금만 플레이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유치한 게임이라는 편견과 내 취향이 아닌 그래픽도 한 몫 했다. 최장 플레이 시간이 한 5분이나 될까? 흙 깨고 나무 깨다 좀비한테 맞고 크리퍼 터져 죽은 후 멀미에 시달리며 종료한 것이 나의 ‘마크’ 경험 전부다. 그러니 그 세계관이며 조합이며 등등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른다. 나의 남동생들이 ‘마크, 마크’ 노래를 부른 전적이 있어, 그나마 용어 정도만 얼추 알고는 있었다.


이런 사전 경험 덕분에 독서 기대치는 엄청 낮았다. 아무리 『월드 워 Z』의 저자가 썼다고 하더라도 애들을 겨냥한 소설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쉽게 말해서 억지로 읽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러나 대반전. 생각보다 재밌었다! ‘마크’를 전혀 모르지만, 한 소년의 모험이자 마크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생각하니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소설로 읽혔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정육면체로 가득한 세상에서 눈을 뜬다. 아무런 지식도, 기억도, 물건도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이름 모를 섬에서 생존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실수투성이에 겁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낯선 세상도 모자라 돌아가는 방식이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좀비’나 ‘크리퍼’ 같은 괴물들이 나타나니까. 그러나 주인공은 차근차근 세계의 법칙을 익히며 성장해 나간다. 물론 자신의 업적에 취해 우쭐대다가 다시 모든 걸 망쳐 버리기도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종국에는 더 이상 현재의 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각오까지 다지게 된다.


주인공은 실수로부터 ‘마크’ 세계의 블록과도 같은 법칙을 깨닫는다. 스스로 ‘정육면체의 법칙’이라고 명명한 행동으로, ‘계획한다, 준비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연습한다, 기다린다, 인내한다’의 6가지 과정을 하나의 블록처럼 대하면 어떤 두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깨달았다고 해서 실천까지 쉬운 건 절대 아니다. 두려움에 짓눌리거나 생존 본능이 앞서면 깨달음은 한 순간에 사라진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실천을 위해서는 늘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점도 마음에 새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어린 시절에 꼭 필요하다.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하다. 실수와 실패를 구분하는 일, 그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이는 일, 늘 용기를 지니는 일 등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러나 익히기는 쉽지 않는데, 그런 맥락에서 재미있고 쉬운 스토리로 필수 요소를 안내하는 이 소설은 자기계발의 한 장르로도 볼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주제로 하고 있으니 ‘마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으며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마지막 장에 주인공이 좀비 섬을 모험하는 동안 쌓아 둔 교훈 모음집도 있다. 총 36가지로 정리되어 있으니 틈틈이 참고하기에도 좋다.




나처럼 자기계발 요소로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독서해도 썩 괜찮은 소설이다. ‘마크’의 기본적인 조합법도 서술되어 있어서 게임 지식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요즘에는 공략도, 모드도 많아서 큰 의미는 없겠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니, 순정의 맛을 음미할 수도 있겠다.


서점을 가 보니 시리즈도 많았다. 한 10권 내외 되는 듯하다. ‘마크’에 흥미가 있다면 수집의 즐거움도 느끼……려나? 아무튼 주변에 ‘마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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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 세트 - 전4권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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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두고 올해 드디어 다 읽었다.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내용도 없는 SF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소홀해진다고 할까.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밀려 완독의 날짜가 오늘이 되었다.


총 4권으로 구성된 『머더봇 다이어리』 시리즈는 전투용으로 제작된 보안유닛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라는 식의 정체성 찾기는 아니다. 주인공 살인봇(본인이 그렇게 칭한다.)은 과거 어느 행성에서 폭주해 인간을 대량 학살한 전적이 있다. 보안유닛을 관리하는 ‘회사’에서 그의 기억을 재설정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빈틈이 생겨 그는 지배 모듈을 해킹할 수 있었다.


1권 「시스템 통제불능」에서는 살인봇이 불법 채굴 중인 기업 ‘그레이크리스’로부터 ‘보존 연합’ 연구팀을 구하면서 자유를 얻게 되는 과정이다.


2권 「인공 상태」는 과거의 폭주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행성 ‘라이하이랄’로 향하는 여정이다.


3권 「로그 프로토콜」에서는 ‘그레이크리스’의 실체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하게 된다.


마지막 4권인 「탈출 전략」에서는 ‘그레이크리스’의 협박으로 인질이 된 ‘보존 연합’의 대표 ‘멘사 박사’를 구하면서 살인봇은 봇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활동하는 정체성을 획득한다.


