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에서 익사한 사람은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바다의 수온은 4도 미만이고, 그런 온도에서는 부패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여기서는 위 속의 음식이 발효하지 않는다.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발효된 음식물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의 몸속에 새롭게 부력이 생겨 시체가 바다 표면에 떠올라 해변으로 밀려오게 되는 것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지금 고독 결핍'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읽는다. 내가 스밀라를 처음 알았을 때가 대학교 1, 2학년 즈음. 그때 스밀라는 37세. 어마어마한 나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스밀라가 나보다 어리다. 그래도 스밀라는 여전히 나보다 15살 이상 많은 언니 같다. 위에 인용한 저런 문장들 마저도 너무 좋다. 


겨울 저녁(요즘) 운동복 위에 패딩 코트를 입고 애플뮤직이 만들어준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들으면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으로 간다. 운동을 갈 때마다 설렌다. 오늘은 또 어떤 자세와 동작으로 나의 복근, 허벅지 등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게 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설렌다. 정말 힘든데, 그 힘듦이 좋다. 미쳤나 봐. 그리고 어떤 종류의 성취감도 느낀다. 운동을 할 때는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벽시계조차 보지 않는다. 오직 동작, 동작을 버티는 것만이 중요하다. 몰입의 50분. 최대정원 7명과 1명의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에서 나는 고독감을 충전한다. 그래서 좋다. 어제저녁(무려 연말 불금)에도 운동하러 갔다. 출석인원 나 포함 3명(나는 일상을 담담하게 유지하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엄청난 복근과 하체 운동을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다. 그래서 애인도 집으로 불러들이고, 친한 친구도 집으로 불러들인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러 내 집에 오면 반갑고, 그들이 가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허전함 대신, 허전함은 느껴본 적이 없다). 


작가는 홀로 글을 쓰고, 독자는 고독 속에서 읽는다.

위대한 책에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과 그 순간 연결된 작가만 생각한다.

<한 명의 독자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 대니 샤피로>


그래서 내가 책 읽기를 좋아하는건가... 이 책의 미덕은 소설가 체험을 하게 해준다는 것에 있다. 물성적으로는 종이가 얇아서 몰스킨 다이어리 만지는 느낌이 들고. 종이 질이 훌륭하다. 내용도 훌륭하고 번역도 훌륭.


고독감과 고립감을 잘 느끼게 해 주는 책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들이다. 그리고 음악은 도대체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기승전결 대신 계속 승전승전만 반복하는 것 같은 요즘 유행하는 K-pop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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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유희로서 글을 쓰고 그렇게 뇌를 혹사 시키고

저녁에는 고강도(?) 운동 후 샤워.

샤워 후 9시간의 숙면.


딱 저렇게 살고 싶다.


연말이니까 뭐라고 사고 싶어서 입출금 통장에 여윳돈을 계속 넣어두었는데

가방은 들고 다니지도 않는데 왜 살 거며

주얼리도 이미 많고.

그렇지만 노동을 했으니 어느 정도의 사치는 좀 해야 또 다음 한 해를 버티는 거 아니겠어 싶기도 하고...


드라마<작은 아씨들>을 5화까지 질주해서 보다가 한 동안 못보고 어제 다시 6화를 봤더니 재미가 반감되어서 ㅜ

20분 정도 보고 잤다. 드라마를 보는 것에는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독서 역서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더 이렇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뜨거운 국이다. 

뜨거운 국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정말 급할 때는 연두+물만두+양파만으로 뜨거운 국을 만들어서 먹는다.

내 속을 가장 행복하게 채워주는 것은 찐한 소고기 미역국이다.

대체로 밥과 국만 먹는다. 그리고 1일 2키위.

일을 그만두게 되면 본격적으로 국을 다양하게 만들어 먹어 보고 싶다.

이를 테면 탕요리도.

하지만 지금은 주로 소고기 미역국이다. 일단 쉽다. 재료 쓰레기도 거의 없고ㅎㅎ


일단 머리를 감고 아침을 먹고 어제 저녁에 사 온(연말까지 써야하는 통신사 포인트로 구매한) 

스타벅스 조각케익과 커피를 마시면서 또 일기를 써야지. 

일기는 순전한 나의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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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선 즐겜러로 살 수 있지만, 실제의 삶은 그러기 쉽지 않다. 게임 속에선 길을 못 찾아도 다른 유저가 길을 가르쳐준다. NPC라는 존재도 있다. 그들은 애초부터 날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예를 들어 마을 주민). 몬스터의 공격에 맞아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지나가던 센 유저가 대신 무찔러준 적도 있다. 게임 속 고난은 딱 내가 즐거움을 느낄 정도로만 설계되어 있다. 어려운 미션은 피해 가도 된다. 게다가 끝내면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 지겨워지면 로그아웃을 하면 된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눈을 감아도 해가 뜨면 또 주어진 날을 살아내야 한다.

