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생존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것은 권력이 신체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 안의 한 부품인 것이다. 영혼은 정치적 해부술의 성과이자 도구이며, 또한 신체의 감옥이다.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오랜 시간 나는 육체를 방임했다. 심지어 육체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으니... 몇 시간씩 앉아서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주말 이틀간 소파에 누워서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것에 육체는 방해만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먹는 즐거움(몸이 없으면 어떻게 먹냐고, 먹는 게 낙인데 하는 사람을 제법 봤다)에도 큰 관심이 없어서 더더욱 도대체 몸이 왜 필요한가 늘 물음표를 달고 사는 인간이었다. 

"애초에 먹을 필요가 없다면 뱃속에 있는 소화기관이 필요가 없지. 그러면 질병 자체가 없어지는 거야. 장기 하나하나가 다 질병명이라고." 가 내 생각이(었??)다. 여전히 나는 우리 몸에는 너무 많은 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 하나라도 고장이 나게 되면, 운이 좋으면 걍 죽고, 운이 나쁘면 치료를 하면서 고통받으며 서서히 죽어가야만 하는 게 인간의 생로병사라고 나는 주장한다. 


생로병사 사이에 어쩌다 있는 즐거움들이 태어날 이유, 살아야 할 이유가 될까? 전혀, 아니!!!


푸코는 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생존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지금 내 꼴을 보면 그 한 영혼이 인간 속에 들어가 살면서 인간을 병들어 죽어가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라깡의 픽션 이론을 알게 되었다. 언어, 대타자의 불탄 영토, 핍진한 상태, 그 상태의 증상을 탐하는 쾌락, 내가 창조해 낸 나만의 상징계 등등 그 속에서 내가 즐거움(이걸 도파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탐할 때마다 인간(육체)은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처방은 증상을 탐하는 것을 버리고 네가 걸어야 할 곳이 대타자의 불탄 영토일지라도 공백 속을 걸어라, 기꺼이 공백의 상태를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kpop과 팟캐스트 속의 타인(이면서 나만 하는 지인들)이 주는 쾌락을 단박에 끊고 공백 속에서 지냈다. 와와!!!! 그랬더니 체력이 남아서 홈트를 하게 되었고, 홈트를 하게 되자 체력이 더 생겼고, 피곤하지 않았고, 낮 동안에 전혀 졸리지 않았고, 저녁에도 침대에 쓰러져 있지 않게 되고(저녁에 홈트를 함), 잘 시각(밤 10시)이 되면 신속히 잠들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최근에 한 혈액검사결과까지도 인상적으로 좋아졌다!


나는 내 병이 두려웠고, 끔찍한 수술 과정도 알고 싶지 않고 해서 내 병에 관한 그 어떤 유튜브 검색도 해보지 않았다. 얼마 전에야 비로소 용기를 내어 검색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내 병의 1번 원인은 노화. 그래서 나는 노화를 또 검색해 보게 되고,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를 알게 된다. 정희원의 모든 유튜브 영상을 다 봤다. 검색창에 정희원 교수 검색해서 새로 나온 영상도 찾아봤다. 이번 주에는 김작가TV라는 곳에 나왔다. 이 영상의 3부에서 나는 약간 실망했다. 마음 챙김과 번뇌 없는 상태가 중요하다고 했으면서 주식을 하신다고. 소비자본주의 경제원리를 공부하는 의미에서 하는 걸까? 수익은 덤일 뿐. 뭐 그런 건가? 돈에 대한 욕망이 인간 번뇌의 대부분 아닌지. 


영상 속 말만으로는 부족하여 그의 책 2권을 냉큼 구입했다. 알라딘의 익일배송은 정말 엄청난 도파민! 사실 난 배송이 며칠 걸려도 상관없는데.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연관 추천 책으로 <죽음, 이토록 가깝고, 이토록 먼>이 있었다. 일단 <자유 죽음>의 저자 장 아메리의 추천사가 있었고, 구매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희진도 추천사 씀. <자유 죽음>이 신간이던 작년 이 책을 구매한 나를 알라딘 알고리즘이 놓칠 리가 없지. "너 <자유 죽음> 샀지? 이 책도 안 살 수가 없을 걸." 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생로병사를 받아들인 입장에서 '죽음'이 매우 궁금하고, 죽음이라는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죽겠다, 죽고 싶다 아님. 반출생주의에 200% 동의한다. 여전히 왜 사람이 부모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불가. 


그래서 <감시와 처벌>을 잠시 제쳐두고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를 읽었다.


