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넘이 본 KOREA

세계적 사진작가들이 한국을 기록하는 2008년 한겨레신문사 창간 20돌 프로젝트…미리 본 구보다 히로지의 자연, 스튜어트 프랭클린의 DMZ, 엘라이 리드의 연예산업

▣글·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한 덩치 큰 외국인이 크지 않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노동자가 늘 넘쳐나는 곳이라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정체를 알고 나면 아주 특별하다. 그는 전세계에 60여명밖에 없는 매그넘 사진가 중 한 명인 엘라이 리드다.

리드는 200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 20돌에 맞춰 진행될 사진전과 사진집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순차적으로 방문, 기록을 하기 시작한 매그넘의 사진가 20명 중 한 명이다. 2006년 9월 구보다 히로지(일본), 10월 스튜어트 프랭클린(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을 기록하고 있다. 12월에 입국한 엘라이 리드는 1월 초까지 한국에서 영화와 연예사업 전반을 다루게 된다. 12월21일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연습 장면에 이어 29일 밤엔 <씨네21>의 영화 <묵공>의 출연진 취재 현장을 찍었다. 나머지 매그넘 사진가들은 각각의 분야에 따라 앞으로 속속 입국할 예정이다. 네 번째 방문하는 사진가는 이안 베리(영국)로 속초, 동해, 삼척 등을 둘러보며 물을 주제로 한 사진을 찍는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다 갑자기 추워진 12월28일 저녁의 인사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취재 경험을 쌓은 이 백전노장의 사진가에게도 매서웠던 모양이다. 사람만 아니라 매그넘 사진가의 카메라도 추위는 피할 수 없다. “디지털 카메라는 배터리가 빨리 떨어지는 것이 골칫덩어리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고”라고 상식을 이야기한다.

그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인사동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붓, 도장, 복주머니, 전통한과 등 여러 가게 앞에서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인사동의 명물인 쌈지길에서도 꽤 여러 차례 공을 들였다.


△ 9월 내장산(위· 사진/ HIROJI KUBOTA MAGNUM PHOTOS) / 9월 이른 아침 여의도 상공에서 본 서울(아래·사진/ HIROJI KUBOTA/ MAGNUM PHOTOS)


△ 비무장지대(DMZ)(사진/ STUART FRANKLIN/ MAGNUM PHOTOS).


△ DMZ의 용늪(사진/ STUART FRANKLIN/ MAGNUM PHOTOS).


△ 12월 양수리.이명세 감독의 영화촬영 현장(사진/ ELI REED/ MAGNUM PHOTOS).


△ 엘라이 리드가 찍은 유리 사이로 밖을 보고 있는 슈퍼쥬니어 멤버 중 한 명(사진/ ELI REED/ MAGNUM PHOTOS).


△ 12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촬영 도중 땀을 흘리고 있는 엘라이 리드(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 슈퍼주니어 연습 장면을 찍고 있는 엘라이 리드(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 인사동 골목과 쌈지길에서 서울의 밤을 담고 있는 엘라이 리드(사진/ 한겨레21 곽윤섭 기자).


“이방인의 눈을 가져라”

엘리아 리드가 생활 사진가들에게

사진을 잘 찍는 법, 혹은 좋은 사진은 무엇인가.

=전에 본 적이 없는 처음 본 것, 달라 보이는 것을 찍어야 한다. 그렇지만 새로운 것만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다. 늘 주변에 있어 친숙한 대상이라도 어느 순간엔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이 나를 붙잡는다. 그런 생경한 것을 찍어내는 게 좋은 사진이다. 처음 방문하는 나라, 지역에서 비행기를 내리면 시차를 극복하려고 잠부터 자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고 나서 사진을 찍으면 몸이 적응을 한다. 나는 몸이 적응하기 전, 철저히 낯선 이방인의 몸 상태에서 바로 사진을 찍는다. 새로운 접근을 하는 방법의 한 가지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쟁쟁한 매그넘 사진가들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매그넘 사진가들은 모두 훌륭하다.

그중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브루스 데이비드슨의 사진이 좋지 않으냐.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최근에 작고한 레오나드 그리드의 사진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매그넘의 사진가들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매그넘 사진가는 모두 열심히 작업한다는 점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올 매그넘 파티엔 당신에게 초청장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더라.

