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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 (양장) 소설Y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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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독서를 끝내고 감상문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갖가지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 내용을 까먹으면 패스. 하도 반복하다 보니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갑작스레 『노 휴먼스 랜드』의 감상문을 쓰게 된 계기는 별 거 없다. 그냥 간만에 읽은 소설 중 재밌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소설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 책은 나에게 순수하게 소설 읽는 재미를 전해 주었다.


기후 재난으로 인해 범세계적인 기구 UNCDE가 출범하고, 오클랜드 협약에 따라 지구의 온도가 내려갈 조짐이 나타날 때까지 세계 곳곳을 거주 금지 구역,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한다. 기구는 주기적으로 조사단을 보내 그곳의 생태를 조사하는데, 주인공 미아가 조사단에 합류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사가 진행되던 도중 단원 중 하나인 크리스가 거대한 새에게 납치당한다. 그를 구조하기 위해 새가 날아간 쪽으로 움직이지만, 마주한 것은 숨겨진 연구소였다. 그곳에서 연구소장인 을 만난다. 그녀는 미아 할머니의 동료이며, 할머니가 거부한 연구를 고집해 기후 재난을 해소하겠다는 야망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의 연구는 플론이라는 식물을 전 세계에 살포하는 것이었다. 향정신성 기능을 가지고 있어 향을 맡게 되면 자아가 희미해지고 세상 모든 것을 자신과 연결한다. 곧 타인이 자신이고, 자신이 타인이 되므로 욕심이나 폭력 등의 심리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욕심으로 인한 무분별 개발이 사라져 기후 안정이 가속화되리라는 것이었다. 진실을 마주한 미아와 조사단원은 발버둥쳐 탈출하고 진실을 알리며 이야기는 끝난다.


아무래도 요새 기후 위기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더 몰입하여 읽었다. 원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좋아하는데, 원인이 기후라니 흥미를 접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전달하는 주제가 기후 재난의 원인이나 해결책 탐구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에필로그에서 미아는 자신을 도운 별이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이런 메세지를 전한다.


불안하면 뭐 어때요. 그 마음은 그냥 그대로 두고, 다른 걸 해 봐요. 일단 뭐든 해 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그리고 또 다시 해보고, 어떻게 되나 봐요. 재밌잖아요. 같이 하면 더 재밌을 거예요. - 에필로그 중 -


기후 위기를 맞이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불안에 떨면서도 재난을 지연시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지켜보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또 시도하고. 재미…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구의 역사에서 수 많은 멸종이 있어왔기에 인류 역시 소멸됨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혹시나 다른 이의 읽는 재미를 빼앗을까 하는 마음에 줄거리는 최대한 줄였다. 음, 너무 줄여서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빼앗았을까? 고민한다면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제도 주젠데 문장의 흡입력도 상당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서술어의 중복이나 문장 연결이 어색한 부분이 없어 편히 읽었다.


너무 오랜만에 써서 글이 매우 비루하다. 그럼에도 글 쓸 용기를 심어준 이 책과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다. 간만에 재밌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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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머리앤 전집 세트 - 전8권 (완역본) 빨간 머리 앤 전집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유보라 그림,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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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너무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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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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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재미를 잊어버린 마당에 왜 연이은 독서로 소설을 선택했는지. 표지의 화려함에 홀라당 속아 『수상한 중고상점』을 구매했고……읽었다. 안 좋은 느낌은 구매 단계에서부터 이미 확정이었다. 속은 것도 속은거니와, 애초에 읽고 싶어서 산 책이 아니었다. 알라딘의 매력적인 굿즈(뭐였는지는 까먹었다)를 얻기 위해 장바구니에 끼워 넣었다. 그렇게 일단 삐딱선 탄 채로 출발했다.


감상평의 제목은 책에 대한 내 감상을 관통한다, 부정적인 의미로. 책 띠지나 후면의 문장보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비싸게 사서 싸게 팝니다. 아픈 마음까지도 매입합니다!’, ‘물건에게도 기회가 있는데, 인생이라고 다를 게 있나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잇는 따뜻한 감동(!!)’ 등등. 마지막에 언급된 책은 나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더 설렐 수밖에 없었다. 잔잔하면서도 사건의 조각이 딱딱 들어맞는 퍼즐 같은 내용인가? 인생 철학을 중고 상품에 빗대어 풀어낸 서사가 있나? ……. ……. 설레발로 설렌 생각하면 지금도 킹받는다.