더 편하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예컨대 더 비싼 의자를 사서 오래 앉아 있거나 가까운 곳도 차량을 타고 이동하려고 할수록 미래에 더 많은 고통을 얻는다. 사실 매우 비싼 의자를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업의 의도는 건전하지 않다. 몸이 망가질지언정 비싸고 편안한 의자에 더 오래 앉아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설마 비싼 의자라 함은 허멀밀러를 말하는 건가? 허먼밀러냐 스트레스리스 사무용이냐 사이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일단은 2년 넘게 식탁의자를 사용하는 중인데(삼성이 직원들에게 제공한 의자가 시디즈 T80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난 시디즈 T80이 내 몸에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생집에 있어서 사용해 봤는데 맘에 들지 않았다.) 저 문장을 읽고 나서 그냥 계속 식탁의자(일룸)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의자에서는 내가 내 코어 힘으로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게 건강에 더 좋단 말로 해석되었기 때문.


롤스로이스의 뒷좌석과 허먼밀러 의자로도 소용이 없는 불편한 몸과 마음을 갖느냐, 두 다리만으로 충분한 몸과 마음을 갖느냐는 선택할 수 있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음 역시 허멀밀러였다. 넷플릭스 메탈리카 다큐에서 봤는데 메탈리카 작업실 의자 전부가 허먼밀러였음. 그때도 얼마나 견물생심이었던지!!! 내 거실에는 3인용 소파(주로 드러 눕는 용)와 1인용 리클라이너 소파가 있다. 문제의 1인용 리클라이너는 스트레스리스 제품으로 나는 사이드 테이블(제품 크기와 가격을 보면 그냥 호구인증. 일룸에서 어린이 책상 세트 살 수 있는 가격으로 아이패드 정도를 놓을 수 있는 초소형 테이블을 사는 것)까지 구매했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리스 상태에서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누워) 책을 읽거나 맥북질을 할 생각이었다. 이 안락하고 편안 의자에서 내 영혼(라깡적으로 말하면 무의식, 정희원식으로 말하면 도파민에 찌든 육체)은 쾌락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인간(육체)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정희원이라면 "당신의 내재역량이 줄었습니다. 가속노화가 매우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을지도.


특별히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화벨이나 메신저 알람이 울릴 것을 기대하면서 약간 긴장하고 있는 상태가 그 예다. 그런데 끊임없이 스마트폰 알림이 시달리고, 메일함이나 메신저, 웹브라우저 여닫기를 반복하는 현대인의 뇌에서는 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집중해야 하는 일에는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력이 분산된 멀티태스킹 상태, 즉 마음 방황 상태가 반복되면서 쉬어도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 / 정희원>


알람이 나를 방해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모든 알람을 다 꺼둔다. 알람이 울릴 때 확인하지 않고, 내가 확인하고 싶을 때 확인한다. 그리고 가급적 내 생활을 스마트폰 앱에 기록하지 않으려고 한다. 종이(중고생용 줄공책과 다이어리)와 볼펜, 형광펜 그리고 요즘엔 다꾸 스티커 ㅎㅎㅎ를 사용한다. 모든 중요한 것들은 공책에 기록해 뒀다.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 불이나도 괜찮다. 나에겐 내 공책이 있으니까. 그리고 백업용 외장하드도 추가로 사용(웹하드 불신). 남동생은 최신형 아파트에 살면서 모든 가전제품을 홈네트워크로 제어하는데, 나는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은지 늘 의문이었다. 틈이 생길 때  로봇청소기가 집청소를 제대로 했는지 스마트폰 앱으로 확인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냐 말이지. 나는 로봇청소기도 안 쓰는데 청소기도 사용 못할 정도로 피곤하다면 그때는 정말 요양병원 아니겠는가 싶어서. 


남동생이 사는 최신형 아파트는 폭우에 물이 새는 고오급 브랜드 아파트. 내가 내 힘으로 지은 내 집은 적어도 물은 안 샌다. 누수는 근본 중의 근본인데, 스마트 옵션과 누수를 교환한다는 게 나로서는 납득이 안 되지만, 이미 서울 아파트 병에 걸려버린 남동생은 남들이 알아주는 동네의 브랜드 아파트에 산다는 것에 만족하여 모든 근본적인 문제에 눈감아 버린 듯하다. 조금의 여지를 준다면 누수인 곳은 주로 주차장 같은 공용공간이라 별 관심 없을지도. 그리고 남동생 소유의 집도 아니고 세입자니까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하긴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게 마찬가지여서 "디올 가방 보다 스트레스리스 의자가 더 저렴해. 디올 가방 하나 안 사고 허먼밀러 사는 건데."라고 했을 때 남동생왈. "디올 가방이든 허먼밀러 의자든 둘 다 제정신이 아니다! 차라리 아이맥을 사고 스타일러를 사라. 전자제품이 남는 것!"(전자제품과 장비에 관해서는 다다익선, 거거익선주의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전자제품이 신체와 자연을 대신하는 것(특히 빨래 건조기)에는 불만 많은 사람. 육체무용론자지만 기계에 의존하는 인간의 생활은 싫다. 반대로 남동생은 육체옹호론지만 몸을 귀찮게 하는 모든 활동은 기계에게 외주를 주고 몸은 즐거움만을 경험해야 한다는 주의. 그래서 육체를 옹오하게 된 건가? 하지만 남동생과 같은 생활방식은 가속노화의 지름길!! 


