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와 <룸 넥스트 도어>를 같은 날 연이어서 봤다.

두 영화의 배경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의 뉴욕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사회적, 신체적 배경은 극과 극이다.


<아노라>의 주인공 아노라는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로 25세의 미모의 여성 스트리퍼다.

<룸 넥스트 도어>의 주인공 마사(틸다 스윈튼)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50~60대의 암환자로 전직은 뉴욕 소재 언론사의 종군기자이자 미혼모이다. 


하지만 두 영화의 주제는 같다.

내 삶의 존엄은 내가 지키겠다!!!!!!!


p.s. 나는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와 드니 빌뇌브의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기분을 해소하곤 했는데, 심지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마지막 화염방사기 장면은 너무 좋아서 화면캡처 이미지를 폰에 넣어두고 빡이 칠 때마다 보면서 꼴 뵈기 싫은 인간을 화염방사기로 태워 죽이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노라>의 주인공이 <원스 어폰 어 타인...인 할리우드>에서 화염방사기에 태워지는 새디(미키 매디슨)랍니다. 하... 살인예방 영화 중 한 편이 그 기능을 잃었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면벽자'가 되어야겠다. 세상엔 불태워 죽어야 할 쓰레기 같은 인간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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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사명을 짊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혼자가 되어 이 세상은 물론 우주 전체에 대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감추어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상대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직 그들 자신뿐입니다. 그들은 이 위대한 사명을 안고 기나긴 세월을 고독하게 지내야 합니다. 



"왜 접니까? 다른 세 명에 비하면 저는 아무런 자격도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경험도 없어요. 전쟁을 본 적도 없고 국가를 통치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저는 훌륭한 과학자도 아니고 여기저기서 베끼고 짜깁기한 논문으로 겨우 밥이나 빌어먹고 사는 대학교수일 뿐입니다. 될 대로 되라며 하루하루 즐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내 핏줄을 남기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빌어먹을 인류 문명 따위에 관심이 있을 턱이 없죠.... 그런데 왜 저죠?"


삼체 2부 암흑의 숲 / 류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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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영화 <그 여름의 시간들>과 영화 <허트 로커>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책 <삼체>로 도피하며 끝이 나 버렸다.


영화 <그 여름의 시간들>은 영화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자전적 경험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covid19로 인해 프랑스 봉쇄 조치 당시 시골의 가족 저택에서 갇혀(??) 지내던 때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아사야스 영화의 뭔지 모를 문화 금수저 느낌(특히 영화<여름의 조각들>)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문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감독이었다.


영화 <허트 로커>는 우리가 흔히 '직장은 전쟁터, 직장 밖은 지옥' 하는 말을 비유도 상징도 없이 직장은 전쟁터, 주 업무는 폭탄제거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다. 사실 영화는 전쟁과 인간성이 주제이고 이 점을 잘 연출 했기에 아카데미 최초 여자 감독상(2010년에서야 첫 여자 감독상, 유리천장 아니고 철큰 콘크리트 천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영화가 되었고, 감독은 중학생 때부터 나의 영웅(아카데미보다 내가 더 안목이 빨랐다. 이것들아!!).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 때문에 주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하는, 이제는 나도 직장에서 폭탄 서너 개 정도는 너끈히 컨트롤 가능한 노련한 경력자가 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니, 그냥 극한직업 전쟁군인 편처럼 보였다. 이 영화의 명대사 3개. 

폭탄을 보며 주인공이 하는 말 "오 베이비"

군대 막사 간이 침대에 누우며 주인공이 하는 말 "역시 집이 제일 편하지."

마지막으로 군 고위직이 주인공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폭탄을 제거할 수 있나는 질문에 "죽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답하는 주인공.


한편 우리의 문화 금수저 프랑스 백인 아저씨는 경치가 끝내주는 저택 주변 숲에서 스마트폰으로 심리상담가와 상담을 한다. "봉쇄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너무 편하고 좋아요. 네, 물론 나는 운이 좋죠. 가족 저택에서 지내니까요. 이걸 봉쇄라고 해야할지도 의문이예요."