주인공인 ‘히라구시 마사오’는 동갑내기 사장인 ‘가가사기 조스케’의 중고상점에서 일한다. 그 가게에는 붙박이 객식구가 하나 있는데, ‘미나미 나미`라는 중학생 여자애다. 가사사기가 미나미 집안의 문제를 해결한 이유로 가게에 상주하고 있다.


이 셋은 중고품을 팔다 각종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 표면적으로는 가사사기가 추리하지만, 그의 추리는 맞는 게 없다. 전부 뒷편에서 히라구시가 풀어낸다.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가사사기의 엉터리 추리가 미나미의 웃음을 찾아주었고, 그녀가 강하게 믿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히라구시는 미나미의 웃음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이것이 내가 이 소설에 갖는 불만이다. 중고품에 얽힌 사연을 풀고 갈등이 해소되고, 구매한 중고품이 누군가에게 힐링이 되는 사연으로 다시 풀어지는 내용이 아니다. 이야기에 힘이 없다. 예를 들어, 1챕터의 청동상 사건은 해당 물건에 얽힌 인물이 중고상점에 물건을 처분한 게 아니다. ‘우연히’ 도둑이 청동상을 훔쳐냈고, ‘우연히’ 가사사기 중고상점에 처분했다. 우연이 거듭되니 설득력이 떨어졌다. 미나미 과거편에서는 미나미의 엄마가 이혼 후 아빠의 물건을 가사사기네에 팔면서 사건에 엮인다. 그 해결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 물건을 정리한 날 밤에 강도 사건이 발생하는데, 없어진 건 고양이 하나뿐, 그 역시 곧 돌아와 해프닝으로 끝난다. 그러나 가사사기는 엉뚱한 추리력으로 희안한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미나미는 그 추리를 굳게 믿었다. 맞지도 않는 사건의 퍼즐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히라구시는 무단침입을 감행했고, 따로 진범인 미나미의 아빠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풀어낸다. 매 챕터마다 열받는데, 굵직한 것을 꼽자면 이 두 가지 예다.


인물의 재활용도 별로였다. 청동상 사건에서 소년은 뭐하러 등장했나. 2챕터의 우사미 역할은 무엇인가. 미나미 집의 집사는 진짜 집사 역할만 하고 사건에 관련이 없다. 마지막의 절도범은 그냥 엑스트라였다. 잔잔한 이야기에 추리를 억지로 끼워 넣으면 이야기가 망가진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다 읽고 난 나의 마음은 진부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었다. 책 날개를 보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본인 문체와 다르게 썼다는데, 그 부작용인가 싶기도 하다. 마음이 식으니 표지나 제목의 마케팅 요소도 킹받았다. 이 소설은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소설이 대성한 후 한국에 나왔다. 인기의 콩고물을 노린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 물론 이 모든 비판은 삐딱해진 내 편견이 빚어낸 결과물일 수도 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이 말이다. 구석에 박아두고 두 번 다시 안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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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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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쓸 생각이 없던 책이었다. 읽은 지도 꽤 돼서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간만에 쓰는 글로 안도 유스케의 『책의 엔딩 크레딧』을 고른 이유는 얼마 전 파주 출판단지를 다녀온 까닭이었다. 노을 지는 저녁 즈음, 친구와 산책하다 인쇄소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여기서 인쇄하나 보다, 용지 묶음인가 보다 등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이 책이 떠올랐다.


보통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작가의 고뇌, 출판사 혹은 편집자와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그런 이야기에서 전자는 세상에 대한 을, 후자는 작가에 대한 을로 표현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훨씬 더 이면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앞의 두 존재 모두에게 을인 ‘인쇄 회사’이다.


