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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나는 순진했다.

미래통합당이 50석 이하가 될 줄 알았다.

초등학교 운동장 땡볕에서 나와 함께 수십분간 줄 서있던 사람들이 나와는 동상이몽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시비지심이나 수오지심보다는 '돈'을 기준으로 투표함을 잊지 말자.


나는 시비지심이나 수오지심을 근거로 투표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나 역시도 내 재산에 손실이 나지 않는 선에서만 시비지심, 수오지심을 지키는 건지도 모르지.


세금을 더 내는 것, 내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것

만은 피하고 싶다.

이것이 역시 절대명제인 것이다.

마스크를 끼고 앞 뒷 사람과 안전거리를 유지한 체 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 사람들의

대의명분은 내 돈 지키기였던 것이다.

역겹다고 해야할까, 그냥 그게 인간이려니 해야할까.



없는 놈이나 있는 놈이나 이기적인 것은 똑같다는 절대 명제를 잊지 말자.


ps. 김해갑 김해을 양산을의 당선자를 봐도 드는 생각은  저 동네에 대통령 사저가 없었더라도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하는 것이다. 체면을 중시하고 권력을 두려워(혹은 선망)하는 보통사람(시골 어르신들이라고 하면 비하발언일까?)들의 성향을 생각해봐야 한다. 일단 대통령(어쨌든 최고 권력자니깐)이 우리동네에서 환대 받았으면 좋겠고, 또 대통령 관련자가 당선되는 것이 우리 지역에 더 큰 이득일 것이다 하는 단순한 셈법이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다수는 내 재산을 위해 더 이득인 당을 지지했을 뿐이라는 것...그게 파란당이든 노란당이든 핑크당이든 간에 다들 나의 경제적 이익이 큰 쪽에 표를 준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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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너무 잘 지나간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를 다이어트 시키려고 하나 나의 밥벌이는 코로나19에 아랑곳없이 돌아간다. 돌아~간다. 

죽음을 코끝으로 인식하지만 코끝에서 멈출거라는 낙관.

경기가 안좋다고 하지만 동생1은 업무폭탄이고 동생2는 호황이다. 나는 그냥 일상 유지다.


경제가 망했다고 정권이 바껴야 한다는 사람도 봤다.

이봐, 그랬다면 다음 코로나때 너는 자릿수가 엄청난 통장잔고를 남기고 사망.

종교와 정치(인)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건 개취.


인간들이 바라는 건 정말 뭘까?

번식을 통한 간접 영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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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갈비를 뜯으면서(핑거푸드) 오늘의 뉴스를 확인한다


서울 사는 동생은 코로나 청정 강남을 주장했으나 

강남은 새로운 방법으로 코로나에 취약하게 되었다.

동선도 럭셔뤼하지.

내가 가끔 지인찬스로 가는 호텔이라서 눈길이 갔다.

오늘 기사에는 하와이 일정이 취소되는 바람에 제주도를 갔다고 양해해 달라고.

아 네네. 양해해 드리죠.

자본주의보단 조금은 평등한 코로나19에게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N번방.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영화 <경계선>의 주인공이 아닐까?

범죄와 수치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자.

소설 <밀레니엄>의 주인공 리스베트의 복수를 당해봐야 니들이 정신을 차리지.

뭐 어쨌든 인간은 나약하고 한없이 악하다는 걸 증명해줘서 참으로 고맙구나

N번방 등등에 열광하는 인간들아.


책<인간없는 세상>을 읽으면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진다.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멸종.

그래서 나는 오늘도 LA갈비를 뜯으면서 번식을 하지 않은 나를 칭찬해, 칭찬해!!


원래도 인도어형 인간이었던지라 사회적 거리 두기에 괘.념.치. 않는다.

극장에 못가는 건 아쉽지만 나에게는 75인치 TV와 왓챠, 넷플릭스가 있고

도서관은 못가지만 대신 그동안 소장한 책들을 재독 중이므로.

여전히 풍족한 나날들이다.

호황에도 불황처럼 지냈던 나인지라 불황이라고 해서 특별히 어렵진 않다는 말.


소희(영화 버스, 정류장 주인공)가 기다렸던 엽기적인 뉴스가 50부작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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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에는 불황같은 생활이고 불황에는 호황같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없는 생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어서 책을 사야만 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도서관 무기한 휴관이니까.

