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고 낡고 병들어 가고 있다. 내가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당하고 있는 어린 닭이나 어린 돼지였다면 진작에 관리자로부터 도태당했을 것이다. 닭이였다면 목뼈가 270도로 비틀려지면서 꺾이는 방식으로 도태당했을 것이고 돼지였다면 한 번 바닥에 패대기쳐짐 당한 후 코와 입에서는 피를 쏟아내고 여기 저기 탈골된 상태로 분뇨 구덩이에 버려지는 방법으로 도태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국민건강보험금을 원천징수 당하는 어엿한 인간인지라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높고 좁고 불편한 응급실 침상에서 여러 가지 처지를 받으면서(항생제에 흠뻑 절여짐 당한 고기와 뼈) 응급수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고 낡고 병든 또 하나의 짐승이었을 뿐이었다. 


기온은 봄같고 강풍을 동반한 폭우는 여름비같다. 스타벅스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나는 토피 넛 팝콘 트리 프라프치노를 먹고 있다. 늙고 낡고 병든 내 몸 상태를 고려해서 우유는 저지방으로 선택. 


만사가 형통하다. 아픈 것만 빼면, 내가 늙고 낡고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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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서 먹는 전복죽이니 밥과 국이니 하는 건 전부 엄마가 만들어 준 거다. 엄마는 거의 매일 내가 먹을 음식을 해 나르더니 이번 연휴에는 급기야 내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엄마가 심심할까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골라서 보여줬다. 그 드라마는 <동백꽃 필 무렵>이다. 무려 20부작. 그리고 지금 엄마는 19화를 보는 중이다. 이쯤되니 이건 뭐 나한테 밥을 주러 온건지 드라마를 보러 온 건지 헷갈린다.

엄마가 거실 쇼파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다. 잠시 본다는 것이 나도 죽치고 앉아서 같이 보게 된다. 나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필구를 낳은 동백이를 욕하고, 엄마는 덕순(고두심)에게 공감한다. 엄마는 내 아들이 동백이 같이 애 있는 여자 만나면 나도 속이 터진다 터져 하면서 보고 있다. 그리고 노규태가 나오면 저 모자란 놈, 모자란 놈 하면서 쯧쯧거린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엄마, 대다수의 한국 남자는 다 노규태야. 멀리 갈 것도 없어. 엄마 남편도 노규태 같은 짓 하잖아. 존경받을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대접 받으려고 하는 인간들은 다 노규태야 노규태."

엄마가 내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 된장국을 끓이고 조기를 굽고 있다. 내 주방은 주인을 잘못만나서 요리라기 보단 조리에 가까운 데우는 행위만을 하고 지냈는데 이제야 제 쓸모를 다 하고 있다. 내 식탁에는 해피밀을 먹는 아이처럼 작은 레고인형이 놓여져 있다. 

-애도 아니고 식탁 위에 이 장난감은 뭐야"

라는 질문에 나는

-코펜하겐 레고 본점에서 사온 거야. 현실은 비루하니까 나에겐 환상이 필요하다구. 그 환상을 가장 저렴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여행 기념품이지. 

라고 답한다. 그리고 작은 화병에는 꽃도 있다. 화병 모양이 특이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유명한 화병이야. 화병 자체만으로 아름답지." 라고 말하곤 한다. 테이블 웨어는 코로나로 인해서 뭔가 꽉 막혔던 기분이 들었던 올 봄에 기분전환으로 구입한 2020 마리메꼬 시리즈 중 하나다. 이런 얄팍하고 허세스러운 식탁에 갓 구운 조기가 놓여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식탁에는 밥과 된장국과 깻잎김치와 해초무침과 갓 구운 조기가 놓여졌다. 


-엄마, 조기 살 발라서 내 밥에 올려줘야지. 동백이 못봤어? 용식이 엄마는 용식이한테 그래 주던데.

라고 했더니 엄마는

-니는 아빠도 있고 첫짼데, 용식이랑은 다르지. 

-엄마, 동백이는 엄마밥 먹어서 살이 쪘데. 동네 아줌마들이 말하는 장면 기억나지? 근데 나는 엄마밥 먹는데 살이 안쪄?

라고 했더니 엄마는

-그래서 내가 지금 니 밥 해주고 있는 거 아니가.

하면서 조기살을 잔뜩 발라 주었다. 엄마가 발라 놓은 조기 살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동백꽃 피 무렵> 마지막화에서 정숙(이정은)은 동백에게 "아끼지 말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나도 엄마에게 "엄마 들었지? 나 포르쉐 사게 돈 좀 보태줘. 아니 아예 사 줘. 엄마가 늘 말하잖아. 자식의 행복이 부모의 행복이라며?" 했더니 엄마는 "법륜스님이 20살 넘은 자식은 돕는 거 아니랬어."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 


엄마랑 같이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서 도대체 왜 사람은 자식을 낳아서 서로 힘들게 사는가를 혼자 또 곱씹는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자식을 낳는, 자식을 가지고자 하는, 번식욕을...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살이 찔 정도로 식욕이 있는 사람의 마음 조차도 모른다. 엄마가 갓 구워서 발라준 조기도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내가 평균적 인간의 식욕과 번식욕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20살 넘은 자식에게 조기는 발라줘도 되고 포르쉐 찬조는 해주면 안된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을 내가 어찌 이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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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나날 동안 나는 끼니를 하찮게 여기며 대체로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영양과잉의 시대이므로 적당히 하루 한끼 정도만 제대로 챙겨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를 아픈 사람으로 만들 걸 보면. 

