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 (2024.7.17. 재개봉)


비포 선셋(2024.8.14. 재개봉)


비포 미드나잇(2024.9.4. 재개봉)


비포 시리즈를 실시간으로 감상했던 나로서는(비포 선라이즈는 비디오로 빌려 봤지만, 그 당시 나는 영화 잡지 애독자 엽서를 쓰고 당첨 선물로 받은 비포 선라이즈 비디오 테이프와 대형 포스터 브로마이드도 있었다!! 포스터 브로마이드는 대형 화지통에 배달되어 왔는데, 1990년대에는 소포를 받는 일이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매우매우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비포 시리즈는 비포 선셋에서 끝이 났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나는 2013년 첫 개봉 때도 <비포 미드나잇>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 때보다 인간사에 대한 경험치가 10년 치는 더 쌓인 지금 다시 보면 감상평이 좀 긍정적으로 바뀌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안고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괴로웠다. 10년 전보다 더 괴로웠다. 제시와 셀린도 그저 그런 부부가 되어서 사소한 걸로 자존심 걸고 말싸움을 계속하는데 그걸 보는 게 너무너무너무 괴로웠다. 뭐여, 그리스에서 신구 없는 사랑과 전쟁 촬영한 거야?? 싶을 정도로.


주기적으로 한드 멜로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유치하긴 했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kbs 만화 시리즈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멜로, 어렸을 때는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지금의 나에겐 전혀 재미있지 않은 어떤 장르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인생의 한 때 멜로(사랑?)를 즐겼던 때가 있었고, 그런 걸 믿었던 때가 있었지 하는 정도의 소회뿐.


그런 맥락에서 이 시리즈 중에서 제일 좋은 건 역시 <비포 선라이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 최애 영화이기도 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와 긍정이 있는 20대(타인에 대한 부정의 경험치가 적기 때문)라서 가능한 멜로 감정. 물론 나이가 들어서도 저렇다면 사기(결혼), 살해 당하기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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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이 너무 낮아요."

"자넨 학력은 높지만 자네 뇌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거야."

"성격도 괴팍해요. 그렇게 괴팍한 사람은 처음 봤어요.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전혀 없어요."

"그게 5호의 제일 큰 장점이지! 자네가 말하는 환경이란 인간의 환경이야.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건 환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기도 해. 그런 사람은 인류의 환경과 관계를 끊고 낯선 외계 환경에 들어가면 심리적으로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확률이 높아. 자네가 바로 그 좋은 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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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인류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어째서 계단 프로젝트에 참여했나요?"

"다른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인류에 충성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삼체 문명을 본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삼체3부 사신의 영생 / 류츠신>


<삼체>를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주인공의 편에서 읽으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은 '인류가 멸종하는 걸 그렇게까지 막아야 하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원제나 ETO 회원들처럼 인류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애정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그들을 멸종시키려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장베이하이 등등처럼 인류의 멸종을 막고자 고군분투하지도 않을 거라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행동이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던 중 등장한 윈톈밍!! 뤄지보다 더 맘에 들잖아!!!!

"다른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인류에 충성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삼체 문명을 본 뒤에 결정하겠습니다."


일요일 오전,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서 모닝홈트를 시작으로 일요일 루틴을 실천하는 중

즉 모닝홈트, 세탁기 돌리기, 아침 샐러드 먹기

모닝커피 마시면서 일기 쓰기.

딱 거기까지 쓰고

요즘 습관적으로 하는 뉴스 새로고침을 하다가

뉴스 속보를 봤다.

무안공항 비행기 추락이라는 짧은 제목이 전부인 속보를 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911이었다.

그냥 911 생각이 났다.

항공기라는 공통점 때문이겠지...


재난은 그만 보고 싶다.

내가 실제로 체감한 재난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였다.

그때 나는 한 동안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버스만 타고 다녔다.


사고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것을 보는 것은 힘든일이다.

예원제와 장베이하이를 이해하는 것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소설 속 상황에서는 나도 그들처럼 할지도 모르지.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경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생명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것은 지구 생물의 진화사에서 이정표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육지로 올라온 물고기는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주로 나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여러분, 외우주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다면 신중하십시오. 상상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삼체3부 사신의 영생 / 류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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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하는 짧은 고민: 오늘 홈트 하지 말까?

하지만 늘 홈트를 하고 만다. 왜냐하면 홈트를 하지 않는 즐거움은 찰나지만 모닝홈트를 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은 하루종일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침에 몸을 풀지 않으면 하루 종일 몸이 좀 더 찌뿌드드한 것 같기 때문. 