‘도요즈미인쇄 주식회사’를 주 무대로, 영업맨 ‘우라모토 마나부’의 포부 실현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는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라는 마인드를 가졌다. 모노즈쿠리는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가 합성된 용어로,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낭만 가득한 각오는 유능한 영업 2부의 ‘나카이도 고지’의 꿈과 배치된다. 나카이도의 꿈은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우라모토는 그의 무미건조함에 반박하지만, 나카이도 역시 순수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라모토는 결과로 증명할 것을 다짐하며 대결 아닌 대결이 펼쳐진다.


총 5장에 걸쳐 책에 대한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우라모토와 동기이면서 ‘후지미노 공장 인쇄제조부’의 총괄자 ‘노지에 마사요시’는 책 인쇄를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작업쯤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자신의 낭만을 증명하려 무리한 일감을 물어오는 우라모토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아픈 처남의 병원비까지 그가 책임져야했다. 이런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그는 옳지 못한 방법으로 화풀이하게 된다. 아빠가 만들었다며 두 아들이 좋아하는 책을 눈앞에서 찢어버린 것이다. 죄책감까지 얹힌 그의 일상은 지속적으로 꼬인다.


반면, 함께 일하는 별색 제작 기술자 ‘요시자키 지로’는 일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의 작업은 감각이 뛰어난 장인만 할 수 있는 일이며, 그의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노지에의 멘토가 되어준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후쿠하라 에미’는 원고를 인쇄 레이아웃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한다. 워낙 독서를 좋아해서, 타자로 옮기며 사전에 글을 미리 읽을 수 있음을 최고의 직업 가치로 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나카이도는 지향하는 바대로 안전을 중시한다. 을의 입장에서 출판사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지만, 무리인 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성향은 우라모토를 자제하는 컨트롤러로 작용한다.


무리하게 일감을 물어오든, 안정적으로 대비하든 인쇄소의 하락세를 막기란 버거웠다. 바로 ‘전자책’ 때문이었다. 인쇄 회사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쟁 상대인 셈이다. 유명 작가가 전자책을 옹호하면서 인쇄소에 비상이 걸렸다. 종이책과 전자책 중 무엇이 득인가라는 갑론을박이 펼쳐질 때, 우라모토의 건의로 두 종 동시 발행을 기획한다. 무엇이 나은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공공의 적과 공동의 목표가 생긴 덕분에 서로의 입장만 대변하던 인물들이 하나로 뭉쳐 갈등 해소의 계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경영진의 선택은 인쇄기를 한 대 줄이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하락세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책 제작에 열과 성을 다했다. 노지에는 직업의 자부심을 얻었고, 나카이도는 현실적인 꿈(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친다)과 이상적인 꿈(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이다)이 결국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라모토의 증명은 반쯤만 완성되었지만, 개개인에게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줬다.


줄거리를 엄청 축약한 부분은 내용이 가물가물하기 때문이다. 감동만 남았달까. 책을 좋아하지만, 내 기준은 작과와 출판사에만 머물러 있었다. 인쇄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밥 먹을 때 익명의 농부에게 감사한 적은 있지만, 독서할 때 익명의 인쇄소 직원에게 감사한 적은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이면에서 노고를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물론 값을 치르고 구매하는 입장이니 감사의 마음이 의무는 아니다.) 간과했던 부분을 깨닫게 해준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책 내용에 대한 느낌을 전하자면, 장을 구성한 소제목 흐름은 탁월했다. 각각의 소제목은 해당 에피소드에서 진행되는 책의 제목이다. 동시에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라는 이상을 향한 흐름과 함께한다. 감안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늘 그렇듯이 순탄하게 풀리는 사건은 지루함을 유발했다. 내적 갈등에 중점을 두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외적 갈등에 집중하면 읽는 속도가 더뎌졌다. 모노즈쿠리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이 아닌,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이다’라는 명제를 참으로 지정해두고 끼워 맞추는 식의 진행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인쇄 회사에서 책 제작에 진심인 사람만이 모노즈쿠리이다’로 귀결되면서 방향을 잃은 느낌이었다. ‘인쇄 회사’가 아닌 ‘인쇄 작업’이었다면 그 변화가 자연스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책을 좋아한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인쇄를 다룬 이야기는 많이 없으니까. 책을 쓰는 저자만큼, 그 책을 세상에 내보이는 출판사만큼 실체로 만드는 인쇄소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우라모토의 말로 마무리한다.


