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이하여 도서관에서 피가 낭자하는 혹은 악령이 나오는 소설책 몇 권 빌렸다. 정확히는 다섯 권. 제목을 나열해 보면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명성답게 책은 너덜너덜 걸레가 되기 직전, 더 기대되잖아!!!),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늑대와 토끼의 게임>, <커피 괴담: 온다 리쿠 연작소설>,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이렇게 다섯 권이다. 그러고 보니 전부 일본 작가의 소설. 그럴 수밖에. 일본 소설 코너에서 골랐기 때문. 정서가 정서인지라 미국과 유럽식 연쇄살인마보다는 일본의 살인마나 귀신 이야기가 최소 열 배 이상은 더 재미있음! 솔직히 스티븐 킹 소설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달까. 하지만 미쓰다 신조의 기괴함에는 뭔가 설득된달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 <등대지기들>을 봤다. 1922년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흑백 무성영화다. 1922년 작품이므로 무성, 흑백인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등대지기들>은 교제 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얼마나 많은 교제 살인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이미 없는 인류애지만, 인간 그냥 이대로 멸종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시크릿 에이전트>를 봤다. 160분. 너무 길었다. 주연 배우 바그너 모라의 출연작을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 <나르코스>에서 콜롬비아 마약왕 역할을 했고, 이 역할로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고 했다. 나르코스 봐야겠다. 며칠 전에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을 봤는데, 기대가 없어서 였을까 볼 만했다. 이어서 우민호 감독, 현빈 주연의 <메이드 인 코리아>(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민호 감독 작품 본 게 <마약왕>이 두 번째(첫 번째는 <하얼빈>). 걍 내 스타일 아님. 정액 냄새 진동하는 영화 싫어함. 예를 들면 영화 <신세계>같은 거 진짜 싫어한다. 이것도 몇 년 전에야 겨우 봤는데 예상대로 기분 더러웠다. 영화도 더러웠음.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니 박훈정 감독 영화도 <신세계> 말고는 본 것 없네 ㅋㅋㅋ 내가 최고의 좆이 되고야 말겠다는 것을 목표로 좆 크기로 줄 서고 "사랑합니다" 하면서(영화 <부당거래> 명대사 명장면 ㅋㅋㅋㅋ "사랑합니다")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는 슈트 입은 검사=건달=조폭 영화 이야기 진짜 싫다. 유사작으로는 <더 킹>. 보고 나면 기분 진짜 더럽지. 

작년에 영화 <아임 스틸 히어>를 봤기 때문에 대충 알긴 하지만 제미나이에게 1977년 브라질 정치 상황도 물어봤다.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구글이 아니라 제미나이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제미나이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막 출시된 시기일 듯. 제미나이에게 제미나이 출시일을 물어보니 2024년 2월 8일에 제미나이로 개명하고 현재의 대화형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ps.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1977년 브라질 사람들의 비만 인구 비율이다. 1977년에 저 정도로 살이 찔 수 있으려면 먹을 것이 풍족했다는 의미인데, 정치는 쓰레기 같아도 기아는 해결되었구나 싶었다. 1977년의 한국은 다수의 국민이 저체중 결식이었을 거 같은데. 영화의 첫 장면에서 상반신 탈의의 주유소 직원의 뱃살을 보고 기절할 뻔. 또한 주인공 아르만도의 장인 역할 배우의 부실한 하체와 대조되는 엄청나게 나온 배를 보면서 무릎 관절 멀쩡히 걸어 다니는 거 자체가 인체의 신비라는 생각 또한 했다. 

지난 5월에 시네마테크 특별전 대만 뉴웨이브에서 <슈퍼 국민 코>라는 영화를 보고 대만에 대해서 1도 관심이 없었기에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대만은 무려 37년간(1949년~1987년) 계엄령 시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로소 <공포분자>와 <타이페이 이야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왜 누아르일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도 계엄령 시대가 있었긴 하지만 내가 겪은 건 아니라서 약간은 일제강점기 역사 느낌으로 여기던 것을 윤석열 덕분에 4D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국내외의 계엄 관련 정치 영화들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ㅋㅋㅋㅋㅋ. 윤 씨 같은 자들의 유전자가 없어지는 것 =인 류 진 화! 윤 씨 부부가 무자녀인 것 천만다행!  