지금 한국에선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된 뒤로 사진의 부흥기가 오고 있다. 수많은 생활사진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주로 디지털을 쓴다면 다행이군. 많이 찍을 수 있으니 많이 눌러라. 베끼지 마라. 남의 사진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왼쪽으로 한 걸음 옮겨보고 앞으로 또 한 걸음 옮겨봐라. 바뀐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너무 평범한 조언 같아서 뭔가 또 다른 비결이 없을까 싶어 다시 물어봤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사진가가 있다면 또 무엇이 필요한가.

=자신만의 시각을 갖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 사진기자를 시작하고 세 번째 몸담은 신문사가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였다. 당시 그곳의 사진부장이었던 에릭 메스카우스카스는 다른 사진가들과 달리 나에게 나만의 시각을 주문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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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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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출간된 1-3권에 이어 완결판이라는 4권까지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는 한국역사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은 다 읽었음직한 베스트셀러임에 틀림없다. 시사잡지 한겨레21을 통해 연재된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지만, 격주 단위로 원고를 쓸 때마다 시사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었던 발행매체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정치사회적 현상을, 시대를 넘나들며 비교, 분석하는 정연한 논리와 냉철함, 전공자로서 해박한 역사적 전문지식과 함께 원체 유쾌한 그의 입담은 잡지에서 그의 글을 처음 접했던 나로서도 단행본을 읽을 때는 또 다른 새로움을 느낄 정도였다.

일찍이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국현대사의 감추어진 질곡을 처음으로 교과서 밖에서 배웠지만, 이후 여러 책을 통해서도 느끼지 못한 한국근현대사의 명암을 제대로 짚어내는 통쾌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진실을 접하고 울분과 분노, 정의감에 불끈 쥔 주먹외에 내 입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역사적 사실에 뼈와 살을 붙여 제대로 된 과학으로 역사를 대하게 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풀어헤쳐 씀으로 인해 마치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독자를 시원하게 해 준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니겠나 싶다. 비슷한 경험을 대학시절에도 했었는데 바로 유홍준 교수(현 문화재청장)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다. 나에게 있어 이 책들은 단순한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넘어, 지식인, 전문가로서 시대에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의미있는 책들이다.

이 책은 1-3권에서 다룬 주제와 중첩되는 부분도 있으나, 반미와 주권에 대한, 아직도 살아남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아픈 현대사의 증언에 대한, 시대의 질곡을 넘어선 인간에 대한, 왜곡된 역사의 고리를 끊어야 할 당위성에 대한 이야기로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정치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 하나하나 독립된 개별현상으로 설명될 수 없듯이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요인들을 저자는 적절한 범위 설정과 전문적 지식을 통해 일관성 있게 대중적인 접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흐름인 반공과 일재 잔재의 미청산은 항상 안타까움으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고,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대부분을 두가지 원죄에 회귀시키는 관성적 오류를 범할 때도 많지만, 저자의 말대로 그래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쓰러져 좌절하기에는 우리가 싸워 온 시간과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낸 성과는 우리였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느냐는 역설에 동감할 수 밖에 없다. 진보라는 말만 나와도 도매급으로 욕 먹는 시대지만, 그 지나온 시간을 통해 얻은 것들을 쌓고 키우는 것은 또 우리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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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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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의 열기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미 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고 말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은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국에 관철되는 미국의 힘이었다. 꼭 20년 전 김세진,이재호 두 젊은이가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반미를 외치던 그 시절과 비교한다면, 반미감정은 엄청나게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주류의 미국화는 그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더욱 심하게 이루어진 듯하다. 냉전이 종식된 뒤 "세계를 단일제국으로 재편한 미국의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하던 자들은 이미 국제인이 아니라 '제국인(帝國人)'이 되어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자유무역협정 문제를 보면,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 제국인이다. 한국이름을 갖고, 한국에서 대학 나오고, 한국에서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제국의 이익이다. 내선일체를 꿈꾸던 옛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조차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체감을 제국은 이미 이루고 있다. 1980년대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때는 '숭미 사대주의자'라는 말도 쓰고 친미파라고도 부르고, 그냥 친미파라 하면 재미없으니까 '미친파'라고도 하고 그랬지만, 친일파나 친미파는 그래도 한국 사람에게나 붙일 수 있는 말이다. 한국말에 능통한 머리 까만 미국 사람들, 청와대에, 국회에, 정부 각 부처에, 언론사에, 대학에 득시글하면서 한미동맹만이 살길이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의 머릿속에 한국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리고 반미운동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이다.-35쪽

