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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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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읽었다. 문학을 하도 안 읽어 버릇했더니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위기절정부터는 깊이 몰입해 읽어 7월의 독서 시간을 아꼈다. 역시 소설의 꽃은 위기와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면 등장인물 성격과 그에 따른 행동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주로 다루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한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읽었는가. 그녀의 세 번째 작품 맨스필드 파크도 묘사가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위기부터 시작해 발단으로 돌아가는 요즘 소설과 달리 옛 소설 특유의 느릿한 발단,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고 변명한다. 거기다 집중력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니, 이게 제일 컸구나. 아무튼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분이시지만, 제인 오스틴 선생께 나의 소홀한 태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맨스필드 파크는 워드 가의 세 자매 결혼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둘째(레이디 버트럼)가 결혼을 제일 잘했고, 첫째(노리스 부인)는 보통이며 막내(프라이스 부인)가 가장 가난하다. 막내의 질투로 세 자매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가 사는 것에 비해 자식이 늘어난 프라이스 부인이 화해를 청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세 자매는 친교를 회복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노리스 부인이 막내에 대한 배려인 척하며 버트럼 경에게 막내의 딸을 집안에 들여 후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 그 결과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포츠머스의 가난한 집을 벗어나 맨스필드 파크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이 벌이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며 종국에는 각자에게 걸맞은 결론으로 끝맺는다.

 

굵직한 등장인물을 나열하자면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와 버트럼 가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 버트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럼 경과 부인인 레이디 버트럼’, 첫째 아들 톰 버트럼’,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줄리아’, 패니의 첫째 이모인 노리스 부인’, 노리스 부인의 남편이 죽고 목사관의 새 주인으로 온 그랜트 부부’, 그랜트 부인의 남동생 헨리 크로포드’, 여동생 메리 크로포드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이야기를 이끈다. ‘패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되듯 온 탓에 눈치도 보이고 무시당해 굉장히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버트럼 일가 중 누구도 패니를 사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둘째 사촌오빠인 에드먼드가 패니를 배려하여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산책도 함께 했다. 그는 패니를 위해 자신의 세 마리 말 중 하나를 패니가 탈 수 있는 얌전한 암말로 교환까지 해 올 정도로 사촌 동생을 위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패니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남자는 에드먼드뿐이었다.

 

에드먼드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망나니 같은 형을 두었으니 아버지 버트럼 경이 사업으로 안티과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 대행으로 집안을 돌보았다. 집안의 평판에 위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예의 없는 언행을 극도로 경멸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곧은 심성이라도 사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눈앞이 흐려지는 법이다. 맨스필드에 크로포드 남매가 오자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의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활달한 성격에 매료되고 만다. 패니는 옆에서 그런 에드먼드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니, 이유인즉슨 에드먼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로포드 양 역시 에드먼드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는 재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남에게 주어지는 목사 서품을 받아 영지의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크로포드 양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외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의 예의 없는 언행은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지방 목사는 재산도 얼마 없으며 사회의 시선에서도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드먼드 앞에서 목사직을 비꼬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에드먼드는 완강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에드먼드에게서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품이나 외모가 너무 훌륭한 그였다. 크로포드 양이 관심을 완전히 접지 않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설득하면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고 욕심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전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톰이 중병을 앓고, 그녀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와 에드먼드의 첫째 여동생이자 러시워스 부인인 마리아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에드먼드가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톰의 병환을 에드먼드가 목사직을 포기하고 재산 상속받는 기회로 삼기를 바랐고, 또 눈만 감으면 야반도주도 아무 일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손한 태도에 에드먼드는 절망했다. 그는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이 그녀의 성정은 원래 착하나 가정교육과 주변 사람이 망쳤다고 되풀이했다. 그것도 잠시, 대부분 시간이 약인지라 에드먼드는 크로포드 양을 잊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목사직에 전념했다.