알라딘에서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면 무려 3천원할인(단 5만원 이상결제, 선착순)이라길래 

냉큼 샀다. 책 3권 샀더니 5만원이 쉽게 넘었다. 



세상이 리셋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전염병'일수도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다들 100세시대의 노후자금을 걱정하는 중이었으니깐.

내 인생에 노인용 기저귀를 차고 간병인에게 수발당하는 말년은 없기에 나는 안락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내가 70살 언저리에 모든 삶을 정리하고 청결한 방에서 약물투여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 이탈리아의 상황을 보면, 안락사도 언감생심인 것이다. 



을유문학사 세계전집 1번 <마의 산>을 너무마 진지하게 읽은 나로서는 폐에 대한 공포가 있다. 

(이 소설의 결말은 또 얼마나 허무한지...) 

결국 인생은 예상하지 못했던 파국일 것이다 하는 것이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이다.



n번방 사건 같은 걸 보고도 아직도 인간은 선하고, 세상은 아름답고, 우리는 꼭 살아남아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 순진하고 멍청한 인간들' 하는 생각을 오 만 번 정도 했다. 번식에 대한 맹목이 뒤틀려 나타나는 것이 가학적인 성범죄라고 나는 생각하기에. 뭐 아무튼! 인간이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계속 번식하겠지. 난 사양합니다만. (소라넷 때부터 줄곧 생각한 건데, 참 사람들은 너무 순진하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지, 다른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인간이 다수라는 것을 좀 인정 좀 해!)



구매한 책 중 1권은 제목 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인간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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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들처럼 사는 게 인생관인 40대 회사선배에게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자식을 낳는 게 분명해요."라고 했더니 선배는 "에이, 설마, 그런 사람이 어딧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마침 뉴스에서 어린 자식이 3명이나 있는 사람이 죽었길래, 이 기사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사람이 이 사람이라서, 한 존재가 소멸해서,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어린 자식이 3명이나 있는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거죠. (부양가족이 없는)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저 사람만큼 안타까워할까요? 그렇진 않겠죠. 이게 바로 내가 사람들이 자식을 낳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한다는 것의 증거예요." 라고 하자 선배는 내게서 저 말을 들을 내 모친과 꼭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안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여 '나는 니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라는 생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2년 넘게 내가 성실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 기록을 보더니 동생은 "누나 이거 다 했단 말이야, 대단하네. 미칫네." 라고 평했다.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이 정도로 거지같다는 증거지. 니 눈에는 안보이겠지. 내 눈에는 다보여. 그래서 그걸 치우고 있는 것일 뿐이고 이게 내가 이 세상을 비관하는 이유지. 니 눈에는 이 세상이 즐겁기만 하지? 놀이터 같고. 그건 그만큼 보는 눈이 없고 인식의 폭이 좁다는 증거야. 아무것도 모르면 이 세상은 그저 낙원이지."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 : 슈퍼전파자 X의 비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했다. 연관된 것끼리 줄로 잇는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들었다. 영생을 바라는 저들과 번식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를 것 없는 것에 맹종하는 부류는 것. 바로 이 세상, 이승 맹신자들이라는 것. 

얼마전에 엄마한테 "엄마는 엄마가 양수검사를 했는데 아이가 팔다리가 전부 없는 아이라면 낳을거야 낙태할거야?" 했더니 별 망설임없이 "안낳아야지."라고 답했다.(하지만 엄마는 양수검사를 한 적이 없다.) 그러면 "엄마 아이가 사고가 나서 팔 다리를 다 잘라내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하면 죽일거야 살릴꺼야?" 라고 질문했더니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살려야지." 라고 했다. 내 다음 질문은 "근데 아이 본인이 팔다리 없이 사느니 그냥 안락사시켜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거야?" 였고 엄마의 대답은 "어렵네."였다. 내 대답은 "뭐가 어려워? 본인 의사를 100% 존중해줘야지. 엄마가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없잖아. 내가 늘 말하잖아. 내 몸 같은 자식은 없다고. 그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어."