198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엄청나게 중요한 분야인데도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분야가 이민사다. 현재 해외에 살고 있는 한민족 구성원은 중국 200만 명, 미국 100만 명, 일본 100만 명, 중앙아시아 등 옛 소련지역 40만 명, 유럽 및 기타 지역 50만 명으로 약 5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남북한 인구 7,000만 명에 500만 명을 더해 한민족을 7,500만 명으로 잡으면 전체의 6.67%에 이른다. 1945년에 해방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당시 한민족 전체 인구는 3,500만 명이고 해외 거주 인구는 중국 220만 명, 일본 230만 명, 옛 소련 40만 명, 미국 및 기타 지역 10만 명으로 역시 500만 명에 육박해 전체 민족 성원의 14%가량이었다.
한국 근대사에서 해외이민은 조선 말기인 1860년대 초반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1945년 당시에 인구의 14%가 해외에 있었다는 것은 80여 년 만에 인구 일곱 명에 한 명꼴로 해외로 나간 것으 의미하니, 참으로 슬프고도 숨가쁜 '세계화'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한 민족집단의 다수 성원이 짧은 기간에 해외로 나간 것은, 1840년대에 아일랜드의 대기근으로 10년 동안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이민을 떠나 800만 인구가 600만 명으로 줄어든 것을 제외하고는,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민족의 이산이었다. 화교가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지만, 1949년에 신중국이 수립되기 전까지 전 세계에 분포된 화교 수를 대략 1,000만 명으로 잡는 것을 보면, 전체 중국 인구에서 화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151-2쪽