SF 가방끈이 짮은 나지만, 개인적으로 꽤 괜찮았다. 주인공 살인봇의 성장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는데, 머신러닝으로 지속적인 학습이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고개도 끄덕여진다. 또 자체적으로 쓸모없는 웨이트를 제거할 수도 있고, 자체적으로 판단까지 가능하니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어쩌면 살인기계가 ‘불쾌한 골짜기’ 영역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스타워즈〉나 〈아이로봇〉 같은 감동은 별로 없지만, 킬링타임용으로 그냥 저냥 읽을 만하다. 단, 가격은 좀 비싸다고 생각되니 굳이 소장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 난 무지성으로 구매한 까닭에 고려하지 못했다. 다른 소설 살 때는 여러 고민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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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하나 옮김 / 코너스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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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 번은 읽는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다. 언제 읽는가 하면, 내 자신이 한없이 쓰레기 같고, 사는 게 절망스럽고,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을 때 위로 삼아 읽었다. 읽고 나면 개운하지는 않아도 상태가 많이 완화됐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도 아름답거니와 나의 현실은 아무리 벅차도 주인공 ‘요조’의 그것과는 갭이 상당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상태에서 읽게 되었다. 두 가지의 심경 변화가 있었는데, 첫째는 다소 낙관주의자가 되었다는 점이고, 둘째는 문학의 가치를 잊었다는 점이다. 이 요인들이 시너지를 내니 과거와는 다르게 이만큼 시간 아까운 독서가 없었다.


요조는 자신의 생에 대해 깊은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보다 수치심을 아는 인간이 더 낫다.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이 처한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도 타계하기 보다 도피를 선택하고, 그 수치심에 취해 스스로의 동정을 합리화했다. 대놓고 드러나진 않았지만, 행동거지를 보면 본인은 불행해도 싼 인간이기 때문에 이 상황과 싸우는 일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심리적으로 어떻고, 화자의 성장 배경이 어떻고, 시대상이 어떻고 한 사항을 분석하며 읽을 때야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나도 덩달아 우울해지는 친구를 둔 느낌이랄까. 한순간에 받아들이는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최근 문학을 접할 때마다 겪는 놀라움이다.


아무튼, 요조의 그런 행보는 현재 내가 가진 가치와 전혀 궤를 달리해 예전만큼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다. 감상문의 길이가 짧은 것만 봐도 얼마나 임팩트 없이 읽었는지.


이러한 느낌에는 예전과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을 읽은 탓도 있을 것이다. 매년 읽은 『인간 실격』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이번 것은 ‘코너스톤’에서 출간한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이다. 흠, 어차피 올해 또 이 책을 다시 읽을 날이 분명히 있을 테니, 그때는 각각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지금은 별 감흥 없는 감상으로 끝났지만, 언제 또 감명 깊게 읽을 지 모른다. 작품 자체의 짜임새 와 문장이 워낙 좋으니까. 다음에는 또 다른 독서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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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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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소설 경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왜 그런지 설명하자면 기니까 ‘재미없다’는 메인 이유만 남겨두고 넘어가자. 덕분에 책 구매를 좋아해도 한국 소설은 대체로 제외하는 편이다. 그나마 장편 소설은 몇몇 보는 작가가 있지만, 소설집은 더욱 싫어한다. 단편 소설의 매력도 모르겠거니와 한 편 읽고 끊기는 느낌이 되게 별로다. 그런데 장르가 SF, 그것도 판타지가 아닌 문학이다? 거침없이 ‘아웃 오브 안중’이다.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나의 불만족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책이라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얼마 전, 유일하게 친한 대학 동기가 연말 선물로 주지 않았다면 절대 볼 일 없었을 책이었다. 선물을 받아와 다른 독서는 미뤄두고 이 책부터 펼쳤다. 선물 받은 책에 대한 최고의 처사는 곧장 읽는 것이라는 내 철학 때문이었다. 물론 간만에 받은 책 선물이라 설레는 마음도 한껏 담겨 있었다.


불행이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재밌는 책을 지금까지 몰랐다는 점이 불행했고, 그 불행 덕분에 이 재밌는 책을 선물 받아 즐거운 연말을 보냈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SF 판타지가 아닌 SF 문학의 재미도 처음 느꼈다. 내가 아는 SF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격정적인 대립이었다. 참 무지렁이 수준의 지식을 가진 나였음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총 7편의 소설로 구성되었는데, 이중에서 나는 후반부 세 편인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가장 몰입해 읽었다. 앞의 네 편은 좀 더 나의 감상을 분석해야 느껴지는 재미라면, 뒤의 세 편은 직관적인 재미라고 할까.