 

가장 악독한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인 크로포드 양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이다. 이 자식은 극에서도 그렇지만 읽고 있는 나도 기만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랜트 부인의 동생으로 찾아온 헨리는 누나의 소개로 버트럼 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트 부인은 마리아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동생인 줄리아와 잘해보기를 바랐다. 헨리의 바람기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등장하자 마리아와 줄리아 모두 그에게 반했다. 잘생기진 않았으나 다부진 몸매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과 행동이 숙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었다. 한번에 눈치챈 이 자식은 대놓고는 줄리아에게, 은밀히는 마리아에게 관심을 줬다. ‘대놓고은밀히가 나란히 있으면 십중팔구 진심은 후자에 통한다.

 

크로포드 양은 헨리에게 장난치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경고하지만 진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기남의 특권 정도로 여겼다. 헨리는 결국 마리아와 줄리아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맨스필드 파크를 떠난 것이다.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사랑하진 않지만 예정되어 있었던 러시워스 씨와 결혼했고, 줄리아는 원래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간 언니에게 고소함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했다. 헨리가 사라지면서 맨스필드 파크에 평화가 깃들었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부인이 되어 신혼여행을 떠났고, 마음이 풀어진 줄리아도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에드먼드와 패니, 이모부와 두 이모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헨리가 돌아왔다. 그는 마리아와 줄리아가 없자 패니가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패니는 자신의 매력에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패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나기로. 패니를 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진심이 되어갔다. 유혹되지 않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패니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차차 그녀를 배려하며 행동했다. 그녀가 대화를 거부하면 즉각 멈췄다.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오빠 윌리엄이 진급에 거듭 실패하자 자신의 숙부이자 제독인 크로포드 경을 설득해 윌리엄의 진급을 도왔다. 윌리엄이 복귀할 때 그는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함께 가기를 청했다. 패니가 포츠머스의 본가에서 지낼 때 (그녀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 친부모 집이었지만 힘들어했다.)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주고 맨스필드 파크로 돌아갈 때는 자기 남매와 함께 돌아가기를 청했다. 패니는 그의 지속된 호의에 점차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감정이 차차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도 이 자식에서 어쩌면으로 변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자식은 개자식이 분명했다. 결국 마리아와 야반도주하며 버트럼 가에 먹칠한 것이다. 결국, 패니의 안목이 옳았다. 한순간 패니와 헨리의 이어짐을 응원한 나 자신에게도 쌍욕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헨리의 자폭으로 맨스필드 파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번외로 가장 싫었던 인물은 패니의 첫째 이모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며 잘되면 자기 덕분, 안 되면 남 탓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또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뭐 하나 하면 생색이란 생색을 그렇게 낸다. 패니가 쉬는 꼴은 한순간도 참지 못하며 패니가 말을 하면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긴다. 사실 패니를 들였던 것도 자신의 남편 노리스 씨가 중환에 시달리기에 그가 죽으면 적적할 테니 일단 버트럼 가에 들여 키우다, 노리스 씨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 살면 된다는 이유로 버트럼 경을 설득했었다. 그러나 정작 노리스 씨가 죽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패니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뭐 덕분에 패니의 결말이 아름다웠지만, 그 행태가 괘씸했다. 노리스 부인의 결말은 그에 걸맞았다. 마리아와 러시워스 씨가 맺어진 것은 노리스 부인의 노력이었다. 가장 아낀 조카도 마리아였다.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노리스 부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 책임으로 이혼하고 온 마리아와 함께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 생활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오냐오냐 키워진 터라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데, 둘의 케미는 기대할 만한 정도이리라.

 

소설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므로 여성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의 여성상이나 생활상을 중심으로 봐도 재밌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표면적으로 즐긴 까닭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인물과 사건뿐이다. 이렇게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것으로 됐다고 여긴다.