병원에서는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밥을 자주 많이 챙겨 주었다. 하루 3끼 먹는 건 정말 고역이었지만 병원의 지시를 따르는 내에선 아프지는 않았고 여러 가지 수치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과 국과 반찬을 먹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능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간호사가 나타나서 협압과 체온을 잰다. 어떤 때는 채혈도 해간다. 그리고 나는 다시 잠든다. 7시 30분 전후로 밥이 온다. 아직 눈꼽도 떼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테이블이 놓여지고 식판이 놓여진다. 그러면 먹어야 한다.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지만 먹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서 먹어도 절반 정도는 남겼지만 나로서는 매일 매일 그렇게 성실히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다음 외래 진료를 약속하고 그 때까지 먹을 약을 처방받고 나서야 환자복을 벗을 수 있었다. 수액용 주사바늘을 뽑아낼 때 정말 행복했다. 양쪽 팔 여기 저기에는 수액 바늘의 흔적, 채혈바늘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앞으로도 그런 자국은 더 생길 예정이겠지만 받아들여야 할 수 밖에. 생로병사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까. 


살면서 내가 삼시에 맞게 밥을 먹는 경우는 하루 3번 식후에 약을 먹어야 할 경우 뿐이었다. 그런 경우 더라도 정식으로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식후에 약을 먹으라는 건 빈 속에 먹지 말라는 의미겠지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대충 뭔가를 위 속에 집이 넣은 후에 약을 먹는 식이었다. 그렇게 끼니를 소홀히 함과 동시에 스트레스에 노출된 채로 생활한 나의 오만과 어리석음은 나를 아픈 사람, 항상 조심해야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의사는 커피 마셔도 된다고 했지만 미세한 전기 충격에도 조건반사적으로 대처하는 실험용 쥐처럼 나는 이제 빈 속에 커피(카페인)을 들이붓는 짓은 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빈 속에 커피를 콸콸 쏟아붓는 대신 전복죽이나 밥과 국을 넣는다. 이미 죽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꼭꼭 씹은 후에 삼킨다. 침 속의 아밀라아제가 나를 아프지 않게 만들어주는 특효약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렇게 나는 하루 3끼를 먹는(먹어야만 하는)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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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도 끝났고 퇴원도 했고 코로나 감시 기간도 끝났고 남은 것은 출근 뿐이다. 내일부터는 드디어 출근시작! 


출근, 돈벌이, 밥벌이.

몸도 아픈데 밥벌이를 해야 하는걸까?

하는 드는 생각이 드는 연휴 끝자락, 일요일 저녁이다.


회사를 그만 두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내 아픔의 원인 중 하나는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라는 점이다.


엄마랑 동생은 집에서 놀면 없던 병도 생긴다면서 회사는 계속 다니라고 하는데

나는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회사를 그만둬도 살 수는 있다.

다만 생활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좋은 옷도 못 입을 것이고

좋은 차도 못 탈 것이고

피부관리니 마사지니 하는 것도 받지 못할거고

사는 집도 더 좁고 더 낡은 곳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살 수는 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

스트레스는 좀 받겠지만,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골병도 들고 아픈 것도 더 심각해지겠지만

사는 동안에는 돈 걱정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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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복을 입고 병원밥을 먹으면서 수액걸이를 제3의 다리로 끌고 다니다보니 인간의 생로병사가 단편영화처럼 혹은 대작영화의 3분짜리 예고편처럼 여겨진다. 나는 약간은 <마의 산>의 주인공 한스 같은 기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친척 병문안을 간 곳에서 7년의 병상 및 요양 생활을 했던 한스처럼 나도 몇 시간 진통제 맞고 약 먹으면 집에 가겠거니 했는데 추석 연휴마저도 병원이다. 


나에게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다. 혹시나 오래 살까봐 열심히 저축하고 있는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냥 포르쉐나 질러 버리고 싶다. 양육의 의무가 있는 자식 같은 건 만들지 않았으니 사실 아픈 지금도 딱히 근심은 없다. 여전히 암보험에 가입할 생각은 없다. 사람마다 인생관은 다른거니까. 난 암보험도 없이 포르쉐나 타고 다니다가 미련없이 떠날거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승에 미련이 많은 사람들은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니 왜?? 왜 모든 사람이 이승을 긍정할거라고 생각하지? 당신은 이 이승에서의 생활이 자식까지 낳을 정도로 좋을지 몰라도 나는 정말 싫거든.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은 게 이승 라이프거든. 


5인실 병실에서 보호자(혹은 간병인)이 없는 환자는 나 뿐이다. 혼자 거동이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나는 서로의 시간을 갉아먹는 2인 3각 달리기 같은 2인 1조의 생활방식을 질색하기에 며칠 째 혼자 병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 마음을 받는 만큼 나도 그 마음에 답해야 하는데 그게 몹시 피곤하다. 타인의 선의에 답례할 여유 따위 없다, 나는. 


부끄럽게 살고 산 날들이 모여서 환자복을 입고 수액을 맞으면서 수시로 피검사를 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야생에서의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라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근거없는 말은 아니었나보군. 내가 지금 이렇게 별 이유 없이 아픈 걸 보면 말이다. 병실 상황은 50대로 보이는 항암치료 환자 2명, 80세 이상으로 보이는 피부가 쪼글쪼글하고 뼈와 피부 뿐인 할머니와 건강한 80대로 보이는 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5명이다. 공통점은 모두가 배가 아프다는 것. 


힘든 요가 동작을 배울 때마다 요가 동작을 개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몸에 고통을 줄까를 목적으로 집요하게 인간 신체 구조를 연구한 사디스트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여기에 생각이 더해져서 인간을 만든 조물주가 인간을 만든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한다. 고통이라는 형이상을 형이하라는 인간의 신체로 재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확신!! 뱃속에 든 장기 전부가 다 고통 덩어리였을 뿐.  


나는 여전히 이렇게 아픈데도 불구하고 삶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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