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이 몇 개 생겨서 엄마에게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장독에 망을 씌울 때 쓰면 좋다고 했다. 그래서 고무줄을 주었더니 어버이날에 고무줄만 주냐길래, 


엄마, 엄마는 아직도 남이 나를 챙겨주길 바라고 기다리는 거야? 그런 사람은 평생 불행할 수밖에 없어. 나는 타인에게 아무 기대가 없어. 내가 나를 챙겨주면 되지. 그래서 나는 내 생일 선물 내가 사잖아. 


엄마는 "그래도 남한테 받고, 주고 하면 재미있잖아."


나는 "그걸 호기롭게 재미로 주고받는 사람은 거의 못 봤는데,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만큼 챙겨줘야지 따지고 또 따지고 하던데. 그리고 엄마, 나는 부모 덕분에 태어난 건지 부모 때문에 태어난 건지 그게 덕분에 인지 때문에 인지 여전히 고민인 사람인데, 어버이날 선물을 챙길 여유가 없어.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내 덕분에 부모가 되었고, 나같이 훌륭한 딸을 가진 부모가 되었는데 무슨 선물을 더 바라는 거야?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라고.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또 나는 "아, 남이 나를 챙겨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체로 결혼하고 자식 낳고 하는 거구먼." 했더니 엄마는 "니랑은 대화가 안된다. 어려운 말 하지 마라."라고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엄마에게 "엄마, 그런데 진짜 자식은 왜 낳는 거야?"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걸 왜 나한테 묻노?" 그래서 나는 "그럼 그걸 나를 낳은 사람한테 묻지 누구한테 물어? 다른 애 엄마한테 물을 수도 없잖아." 했더니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뭐 아기가 귀엽고 원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야 되는 건 줄 알고 낳았지."였다.


그럼 덕분에 아니고 때문에 네.


내가 바란 대답은 사는 게 너무 좋고, 이 세상에서 하루라도 사는 게 너무 축복이고 그래서 이 축복 같은 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였으나, 그럴 리가 없지. 엄마 아빠의 인생은 축복이라기 보단 그저 하나의 불행과 고통, 생존 전쟁일 따름이었다. 


요즘 아빠는 나만 보면 아빠가 어린 시절 얼마나 힘들고 가난하게 살았었는지를 얘기한다. 아마도 그건 너는 그런 고난을 겪지 않았으니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 행복을 자각하고 긍정적으로 살아라 라는 속 뜻이겠으나, 그걸 듣는 내 마음에는 '저토록 불행한 삶을 살면서도 굳이 자식을 낳는 긍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본능인가, 무지인가,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는 자식 왜 낳았는지 묻지 않는다. 아빠는 번식이 생의 목적인 사람이고, 그런 아빠는 나를 온전한 삶을 사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면 내 관점에서 아빠는 손에 휴대폰이 아니라 뗀석기를 쥐어주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21세기가 아니라 70만 전의 시대에 더 잘 살 것 같은 그런 인류이다.  "자궁이 없는 남자가 생의 목적을 번식에 두는 것은 정말 가련한 일이다. 하긴 자궁이 없기에 그것을 간절히 바라는 수컷의 운명과 비애."라는 평가받은 후로는 아빠는 내 앞에서는 번식, 번식, 자식, 자식 운운하지도 않는다. 그래 봤자 자궁이 없으니 열등감에 저런다 하는 말이나 듣게 될 뿐이라서. 