오늘 아침, 홈트를 하면서 회사에서 틈이 날 때마다 읽으려고 구비해 둔 김중혁의 신간 영화 에세이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의 한 감상문을 곱씹었다. '맘에 들지 않아, 맘에 들지 않아, 정말 맘에 들지 않아.'라고 곱씹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극찬하는 영화지만 나는 정말 싫은 영화가 있는데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애프터썬>이다. 싫은 이유는 명확하다. 이 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모의 무능이 치가 떨리게 싫기 때문.


김중혁은 영화 <애프터썬>에 대해서 뭐라 했을까 궁금해서 읽었는데, 여느 관람자 여느 평론가와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의 삶을,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애프터썬 /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 김중혁>


정말 이런가? 사람들은 정말 이런가? 나는 정반대인데.


나는 어렸을 때는 내가 어려서, 경험치가 부족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고, 어른들의 사리를 모른다고 생각하여 무능한 어른들의 처지를 이해해 줬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냥 무능한 것이었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의 부모는 돈도 없으면서 18평이 아닌 24평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서 자식들에게도 아파트 구매 비용을 보태라고 한다. 그리고 계나는 "아빠 그냥 18평에서 살면 안 돼?"라고 하소연한다. 이러나저러나 계나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다. 내가 말하는 무능은 24평 아파트를 분양받는 식의 무능인 것이다. 왜 능력도 안 되면서 자식에게 손 벌려서까지 24평을 구매하려고 할까? 왜 능력도 안 되면서 자식을 낳아서 자식까지 불행하게 할까? 왜 자식에게 위로받으려고 할까? 왜 자식이 부모의 처지를 이해해워야 하는 것이며, 부모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자책해야 할까? 왜 (시발) <애프터썬>같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람들은 왜 이 영화의 폴 메스칼(아빠 역)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해 버리는 걸까?

최근 뉴스에서 "대통령이 오죽하면 계엄을 했겠나!" 하는 개잡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영화 <애프터썬>이 떠올랐다. 이런 무능한 놈들에게까지 공감을 해줘야 하는 거냐. 


소피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미안했을 것이다. 아빠의 슬픔이나 고통이나 좌절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우울함에 대해서만 쫑알거렸던 순간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몸에 힘이 없고 그냥 다 지쳐서 가라앉는' 사람이 바로 아빠였는데, 소피를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애프터썬 /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 / 김중혁>


어째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왜 12살 소피가 30살 먹은 부모의 좌절이나 고통을 눈치채고 배려해야 하지? 소설가 김중혁을 굳이 분류하자면 내 취향은 아님, 좋아하지 않음 쪽이인데. 싫어함으로 분류하게 됨. 


p.s. 이 책은 두께에 비해서 지나치게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이라서 읽기 매우 불편하다! 싫은 마음이 들고나니 책 만듦새까지도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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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래디에이터 2>를 보면서 덴젤 워싱턴=명태균이랑 외모(극단적으로 짧은 스포츠머리의 늙은 남자는 인종적 특성을 넘어 일치하게 되는 기이함) 싱크로 99%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요즘도 뉴스에서 사용되는 명태균 사진을 보면 덴젤 워싱턴이 생각나서 피식 웃는다. 쌍둥이 황제의 폭정은 윤 씨 부부 같았고, 폴 메스칼(주인공 루시우스)은 너무 나약해 보였다. 그건 아마도 영화 <애프터썬>의 잔상 때문일지도. 마지막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원숭이ㅋㅋ는 한동훈쯤으로 해두자.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생각한 건, 거부감이 들었던 건. 혈통주의였다. 주인공 루시우스가 막시무스이 아들이자 공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로마 왕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는 혈통주의가 싫었다. 하지만 혈통=정당성인 시대니...


현재 인류가 만들어낸 최선은 헌법에 기초한 민주제 법치국가이다. 이 제도가 얼마나 허약한지는 윤 씨와 윤 씨와 뜻을 같이한 비열한 인간들로 인해서 증명되었다. 


내란 우두머리 현행범 윤 씨가 아직도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 민주제가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미. 왕정의 시효가 소멸했듯, 공산주의 독재가 실패했 듯,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한 공화정(맞나?) 역시도 실패 또는 사용가치가 완료된 듯하다.


더 나은 다른 제도를 상상(개념 만들어내기, 제도로 만들어내기)하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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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유리 상자 안에 있는 사람이 괴물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출세지향적인 전직 청소기 판매원이 따분해하며 알맹이 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프랑켄슈파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라서 오히려 그가 저지른 범죄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이히만을 사악한 괴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 잠재적인 죄를 짓게 되지. 철저하게 사유하지 못한 죄. 슬픈 진실은 선과 악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사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거야.