하지만 우리의 흙수저 제이미 동지는 전쟁터가 아닌 평화로운 곳에서는 도무지 자극이 없어 지루하고 시시하여 다시  폭탄 속으로 뛰어든다!


퇴근 후 저녁마다 <허트 로커>와 < 그 여름의 시간들> 예고편(미개봉작, 2024BIFF 상영작)을 보면서 퇴직과 존버 무엇이 정답인가를 곱씹기만 하는 직장인 생활을 하던 중


회사에서 아무도 읽지 않은 새 책 <삼체>르 발견하고 냉큼 빌려서 읽기 시작한 후 열탕과 냉탕 같은 두 영화 사이에서 존나 고뇌하던 나는 사라지고 <삼체>의 두 주인공 예원제와 왕먀오에게 빙의하게 된다. 그럼 난 이만 컴퓨터를 끄고 다시 <삼체> 속으로. 



ps. <삼체>의 코미디 부분을 옮겨본다.

"헛소리하지마! 아인슈타인은 반동 학계 권위자다. 그는 기회주의자야! 미국 제국주의에 빌붙어 원자폭탄을 만들었어! 혁명적인 과학을 이룩하려면 상대성 이론으로 대표되는 자산 계급 이론의 검은 깃발을 타도해야 한다!



"동지 여러분, 혁명 소장 여러분, 혁명 교직원 여러분,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반동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그 본질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정적 우주론을 제기해 물질의 운동 본성을 부정한 반변증법을 주장했습니다! 우주가 유한하다고 했으니 철두철미한 반동 유심주의입니다."



외계 문명에 발송할 정보: 이 정보를 받은 세계는 주의하십시오. 당신들이 받은 정보는 지구의 혁명 정의를 대표하는 나라가 발송한 것입니다. 과거 당신들은 같은 방향에서 온 정보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구의 제국주의 초대국이 보낸 것으로 그들은 지구의 다른 초대국과 세계의 패권을 다투며 인류 역사를 후퇴시키려고 합니다. 당신들은 그들의 거짓말을 듣지 않고 정의의 편에, 혁명의 편에 서기를 바랍니다. 

소견: 읽음. 당치 않은 글이다! 대자보는 땅에서나 붙이면 되지 우주에까지 보낼 필요 없다. 


이 부분들에서 나는 데굴데굴 구르고야 말았다. 약간 커트 보니컷 느낌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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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가 칠레의 민족시인인 이유는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가 칠레의 민족 시인인 이유는 대부분의 칠레 국민의 집에 네루다의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그의 시를 읽고, 같이 혁명을 도모하고, 네루다는 대선 후보까지 나갔 ㅎ). 같은 영토, 같은 언어,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서점으로 달려가서 그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그 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작가라면 그가 K문학인 것. 

밴쿠버 올림픽 당시 김연아의 경기를 기억한다. 그 때 올림픽 중계를 보지 않은 한국인이 있었을까? 김연아에게 김연아는 김연아일뿐 하는 사람은 김연아의 성취를 무시하는 것이다. 김연아는 K다. 마찬가지로 한강도 K다. 


국뽕. 개나소나아무나에게 국뽕이 차오르는 줄 아나? 


K마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저명한 대학교수 등이 새겨주는 게 아니다. K마크는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 마저도 그 장르 혹은 그 사람을 응원하고 그의 성취에 기뻐할 때 새겨지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K문화 카나리아 혹은 리트머스 시험지는 내 아버지다. 내 아버지는 평생에 읽은 책이 이승만 평전과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우리 집안 족보 단 3권이다. 그런 아버지가 한강의 책을 사오라고 했다면 그게 K문학인 것이다. 내 아버지가 아는 문화계 사람이 진짜 유명인이다. 손흥민은 몰라도 김연아는 알고, 황석영은 몰라도 한강은 안다. 또한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를 알고, 아카데미 작품상의 봉준호를 안다. 그래서 김연아, 한강, 이정재, 봉준호는 나에게 K마크 문화인이다.