스마트기기로 인해 인간의 뇌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다는 말은 사실이다!! 내가 귀에서 에어팟을 빼고, 자연의 소리만 듣기 시작하자마자 체력이 남아돌아서 홈트를 하게 된 것으로 증명되었기도 하고.


새벽 5시 기상 - 주방에 가서 오트밀에 물을 부어 둔다 - 거실에 있는 요가 매트를 침실로 가져온다 - 모닝홈트 10분을 한다 - 머리 감고 말리기 - 주방에 가서 샐러드를 만들고 먹는다(맛에 관심이 없어서 올리브유, 발효 식초 뿌리고 그냥 초식동물이 풀을 먹듯 먹는다) - 불려둔 오트밀을 먹는다(난 정말 맛에 아무 관심이 없어서 그냥 물에 불려 먹음) - 출근 준비(화장, 옷입기), 출근, 업무보기, 퇴근 - 저녁 준비하고 먹기 - 바로 설거지하고 치우기 20분 정도 걸림 - 홈트 1시간 또는 산책하기 - 샤워하고 - 홈트 다이어리 쓰기, 매일 1개씩 다꾸 스티커 붙이는 즐거움!! 8mm 반투명(즉 볼펜으로 쓴 글씨가 선명하게 비치는) 7색(요일별) 원형 스티커(딱 3주 치가 있었다)를 다 사용했는데, 다시 사려고 여기저기(10x10 등등) 검색을 해봐도 못 찾음. -  책 읽다가 22시가 되면 잠.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였나에서 달릴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고 했는데,  내가 그렇다. 홈트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냥 동작을 계속할 뿐이다. 스쾃 1분 버티기 같은 걸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그냥 버틴다.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서(소파에 너무 오래 누워 있었다 싶을 때 1인용 리클라이너에 앉고 너무 오래 앉았다 싶으면 다시 소파에 눕곤 했다. 아 진짜 왜 이런 방탕을 했을까. 내 인생 유일한 방탕은 운동을 안 한 것. 하지만 건강할 때는 건강을 지키는 행동을 하는 게 불가능하니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고친 게 어디냐. 매사가 전화위복임을 명심 또 명심하자) 넷플릭스를 하염없이 보던 내가, 거실 테이블을 치운 자리에 요가 매트를 깔고 넷플릭스를 보던 TV로 홈트 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하게 되는 날을 맞이할 줄이야!!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면 일단 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운동 시작하고 나서 넷플릭스를 안 봤다. 볼 시간이 없고, 보고 싶은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운동을 하게 된 지 3주가 좀 지났는데(누가 보면 3년 정도 한 줄) '와, 이게 진짜 건강한 고독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의 연락도 기다리지도 않고(물론 연락이 오지만, 안 오는 게 더 좋고), 그 어떤 것을 사고 싶지도 않고(특히 위치재), 쉽게 말해 번뇌가 없달까? 뭔가를 욕망하지 않는달까? 유일한 욕망은 위에 적은 새벽 5시에서 밤 10시 사이의 루틴을 지켜나가고 싶다는 것 정도. 이 하루를 실천하고 다이어리에 실천 스티커를 붙이겠다는 아이 같은 욕망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루틴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채워져서 무엇 하나 더할 수도  덜어낼 수도 없는 완벽한 하루, 그 하루가 주는 충만함만 가득할 뿐이다.


육체무용론자인 나 -> 라캉의 상징계와 무의식을 알게 됨(무의식이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다라고 합리화함) -> 증상에 안주하지 않고 공백을 걷기로 한 후 왜인지 모르게 육체로 걷게 됨 ㅋㅋㅋㅋㅋ(진화론이라면 이거슨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인한 진화) -> 활력이 도는 육체를 가지 됨 -> 영혼은 건강한 고독상태에 진입(번뇌가 거의 없다, 아직은)

 

사실 내가 운동을 거의 안 한 시기는 최근 5년 동안이다. 가장 열심히 했어야 하는 시기였는데, 골든타임을 놓친 것. 20대 때는 10km 마라톤을 꾸준히 한 적도 있다. 주중에 달리기 연습하고 주말에 여기저기 대회 참가하고. 요가를 꾸준히 6년 넘게 했다. 그 요가를 그만둔 게 2018년. 운동을 안 한 5년(그중 3년은 코로나였고 2019년에 거대한 TV를 거실벽에 걸고 본격 넷플릭스 좀비가 되었다.) 사이에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속노화가 진행되었고, 결국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서 혈액검사를 하고 CT를 찍어야 하는 병들어 가는 육체가 된 것이다!!