 

이성과 감성은 읽고 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자매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하나는 감성적이어서 둘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다가 각자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감정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정말 즐겁게 읽어 두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도 올곧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헨리 같은 한량 위컴이 나온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답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해하면서 시작되어 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맨스필드 파크보다 오만과 편견이 더 재밌었다. 묘사에 있어서는 이 책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어쨌든 오스틴 선생의 책은 읽는 재미가 확실하니, 구비해둔 다른 소설 몇 권도 차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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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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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가엾게 여긴다. 제일 안타깝고, 제일 불쌍하고, 제일 억울하다. 또 나는 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게 여긴다. 제일 멍청하고, 제일 무능하고, 제일 답답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태도로 문학을 읽는다. 문학은 대체로 이런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있으니 읽는 책마다 내 얘기 같아 주인공과 상황에 나 자신을 곧잘 투영한다. 주인공은 인간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니 여기에 공감하는 내 모습은 가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는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지하 인간처럼.

 

소설 속 주인공이자 화자인 지하 인간은 젊은 시절 속세에 질려 지하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지하에서 일명 모두 까기를 시전하며 여러분은 멍청하고 자신은 합리적이라고 합리화하며 지낸다. 전면에 나서면 비웃음당할 것이 뻔하니 그곳에서 글로써 세상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1부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지하에서 쓴 이야기이고, 2부는 그가 어째서 지하생활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어낸다.

 

내가 그와 동일시한 부분은 상당히 찌질하다는 점이다. 아싸의 특징은 다 가지고 있다. 자기만 잘났고 다른 사람은 무시해도 그만인 수준이다. 그러나 정작 그는 자신이 무시하는 타인에게 멸시당한다. 그는 속으로 복수를 생각한다. ‘이런이런 상황에서 나는 저런저런 행동을 할 거야!’ 생각은 아주 논리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문제는 생각에서 그친다는 것뿐.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겁도 나고 걱정도 된다. 그래서 그는 다시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너희가 가여우니 이번만 참아 준다. 다음부터는 내가 어울리나 봐라.’ 그 후 그는 타인들과 어떻게든 어울리고 싶어하고 이 생각의 고리는 반복된다. 전형적인 아싸가 인싸와 어울리고 싶어하는그림이다.

 

그러나 그의 그런 태도는 젊을 적 모습일 뿐이다. 지하생활자가 된 후, 여전히 젊은 시절의 분노와 열등감을 지니고는 있지만, 사상은 진화했다. 그는 세상을 복잡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러분2x2=4라는 사실에 집중하고, 세상은 수학적이라며 단언할지 모르지만, 지하 인간이 보기에 인간이란 족속은 일관성이 없어서 2x2=4와 같은 답을 항상 가져오지 못한다. 그렇기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이므로, 2x2=4처럼 답이 있는 공식화는 살아가는 게 아닌 죽어가는 일이 된다.

 

「그리고 누가 알겠느냐마는 (장담할 순 없으니까.) 인류가 지향하는 지상의 모든 목적은 오직 목적 달성을 위한 이 끊임없는 과정에, 달리 말해 삶 자체에 있는 것이지, 어차피 2x2=4가 될 수밖에 없는 목적 자체에, 즉 공식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x2=4는 이미 삶이 아니라, 여러분, 죽음의 시작이 아닌가. - p.56」

 

그의 찌질한 젊은 시절과 복잡계적 시선이 무슨 상관인가. 갖다 붙이기 나름이겠으나 젊은 시절 그의 찌질함은 표면적인 부분이고,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인간과 다르지 않다. 생각이나 감정이 마음대로 조종이 되던가? ‘변덕이 죽 끓듯 한다거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 속내의 알 수 없음을 비하하는 표현이지만, 지금은 정답으로 여겨지는 말들이다.

 

젊은 시절 그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 표현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관성과 정답을 지향하는 세계에서 그의 변덕은 수치스러운 행위였기에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거나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괴로워했고 외로워졌다. 보편적인 시선에 어긋난 그가 대화할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친구 잡으러 갔던 유곽에서 리자를 만났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골려줄(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배려였던) 작정으로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아무도 그를 의지하거나 그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으나 리자는 예외였다. 그는 신이 나서 그녀를 자신의 집까지 초대했다. 다음날 자신의 섣부른 결정에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하인과 싸운 도중에 리자가 찾아왔고,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그녀를 속였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이번에는 몹쓸 말을 내뱉어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리자는 슬픔에 잠긴 채 그의 집을 떠나고, 그는 뒤늦게 후회하며 쫓아가지만 그녀를 붙잡지 못한다. 이 또한 공식화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불러온 결과였다.

