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스필드 파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6
제인 오스틴 지음, 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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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두꺼운 책을 읽었다. 문학을 하도 안 읽어 버릇했더니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읽고 있었을 수도 있으나, 그나마 위기절정부터는 깊이 몰입해 읽어 7월의 독서 시간을 아꼈다. 역시 소설의 꽃은 위기와 절정이 아닌가 한다.

 

제인 오스틴의 강점이라면 등장인물 성격과 그에 따른 행동 묘사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주로 다루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취향인데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좋아한다면서 나는 왜 이렇게 천천히 읽었는가. 그녀의 세 번째 작품 맨스필드 파크도 묘사가 뛰어나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위기부터 시작해 발단으로 돌아가는 요즘 소설과 달리 옛 소설 특유의 느릿한 발단, 전개가 발목을 잡았다고 변명한다. 거기다 집중력이 거의 소멸하다시피 한 것도 한몫 거들었다. 아니, 이게 제일 컸구나. 아무튼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난 분이시지만, 제인 오스틴 선생께 나의 소홀한 태도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맨스필드 파크는 워드 가의 세 자매 결혼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중 둘째(레이디 버트럼)가 결혼을 제일 잘했고, 첫째(노리스 부인)는 보통이며 막내(프라이스 부인)가 가장 가난하다. 막내의 질투로 세 자매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가 사는 것에 비해 자식이 늘어난 프라이스 부인이 화해를 청하면서 표면적으로나마 세 자매는 친교를 회복한다. 나서기 좋아하는 노리스 부인이 막내에 대한 배려인 척하며 버트럼 경에게 막내의 딸을 집안에 들여 후원하는 것을 적극 추천, 그 결과로 우리의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포츠머스의 가난한 집을 벗어나 맨스필드 파크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서 맺어진 인연이 벌이는 일들로 인해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며 종국에는 각자에게 걸맞은 결론으로 끝맺는다.

 

굵직한 등장인물을 나열하자면 주인공 패니 프라이스와 버트럼 가의 둘째 아들 에드먼드 버트럼’,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 버트럼 경과 부인인 레이디 버트럼’, 첫째 아들 톰 버트럼’, 첫째 딸 마리아와 둘째 딸 줄리아’, 패니의 첫째 이모인 노리스 부인’, 노리스 부인의 남편이 죽고 목사관의 새 주인으로 온 그랜트 부부’, 그랜트 부인의 남동생 헨리 크로포드’, 여동생 메리 크로포드가 있다.

 

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고 이야기를 이끈다. ‘패니는 가난한 집안에서 입양되듯 온 탓에 눈치도 보이고 무시당해 굉장히 신중하고 소심한 성격이다. 버트럼 일가 중 누구도 패니를 사근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일하게 둘째 사촌오빠인 에드먼드가 패니를 배려하여 대화도 많이 나누고 산책도 함께 했다. 그는 패니를 위해 자신의 세 마리 말 중 하나를 패니가 탈 수 있는 얌전한 암말로 교환까지 해 올 정도로 사촌 동생을 위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패니의 마음을 차지한 유일한 남자는 에드먼드뿐이었다.

 

에드먼드는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그는 재산에 대한 욕심도, 사교계에서 주목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망나니 같은 형을 두었으니 아버지 버트럼 경이 사업으로 안티과에 갔을 때 그는 아버지 대행으로 집안을 돌보았다. 집안의 평판에 위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예의 없는 언행을 극도로 경멸했다. 그러나 아무리 올곧은 심성이라도 사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눈앞이 흐려지는 법이다. 맨스필드에 크로포드 남매가 오자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의 건강미 넘치는 외모와 활달한 성격에 매료되고 만다. 패니는 옆에서 그런 에드먼드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니, 이유인즉슨 에드먼드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그가 사랑에 빠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크로포드 양 역시 에드먼드를 사랑하긴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다. 그는 재산에 욕심을 내지 않고 차남에게 주어지는 목사 서품을 받아 영지의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크로포드 양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메리 크로포드는 전형적인 외적인 가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의 예의 없는 언행은 이런 이유에 기인했다. 지방 목사는 재산도 얼마 없으며 사회의 시선에서도 주목받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녀는 에드먼드 앞에서 목사직을 비꼬아 포기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에드먼드는 완강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그녀는 에드먼드에게서 관심을 끄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인품이나 외모가 너무 훌륭한 그였다. 크로포드 양이 관심을 완전히 접지 않자 에드먼드는 자신이 설득하면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고 욕심을 포기하리라 생각했다. 결국 그들의 생각은 전부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톰이 중병을 앓고, 그녀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와 에드먼드의 첫째 여동생이자 러시워스 부인인 마리아가 야반도주를 하면서 에드먼드가 진실에 눈을 뜬 것이다. 그녀는 톰의 병환을 에드먼드가 목사직을 포기하고 재산 상속받는 기회로 삼기를 바랐고, 또 눈만 감으면 야반도주도 아무 일 아니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불손한 태도에 에드먼드는 절망했다. 그는 그녀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은 것이 그녀의 성정은 원래 착하나 가정교육과 주변 사람이 망쳤다고 되풀이했다. 그것도 잠시, 대부분 시간이 약인지라 에드먼드는 크로포드 양을 잊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목사직에 전념했다.