어떤 알고리즘에 이끌려 나는 노화, 노쇠 전문가 정희원에게 도달했는데, 이 사람의 말 중 제일 충격적인 것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요양병원에서 콧줄을 끼고 살 것인지, 90세가 되어서도 혼자 힘으로 걷고 생활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하는 말이었다. 나는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고 받아들여야 하며, 죽을병에 걸려 존엄을 잃었을 때는 안락사를 하는 것만이 인류애라고 주장했고 믿었다. 그래서 생활습관을 고칠 생각을 안 했고, 아직 건강할 때 더더 즐겁게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많이 하자 생각했다(하지만 이것도 다 내 무식의 소치. 과학에 의하면 쾌락의 총량은 일정하다는 것). 그래서 디올을 사고, 마칸을 사고 싶어 했고, 비싼 소파에 누워서 넷플릭스를 탐했다. 건강수치가 계속 나빠져도 받아들였다. 오히려 건강할 때 더 즐기자, 완전 막가파였다. 죽으면 죽지 뭐 했다. 아침 공복에 스타벅스 조각케익과 커피를 먹은 적도 종종 있다. 죽기 전에 마칸이나 사자 싶었다. 한편으로는 죽을 때 죽더라도 죽음이 뭔지나 알아보자 싶어서 죽음에 관한 책을 탐했다. 한심하고 어리석지만 이 과정이 없었다면 최근 3주간의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자신에 도달할 수 없기에 이 방탕의 과정도 다 전화위복이라고 합리화 처리했다(라캉식으로 말하면 나만의 픽션 만들기!). 나의 이 전화위복의 합리화 능력을 나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웬만해선 우울하지 않다. 



건강식 먹고, 홈트하고, 잠 자기 전에 <감시와 처벌> 읽는다.

이 정도면 성직자보다 더 성스러운 생활 아닌가!! 



p.s. '영혼은 신체의 감옥이다.' 이 말이 라캉의 욕망이론으로 해석되는 이유는 뭘까? 영혼의 대부분은 무의식, 그 무의식은 어떤 증상을 탐하고, 그 탐함으로 인해 육체는 병든다. 증상을 탐하는 것이 주는 즐거움(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백-운동-고독-번뇌 없음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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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계속 홈트를 하고 있다.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공복 모닝 홈트 연관 영상으로 강민경의 아침 집밥 7일이라는 영상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강민경이 누군지도 몰랐다. 다만 분명 건강한 아침밥 영상이겠지 싶어서 보게 되었는데!!! 그냥 부지런히 요리하고 맛있게 잘 먹는 영상이었다. 건강식은 아니었다. 그저 아직은 건강한 젊은 사람의 활력 가득한 식사 영상이었다.(부럽!!!!!!) 아침밥 영상을 다 보고 나니 인기 영상으로 차밥 10끼가 나와서 또 봤다. 그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나는 강민경의 나이를 검색해 봤다. 도대체 몇 살 이길래 저리 방탕하게 먹고도 건강하게 살아있단 말인가!!!!!! 


그래, 아직은 건강할 나이구나!!!


월요일에는 야심 차게 <감시와 처벌>을 들고 출근을 했다. 월요일에 업무 공백 시간이 있기 때문에. 매주 100쪽씩 읽으려면 하루 20페이지씩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열차게 읽었다, 월요일만. 현재 45쪽까지 읽음.


내가 미셸 푸코 대신에 선택한 것은 유튜브 지식과 운동(홈트를 매일 1시간 이상씩 함)이었다. 이유는 이번 주에 3 달마다 하는 혈액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어메이징 하게 좋았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교수도 놀라서 물었다. "뭐 특별히 한 것이 있나요?"라고. 이 검사를 한 지 만 3년이 되도록 나의 혈액수치는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었다. 수치가 들쑥날쑥하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게 정말 안 좋은 것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좋아졌다!! 그래도 건강인의 수치는 아니다. 여전히 위험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약 먹으면 좋아지는 거 아니냐, 식이요법 같은 건 없냐라고 묻곤 하는데. 이게 뭐 고혈압이나 당뇨, 심혈관질환인 줄 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검색해 보라고. 증상 없고, 약도 없고, 10에 9명 이상 다 죽고. 수술도 어렵고, 대부분이 손 쓸 수 없는 최후의 상태에 병을 알게 되기에 수술 자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뭐 그냥 그런 거라고ㅜ(그래서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내 상황은 억세게 운이 좋은 거라고들 하는데. 인생 운을 여기에 다 쓴 거 같기도. 애초에 나는 이 장기를 약하게 타고난 듯. 인생에 방탕이라곤 없는 사람인데 아픈 걸 보면 ㅜ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술 담배 안 하기, 규칙적인 생활, 7시간 이상 잠자기, 스트레스 피하기, 운동하기, 건강한 음식 먹기 정도밖에 없다. 이번에 내가 새롭게 시도를 한 것은 아침 습관을 바꾼 거였다. 모닝 홈트와 샐러드 먹기. 원래 아침에는 밥과 국만 먹었는데, 밥과 국을 대신 양배추와 녹색 채소, 토마토, 올리브 오일, 귀리를 먹는 것으로 식단을 바꾸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저녁밥 먹고 바로 침대에 다시 누워 있다가 잠 오면 잤는데, 저녁밥을 먹고 나서 1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잠자고 있다. 여전한 의문은 돈 주고 한 필라테스 대기구 운동은 뭐였나 하는 것...