<마음이 하는 일 / 오지은>


어제 잠들기 전에 정말 정말 정말 간절히 '내가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삭제되게 해 달라고' 여러 번 기도하고 잠들었다.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모두의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삭제되어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발작적으로 깼다. 슬펐다. 여전히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슬펐다.


흔적도 없이 삭제될 수 없다면 지구에 홀로 남겨진 월이처럼 되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우주에 홀로 있고 싶다. 이왕이면 얼음 조각이나 돌 조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어제도 이런 심정을 친구에게 주절주절 늘어놨더니 친구는 나는 그런 어려운 얘기는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왜 이럴까. 지구에서 사람으로 살아온 지도 오래되었는데 갈수록 사람으로 사는 게 힘겹다. 또한 사람들과 사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홀로 묵묵히 사는 걸 견디는 인물들이 좋다. 월 e,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의 스밀라, <윈터스 본>의 리 같은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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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과서를 보고 심성을 가꾸는 심정으로 <테드 래소>를 봤다. 이미 보기 전부터도 내가 좋아할 타입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니까 무려 8화까지 참고 봤는데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난 역시 가가린이 되어서 이 지구를 떠나야 하는 건지도 하는 생각만 두 번 더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에밀리 인 파리 시즌3이나 보는 건데!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하길 바랐다. 이유는 메시가 월드컵 우승까지 한다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왜 어떤 사람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모두 다 가지는 걸까?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메시에게 열광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는 게 나에겐 여전히 위선처럼 여겨진다. 살아오는 동안 천재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은 여러 번 만났다. 왜 장애를 가진 사람이 태어나는 걸까? 내가 신이라면 장애를 선물로 주진 않을 거 같은데. 장애 역시도 신이 없다는 증거 아닐까? 말을 못 하고, 지능이 낮고, ADHD 증상도 심각해. 그 아이의 부모는 가난해. 그럼 그 아이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지? 장애인 인권 존중이라는 것은 내가 장애인을 잘 존중해서 장애인을 나와 같은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장애인의 위치로 내려감을 의미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장애를 가진 친구가 우리 팀에 있는 한 우리 팀은 계속해서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친구가 구멍이니까. 상대팀은 그 구멍을 노릴 테니까. 우승하는 <테드 래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테드 래소 4화던가 5화던가에서 테드 래소가 기자에게 당신은 왜 기자를 합니까? 글을 쓰는 게 좋아서겠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성을 격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름답고 미국적이고 훈훈한 대사지. 난 좀 같잖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테드 래소>보다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 같은 이야기가 만 배는 좋고, 더 위로되고, 그런 이야기 속에서 더 힘을 얻는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나라는 인간이다. 매사 긍정하는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 불행이 너무 두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불행에 개의치 않고 성실하게 조금 노력해서 사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는 삶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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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무시를 당해본 적이 거의 없다. 더 정확히는 무시당했다고 느껴본 적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남이 나를 무시하든 말든 애초에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상대방의 문제라서 나는 개의치 않는다. 


또한 타인을 무시한 적도 별로 없다. 타인을 무시할 정도로 남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지도 않다. 무시하는 데 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난 무시한 적이 없는데 상대방이 너는 왜 나를 무시하냐고 따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오늘 하루 종일 도대체 무시가 뭘까? 무시의 원인은 열등감인가? 그렇다면 열등감은 뭘까?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감정의 원인은 애정결핍일까? 그렇다면 애정결핍은 뭘까? 를 생각하고 검색해 봤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 관심이 없다. 어차피 나랑 인생관,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고 그들이 그들의 가치관으로 나는 재단하는 것에 내가 뭣 땜에 반응을 보이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이에게 잘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옷차림으로 예를 들면 남들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내 맘에 안 들면 그날은 망한 것이다. 반대로 내 눈에 예쁘면 남들이 뭐 저런 걸 입고  다녀라고 해도 그날은 성공한 것이고. 


나는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나라는 개인으로 내 취향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과 관심사를 공유하고 공감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고 덕담을 주고받고 축의금을 주고받고 하는 것에 관심이 없고 그런 게 피곤하다. 에너지도 소모도 크고. 그래서 싫다. 


애인은 "너는 스페셜 오브 스페셜한 사람인데 보통의 상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를 이해할 수 있겠니? 니가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해야 하지 않겠어? 니 말은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 맞고, 또 일반적인 사람이 글이 아닌 말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사실 처음 들어보지만, 이런 대화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지만. 아무튼 보통의 사람은 아무도 너처럼 생각하고 살지 않잖아. 그러니까 니가 조금은 니 생각을 내려놔야지. 나는 니 생각을 존중하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하기까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잖아."라고 했다.


주말에는 영화<가가린>보러 가야지. 지구에 사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구인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인류이고 싶다. 인간 최초로 우주에 간 인간 유리 가가린...


나 자신으로 사는 건 좋지만 인간으로 사는 건 정말 별로다.


오늘 애인은 "난 니가 있어서 참 좋거든."이라고 톡을 보내왔고 나는 답장으로 "나도 내가 있어서 참 좋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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