아버지는 평생 극장에서 영화를 안 봤지만 딱 3편만은 보러 갔다. 천만 넘었다는 이유로. <왕의 남자> <국제 시장> <서울의 봄> 나에게 이 세 편은 천만 오브 천만 영화다. 


난 한국이 별로지만, 김연아가 금메달 땄을 때, 봉준호가 아카데미 상 받았을 때, 윤여정이 아카데미 상 받았을 때만큼은 내가 한국인이어서 좋았다. 내가 받은 상은 아니었지만, 그 충격적인 감격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한강의 노벨상 역시도 마찬가지다. 노벨문학상 최다보유국 프랑스인이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쁨을 알겠냐고요!!!!!!!!!!!! 문화적 식민주의 그런 거 아니다. 테니스에 1도 관심 없고 올림픽에 1도 관심 없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노박 조코비치가 테니스 금메달 따면서 오열한 것을 보면서 나도 인간적으로 뭉클했다. 그런 감정인 것이다. 노박 조코비치가 한국인이었다면 더 뭉글했겠지! 


가을햇쌀밥은 100% 백미로 먹어야 제맛인데,

그런데 여기에 현미잡곡햇쌀밥을 먹으라는 조언을 하시면... ㅜㅜ


한강이 K문학이고요, 김연아는 K스포츠고요, 봉준호는 K무비라고요. 그리고 오징어게임은 K드라마라고요. 

이들이 오롯이 한강, 김연아, 봉준호, 오징어게임으로 존재하려면

10명의 한강, 10명의 김연아, 10명의 봉준호가 더 있으면 가능.

다시 말하지만 카뮈가 카뮈인 이유는 프랑스 노벨문학상 최다 보유국이어서 그런 것.


ps. 이 글은 서재 이웃의 '한강을 K문학에 가두지 말자'(정희진, 한겨레)라는 글을 읽고 쓴 것. 정희진의 글에서 케이 문학은 예술을 국민주의에 봉사시키는 행위다(물론 국가는 개인의 성취에 숟가락을 얹고 개인의 이름을 지우고 케이라고 부르고 이용해 먹겠지만)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엔 갸웃갸웃이다. 관료제가 예술을 통제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그게 불가능하지 않나? 흥행, 인기, 대중성은 그 누구도 통제 못하는 거 아닌가. 내가 말하는 K마크는 학계의 저명한 몇 사람의 인정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인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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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이 되고 어쩐 일인지 홈트가 하기 싫어졌다. 운동 달력을 보니 저녁홈트를 한 날은 단 하루뿐. 심지어 모닝홈트도 주 1회씩 안 했다. 작년 6월 말에 시작한 홈트는 이제 나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강력한 토템이 되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홈트가 하기 싫어지다니!!!

급기야 이번 주에는 저녁 8시 30분만 지나면 느닷없이 쏟아지는 졸음으로 평균 수면 시간이 9시간대가 되어 버렸다. 운동을 할 체력은 고사하고 그저 눈을 뜨고 있을 체력마저도 없을 지경이 되어 버린 것. 


토요일이었던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까지도 고민했던 '영화를 보러 가느냐 마느냐'에서 '너무 피곤하다. 쉬자.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말자.'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낭비인 시간낭비를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저녁에 홈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홈트 자체가 하기 싫어서 안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홈트를 할 여력이 없었을 뿐이었다는 걸.


그리고 오늘 아침, 다이어리의 월간 페이지를 보고 알게 된 충격적 사실은 내가 하루를 오롯이 빈둥대며 쉬었던 날은 한 달 전인 9월 22일이었다는 것. 주말 일기도 그 때가 마지막.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때, 집에서 그저 시간을 흘려보낼 때가 가장 좋다. 영화 <그 여름의 시간들>에서 영화감독인 폴이 코로나로 인해 봉쇄령이 내려져서 시골의 가족 저택에서 요리하고, 운동하고, 장보고, 책 읽고를 반복하는 생활에 깊이 만족하여 봉쇄령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것처럼. 


앞으로는 여력이 충분한 나날들이 되도록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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