양수검사를 실시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양수검사를 하는 걸까? 그 사람들은 그들이 양수검사를 하는 것이 한 인간이 태어나야 하는 이유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 행동이라는 점을 모를 것이다. 다수의 부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살아야 할 이유'를 전제로 자식을 태어나게 한다. 만약 이들이 '살아야 할 이유'를 근거로 자식을 낳는거라면 양수검사를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거니깐.
 양수검사를 실시하는 부모 예정자는 장애를 가진 태아는 아직 사람이 아니므로 죽여도 되고, 장애를 가진 아이는 일단 사람이므로 죽일 수 없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 여기서 핵심은 낳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당신들은 태어나야 할 이유와 살아야 할 이유를 직관적으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낳아? 이 세상이 태어날만한 가치가 있어?" 라고 말하면 대체로는 "(사지육신 멀쩡하다면)그래도 한 번쯤은 살아볼만한 세상"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아주 가끔 "무슨 이유가 있어. 내 욕심으로 낳는거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뼈와 피가 있는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 잡식을 하면서 하루하루 연명해야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이 겪어야하는 고통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인생'에 대한 맹목으로 자식을 낳고자 하는 사람을 볼 때 내가 느끼는 연민과 동정과 불쾌감이 뒤썩인 이상한 감정이 있다. 그것은 카카오톡 프로필의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의 사진을 볼 때 유독 심해진다. 또한 그 감정은 아직 눈도 뜨지 못한 갓태어난 버림받은 아기 고양이를 볼 때의 감정과 비슷하다. 그런 감정을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영생을 바라면서 거대한 공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의 조아린 머리를 풀샷으로 찍은 장면을 봤을 때 똑같이 느꼈다. 

나약한 존재를 봤을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감정. 연민과 동정과 경멸이 뒤썩인 감정.

내 모친은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강해진다라고 여긴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엄마는 강함과 억척스러움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 진짜 강한 것은 혼자 강해지는 것이지 어떤 다른 존재에게 기대서 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는 나약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엄마한테 시큰둥하게 "왜 엄마가 강해지려고 자식을 이용해먹어? 좀 비겁한데. 자력으로 강해질 수 없었던 거야??" 말했을 뿐. 내 친구들은 "너 정말 부모한테 그런 말을 다한다고?" 하면서 몹시 놀라곤 하는데 나는 "자식은 부모한테 3가지만 안하면 효도하는 거야. 1 자살, 2 사이비종교 3. 불법 다단계. 그 셋만 안하면 효도야. 내가 자살 안하고 건전한 직장 다니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뭘 더 바래? 우리 부모는 나한테 고맙다고 매일 절해야 해." 라고 말하면 이제 막 부모가 된 지인 및 친구들의 얼굴빛은 급격이 어두워진다. 

대개의 사람들은 삶이 너무나 버겁고 두려운 건가보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생'을 맹목하고, '자식'을 낳아서 자식에게 의지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종교에 의지하고, 그러고도 부족해서 더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이상한 종교에 의지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삶이 하찮다. 사람은 한 순간의 우연으로 죽을 수 있다. 삶은 갈치등뼈처럼 손쉽게 부러진다. 영생을 바라는 사람, 무병장수를 바라는 사람은 내일 죽을 수도 있다, 오늘 밤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요즘도 나는 사이렌을 울리면서 긴급하게 주행하는 119 응급차를 볼 때마다 아련한 감정에 사무치곤 한다. 그 때 죽었을 수도 있었다와 죽음엔 아무 고통이 없다는 것! 죽음이 실재이며 삶은 죽음에겐 일종의 바이러스 같은 것일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전에 가족들에게 "내가 갑자기 죽으면 여기 이 금고만 열어보면 돼. 여기에 나의 모든 귀중품이 다 들어 있으니까 팔아 쓰라구. 난 할머니들처럼 가락지를 이상한 곳에 숨겨놔서 유족이 유품을 버리전에 금가락이 찾느라고 고생하게 만들지 않아. 금고 마스터키는 저기 있어."

팬테믹과 사이비종교와 바이러스로부터 내 유전자를 지켜내겠다고 악을 쓰는 부모들을 요즘 남일 보듯 보면서 다시 한 번 무능한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하곤 한다. 조물주 너도 부끄럽지? 이것도 작품이라고 만들어 놨냐? 결함이 너무 많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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