 

적어도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인 듯하다. 생각으로는 굉장히 이성적이지만, 감정에 휘둘려 당치도 않은 말로 기회를 날려버린다. 혹은 자존심으로 인해 기회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덕이나 갈등이 없다면 성장하기란 불가능하다. 변덕을 부정하고 일관성을 옹호하기보다, 차라리 변덕을 인정하고 반성해 변덕의 폭을 좁히는 게 더욱 살아있는 결정이리라.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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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데미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인데, 읽는 문학마다 현재 나의 감정을 대변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문학을 읽는 것일까. 한때는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다. 지금은 도피 차원에서 문학을 읽고 있다. 뭐로 보나 진지하게 읽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차피 세상 살아감에 있어 기술만으로 살 수 없고, 이성만으로 살 수 없으니 정신에 지지대를 세워주기에는 문학이 가장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게 아닌가. 물론 이 생각도 지하 인간의 말처럼 언제 또 변해 문학을 등한시할지 모르기 때문에 장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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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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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음식이 갑자기 생각날 때는 그것이 함유한 영양분을 우리 몸이 필요로 한다는 설이 있다. 어느 날 평소에는 찾지 않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지면 그 음식 속 영양분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내가 데미안을 손에 집었을 때가 꼭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학을 꽤 오랜 시간 멀리했다가 다시 친해지고자 집에 쟁여둔 세계문학전집(민음사)을 하나씩 읽기로 마음먹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 첫 번째였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제목을 하도 들어서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어 더욱 익숙했다. 친숙하지만 전혀 모르는 이 책은 독서 구미를 당겼다. 그리고 뒤늦게 읽은 나 자신이 조금 안타까웠다. 딱 나에게 필요한 내용이었으므로.

 

간략한 줄거리로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단면만을 가르치는 반쪽 세상에서 벗어나 세상 전체를 인식하면서 세상의 격정을 버티고 사랑을 배우며 주체적인 자아가 되는 성장소설이다. 그의 모든 각성은 데미안으로 시작되어 데미안으로 지속하며 데미안으로 마감한다.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 p.83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대체로 이분법적으로 학생을 구분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모범생과 문제아, 인싸와 아싸 등등. 중간지대가 없었다. 이런 구분은 어릴 적 나를 가르친 말들에서도 존재한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착한 짓과 나쁜 짓, 깨끗함과 더러움, 말을 잘 듣느냐 안 듣느냐……. 어린 싱클레어가 어렴풋이 느낀 환한 세계다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세계는 경계가 맞닿아 있으면서도 경계가 확실했다. 그리고 이런 구분은 다른 한쪽을 말살하려 든다. ‘환한 세계에 있지 않으면 다른 세계의 존재이며, ‘환한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말이다. 반대도 마찬가지.

 

나에게 있어 세계의 구분은 나 자신을 규정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예를 들어, 현실을 영어 가능영어 불가능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고 치자. 나는 영어를 바라지만 불가능에 있으므로 항상 가능을 보며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발버둥은 쳐보지만 이내 지쳐버리고 심화된 불가능으로 나를 몰아댄다. 결국, ‘영어 가능세계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예는 내 삶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을 따르지 못해 여태껏 나를 망치며 지내왔다.