흔히 6월 항쟁 이후 지금까지를 '87년 체제'라고 부르지만, 이 1987년 체제 안에서도 끊임없이 민주화는 진행되었다. 지금 한국이 누리는 절차상의 민주주의는 서방의 선진제국이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의 정신을 빼놓는 이 모든 '쇼, 쇼, 쇼'가 그동안 민주화되어오며 생긴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에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퇴직직원이 어디 감히 도청 테이프나 녹취록을 들고 나와 정보부를 상대로 협상을 벌이겠다고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는가? "고향 땅에서 쟁기질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원내 최다선이던 정일형 의원이 국회에서 ?겨나야 했던 유신시절에, 어찌 대통령 탄핵을 꿈꿀 수 있었겠는가? 정부를 비판했다고 언론사 사주가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고 결국은 신문사를 빼앗겨야 했던 저 '겨울 공화국'이었다면, 어찌 지금처럼 대통령에 대해 비판 정도가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언사를 퍼붓고도 무사히 언론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겠는가? '권력의 시녀'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문다"라는 말을 창피한 줄 모르고 기자들에게 퍼붓던 검찰이 법적인 근거도 없는 평검사회의를 들먹이며 대통령에게 대드는 것도 다 민주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대로 판결한 판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는 것을 본 뒤 공안사건의 경우 공소장의 오자까지 베껴 쓰는 참담함을 묵묵히 견뎌낸 엘리트 법관들은, 이제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어 사법 전성시대에 최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 독재자에게 밉보이면 국제그룹처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기도 하던 재벌들은, 이제 정치자금을 강탈해가지 않는 민주화된 세상에서 신자유주의와 금권 숭배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아직도 군인 아저씨였을지 모르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나 보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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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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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와 함께 1980년대 전국민을 울음과 연민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모방송사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보며 참으로 서글픈 사연에 소리없이 눈물만 주루룩 흘렸던 기억이 난다. 도화지만한 종이 한 장에 세월에 쓸린 기억의 전부를 담아두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게 애닳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찌 저리도 많은 사람이 그 오랜 세월동안 피붙이를 찾지 못하고 있을 수 있나는 의아스러운 생각도 내내 들었다.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잊었던 전쟁의 그 기억이 다시금 생생히 살아났겠지만, 전후세대에게는 말도 안되는 전후처리가 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아는만큼 이해하는 것이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던 내가 한여름에 학교선배와 설악산을 등반하다 산중턱 텐트에서 잠을 청하다 한밤에 이빨이 덜덜 떨리며 얼어죽을뻔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남자 둘이서 서로 체온으로 몸을 덥혀가며 안고잤던 그 날, 나는 관념으로 믿어오던 그 옛날 빨치산의 겨울행적이 믿기지가 않았다. 더 시간이 흘러 한국 내에 세계 최장기수의 존재를 알았을 땐, 이념을 넘어 신념이라는 것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내가 보고, 듣고, 아는 수준을 넘어서는, '나'라는 외부 영역에서의 진실과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학, 역사, 예술...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억과 진실을 밝혀주는 매개임에 틀림없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눈빛)은 사진과 그 시대를 겪은 문인들의 짤막한 에세이를 통해 관념 속의 한국전쟁을, 그 전쟁을 겪었던, 겪지않았던간에 관계없이 우리모두에게 현실임을 보여주는 아픈 사진집이다. 2004년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 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을 40여일간을 뒤져 한국전쟁 관련사진 480매를 찾아 "지울 수 없는 이미지"(눈빛)를 출판했고, 2005년 박유종(임시정부 박은식대통령의 손자)선생과 함께 10여일간 2차 수집을 통해 찾아낸 770매의 사진으로 "지울수 없는 이미지2"(눈빛)를 발간했는데, 그 중 엄선된 100매의 사진을 재구성한 것이 이 책이다.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발목까지 찬 강물 위를 등짐을 진 할아버지를 업고 건너가는 아들의 삐쩍 마른 종아리에서, 머리에 부상을 당해 치료받으며 아이에게 젖을 물린 맨발차림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구한 인간애를 보았고, 서너살쯤 된 부모 잃은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울음소리에서, 처형당한 시신더미 앞에서 오열하는 아주머니의 눈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보았고, 직접 그린 태극기를 꺼내보이며 살려달라는 평양시내 학생의 체념어린 얼굴에서 한국현대사의 안타까움을 나는 보았다.

남과북, 유엔군과 중공군, 좌익과우익을 가리지않고 잔혹하게 자행된 처형, 처참한 전투와 희생자들, 피란민과 전쟁고아들, 수용소의 포로들. 이미 낯익은 단어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낯선 사진들이 가득하다. 외신을 통해 세상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의 낯선 전투와 험한 장면들에 익숙해진 요즘이지만, 그것이 불과 반세기 전에 내가 딛고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현실임을, 그 장면장면마다 누추한 차림의 사람들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임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책장을 한장씩 넘겨가며 이 책을 다시 보고 싶다. 당신의 기억 속 얘기들을 내가 함께 기억한다는 것을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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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어갑니다. 보고 싶어지는 사진집이네요.

dalpan 2007-01-02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집이라는게 항상 그렇듯이 "쩐(金)"이 좀 듭니다. 대신 언제든지 자주 꺼내볼 수 있다는게 "쩐(金)"값을 하는 것 같습니다. 보도사진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들이라, 사진을 좋아하시는 옆지기님과 함께 보시는 재미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
 



몇년전 동강 레프팅을 하다 어라연에서 다른 팀보다 먼저 도착한 바람에 운 좋게 찍을 수 있었던 사진입니다. 가을날이라 물빛이 말그대로 고기비늘처럼 반짝거리고 투명했던 기억입니다. 그 속에 떠 있는 보트색깔이 유난히 눈에 띄어 한 장 찍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위라 빨리 찍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찍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환상적인 물빛 name : 곽윤섭     date : 2006.12.18  
서늘한 느낌이 드는 물빛입니다. 어찌 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물과 보트의 대비가 오래 기억에 남는 사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위쪽으로 보이는 바위의 처리가 아쉽습니다. 아래쪽엔 물 밑으로 보이는 바위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의 바위가 약간 더 포함되었다면 물속과 대비가 되어서 더 멋있는 경치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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