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조선인 > 아가르타와 파이파티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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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2 ㅣ 오늘의 일본문학 4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사쿠라가 우에하라 뜻대로 남쪽으로 튀기로 작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사쿠라의 마음을 의심했다. 한때는 전설적인 투사였지만, 결혼 후에는 생계에 급급하여 운동과 멀어진 선배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생활고를 못 견뎌 남편마저 활동을 중단하도록 종용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이혼 후 아예 칩거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1권의 사쿠라는 우에하라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질질 끌려다니는 인상을 준 터라, 사쿠라가 섬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더랬다.
2권을 읽고 보니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비록 사쿠라의 변모가 너무 돌발적이고, 요코와 지로, 모모코까지 일사불란하게 단합하는 게 너무 극적인 비약이다 싶지만, 해피엔딩의 소설이 싫은 건 아니다. 생각해 보니 사쿠라의 찻집 이름이 아가르타였다. 파이파티로마로 떠나려는 우에하라와 정말 근사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지는 게 뻔한 싸움이라도 함께 싸우고, 남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이어도 괜찮은 건,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좌익운동이 슬슬 힘이 빠지니까 그 활로로서 찾아낸 게 환경이고 인권이라는 우에하라의 말은 미심쩍다. 포스트 냉전 이후 미국이 필사적으로 적을 찾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라고까지 격하시키는 건 심했다. 오히려 생활의 모든 면면에서 운동이 전파되는 양식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나서서 싸워야 사회가 변하는 것처럼, 구석구석에서 싸워야 사회가 더 쉽게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저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우에하라는 참 매력적인 인물인데, 가장 확실하게 내 뒷통수를 친 건 지로에게 남긴 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라니! 이건 정말 멋지다. 나중에 마로에게, 해람에게 꼭 써먹어야지. 가스똥 아빠의 명언과 함께 기억하리라. "아빠는 네가 어른이 되면, 네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 넌 아빠랑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니까." 나의 아이들이 자기답게 크기를, 하지만 엄마, 아빠는 평생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알아주기를, 바라게 되었다.
* 아가르타 (Agharta)
원래는밀교 전설에 나타나는 고대의 이상향이지만, 통상적으로는 지구 내부에 있다는 지저왕국을 일컫기도 한다. 처음 올라프 젠슨이라는 노르웨이 선원의 항해수기에 등장하였고, 이후 윌리스 에머슨은 '아가르타- 지저도시의 비밀' 이란 책에서 제이슨의 배가 북극점을 통해 지구의 내부로 들어갔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구 중심에 있는 희뿌연 태양에 의해 빛을 받는다는 곳으로서 지구공동설의 신봉자들은 이곳의 수도가 바로 티벳의 이상향인 샴발라의 진정한 위치라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