 

그러나 데미안의 말대로 세계를 구분이 아닌 온전한 하나로 인식하면 나의 삶에서 잘못된 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달이 앞면만 보인다고 뒷면을 부정할 수 없듯이, 내가 보는 세계의 앞면만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생각이란, 우리가 그걸 따라 그대로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p.85)’기에 내가 따를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p.116

 

무가치함에서 벗어나 보다 온전한 자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건재한다. 산다는 것은 행동의 문제이고, 가능성은 행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행동반경에는 세계 한쪽만 존재하지 않는다. 방황 속에서 목표를 이룩하기 마련이고, 이룩한 결과는 다시 방황의 씨앗이 된다. 이는 합일의 단계이기도 하다.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정신일도 하사불성(情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환한 세계다른 세계를 하나로 합하여 인식해야 비로소 자아는 굳건해질 준비를 마치게 된다. 새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 꿈틀대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알에서 나오지 않은 새는 새가 아니다. 알 속에서 아무리 새의 형상을 갖추었다 한들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과연 새라고 할 수 있을까. 상식이 아니라 본질에서 말이다. 알은 새를 규정한다. 진정한 새가 되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 훨훨 날아가야 한다. 신에게로, 압락사스에게로.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를 규정하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싱클레어는 이렇게 정의했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 p.172

 

압락사스는 세계를 구분 짓는 신이 아니다. 세계 그 자체인 신이고, 어떠한 가능성도 받아들이는 신이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이정표가 되어주는 신이다. 한마디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앞서 근거 없는 설을 언급한 까닭이 여기 있다.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실리적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 위해서 말이다. 정신적 버팀목이랄까. 그동안 나는 구분된 세계에 맞춰서 나를 재단하고 조립하려고 했다. 맞지 않는 퍼즐에 억지로 끼워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고들 하니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모두가 알 속의 새로 사는 세계에서는, 하나하나가 구분 지어지는 세계에서는 규정된 채로 사는 게 맞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고독도, 고통도 감내할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길은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 p.191

 

마지막으로 에바 부인이 과정의 고됨을 하소연하는 싱클레어에게 말했듯이, 지향하는 꿈이 전부라고 집착하거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알을 둘러싸는 일이다. 새 꿈이 생기면 다시 둘러싸려는 알을 깨부수고 날아가야 한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위해 끊임없는 세계와의 투쟁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함의 속성이 빠른 망각임을 감안하면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핵심이다.

 

아직 나는 알 속의 새다. 그리고 어제까지 나는 알 속이 안전하다고 여겼다. 깨부술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알이,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내 괴로움의 근간이었다. 아마도 내 괴로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부서질 알이라면 애초에 둘러싸이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제는 사소하나마 깨뜨리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싱클레어처럼 내가 새로 태어나려는 일은 어렵겠지만, 에바 부인 말대로 내가 충실할 꿈을 찾는다면 길은 쉬워지리라. 그 여정의 첫걸음을 떼었다고 감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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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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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중고딩 시절의 전부를 만화, 애니메이션, 판타지 소설로 가득 채웠으면서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단순히 취미와 쾌락을 채우는 장난감쯤으로 치부했다. 마블의 어벤저스 시리즈, 요네스 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에서 내가 뭘 배우거나 깨달은 것 따윈 없었다. '그냥 심심함을 달래줘서 좋았고 재밌었다' 정도만 느꼈을 뿐이다. 사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소설집도 그런 이유에서 구매한 책이었다. 작년인가, 이 출간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기대평을 남기는 것을 보고 혹한 것도 있었다. 얼마나 재밌길래? 그러나 중히 여기는 마음은 없었기에 남는 시간에 깔짝대며 읽기로 했다.

 

바빌론의 탑

 

첫 번째 소설인 바빌론의 탑까지만 해도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국이었던 바빌론에서 쌓았던 탑을 주제로,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닌 신에 대한 만남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하늘까지 닿은 탑은 천장 바닥을 뚫고 신의 세계로 도달하려 한다. 탑과 천장 사이의 공간을 뚫던 도중, 홍수와도 같은 물을 만나게 되고 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주인공 힐라룸은 탑과 천상 사이에 갇히고 만다. 캄캄한 어둠을 더듬거려 결국 그 공간을 탈출한 그의 눈에 밝은 빛이 비친다. 신의 세계인가. 아니, 돌아온 시각에는 그가 고대하던 것은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상인에게 힐라룸은 여기가 어딘지 묻고, 바빌론으로 향하는 길임을 듣게 되면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반전 요소라 말해줄 순 없다.

