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공감하지 않는다면 축복받은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외국에서 일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종종 일한다. 예를 들어 내전을 겪었던 곳이나 현재 겪고 있는 곳이나. 그런 사람은 어떤 영양제를 챙겨 먹을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전 영양제를 하나도 먹지 않습니다. 나는 긴박하게 바로 물었다. 유산균도요? 설마 유산균도요?? 그는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도 화장실에 편하게 가는 사람이라고 답을 했고 나는 맥이 풀렸다. 그래,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지. 축복받은 사람.

<아무튼, 영양제 / 오지은>

(오지은 팬으로서 이 의사 선생님 누군지 알 거 같다 ㅎ)


(무급)휴직을 앞두고 유튜브에서 절약을 검색해 보았다. 그래서 알게 된 사람이 돈쭐남. 돈쭐남의 혼쭐이 10계명에서 절약을 위해서 내가 실천할만한 항목은 없었다. 이 10계명의 최신 버전 13가지에서도 실천할 항목은 없었다. 왜냐 나는 원래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어쩐지 통장 잔고가 화수분처럼 넘치더라니! 이제야 미스터리가 풀렸다. 


혼쭐이 10계명(혹은 13계명)을 통해 '역시 나는 소비자본주의와 맞지 않는 인간'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10가지 중 3가지가 식비에 관한 거였다. 먹부림으로 대동단결한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당연히 식비, 간식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친구가 별로 없는 거라고 원인 분석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똔줄남의 하지 말아야 할 13가지에서 가장 놀랐던 건 '지출내용을 무기록 하지 말자'였다. 적어도 3개월에 한 번은 자신의 소비를 분석하라는 조언.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용돈기입장이라는 것을 배운 이후 지금까지 계속 소비기록을 하고 있다. 수도, 전기, 도시가스의 경우는 사용량과 사용요금을 공책에 별도로 기록해 두었기에 몇 년치 통계 분석도 가능하다. 주유비의 경우는 주유 당시의 리터당 가격도 기록해 둔다. 내가 특별히 용의주도하게 관리하는 항목은 의류비이다. 의류비는 월별 지출에 기록하지 않고, 별도로 의류비만 기록하고 소비 정도를 조절한다. 자동차 구입의 경우, 내 소득에 비해서 비싼 차임은 분명하지만 나는 내 평생에 자동차는 단 2대뿐이다라고 정한 후에 구입한 것(남들이 2번째 차를 살 때 난 첫 차를 구입. 지금은 10만 km 넘게 주행한 구형차지만 계속 사용할 예정)이기도 하고 반려동물양육비, 자녀양육비 대신 좋은 차를 선택한 것이니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언제부터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처음부터. 음료수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중고대학생 시절 친구들이 자판기에서 종이컵 커피, 캔커피, 데자와 등을 뽑아 마실 때 나는 마시지 않았다. 친구가 혼자 먹기 뻘쭘하니 사준다고 해도 거절했다. 왜냐 좋아하지 않으니까. 심지어 액상과당의 단맛과 찐득함이 입 안에서 느껴지는  것을 싫어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신다. 당연한 얘기지만 술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 집에 와서 놀라는 것, 생각보다 옷이 적다, 생각보다 가방이 적다, 생각보다 화장품이 적다이다. 당연하지, 나는 내가 가진 100%를 다 사용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소유하려고 사는 물건은 없다. 내가 늘 하는 말 "내 몸은 1개고, 일 년은 365일인데 다 입지도 쓰지도 못할 옷, 신발, 화장품, 가방, 화장품이 다 무슨 소용인가."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 드는 가방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많이 소유하려면 무한정 소비해야 하겠으나 구매한 물건을 100% 사용한다에 중점을 두고 소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반소비적인 소비 방식이며 나의 방식이다. 환불, 중고거래, 당근 같은 거 하지 않는다. 내가 구매한 물건은 내가 100% 사용 완료한다는 생각으로 구매한다, 자동차마저도. 중고차 시세는 구매 시 고려 항목이 아님. 


그렇기에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내가 갖고 싶은 걸 다 사도(자동차 빼고...포르쉐 포기하교 휴직 선택함, 휴직도 하고 포르쉐도 구매할 정도의 재력은 없다)빚 지지 않는다. 왜냐 나는 (이제야 안 것이지만) 축복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놀라는 점 3가지가 있는데 첫째, 잘 잔다(새벽 오토바이 폭주족의 소음도 듣지 못하고 계속 잘 정도). 둘째, 잘 싼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음). 세째, 아무거나 잘 먹는다(먹는 것에 흥미가 없기 때문. 특별히 좋아하거나 특별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 소식좌 아님. 생각보다는 많이 먹음. 


유산균, 수면유도제, 소화제, 양배추즙 같은 걸 먹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의 반자본 안아키의 축복받은 삶을 사는 중이라는 걸 <아무튼, 영양제>을 읽고 알게 되었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질유산균은 아직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질과 유산균이 어떻게 연결 지어질 수 있지?) 


내가 2020년대식 성장(성공, 부자, 명예 등)하는 삶 대신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은 내가 축복받은 삶을 사는 육체를 가진 탓이 아닐까? 다시 말해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지극히 신생아적인 쾌락이 충족된 삶. 나는 매슬로의 욕구이론 5단계 또는 7단계를 진지하게 의심하는 중인데, 그 이유는 내가 자족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 어떤 영양제도 먹지 않는 영양제계의 안아키인 나는 어쩌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지 못해서 그 대신 부자라도 되려고 하는 게 아닐까?라고 의심해 본다. 영양제뿐만 아니다. 나는 사주나 점을 본 적 없으며 종교도 없고 신도 mbti도 믿지 않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4-01-19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로우보다 더 상세히 기록하시는군요.

먼데이 2024-01-20 11:13   좋아요 0 | URL
책과 영화도 기록합니다.
영화 언제, 어디서(ott, 극장), 누구와 봤는지
책: 언제, 어디서(온라인 서점, 계정, 도서관) 샀는지

병원장부도 있어요.
어느 병원, 질병(검사명), 약국

내가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를 분석, 통계를 내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런 과정이 나를 안심시켜 준달까요.

막연하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멘토(?)를 찾거나 점이나 사주를 보잖아요.
전 그런 건 정말 질색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