아무튼 고작 2주 하고 이 정도로 건강해지는 거라면 왠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노화, 질병에 대한 영상을 검색해 보다가 정희원 교수(노년내과 전문의, 세상에 노년내과가 있다니!! 진정 고령화시대로다)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미셸 푸코도 라깡도 아니고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이었다. 노화지연의 핵심은 근육량 유지(운동)와 음식이었다! 60세 이후에 요양병원에 가는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뭐 일단 나는 내가 60세까지 살 수 있으냐 마느냐도 불확실한 건강 상태이지만 ㅜ) 노인이 와병이 나서 10일만 누워 있으면 10년을 운동해서 만들 수 있는 양의 근육이 사라지며 허벅지 근육이 없어지면 걸을 수가 없고 걸을 수가 없으면 화장실을 못 가고 기저귀를 차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기저귀를 차고서도 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거동을 못해서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냥 안락사하고 싶다. 간신히 거동할 수 있게 되자 투신한 들뢰즈의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다시 한 번 생로병사를 해야만 하는 인간을 낳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파르르 떨었다! 


정희원 교수의 세바시 영상 중 충격적인 말은 '즐거움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였다. 과학자들이 이미 증명해 냈다고 함. 나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난 후 나도 매일 소마 1알을 먹고 싶다고 정말 간절히 생각했다. 하지만 뇌라는 놈은 자극에 익숙해지기(익숙해져야하기) 때문에(자극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가 없다고 하네...) 소마 1알이 소마 2알, 3알, 100알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 사람은 병에 걸린다. 우선 간이 병들 것이다.  


또한 도파민(즐거움)의 최종 산물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kpop을 숨 쉬듯 들을 때 극도로 피곤했었나. kpop이 주는 즉각적인 즐거움(도파민)에 나는 쩔어 있었던 거 같다. kpop과 팟캐스트를 끊고 나서야 여유 에너지가 생겨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하자 몸에 활력이 돌았고 피곤이 사라졌고 (일단은) 혈액검사결과가 좋아졌다. 운동을 해도 도파민이 나오지만, 몸이 허락하는 유일한 도파민은 운동을 통한 도파민이 아닐까? 


즐거움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육체가 운동을 통한 도파민만을 허락한다면 마칸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 마칸이라는 위치재를 통해 즐겁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마칸을 욕망했을 뿐. 그런데 즐거움(도파민)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그것을 운동을 통해서 채울 수 있다면 운동해서 건강해지고, 하루치 도파민도 충족하고 일석이조 아닌가. 마칸을 사기 위해서 운동할 시간, 잠을 잘 시간을 줄여가면서 억지로 불필요한 노동을 할 이유는 없어졌다. 


내가 여행(국내든 해외든)을 시큰둥해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 여행(새로움)을 생각하면 즐거움보다는 피곤이 앞섰다. 여행의 모든 경험들은 새롭지만 식상했다. 여행 재미의 절반은 식도락일 텐데, 나에게 맛집의 음식들은 그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로 가는 급행열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뿐이고. 난 그냥 내 집에 있는 동물복지 유기농 계란, 무농약 채소, 좋은 올리브유 같은 걸 먹고 싶을 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더 글로리>의 하도영이 편의점 삼각김밥이 탄수화물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먹지 않았던 이유는 당뇨 위험군이거나 정제곡물은 먹지 않는 방식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40대이기 때문인지도. 


내 동년배들은 자녀를 키우고, 아파트 대출금을 벌고, 직업적인 성취를 위해서 가열차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훌륭한 3, 40대의 산업역군으로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은퇴자의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을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에만 골몰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초등학생이 고등학생 수학을 공부하는 것 마냥 나는 인생을 선행학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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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모닝 홈트 10분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봤자 오늘까지 딱 10일째지만! 저녁에는 집 앞 산책로를 걷거나 유산소 홈트를 하고 있다. 이것도 10일째 꾸준히! 어제는 미밴드 PAI 36, 최종 113이 되었다. 놀랍게도 피곤이 사라졌다. 1시간 이상씩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피곤해 죽을 거 같다는 생각만 하던 내가 사라졌다!!