 

아무튼, 발상이 새롭고 재밌긴 했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이미 편견을 가지고 있으므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봤기 때문이다. 심심풀이로 읽기 부담 없겠다 싶어 다른 책 읽으면서 휴식용 책으로 빼놓았다. 시간이 남으면 읽기로. 예상했겠지만, 이 생각은 어김없이 박살 났다.

 

이해

 

적어도 책의 두 번째 소설인 이해는 읽고 판단했어야 했다. 나는 지적 욕심이 많고, 뇌과학도 좋아한다. 가끔 완전한 이성을 가지고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해는 그런 나의 관심사를 한 번에 휘어잡았을뿐더러 최고의 몰입감까지 선사했다.

 

''는 뇌를 다쳐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였지만, 특수 호르몬제로 인해 손상된 뇌가 회복되면서 깨어난다. 어느 날, 통화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음을 깨닫는다. 자신의 뇌가 비상식적으로 발달했음을 안 것이다. 그 원인은 호르몬제에 있었다. ''는 병원의 실험에 응하는 척하면서 호르몬제를 추가로 맞는다. 뇌가 더 고효율을 보이자 ''는 병원을 따돌려 단독 행동에 돌입한다. FBI가 그를 추적하지만, 그는 그들을 훨씬 상회하는 지적 능력으로 떼어내는데 성공한다. 이제 오로지 자신의 지적 능력 강화에 힘을 쏟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증권 계좌가 인위적으로 공격받는다. 자신처럼 뇌가 강화된 존재가 하나 더 있음을 인지하고, 차차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는 처지임을 알게 되어 ''는 그 녀석을 없애기 위해 그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는 ''보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였다. 도리어 그에게 공격받고 ''의 정신이 붕괴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의 글쓰기 능력이 한참 모자라 줄거리로는 내가 겪은 몰입감을 전달할 수 없다. 양해 바란다. 내가 이 책을 잘못 판단했음은 한밤중에 읽으며 깨달았다. 졸렸음에도 책을 덮기 싫어 조금만 더 참자, 되뇌며 읽었다. 다음 소설의 제목에 도착해서야 홀가분하게 책을 덮었다. 다음 날부터 이 책은 조심스럽게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다. 한 번 펼치면 쉽게 덮을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네 인생의 이야기

 

헵타포드라 명명한 외계인으로부터 언어학자인 ''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딸을 위한 문장을 헵타포드 식으로 서술하는 이야기다. 언어를 배우는 현실과 딸을 위한 문장이 교차로 나오다, 마지막에는 현실 속에서 사고하는 과정으로 합쳐지며 헵타포드 식 문장이 현실과 별개로 떨어진 사건이 아니라 현실 속에 묻어있는 미래임을 암시한다.

 

네 번째 소설이자 표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표제도 ''로 적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나라의 대접받고 싶은 심리를 반영해서 인지 '당신'으로 존칭해줬다.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닌데, '당신'을 보고 들어와 ''로 지칭되니 어색한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니까 넘어가자.

 

인간은 사용하는 언어문화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다. 같은 사진을 영어권과 한자권의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전자는 부분에 집중하고, 후자는 전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실험이 생각났다. ''가 딸을 위한 문장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헵타포드 식 언어를 익히면서 사고방식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리학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역시 모든 학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SF 소설

 

이 외에도 5편의 소설이 있다. 전부 재밌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몰입해서 읽은 두 편을 가져왔다. (첫 번째는 나를 까기 위해서였다.)

 

SF라고 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뿌슝빠슝하는 종류의 액션 영화와 소설들이다. 간혹 인터스텔라마션같은 것도 있지만, 주로 액션 쪽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SF라는 장르에 편견이 있었는지도. 공상 과학(Science Fiction)은 말 그대로 과학적 상상력을 풀어낸 작품을 말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가 테드 창이 아닐까 한다. SF 끈이 짧아서 확신은 못하지만.