태어난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해당하는 고난은 분명 존재한다. 전후 세대의 고난이 생존이었다면 내 고난은 생존이 더이상 의미가 없어진 시대를 살아내야만 하는 고난이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뼈 빠지게 일해서 쓸데없는 옷 사는데 돈 다쓴다." 는 것이다. 내 식대로 표현하면 권태를 견디는 것! 그래서 몇 번 입지도 않을 우영미 티를 단지 새로운 것을 입어보자는 이유로 구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권태가 희석되니까. 이미 명품들은 21fw 신상품을 업데이트했다. 예쁘고 작고 비싼 것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좋아진다.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것만으로도 지루함이 희석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나 영화감독의 신작은 1년 2년이 지나도 출시되지 않지만 패션은 성실하게 신상을 만들어 낸다. 패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서 죽어가고 있는 이유는 부모가 나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내 부모 특히 자궁이 있는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왜 나를 낳았는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낳았는지, 자식을 낳을 때 이 아이가 살아가면서 느낄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덧셈 뺄셈 해보지는 않았는지 등이 궁금한 것이다. 나는 내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을 택했고 여전히 이 선택이 최선이고 내가 태어나서 잘한 일 중 하나는 자식을 낳지 않은 것인데, 그렇다면 내 부모 특히 엄마는 어떤 생각인지 그것을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걸 부모에게 묻냐고 하는데 그럼 그걸 누구에게 물어보나? 나는 이것도 물어 보았다. "그런데 엄마, 사람은 태어나면 죽잖아? 어차피 죽을건데 왜 낳아?" 난 정말 진심으로 이것도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친한 동생에게도 물어봤다. 태어나면 고생이고 어차피 사람은 죽는데 왜 낳는지를... 내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아는 동생은 "내가 갖고 싶어서. 내 욕심."이라고 말했다. 그게 정답일까? 


내 생각은 그렇다. 생명이 있는 어떤 다른 존재를 단지 내가 갖고 싶어서 낳거나 구해서(구입해서) 키운다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잔인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고기든 간에... 그래서 나는 인간을 배우는 고양이, 두 발로 서려고 하는 고양이를 보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고양이를 배우는 고양이는 두 발로 서지 않음을 알기에... 누워서 자는 고양이나 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간을 배워서 인간처럼 자는 것일 뿐. 고양이를 배우는 고양이는 결코 그렇게 잠자지 않는다. 인간에게 선택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번식권을 박탈당하는 반려동물도 불쌍하긴 마찬가지다. 동물 중성화 수술이야 말로 가장 잔인한 짓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지만 후대에는 그것이 무척이나 잔인한 짓이었음을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갖고 싶어서 자식을 낳은 건데 그것이 감사해야 할 일인가? 

반려동물을 중성화시키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그게 동물 애호인가? 

이 두가지는 항상 의문이다. 


나는 나와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것.

자식을 낳아 키우는 동시에 키우는 반려동물을 중성화 시키는 것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모 때문에 태어나서 호기롭게 버티며 사는 중이다. 하지만 이 삶을 다른 타인에게 권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서 나는 낳지 않고 있다. 자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돌보는(바빠서 부모에게 좀 부탁을 했다. 사료는 내가 살 테니 사료 좀 매일 챙겨달라고) 야생 고양이는 10마리가 넘는다. 그 중 2마리는 임신을 해서 며칠 전에 출산을 했다. 나는 그 고양이들을 중성화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고양이는 고양이로 자유롭게 살다 죽을 권리가 있으므로 내가 그들의 번식권을 박탈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고양이들 중에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중성화 수술 당한 수컷이 있는데, 야생 고양이들은 그 고양이가 너무 이상하기에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 수컷도 아니고 암컷도 아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천연 고양이들인 것이다. 나는 그 중성화 수술 당한 버림받은 고양이가 너무 불쌍하다. 그 고양이가 짓는 불쌍한 표정이 있다. 그 표정은 내가 돌보는 야생 고양이들에게서는 단 한번도 못 적이 없기에 더 슬펐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번식과 생존에 관한 지난한 이야기들이 지겨워서 나는 토성의 고리의 일부가 되고 싶다. 얼음덩어리...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면 나는 토성의 고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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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1 0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 이제 내가 권하고 싶은 권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그것은 아무런 할 일이 없거나, 그리 급할 것도 없는 일을 잠시 뒤로 밀쳐 놓을 수 있을 때, 느긋한 행복감에 젖어서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하품을 해댈 수 있는 그런 권태이다. 때때로 그런 권태에 빠져들 수만 있다면, 당신은 하나도 급할 것 없다는 기분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권태에 젖어들 수 있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친구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또는 엄마가 저녁 밥상에 시금치를 올려 놓았기 때문에 등, 아이가 칭얼댈 수 있는 이유를 미리미리 제거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다행히도 당신은 평범한 일상 생활로 덮여 있는 마을에서 단조로움을 느끼고 있다. 당신은 다락방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서, 뭔가 사건이 일어나 주기를 기대하며 밖을 내다본다. 하다못해 집시들을 가득 태운 대형 트레일러라도 지나가 주기를, 그것도 안 되면 오토바이 한 대라도 부-앙 소리를 내며 지나가 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런! 오늘도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자동차는 단 한 대도 없다! 자, 다락방의 창문가에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동안 노근노근한 시간이 흘러간다. 오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당신은 다락방에서 보낸 평안하고 느긋한 시간을 흡족해하며 몸을 일으킨다. 나는 그런 당신의 태도에서 당신의 건강 상태를 점쳐 볼 수 있다. 당신은 아스팔트로 덮인 당신 집 앞 도로 위에서 먼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이다. 