 

가장 악독한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인 크로포드 양의 오빠 헨리 크로포드이다. 이 자식은 극에서도 그렇지만 읽고 있는 나도 기만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식이다. 그랜트 부인의 동생으로 찾아온 헨리는 누나의 소개로 버트럼 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랜트 부인은 마리아에겐 약혼자가 있으니 동생인 줄리아와 잘해보기를 바랐다. 헨리의 바람기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헨리가 등장하자 마리아와 줄리아 모두 그에게 반했다. 잘생기진 않았으나 다부진 몸매와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과 행동이 숙녀들의 마음을 빼앗은 것이었다. 한번에 눈치챈 이 자식은 대놓고는 줄리아에게, 은밀히는 마리아에게 관심을 줬다. ‘대놓고은밀히가 나란히 있으면 십중팔구 진심은 후자에 통한다.

 

크로포드 양은 헨리에게 장난치지 말고 적당히 하라고 경고하지만 진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인기남의 특권 정도로 여겼다. 헨리는 결국 마리아와 줄리아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맨스필드 파크를 떠난 것이다. 마리아는 큰 충격을 받았고 홧김에 사랑하진 않지만 예정되어 있었던 러시워스 씨와 결혼했고, 줄리아는 원래 자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채간 언니에게 고소함을 느끼며 상처를 회복했다. 헨리가 사라지면서 맨스필드 파크에 평화가 깃들었다. 마리아는 러시워스 부인이 되어 신혼여행을 떠났고, 마음이 풀어진 줄리아도 따라나섰다. 집안에는 에드먼드와 패니, 이모부와 두 이모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헨리가 돌아왔다. 그는 마리아와 줄리아가 없자 패니가 상당한 매력이 있음을 느꼈다. 게다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패니는 자신의 매력에 넘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결심했다. 어떻게든 패니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떠나기로. 패니를 대할수록 그의 마음은 진심이 되어갔다. 유혹되지 않는 마음이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는 패니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란 노력을 유지했다. 처음에는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고 끊임없이 들이댔으나 차차 그녀를 배려하며 행동했다. 그녀가 대화를 거부하면 즉각 멈췄다. 자신을 불편하게 느끼면 자리를 피했다. 그녀의 오빠 윌리엄이 진급에 거듭 실패하자 자신의 숙부이자 제독인 크로포드 경을 설득해 윌리엄의 진급을 도왔다. 윌리엄이 복귀할 때 그는 자신의 마차를 이용해 함께 가기를 청했다. 패니가 포츠머스의 본가에서 지낼 때 (그녀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 친부모 집이었지만 힘들어했다.) 그녀를 찾아와 위로해주고 맨스필드 파크로 돌아갈 때는 자기 남매와 함께 돌아가기를 청했다. 패니는 그의 지속된 호의에 점차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랑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감정이 차차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감정도 이 자식에서 어쩌면으로 변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 자식은 개자식이 분명했다. 결국 마리아와 야반도주하며 버트럼 가에 먹칠한 것이다. 결국, 패니의 안목이 옳았다. 한순간 패니와 헨리의 이어짐을 응원한 나 자신에게도 쌍욕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헨리의 자폭으로 맨스필드 파크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되찾으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번외로 가장 싫었던 인물은 패니의 첫째 이모 노리스 부인이었다. 나서기 좋아하며 잘되면 자기 덕분, 안 되면 남 탓하는 유형의 인물이다. 또한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뭐 하나 하면 생색이란 생색을 그렇게 낸다. 패니가 쉬는 꼴은 한순간도 참지 못하며 패니가 말을 하면 배은망덕한 존재로 여긴다. 사실 패니를 들였던 것도 자신의 남편 노리스 씨가 중환에 시달리기에 그가 죽으면 적적할 테니 일단 버트럼 가에 들여 키우다, 노리스 씨가 죽으면 자신과 함께 살면 된다는 이유로 버트럼 경을 설득했었다. 그러나 정작 노리스 씨가 죽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패니를 거둬들이지 않았다. 뭐 덕분에 패니의 결말이 아름다웠지만, 그 행태가 괘씸했다. 노리스 부인의 결말은 그에 걸맞았다. 마리아와 러시워스 씨가 맺어진 것은 노리스 부인의 노력이었다. 가장 아낀 조카도 마리아였다. 그러나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자 노리스 부인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 책임으로 이혼하고 온 마리아와 함께 다른 지방으로 이사해 생활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오냐오냐 키워진 터라 교만하고 예의가 없는데, 둘의 케미는 기대할 만한 정도이리라.

 

소설은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므로 여성 작가의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의 여성상이나 생활상을 중심으로 봐도 재밌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표면적으로 즐긴 까닭에 내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은 인물과 사건뿐이다. 이렇게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우니 그것으로 됐다고 여긴다.

 

이성과 감성은 읽고 나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자매 중 하나는 이성적이고 하나는 감성적이어서 둘 사이의 갈등이 벌어졌다가 각자에 맞는 상대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감정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오만과 편견은 정말 즐겁게 읽어 두 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도 올곧은 남자 주인공 다아시와 헨리 같은 한량 위컴이 나온다. 다만 여기서는 제목답게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오해하면서 시작되어 그 오해를 푸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개인적으로 맨스필드 파크보다 오만과 편견이 더 재밌었다. 묘사에 있어서는 이 책이 더 나은 것도 같고. 어쨌든 오스틴 선생의 책은 읽는 재미가 확실하니, 구비해둔 다른 소설 몇 권도 차차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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