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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평점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라는 노래와 함께 1980년대 전국민을 울음과 연민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모방송사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보며 참으로 서글픈 사연에 소리없이 눈물만 주루룩 흘렸던 기억이 난다. 도화지만한 종이 한 장에 세월에 쓸린 기억의 전부를 담아두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게 애닳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찌 저리도 많은 사람이 그 오랜 세월동안 피붙이를 찾지 못하고 있을 수 있나는 의아스러운 생각도 내내 들었다. 한국전쟁을 겪은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잊었던 전쟁의 그 기억이 다시금 생생히 살아났겠지만, 전후세대에게는 말도 안되는 전후처리가 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아는만큼 이해하는 것이 사람이지 않은가?
그러던 내가 한여름에 학교선배와 설악산을 등반하다 산중턱 텐트에서 잠을 청하다 한밤에 이빨이 덜덜 떨리며 얼어죽을뻔 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남자 둘이서 서로 체온으로 몸을 덥혀가며 안고잤던 그 날, 나는 관념으로 믿어오던 그 옛날 빨치산의 겨울행적이 믿기지가 않았다. 더 시간이 흘러 한국 내에 세계 최장기수의 존재를 알았을 땐, 이념을 넘어 신념이라는 것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내가 보고, 듣고, 아는 수준을 넘어서는, '나'라는 외부 영역에서의 진실과 경험을 겸허히 받아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학, 역사, 예술...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억과 진실을 밝혀주는 매개임에 틀림없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눈빛)은 사진과 그 시대를 겪은 문인들의 짤막한 에세이를 통해 관념 속의 한국전쟁을, 그 전쟁을 겪었던, 겪지않았던간에 관계없이 우리모두에게 현실임을 보여주는 아픈 사진집이다. 2004년 미국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 칼리지 파크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사진자료실을 40여일간을 뒤져 한국전쟁 관련사진 480매를 찾아 "지울 수 없는 이미지"(눈빛)를 출판했고, 2005년 박유종(임시정부 박은식대통령의 손자)선생과 함께 10여일간 2차 수집을 통해 찾아낸 770매의 사진으로 "지울수 없는 이미지2"(눈빛)를 발간했는데, 그 중 엄선된 100매의 사진을 재구성한 것이 이 책이다.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발목까지 찬 강물 위를 등짐을 진 할아버지를 업고 건너가는 아들의 삐쩍 마른 종아리에서, 머리에 부상을 당해 치료받으며 아이에게 젖을 물린 맨발차림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구한 인간애를 보았고, 서너살쯤 된 부모 잃은 단발머리 여자아이의 울음소리에서, 처형당한 시신더미 앞에서 오열하는 아주머니의 눈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보았고, 직접 그린 태극기를 꺼내보이며 살려달라는 평양시내 학생의 체념어린 얼굴에서 한국현대사의 안타까움을 나는 보았다.
남과북, 유엔군과 중공군, 좌익과우익을 가리지않고 잔혹하게 자행된 처형, 처참한 전투와 희생자들, 피란민과 전쟁고아들, 수용소의 포로들. 이미 낯익은 단어들이지만 이 책에서는 낯선 사진들이 가득하다. 외신을 통해 세상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의 낯선 전투와 험한 장면들에 익숙해진 요즘이지만, 그것이 불과 반세기 전에 내가 딛고있는 이 땅에서 벌어진 현실임을, 그 장면장면마다 누추한 차림의 사람들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임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책장을 한장씩 넘겨가며 이 책을 다시 보고 싶다. 당신의 기억 속 얘기들을 내가 함께 기억한다는 것을 느끼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