한가로움을 즐기는 권태에 빠지기 위해 당신은 일단 성공적인 출발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아직까지는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의 삶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경탄할 수 있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 당신은 오후 내내 허리를 굽힌 채 거리를 내려다보던 다락방에서 일단 내려오면, 이번엔 틀림없이 멋진 자연과 흥겨움을 약속해 주는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비디오 테이프 녹화기를 들고 떠나는 로마 여행! 아니 영원한 도시 예루살렘으로 가볼까? (중략)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 피에르 쌍소>


권태 감별사 피에르 쌍소 옹의 진단에 의하면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내가 나 자신에게 의아해하는 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나는 분명히 이 삶이 너무 지겹고 따분하고 태어난 것이 후회되는 그런 마음인데, 제 3자의 눈으로 내가 내 행동을 분석해보면 하루하루 사는 걸 아주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권태로 인해 절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방치하던가 다른 무언가에 중독되기 십상인데 나는 삶에 대한 나의 불만족스러운 견해와는 달리 엄청나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나 자신을 훼손할 수가 없는 부류의 인간일 뿐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아껴주나. 이 세상에 태어나짐 당해서 수준 낮은(질서의식이 없는 멍청한 사람들)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공존해야 하는 내가 너무 가엽지 않은가. 그러니 적어도 나 자신만은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자. 솔직히 나는 그 마음 하나로 사는 중이다. 나를 잘 입히고 잘 먹이고 편하게 해주고 싶고 좋은 것만 사주고 싶다. 나의 자기애는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기애다. 애초에 남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을 거라는 전제하에 어쩔 수 없지 나라도 나에게 잘해주자라는 식이었기에. 내가 그렇게 된 것의 가장 큰 원인은 내 부모가 나에게 잘해주지 않았던 탓이다. 부모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어서 부모가 안 해주면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지 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온 게 지금에 이르렀다. 


자기애가 강한 독립적인 성격이라서 스스로를 잘 챙기고 살고 있음과 동시에 지루하고 따분하다. 피에르 쌍소에 의하면 나는 지금 '느긋한 권태'의 상태인 것 같다. 그래서 그 따분함을 만회하기 위해서 블랙유머를 찾는데, 내가 찾은 블랙유머는 리사이클 섬유나 에코 코튼으로 만든 의류다. 그냥 웃기다. 그런 것들이. 헛되고 부질없음이 그저 웃길 뿐이다. 또다른 블랙유머는 사치품(일반적으로 말하는 명품)이다. 성실한 노동의 댓가로 벌어들인 숫자를 명품이나 사는 골빈 것들이라고 욕하는 수준낮은 인간들의 욕지거리(주로는 동생이 링크해주는 샤넬런 등등의 명품관련 기사들의 댓글에서 본다. 다른 사람의 소비 취향에 그렇게 달려들어 댓글을 달 일인가 싶지만, 그게 나를 둘러싼 인간들의 수준. 아침 출근길 운전을 하면 알게 된다. 나를 둘러싼 인간들의 수준을 제대로 알게 된다. 차로변경위반, 신호위반, 끼어들기, 꼬리물기, 방향지시등 미사용 등등 즉 이 글을 읽는 너도 당연하다는 듯이 어기는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들. 그 사소한 것 하나도 지키지 못해서 어기는 게 대다수 인간들의 준법 수준이고, 그것이 내가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를 들어가면서 그것을 구입해서 일상에서 입고 쓰고 다닐 때 나는 인생이 한없이 하찮고 가소롭게 여겨진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가훈을 '근검절약'으로 정했고,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호구 조사하는 통신문을 내어주면 항상 가훈에 근검절약이라고 적어줘서 날 부끄럽게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보면 돈을 아껴 쓰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반문을 한다. 내가 돈을 아껴 써야 한다면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나는 아껴 써서는 지금 내가 버는 돈을 다 쓸 수가 없어.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돈 모아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면 아버지는 당황해한다. 나에게 선택지는 딱 2가지다. 일을 그만두고 돈을 아껴 쓰고 살든지, 일을 계속하면서 사치를 하고 살든지. 둘 다 한심하고 따분하긴 매한가지. 