 

이 책 하나 읽었다고 모든 장르소설을 받아들일 만큼 나의 그릇은 크지 않다. 아니, SF마저도 팍팍 읽지 않을 것이다. 시간도 넘쳐나지 않고. 여전히 휴식의 용도로 읽을 테지. 다만, 무작정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 같다. 적어도 테드 창 소설은 가리지 않고 볼 예정이다. 조만간 도 사서 읽어야겠다. 올여름이 오기 전에 먼저 시원해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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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 2020-03-30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단편 제목은 네(딸) 인생 이야기(Story of your life)이지만, 책 제목은 Stories of your life로 단편 제목과는 달라서, 딸이 아니라 ‘당신(독자)의 이야기들‘이라네요. 작품집에 실린 모든 단편들은 다름아닌 당신의 이야기라는 깊은 뜻...

Real_Bird 2020-03-30 21:1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영어를 잘 몰라서 오해했네요, 제가 ㅎㅎ;;
올바른 정보 감사합니다!
 
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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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나의 몇 안 되는 절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친한 사이끼리는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만날 때마다 속에 담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러나 늘 친구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보지 못한 기간 동안 바뀐 친구의 생각이나 전혀 들려주지 않았던 과거사까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속에 담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한 예가 아닐까 한다.

 

사람 속을 모르는 것은 비단 타인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 듯하다. 나조차도 내 속마음을 모를 때가 참 많다. 마치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난 뒤 곱씹지 않고서야 순간순간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특히 낯선 사람들을 이제 막 만나는 나이대라면 더 그럴 것이다. 작중 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인물조차도 어리숙했던 때에 다잡지 못한 마음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소설은 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선생님(1)과 부모님(2)의 이야기와 선생님이 에게 보내는 유서(3)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선생님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생기는 의 마음, 그리고 숨겨두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편지로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순수함, 혹은 어리석음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그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이따금 내게 보여준 쌀쌀맞은 인사나 냉담해 보이는 행동은 나를 멀리하려는 불쾌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 - p.24~25

 

많은 나쁜 행동이 있지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아무래도 의도성이 없는 나쁨이리라. 예를 들면, 5살짜리 동생이 내가 아끼는 책에 낙서하고 찢어 놓았다면 내 속은 끓겠지만 그 아이에게 화를 낼 수는 없다. 그 녀석에게는 나를 화나게 만들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는 선생님의 초연한 태도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주 왕래함에 따라 간혹 질문을 던졌다. 그중에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한 것은 그의 뒤를 쫓은 일이었다.

 

선생님은 매달 친구의 묘를 찾아갔다. ‘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행동은 선생님이 가진 죄의식을 건드는 행위였다. 그의 초연함은 과거사로부터 용서를 구하며 마주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게는 의도성이 전혀 없었지만 선생님에게 극단적 결심의 단초를 제공했다. 선생님이 에게 털어놓으려 했을 때 는 아버지가 위독해 고향에 있었고, 그 사이 선생님은 마지막 편지를 보낸 후 생명줄을 놓아버렸다.

 

선생님의 죄책감

 

나는 남한테 속았다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았지.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우리 아버지 앞에서는 착한 사람인 것 같았던 그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으로 변했거든. 난 그들한테서 받은 굴욕과 손해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왔네. 아마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살겠지. 죽을 때까지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복수하지 않고 있네. 생각하면 나는 실제로 개인에 대한 복수 이상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들만 증오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대표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일반을 증오하고 있거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 p.88

 

마지막 편지에는 선생님이 당한 두 번의 배신이 적혀 있었다. 첫 번째 배신은 숙부로부터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대학을 다녀야 했던 선생님은 자신의 재산관리를 숙부에게 맡겼다. 부모님 살아생전부터 돌아가신 후까지 선생님에게 친절히 대해주었으므로, 선생님은 숙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다 숙부가 자신의 딸을 선생님과 결혼시키려 하면서 선생님은 한 치의 의심이 생겨났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숙부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만나지 않았던 게 새로 보였다. 전에는 정말 일하느라 바쁘게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 바쁜 척하는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선생님은 숙부와 싸우고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의 일부만 되찾은 채 고향을 떠나왔다.