몇 년 전 알라딘 12월 굿즈 무민 다이어리를 살 때 다이어리에 끼워져있던 스티커를 언제 쓰나 했는데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요일별 도트 스티커를 매일 운동한 날에 붙이고 있다. 매일 스티커를 붙이고, PAI 지수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피곤이 사라졌다는 것에 놀라서 아직까지는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머리를 비울 수 있어서 좋다. 고작 운동 10일째인데, 운동하기 전에 했던 여러 가지 어려운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오직 오늘 하루라도 건강하게, 피곤하지 않게 보내자 하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전혀 보지 않았던 건강 관련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의사, 약사, 한의사 등의 유튜브를. 그전에 나는 저런 것들을 회피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는 병원 다니고 있으니까, 대학병원 교수는 딱히 해주는 말이 없었고, 내 병은 그냥 받아들이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하고, 의사 친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 쓸 수 없는 말기에 알게 되고 몇 달 살다가 죽어. 너처럼 우울해할 기회조차 없어. 너는 걱정도 하고 대비도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지 생각도 하잖아. 그럴 기회가 주어진 게 좋은 거야. 그리고 나처럼 위로해 주는 친구도 있고. 운이 엄청 좋은 거야."라고 했다. 

70대인 내 아버지는 매일 소고기나 돼지고기나 회를 먹는다. 매일 반주를 하고, 간식으로는 항상 과자(몽쉘 8개를 이틀간 먹기도 함)를 먹고, 요즘은 매일 비락 식혜를 2캔 이상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 정상, 따로 먹는 약 없고, 매우 매우 건강하다. 키 179에 몸무게 74(지금이 인생 최대의 체중) 배는 좀 나왔지만 근육맨이다. 한마디로 나보다 건강하다. 집에서는 항상 쇼파에 앉거나 누워서 종편 뉴스(정치와 트롯만이 유일한 즐거움)를 본다. 내 아버지는 육체 노동자였고, 지금도 새벽에 노동을 하고 낮에는 좀 쉬다가 서늘해지면 오후부터 저녁까지 또 육체 노동을 한다. 다시 말해 야외(충분한 햇빛과 신선한 공기)에서 땀을 흘리며 계속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한다. 운동을 따로 하지 않지만 생활자체가 근력 운동인 것이다. 대신 육체 노동을 하지 않는 날은 간식 안 먹고, 고기도 안 먹고, 채소 위주의 한식을 함. 70대 임에도 불구하고 먹는 약이 없고, 각종 건강 수치가 정상이며, 허우대가 보기 좋다는 것에 엄청난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이다. 또한 매사를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스트레스 안 받고, 엄청 잘 자는 사람이기도 하다. 담배는 평생 핀 적이 없고, 술은 60대가 되어서야 반주로 마시기 시작했고 과음은 절대 안 함. 맥주 1병도 다 안 마시니까. 

햇빛을 받으며 땀 흘려 움직이는 게 건강의 비결인지도!!

여러 가지 병들이 다 그렇겠지만, 대부분의 원인(유전 제외)은 불규칙한 생활습관, 수면부족, 스트레스, 나쁜 음식 과잉 섭취 정도 일 것이다. 건강관련 유튜브를 쭉 봤는데 나에게 해당되는 건강악화의 원인은 단 한 가지, (심각한) 운동부족이었다. 나의 유일한 나쁜 생활습관은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 내 아버지와 나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70대 노인이 청소년처럼 아무거나 먹어도 건강하다니!! 심지어 날씬하기까지.

육체무용론을 주장하면서 몸을 하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나에게 있어서 몸은 의생활을 하기 위한 스탠딩 옷걸이 정도에 불과했다. 부친을 닮아 팔다리가 길고 날씬하니까. 뭘 입어도 나름 모델핏이었다. 하지만 내 뱃속의 장기들은 노화와 함께 병들어 가고 있었다. 병들어 가고 있는 지금도 증상은 없다. 이 병의 특징은 무증상(그래서 치료조차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는 사람이 다수다). 다만 나날이 수치가 나빠질 뿐이다. 

운동, 특히 공복 모닝 홈트는 정말 엄청나다. 10분 동안 몸을 움직이고 나면 예열이 된 것 마냥 활력이 생겼다. 움직이기 싫을 때일수록 몸을 움직여서 활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다니!! 홈트 시작하고 나서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다던가 쇼파에 드러누워서 무력하게 넷플릭스를 본다던가 한 적이 없다(물론 고작 10일이지만). 

필라테스를 다닐 때의 나는 왜 전혀 운동 효과를 보지 못했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어딘가에 가서 남들과 같이 하는 운동이 나에겐 맞지 않았던 건지도. 내 맘에 쏙 드는 운동 유튜버와 함께 혼자 집에서 하는 운동이 내 스타일이었던 건지도. 내 맘에 드는 운동 유튜버는 빅씨스인데,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체력을 소유하신 분.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나도 열심히 하면 빅씨스 나이가 되었을 때는 체력이 좋아질지도 몰라하는 식의 동기부여가 되어서 그런가 더 열심히 하게 된다. 

과거의 내가 뇌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나는 몸을 모시고 사는 사람.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행위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노화라는 불청객이 왔고 나는 그 손님을 대접해야만 한다. 그걸 외면한 대가가 현재 나의 각종 건강 수치. 

운동을 하면 피곤하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10일간이었다. 