“도요즈미인쇄라는 글자 너머에는 전체 직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거야.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니까.” - p.350, 우라모토 마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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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함의 심리학 - 지루함이 주는 놀라운 삶의 변화
제임스 댄커트.존 D. 이스트우드 지음, 최이현 옮김 / 비잉(Being)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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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내게 괴로운 시간이었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게임에 손댔던 날 이후로 스케쥴 관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늘 하던 공부에 염증을 느끼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도피 차원에서 게임을 했지만, 종료하면 불쾌감이 몰려왔다. PDS를 정리하며 하루를 되돌아볼 때마다 우울함이 짙어 졌다. 어제는 27시간 동안 깨어 있다 잠들기까지 했다.


나는 예전처럼 그냥 우울한 시기의 도래로 치부했다. 내 감정기복이야 워낙 고점과 저점을 자주 왕복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래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27시간 깨어 있었던 것도 의욕을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다행히 이번 주 독서 책으로 『지루함의 심리학』을 고른 덕분에 회복이 빨랐다. 책에 의하면 나는 ‘지루함’에 갇힌 상태였다.


지루함의 현대적 정의는 ‘뭔가를 원하지만 만족스러운 활동에 참여할 수 없어서 아쉽고 불편한 마음’으로, ‘우리가 정신 능력을 발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무엇에도 몰입하지 못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p.35).’ 지루함은 다양한 동기(단순반복,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난이도, 주체성 결여, 낮은 정서 인식력 등)로 유발될 수 있는데, 이 감정 자체는 우리에게 무익 · 무해하다.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루함이라는 감정 자체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다만, ‘고통처럼 지루함도 잠재력을 발휘할 행동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신호다(p.79).’ 이 신호가 이익일지 손해일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이번 주 동안 지루함의 신호에 부정적, 긍정적 반응을 모두 실행했다. 부정적 반응은 앞서 이야기한 게임, 그리고 스트리밍 방송에 정신을 쏟았다. 물론 돌아온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지루함과 불안, 불쾌 등 부정적 감정이었다. 이러한 감정들은 하나의 행동으로 싹 씻겨 나갔다.


〈노마드 코더〉의 ‘트위터 클론 코딩’을 공부하면서 나는 프로필 사진 편집 기능과 피드 내 프사 노출 기능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에 손도 대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할 수 없다는 마음 사이의 괴리가 지루함을 유발한 것이다. 밤낮이 바뀌어 새벽까지 깨어 있을 때,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손을 댔다. 날이 밝도록 고민하고 코딩한 결과, 내가 원했던 기능을 구현해냈다. 얼마나 몰입해 있었는지 정신 차렸을 때는 거의 8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 뿌듯함과 만족을 경험하고 나니 지루함이 가셨다.


지루함이 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모두 돌고 나니, 그제야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내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루함에 취약한 인간’이라는 점도 새삼 알게 되었다. 나 같은 부류는 지루함을 느끼는 빈도가 잦음은 물론, 더 자주 ‘꾸물거린다.’ 계획을 실행하기까지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이러한 원인은 ‘의미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계획을 짜긴 했지만, 내 삶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은 행동이라 하기 싫어 지고 금세 지루함을 느낀다.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앞으로도 지루함의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 채 우울모드에 빠져 무의미한 행동에서 허우적댔을 것이다. 이제는 약간이나마 대응할 수 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지루함을 자주 느끼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몰입하여 지루함을 해결하는지 알게 된 까닭이다. 이런 면에서 살짝 메타인지가 상승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감탄사가 나오거나 임팩트가 강한 책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얻는 게 큰 책이다. 두껍지도 않고 어려운 용어도 없었던 덕분에 지루함에 갇혀 허우적대면서도 완독할 수 있었으니까. 책이 전한 내용을 유념하면 자기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듯하다. 이제는 지루할 때마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합리화하지 말아야지. ‘지루함은 바로 행동하라는 신호(p.69)’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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