이 한심하고 따분한 상태가 쌍소가 말하는 아이가 칭얼댈 수 이유를 미리미리 제거한 준비된 상태인가 보다. 이 권태의 상태를 어떻게 즐겨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고 불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고작 이게 최선인가? 이게 인생의 최정점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는 동생은 자신이 나처럼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면 딩크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라고 했다.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는 이 삶이 딱히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이가 들어보니 청춘도 너무 잠깐이고 노화로 인한 각종 질환은 상상 이상이다. 남은 생을 노화로 인한 지병들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사람으로 태어나서 너무 오래 사는 걸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존재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앞서 태어난 사람으로서의 최선의 도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이 따분한 상태는 먹고 싶은 것이 없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내 동생은 맛있는 걸 먹는 걸 인생의 큰 낙으로 여기는데 그 즐거움의 치명적인 근심거리는 바로 뱃살이다. 그래서 늘 먹으면서도 살찔 것을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그래서 내가 살찔 것에 대한 그 어떤 근심 걱정 없이 초코칩 쿠키를 우적우적 씹어먹고, 초밥 12피스를 다 먹고, 자바칩 프라프치노에 크림을 얻고 토핑도 추가해서 먹는 걸 보면서 "아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살찔 걱정 없는 사람은 정말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하는데 사실 절대적으로 먹는 양을 보면 나는 동생의 반에 반도 먹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나 자신에게 주겠다는 인생도 사실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예상한 나이에 내가 설계했던 것들을 대충 다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권태의 단계에 이르렀을 따름이다. 영화 <패터슨>의 패터슨을 본받야 할 터. 그것만이 해결책이다. 나는 이 따분함을 극복하고자 인생 성취의 수준을 높인 후 다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열심히 살 생각은 전혀 없기에. 따분함 다음 단계인 관조로 등업 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ps. 현재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절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스테디셀러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체로 자기 계발서만 읽는 남자애들이 주로 말하던 책 제목을 지난주에 <책읽아웃>에서 김하나 작가가 추천해 주어서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김하나 너마저... 야 만다꼬라메!! 목차만 읽어도 내 눈에 이물질이 낀 것 같아서 안약을 넣아야겠다 싶은 책이다. 성공에 관심 없고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에도 관심없으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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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이 시골 학교 선생이 됐다고 온 식구가 마음을 합해 행복해하던 때가 엊그저께건만 벌써 식구가 느는 것 외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따분한 생활에 지친 기미를 우리는 서로 감추지 못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나의 테마는 따분함, 지겨움, 권태로움이다. 인용한 문장에서도 말하듯이 권태는 행복 다음에 찾아온다. 권태는 생활의 안정 다음에 찾아온다.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불행의 단계로 다운그레이드 하는 멍청한 짓은 할 수 없으니 나는 이 권태로움에 적응해보기로 했다. 


따분한 시간을 없애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먹는 것과 도박인데 나는 그 둘 다 하지 않는다. 과식과 음주, 투기(아파트와 코인과 주식)로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20세 이상의 사람들을 나는 권태를 피하기 위해서 자해라도 해야 하는 가련한 존재, 그나마 호의적으로 해석하면 조르바 정도로 여긴다. (조르바도 별로긴 매한가지!)