나의 온갖 수치들아, 부디 여기서 멈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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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재 책상에 앉았다.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잡동사니(공책, 책, 영수증 등등)도 다 정리하고 치웠다. 마지막으로 서재 책상에 앉았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최소 3주 전? 그동안 나는 거실 테이블을 침실로 옮겨 그것을 좌식 책상으로 사용했다. 서재 책상에 있는 32인치 모니터를 외면하고 13인치 맥북(구매당시에는 레티나였으나 지금은 레티나라고 하면 응? 뭔 소리?) 화면에 의지해서 일기를 써 내려갔다. 공백을 걷는 기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 일기 이후 나흘이 지난 오늘, 나는 내 마음의 구멍이 다 매워졌음을 알았다. 아니, 어제 알았다. 다이어리에 또박또박 썼다. '매우 매우 충만해짐!'이라고. 


지난 일요일 점심때 현재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 중 가장 오래된 지인에게서 커피한잔할까라는 띄어쓰기도 물음표도 없는 단 6글자의 톡이 왔다. 나는 25살 이전에 알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이 지인은 26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편의상 이 지인을 공유라고 부르자. 턱선이 공유처럼 생겼다. 즉 선명하지 않고 흐리멍덩하다. 좋게 말하면 공유고 나쁘게 말하면 심슨? 내 집에서 가장 가까운(약 200미터, 도보 3분)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나는 도착했다고 톡을 보냈고, 공유는 4km 남았다고 했다. 10분 정도 더 걸릴 거 같아 먼저 주문을 했다. 그런데 음료가 나오기도 전에 공유 도착. 따로 주문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음료인 뜨거운 페퍼민트를 마시면서, 한 여름에도 아이스는 마시지 못하는 서로의 허약한 몸 사정을 위로했다. 30분 남짓 얘기를 하고 이제 가자 하면서 컵을 정리하는데 내가 "나 차 한 번 태워줘. 포르쉐 한 번도 안 타봤어. 타보고 싶어." 했더니 "그래."라고 했다.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 앞에 왔는데 "한 바퀴만 더 돌자."라고 하니 또 "응, 그래." 했다. 그렇게 마담 보바리의 마차처럼은 아니고 ㅋㅋㅋㅋ 돌고 돌고 돌았다. 


공유가 나를 보러 온 먼 길을 온 이유는 곧 있을 (나의 병에 관한) **검사 잘 받으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격려를 해 주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공유는 격려의 의미로 내가 해달라고 하는 모든 것을 다 해줬다. 어떤 것은 내가 요구하기도 전에 "너 이거 좋아하지?" 하면서 해줬다. 


그렇게 일요일을 보낸 후 월요일, 화요일, 그리고 오늘 수요일을 보내는데, 최근 계속느꼈던,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내 마음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어떤 불쾌한 아픔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어떤 것을 볼 때마다 늘 찔려서 아팠는데, 그날 이후로 그것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음에 약간 허무하기까지 했다.


나는 혼자 공백을 걷는 것이 최선이고 유일한 비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유가 나타나서 공백만으로는 채우지 못한 1%를 채워주고 간 느낌이다. 공유는 영업 잘 되는 동네 의원 원장님이기도 해서 장돌뱅이 약장사같은 말빨로 나를 위로해 주는 면이 있기도 했다.


나에게 처음으로 독일차를 태워준 사람 공유, 그 차는 5시리즈. 나에게 처음으로 벤츠를 태워준 사람도 공유, 그 차는 e클래스. 나에게 처음으로 포르쉐 태워준 사람도 공유, 그 차는 카이엔. 그리고 나에게 티파니와 샤넬을 선물해 준 유일한 사람(나 자신 제외)이 공유였다. 



와놔. 마칸 사고 싶어!!!!!!!!!!!!!!!!!!!!!!!!!!

음... 마음의 구멍은 매워진 게 아니라 다른 구멍으로 이전한 것인지도.

월요일부터 마칸 앓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앗, 공백 속 걷기 해야 할 시각이다!! 저녁 산책이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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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부터 나는 계속 듣고 있었다. 주로는 팟캐스트였다. 대략 2년 전부터는 스트리밍 음악까지 추가되었고, 작년 하반기부터는 k-pop을 줄곧 들었다. 집에서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었고, 회사에서는 에어팟으로 들었다. 에어팟은 나의 신체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백상현 유튜브 라깡 강의 두 편을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 나오는 부분을 계속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켜고 출근 준비를 한다. 

지난주에는 계속 백상현 유튜브. 이걸 계속 듣다가 생각했다, 결심했다. 