「감정의 물성」은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유발하는 상품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야기로, 침착의 향수를 뿌리면 침착해지고, 우울의 자갈을 쥐면 우울에 푹 빠지게 된다. 그 특이한 성질로 인해 사회적으로 크게 유행했지만, 마약 성분이 검출되면서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 속에서 화자는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긍정적인 감정의 수요는 이해되지만, 도대체 분노, 증오 등의 부정적인 감정은 왜 사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삼류 신파 영화를 봤던 기억에서 도출되었다. 한 여자가 영화를 보고 마냥 울다가, 영화가 끝나자 영화 포스터를 구겨 버리는 장면이 떠오른 것이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 p.215


우리가 표출하는 감정은 정말 순수한 감정일까? 나는 정상적으로 사회화된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웃기다고 해서 무조건 웃으면 안 되고, 화난다고 해서 아무 때나 화내면 안 된다. 즉, 우리의 감정은 이성의 검열을 받은 정제된 감정이다. 물론 사회 질서를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때때로 그것이 개인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충분히 힘듦을 표출할 때임에도 그렇지 않다고 여기며 삶을 이어가다 무너지는 사람들이 해당되지 않을까. 이런 부류에게는 ‘감정의 물성’ 중 부정적인 면이 더 약이 될지 모른다. 뭐 그렇게 생각하며 읽었다는 뜻.


「관내분실」은 빅데이터 교육을 받으면서 잠깐 떠올렸던 상상과 맥락을 함께해 흥미진진했다. 소설 내 도서관은 죽은 이의 정보를 데이터로 바꿔 저장하는 공간이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납골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자(死者)의 데이터는 이름이나 특징으로 인덱싱되어 마인드라는 형태로 보관된다. 화자는 어머니의 마인드를 찾았으나 ‘관내분실’되어 찾을 수 없었다. 인덱스가 지워져 마인드는 존재하나 불러올 수 없던 것이다. 다행히 개발 중인 기술의 도움이 잘 작동해 어머니의 마인드를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저 디지털 미아가 어느 기업의 데이터였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치 있었다면? 화자가 그런 데이터를 다루는 개발자였다면? 후, 상상만으로도 식겁할 부분이다. 소설의 내용과는 별 상관 없지만, 어쨌든 재미가 더해진 부분이었다.


마지막 소설인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가윤’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재경’의 진짜 행적을 알게 되었어도 그녀에게 영웅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주제를 가졌다. ‘재경’은 세계인의 관심을 받으며 우주 저편으로 통하는 ‘터널’로 향할 우주인 3인 중 하나였으나, 진입 당일에 이탈하여 바다 속으로 종적을 감췄다. 나머지 2인은 터널 입구에서 캡슐이 폭발해 죽음을 맞이했다. 항공우주국은 ‘재경’의 행적이 들통나면 더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에 쉬쉬하며 함께 죽은 것으로 덮어버렸다. ‘가윤’ 역시 그런 행적은 모른 채 ‘재경’을 영웅으로 삼아 우주인을 꿈꿨다.


우주인 훈련을 하면서 그녀는 ‘재경’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비난의 여론에 피로를 느꼈으나, 그럼에도 ‘재경’이 그녀의 영웅임은 변하지 않았다. ‘재경’의 행동엔 ‘재경’만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었고, ‘가윤’에게는 ‘가윤’만의 진심이 있으니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의 개인사 중 일부가 내 존경심을 해할 이유가 되는가. 예를 들면, 나는 F.스콧 피츠제럴드를 존경하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의 괴팍한 성격을 들이밀며 내 존경심을 왜곡된 시선으로 판단했던 적이 있다. 다른 예로는 스티브 잡스도 있고, 빌 게이츠도 있다. 흠, 나의 영웅을 너에게 대입하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또한 내가 존경하는 부분이 흠이 아니라면 더더욱 상관없는 일 아닌가. 가끔 드는 생각을 끄집어낸 소설이었다.


김초엽의 SF 문학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에 다른 책이 나온다면 곧장 사 볼 계획이다. 그러나 다른 작가의 SF 문학도 내 마음에 들지는 의문이다. 조만간 서점에 가서 몇 장 훑어봐야 될 것 같다. 다른 소설도 흥미진진해서 퍽퍽한 실용서만 깃드는 내 마음에 문학의 불이 다시 지펴졌으면 좋겠다. 이런 계기를 만들어준 나의 대학 동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임인년의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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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1-02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찐새 님 리뷰 좋아요 세 번 누르고 싶어요.
반갑습니다. 김초엽은 저도 최근 관심 갖게
되었어요. 이 소설집 이후로도 꾸준히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더군요. 우선 선물 받은 행성어서점부터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에 밀리고 있어요. 임인년 출발 신나게 힘차게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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