알콜 중독이나 도박 중독으로 권태를 피하느니 나는 권태로움을 즈려밟고 앞으로 나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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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월요일에 일요일에 하는 영화 <노매드랜드>를 야심하게 예매를 했다. 영화는 하루 2번 상영했다. 조조(9:30)와 오후 4시 40분(이 정도 시각)이었다. 일요일 저녁엔 느긋하게 집에서 보내는 걸 선호해서 2회 차 상영보다는 조조지만 1회 차를 선택했다. 그렇게 예매할 때만 해도 9시 30분 조조 상영 정도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주중으로 갈수록...피로는 누적되었고... 결국 토요일 저녁에 예매를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피로 누적 상태로 일요일을 쉬지 못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가는 다음 주 월~금 출근은 지옥이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매 취소를 하는 것이 2배로 슬펐던 이유는 다음 주말에는 영화제 관계로 개봉작은 아예 상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노매드랜드>를 보려면 최소 2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다음 주 주말 상영 시간표는 업데이트되어 있지 않았다. 체력이 좋았던 20대 시절이었다면 퇴근하고 평일 저녁에 보러 갔을 텐데...지금 이 몸 상태로 그렇게 했다가는 응급실행이라는 걸 알기에...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제도 조기 퇴근을 하고 동네 산책을 하면서 종종 가는 꽃 가게에 가서 카네이션 포트(옮겨심기용 일회용 화분)를 하나 샀다. 집에 와서 마리메꼬 화분에 옮겨 심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샀던 라넌큘러스는 아직은 시들지 않아서 꽃은 사지 않았다. 다음 주 금요일에 또 사야지. 식물의 생식기관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드니 꽃을 사는 것이 유기농 토마토 즙을 구매하는 것처럼 아깝지가 않아졌다. 



열심히 절박하게 경쟁적으로 사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부를 축적하는 기회비용으로 주말을 느긋하게 즐기며 꽃이나 사고 개봉 영화나 찾아보면서 생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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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4-2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마드랜드.저도 기다리는데.근방 영화관에는 아직 안올라왔더라고요

먼데이 2021-04-25 09:15   좋아요 1 | URL
제가 가는 극장은 씨네마테크라서 개봉일(4/15)에 맞춰서 상영을 시작했어요. 노매드랜드가 이번 아카데미에서 뭐라도 받으면 프렌차이즈 극장들에서도 상영 시작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2021-04-25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지은 : 보통 하루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나요?


이효민 : 하루가 굉장히 단순해요. 아침 7시 전에 출발하고 하루 25km 안팎을 걸어요. 식사 같은 경우는 아침은 순례길 도중에 카페 같은 데서 잠시 쉬면서 커피와 또띠아를 먹고 또 계속 걸어요.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점심때가 되면 점심도 간단히 먹어요. 도시락을 먹거나. 도착하면 알베르게 찾아가서 씻고 샤워하고 간단한 빨래하고 장을 보거나 동네 구경을 하고 저녁을 해 먹거나 저녁을 나가서 사 먹고 그냥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또 똑같이 반복이 돼요. 


오지은 : 그러면 숙소에 들어가는 시간이 좀 이르겠군요?


이효민 : 네 대체로 꽤 일렀어요. 몇 시까지 걷고 숙소를 잡겠다 하고 걷는 분들은 꽤 많이 걷기도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대체로 하루에 20-25km 안팎으로 걷고 그 맘 때 즈음에 있는 숙소에 가겠다 였기 때문에 12시에서 2시 사이면 대부분 도착을 해요. 대체로 하루에 6-7시간 걷고 오후랑 저녁을 쉬고 동네 구경하고 다음 날 준비하고. 그래서 삶이 굉장히 단순해지는 거죠. 걷고, 오늘은 어디서 묵을까, 오늘 저녁을 뭘 해 먹을까 이거 말고는 별로 생각할 게 없는 거예요. 삶이 굉장히 단순해져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걷다 보면 잊어버리고 며칠인지도 잊어버리고. 그거 자체가 단순한 삶이 반복되는 거 자체가 굉장한 힐링이었어요.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떠나고 싶다 / 53편 카미노 데 산티아고 feat. 이효민>



주중에 계속해서 이 53편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고 나서 판에 박힌 듯한 단순한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지루한지, 불만족스러운지 알게 되었다. 나의 경우 미리 생각을 해 두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계획을 미친 듯이 많이 짜고  있어서 불만족스럽고, 지루했던 것이다. 