공백 속에서 지내겠다고. 다시 말해 아무런 정보값이 없는 생활 소음 속에서 지내겠다고(지금도 들리는 소리라면 에어컨 작동 소리뿐). 물론 그 공백이 이 공백은 아닐 테지만, 일단은 외부 사람(타인?)이 나의 청각을 자극하는 것을 차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소거 첫날, 월요일. 놀랍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평소의 나는 업무의 틈이 생기면 계속해서 듣거나 읽거나 했다. 자주 가는 블로그에 가거나(즐겨찾기도 하지 않음, 아예 블로그 주소를 외운다. 왜냐 혹시나 타인이 내 컴퓨터를 썼을 때 내 취향이 공개되는 게 싫어서, 로그인 안 함), 유튜브를 듣거나(보지 않음), 책 검색을 하고 미리 보기를 하거나 등등. 계속해서 머릿속에 정보를 입력하는데 그것을 전혀 하지 않고 멍 때리면서 하루를 보냈다. 틈이 생기면 의자에서 일어나 멍하기 창 밖의 나무를 봤다. '여름이라 초록이 무성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샤워,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할 때도 언제나 팟캐스트를 듣던 나였으나,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냥 물 흐르는 소리에 집중했다. 


서재에 일기 쓰는 것도 당분간은 쉬어야지 생각했다. 대신 아껴두었던, 수년 전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면서 굿즈로 받은 양장노트(올리브 키터리지와 표지가 똑같고, 페이지마다 해당 소설의 구절이 적혀 있다. 애정템.)를 펼쳐 매일 들고 다니면서 내 기분이나 생각을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정돈된 글씨로 썼다. 내가 마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된 마냥, 이것은 쓰는 즉시 나의 소설이다라는 식으로.


그리고 무려 어제!!! 역사가 탄생했다!!!!

낭비되던 에너지가 없게 되자, 기적처럼 퇴근 후 홈트가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유튜버 빅시스의 채널에 입문하게 된다. 일단은 체력이 부족해서 아침에도 저녁에도 계속 모닝 홈트만 하는 중. 모닝홈트 20분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1월 이후 하지 않았던 산책까지 하게 되었다. 산책 시간은 40분, 거리는 2.5km. 산책을 할 때 에어팟 없이 한 적이 없었는데 어제는 에어팟 없이 했다. 좀 과장하자면 공백을 걷는 기분이었다.


늘 저녁을 먹고 나면 병든 닭처럼 졸음이 밀려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는데, 내가 침대에 눕는 시간은 주로 9시 전후. 어제는 졸리지 않아서 올리브 키터리지 공책에 일기를 좀 끄적이다 보니 졸려서 10시 반에 자고 9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9시에 일어나서 내가 한 것은!!! 빅시스의 공복 모닝홈트 10분짜리 2회 반복!!!!!!!!! 


나는 내가 모닝 카페인 없이는 졸음과 피곤을 떨쳐 낼 수 없는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닝 홈트 20분을 하고 나니 엄청 상쾌하고 몸이 가볍고 에베레스트는 무리고 한라산 정도는 오를 수 있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운동을 해야 기운이 난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늘 이 말이 궤변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다니!!! (내가 지난밤에 10시간 30분을 잤기에 상쾌한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10시간 30분을 잤더라도 피곤한 사람이 나 ㅜ)


세탁기를 돌리고, 손빨래를 하고. 아침을 먹고 난 후 내가 무얼 했냐면 무려 이마트에 간 것!! 나는 절대 주말, 휴일에는 마트를 가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 붐비는 거 딱 질색. 그래서 늘 퇴근하면서 잠시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요즘은 붐비는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생겼는데, 그것은 늘 피곤하고 기력이 없어서 하루종일 집에만 있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휴일에는 웬만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주말 히키코모리가 되었달까...


마트에서 1시간 30분 동안 장을 보는 동안 약 2000걸음을 걸었다. 항상 마트에서 계산할 때 줄이 짧은 곳에 서거나 스피트 계산을 하는데, 오늘은 그냥 아무 데나 서서 내 앞사람이 장 본 것을 여유롭게 지켜봤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역시 긍정은 체력과 여유에서 나오는 건지도...  앞사람은 캠핑용 장을 본 것 같았다. 물건도 엄청 많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에 와서 양배추 1통을 채 썰어 두고, 계란을 삶고, 할인하길래 한 번 사본 샐러드 채소에 양배추, 계란, 토마토, 견과류를 추가해서 점심으로 먹었다. 드레싱은 발사믹 올리브오일. 


필라테스를 다닐 때는 에어팟이 제 2의 고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꽂고 살았다. 그래서 운동 효과를 보지 못했던 걸까? 운동을 한다는 심리적 위안은 있었지만, 육체적인 활력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환불 받고 그만 둔 것이었다.


또한 나는 물리적으로는 혼자였지만, 팟캐스트 속에서 말하는 타자들과 계속 함께였는지도. 그들의 수다를, 그들의 지식을, 그들의 정보를 나는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었나 보다. 내가 수용할 수 있는 하루치 타인 용량, 정보 용량을 훨씬 초과해서 삼켰나 보다. 그래서 10시간을 자도 늘 피곤하고 졸렸던 것은 아닐까?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다시 10분 모닝홈트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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