철저한 사유의 고통보다 순종의 편안함을 바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결과에 도달할 수 있죠.

평범성은 '의미 없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유하지 않는 걸 뜻해요. 

이번 재판에서 드러난 행위들이 그걸 말해주죠.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켄 크림슈타인>


쿠데타 공모로 인해 구속되는 자들을 보면서 아이히만, 순종의 편안함 말고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2024 BIFF에서 전쟁과 쿠데타에 관한 영화 4편(시빌워, 여기 아이들은 같이 놀지 않는다,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사진작가 어니스트 콜)을 봤다(시빌워만 픽션이고, 나머지 3편은 다큐). 남의 일,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영화 감상이 취미인 사람으로 철저히 외부자의 입장에서 봤다. 어느 정도는 '나니까 이런 영화 보는 거야, 나라도 안 보면 누가 이런 영화 보나.' 하는 잘난척 하는 마음도 있었다. 영화 <퍼스트레이디>를 보러 간 이유도 유사하다. 내가 안 보면 누가 보나 하는 마음. 방금 검색해 보니 상영관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2 만명 관람. 와우! 


계엄 이후 정치뉴스만 보는 정치충이 되어버렸다. 정치 뉴스뿐인가. 정치 팟캐스트, 정치 유튜브, 정치 관련 쇼츠까지. bgm은 탄핵 노래. 탄핵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서 플레이리스트 만들어서 듣고 있다. 뉴스라고는 일기 예보만 보는 나를 이런 정치뉴스 중독자(도파민이 엄청나다)로 만들어버린 윤 씨란 놈. 영화도 시시해졌고(최근 왓챠에 에릭 로메르 영화 10편 넘게 있는데, 언제 사라질지 모름, 사라지기 전에 반복 시청하려고 했는데, 계엄 도파민에 쩔어버린 나의 뇌는 무염 나물 같은 에릭 로메르의 걸작들이 당최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ㅠㅠㅠㅠ), <삼체>도 시시해졌다. 계엄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압도해 버렸다. 


탄핵 가결 후 bbc코리아는 국회 앞과 광화문 앞 상황을 비교해 보도했다. 윤 씨 탄핵 가결에 실망한 광화문 사람들의 면면과 광화문을 가득 채운 태극기를 보고 있자니, kpop과 다양한 색의 led 응원봉, 특히 다수의 20대 여성들의 젊음과 화사함이 가득한 국회 앞과 비교되면서 정말 알 수 없는 슬픔과 짠함이 밀려들어 왔다. 해방과 625 전쟁 즈음에 태어나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 시절에 공교육을 받고 노동자가 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자들의 인생 엔딩은 광화문 태극기 노인. 광화문 태극기 노인=관심받고 사랑받고 잘 나가고 싶었으나 소외되고 낙오되어 버린 사람들. 그들이 갈 곳은 자신을 낙오시키고 소외시킨 거라고 여겨지는 세력의 반대쪽이라는 것은 자연의 이치.


세상은 급격히 변해서 집회에서 아이돌 응원봉을 드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젠 100년도 더 전이되어 버린 31만세운동처럼 태극기를 든 모습을 비추는 bbc의 뉴스가 그 어떤 영화보다 슬펐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든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20년 내에 죽을 것이다. 왜냐하면 20년 후면 그들의 다수는 85세를 넘긴 나이일 테니. 


저승사자는 오전 9시에 찾아온다. 

사카키바라 료는 딱 한 번.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들려온 것은 철문을 여는 중저음이었다. 땅이 울리는 것 같은 그 공기의 흔들림이 멎자, 감방 전체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옥을 향한 문이 열리고, 미동조차 허용되지 않는 완전한 공포가 흘러 들어온 것이다.

<13 계단 / 다카노 가즈아키>


윤 씨가 매일 아침 사형의 공포를 느끼며 살다 죽기를 바란다. 윤 씨는 사형수(사면 절대 안 됨)로서 삶을 마감해야 한다. 사는 내내 아침마다 간수의 발자국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려 애써야 한다. 평소와 같은가? 다른가? 오늘이 형 집행일인가? 오직 사는 내내 그것에만 몰두해서 매 초 두려움과 생존욕구 사이에서 널을 뛰어야 한다(소설 <13 계단> 도입부 참고). 하지만, 정신이상자이기에 의외로 감옥 생활에 잘 적응하여 그 안에서 나름의 천수를 누리다 사형수로서 늙어 죽을지도 모를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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