"별로 생각할 게 없는 거예요. 삶이 굉장히 단순해져요."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있어서 위 문장과 같았던 나날은 큰 수술을 하고 그 회복을 기다리던 한 달 간이었다. 그 시절 나의 유일한 숙제는 나빠진 건강 상태에 적응하는 것과 부작용 없이 회복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출근을 안 해도 되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동생은 "유급병가니까 걱정 없어서 행복한 거지. 무급이었으면 그렇게 행복하지도 않았을 거야."라고 하는 어떤 면에서는 맞는 소리를 해댔다. 


생각을 덜 하는 생활을 하려면 계획을 짜지 않아야 하는 생활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참 애매해서 그만 두기에는 돈이 좀 부족(??)하고 일을 계속하려면 사치(??) 말고는 답이 없다. 그래서 어제는 "12-2시 사이에 숙소 마을에 도착한다"는 이효민의 말을 듣고 나도 그렇게 해보자 싶어서 오후에는 휴가를 내고 일찍 집에 왔다. 


오후 계획은 이랬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은행 두 곳에 들러서 다 쓴 종이통장을 새로 발급받고(도장 챙기기!) 돌아오는 길에 꽃 집에 들러서 꽃 한 다발 사기. 남동생은 아직도 종이통장+도장을 사용하는 나를 뗀석기 시대 인간으로 여기지만 나는 종이통장이 없어지는 그 날까지 종이통장을 발급받아서 쓸 생각이다. 더욱이 내 도장은 기계가 판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손으로 판 거라서 나름 소중하다. 지하철 환승역이 있는 유통인구가 엄청 많은 지하철역 입구 노상 가판대에 늘 있는 도장 장수 할아버지가 파 준 것이다. 


꽃 집에서는 분홍 미니 장미와 분홍 라넌큘러스 사이에서 고민을 좀 하다가 라넌큘러스 한 다발을 샀다. 내 꽃 취향은 송이가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좋고, 색상은 분홍이 좋고, 꽃 잎이 겹겹이 많은 것이 좋다. 그래서 올해는 튤립도 프리지아도 사지 않았다. 내 취향이 아니었다. 가장 실패했던 꽃은 보라색 리시안셔스였다. 유칼립투스 블랙잭도 한 다발 살까 생각했지만 나는 꽃을 2종 이상 함께 꽂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한 개의 화병에 꽃을 많이 꽂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라넌큘러스만 샀다. 내가 가진 화병은 알바 알토 1쌍(큰 것과 작은 것)과 마리메꼬 화병 3개다. 사실 화병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뻐서 꽃은 거들뿐이다. 줄기를 화병 높이에 맞게 짧게 자르고 2송이씩 꽂았다. 그리고 화병을 침실, 서재, 거실, 식탁 이렇게 놓아두었다. 오랜만에 꽃을 샀다. 집에 꽃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는 나날이었다. 금요일 오후 휴가를 이용해서 모처럼 꽃 집까지 산책을 하고 꽃을 사 와서 집 안 곳곳에 꽃을 놓아두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주말을 기분 좋게 보내는 방법을 하나 발견했다. 금요일 오후에 주말을 위한 꽃을 구입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정을 오후 2시에 끝내고 남은 시간은 느긋하게 동네 산책을 하면서 꽃을 사는 일 정도 하는 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순한 생활의 기쁨이고, 이것이나마 방법을 하나 찾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p.s. 이효민이 빨리 돌아와서 ebs 팟캐스트 <오래 달리기>도 다시 방송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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