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너를 내쫓았단 말이냐?
-예.
-뭣 땜에?
-할머니도 아시다시피, 자물쇠 용역 회사라는 데가 특이한 데잖아요. 자물쇠SOS라는 우리 회사는 파리 시내 어디든지 하루 24시간 아무 때고 부르면 달려가지요. 그런데, 제 동료 하나가 습격을 당한 뒤부터, 밤에 꺼림칙한 동네는 영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안 가겠다고 버텼더니 그냥 잘라버리더군요.
-잘했다. 실업자 안 되자고 몸 상하느니 차라리 실업자 되고 몸 보전하는 게 백번 나은 일이다.
<개미 1 / 베르나르 베르베르>
초등(국민)학생 때 제일 부러웠던 친구는 결석하는 친구. 나는 단 한 번도 결석을 해 본 적이 없다. 자녀가 아파도 무조건 학교에 보내는 부모를 가진 나는 중학생 때 저 구절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에 고등학교에 오라는 학교의 연락에 아파서 못 간다고 했고, 시험 치는 날에 가서는 백지를 냈다. 이 때 내 답안지를 걷던 친구는 내 답안지가 전부 빈 칸이라서 놀랐고, 정말 무서운 아이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예체능도 아닌데, 전교에서 야자를 제일 많이 빠지는 학생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내가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학생이 성적이 좋으면 뭘 해도 내버려둔다.
내가 다닌 초등(국민)학교는 고학년이 저학년 교실 청소를 해 주었다. 6학년은 1학년 교실, 5학년은 2학년 교실. 5학년 때 2학년 교실 청소 당번이던 때.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고 있는데, 심부름을 온 다른 학년 동생이 "언니 2학년 선생님이 빨리 청소하러 오래." 하길래 나는 "나 지금 도시락 먹고 있으니까 다 먹고 청소하러 간다고 해." 했다. 도시락을 다 먹고 청소하러 갔더니 2학년 교실 선생님은 나에게 화를 냈다. 왜 선생님이 부르는데 바로 오지 않고 너 할 거 다 하고 늦게 오냐고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도시락 먹고 있었는데요. 그거 먹고 바로 온 건데요. 왜 점심시간에 밥 먹는 거 가지고 화내세요?"라고 하면서 대들고, 나는 청소당번 안 할 거라고, 담임 선생님한테 가서 청소 구역 바꿔달라고 할 거라면서 울면서 대들면서 내 교실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그 후 나는 그 2학년 선생님을 만나도 인사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 선생님은 나에게 사과했다. 밥 먹는데 불러서 미안했다고.
부산은 10년 넘게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눈이 내렸던 때는 시시한 눈이 아니라 폭설이었는데, 그날 나는 출근을 못했다. 회사에 전화해서 "폭설이 너무 심해서 못 간다" 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다 출근해서 지금 눈 치우고 있는데 왜 너만 못 오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저 좀 전에 출근하려고 나왔는데 눈길에 넘어져서 엉덩방아 찧었어요. 그래서 집에 다시 왔어요. 전 못 가요." 하고 출근 못 했다.
원래도 알고 있긴 했지만, 최근에 더더욱 실감한 것 중 하나. (한국)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혼자, 먼저 못하는구나 하는 것. 다 같이 하면 나도 얹혀서 할 수 있는데, 먼저 시작하는 것 또는 혼자 하는 것은 못한다는 것.
나는 회의 시간에도 손 들고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블라블라." 라든가 "이건 부당하니 나는 하지 않겠다." 라든가 뭔가 비합리적인 업무에 잘 따지는 편이다. 결제란에 사인도 안 한다. 내가 사인 안 해도 더 윗사람이 사인하면 해당업무는 진행되긴 하지만. 나중에 감사 걸려서 개고생 하는 거 구경하면 잼남.
여동생왈: 언니는 여간내기가 아니니까. 언니랑 싸워서 이기려면 언니보다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그 회사에 그런 사람 잘 없잖아.
엄마왈: 니는 남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지. 남들은 그렇지 않다. 혼자 할 자신이 없으니까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는 거야. 도움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결혼도 하는 거고. 혼자 살 자신이 없으니까.
남동생왈: 큰누나랑 논리로 말싸움해서 이길 사람이 세상에 있긴 하나? 탱크랑 소달구지가 싸우는 격인데, 급이 다른데.
내가 쉽게 복종하지 않는 이유는 천성도 그렇거니와 내가 여간내기들보다는 여간내기가 아닌 작가들의 책과 영화와 더 친하게 지내서 그런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복종하는 자들보다는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 훨씬 더 많은 까닭. 나에게 불복종은 너무나 당연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