 

숙부에게 속았던 당시의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뼈저리게 느꼈지만,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했을 뿐이지 그래도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세상 사람들이 어떻든 나만은 훌륭한 인간이라는 신념이 어딘가 있었던 거지.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하자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돌더군. 사람들에게 질린 나는 자신에게도 질려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네. - p.265

 

두 번째 배신은 도시에서 겪었다. 선생님은 지낼 곳을 찾다 어느 하숙 치는 집에 들어간다. 주인아주머니와 따님인 아가씨만 사는 집이었다. 그는 그들과 친해지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아가씨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새로운 하숙인을 구하자 선생님은 자신의 친구 K를 소개해 하숙을 들였다. 자신처럼 K도 마음의 안정을 얻기를 바란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면서 선생님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K가 아가씨를 좋아하는 게 보이고, 아가씨와 K가 어울리는 것이 자신보다 더 친근해 보였다. 선생님은 아가씨를 얻기 위해 K를 비난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말해 K 몰래 따님을 주십사 요구했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K는 스스로 경동맥을 찔러 자살하고 말았고, 그것이 선생님의 죄의식이 되었다.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배신을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저질렀다는 사실에 대해서.

 

외부로부터 내부로 들어온 배신과 내부로부터 외부로 발현된 배신을 모두 겪은 선생님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멀리했다. 자신을 믿는 행위는 세상을 버티는 근간이다. 이것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은 사상누각(沙上樓閣)과 다름없다. 언젠가 사사로운 충격만 들어와도 금세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가 보기에 선생님은 지식인이며 세상을 통달한 듯한 초연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 마음은 항상 무너질 것을 염려해 충격을 피하는 성향이 겉으로는 그렇게 비추어진 것뿐이었다.

 

내가 그 감옥 안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또 그 감옥을 도저히 부술 수 없게 되었을 때 결국 내가 가장 손쉬운 노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했네. 자네는 왜냐며 눈을 동그랗게 뜰지도 모르겠지만 늘 내 마음을 죄어오는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그 힘은 내 활동을 모든 방면에서 막아내면서 나를 위해 죽음의 길만을 자유롭게 열어두고 있네.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한다면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그 길밖에 없는 거지. - p.270

 

선생님이 편지를 보낸 이유

 

선생님은 굉장히 약한 사람이었지만, 헛된 지식인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드러내지 않은 고민 끝에 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정하면서도 가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 p.151

 

그가 자신의 부인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심정을 에게 밝힐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젊은 날과는 다르게 의 태도가 솔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자신의 약한 부분을 찔렀더라도 선생님은 가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극단적 선택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지 못한 탓에 이뤄진 결과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선생님은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 동정심을 요구하는 게 아닌 배울 점을 알려주는 자세, 그리고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물론 선생님의 자살은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라 무책임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 이야기이다. 자살자가 겪은 무게는 누군가가 평가할 만큼 하찮지 않다.

 

이렇게 용기 내서 편지를 쓸 정도였다면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선생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사람에 대한 믿음은 딱 에게 보낸 편지까지였다. 자신을 비롯한 타인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태도는 세상을 대하는 가장 비극적인 방식이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에. 선생님은 친구도 만나고 부인도 있고 까지 만났지만 정작 삶은 고립된 채였다.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변한다. 겉으로는 일관성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시시각각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오가고 때에 따라서는 평소 사소하게 여기던 일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지나 어떤 것보다도 삶을 복잡미묘하게 만드는 것 또한 마음이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2부에서는 의 아버지가 병세로 인해 몸져누워 있다. 육체에 병이 든 것이다. 이것은 선생님의 상황과 비교된다. 육체의 병은 눈에 보이기에 때에 맞춰 대응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병은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미리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은 의 충격은 아버지의 병세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도시행 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마음을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더 자주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처를 마주하기란 굉장히 두렵고 무섭고 힘겨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놔두거나 회피하기만 한다면 더욱 곯으면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아마도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일종의 마음 챙김이다. 그래도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와의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 길 속 모르는 사람의 마음을 일면이라도 표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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