2026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인간 유전자의 열악함은 무엇인가? 어떤 인간들, 혹은 다수의 인간들은 계엄령 혹은 그 비슷한 상황을 원한다는 것이고 그런 시절이 그들에게는 태평성대라는 것이다. 인간 참 열악하지... ps. 다른 건 모르겠고 최근 어떤 정치인이 스마트한 독재(아마도 박정희??)라고 하는 걸 듣고는 피식했다. 권모술수와 정치가 동의어라고 생각하나 봄. 인간 참 열악하다 열악해. 스마트하게 최신형 드론에 실려서 동해 바다 한가운데서 낙하산도 없이 추락 당해봐야 정신 차리려나(영화 <아임 스틸 히어>에서 군 비행기에 실린 반정부 인사들 시체를 바다에 수장하는 장면 참고, 그러면 동네 어부가 잡은 육식(식인?) 상어의 뱃속에서 미처 소화되지 못한 털이 부숭부숭한 왼쪽 다리 하나가 나오겠지. 이건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장면임).

인간 세상 누아르가 기본값인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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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영화관은 경로 할인이 아니라 경로 추가요금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아래는 그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 영화관람기다. 

지금 여기는 영화관인가 경로당인가 싶을 정도로 상영관을 가득 메운 사람의 8할은 노인이다. 마침내(영화<헤어질 결심>패러디), 시네마테크는 경로당이 되어버렸다. 상영관을 가득 메운 노인들을 보자마자, 그냥 영화 보지 말까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쳤다. 영화 시작 전에 나는 세 번 놀랐는데, 172분짜리 다큐 형식의 에드바르트 뭉크의 전기 영화에 관객이 많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그 대부분이 노인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리고 172분짜리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노인들의 체력(허리 건강)에 마지막으로 놀랐다. 역시 무직 앞에서는 장사 없는 건가. 

예상했지만 내 왼쪽, 오른쪽 두 노인은 수시로 휴대폰을 열어 봤다. 참았다. 영화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왼쪽 옆 옆 노인은 코 골면서 계속 잤다. 참았다. 하지만 참았던 마음이 폭발해버려서, 좋은 내 자리를 포기하고 앞 쪽 빈자리로 옮겼다.  옮긴 자리의 내 옆에는 노인 커플이 있었다. 하... 할머니는 계속 손가방의 지퍼를 연다. 뽀시락 뽀시락 뽀시락. 비닐봉지 소리. 할머니는 남친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에게 물 챙겨 주고 간식 챙겨주고, 할배는 쩝쩝 거리고. 아 시발시발시발. 상영관이 카페라도 되는 듯이 대화를 하더니 마침내(영화<헤어질 결심>패러디), 둘은 나갔다. 

그렇게 끝났나 했는데 5분 후쯤 할머니 컴백. 앉자마자 손가방 지퍼를 연다. 휴대폰 꺼내고 당당히 전화를 건다. 통화연결음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안 받는다. 다시 전화를 건다. 받는다. 남친 할배와 간단히 통화한다. 몇 분후 할배 돌아옴. 이후 반복. 쩝쩝대고, 물 마시고, 간식 봉지 꺼내고 뽀시락 다시 넣고 뽀시락. 영화 지겹다 블라블라. 영화를 보러 온 노인 커플이나 노인 부부의 공통점. 물부터 간식까지 전부 할매가 챙겨주고, 할배는 얻어 쳐 먹기만 함. 또한 지겹네 어쩌네 나자가고 하는 것도 전부 할배들임. 할매들은 어쩔 수 없이 영화 중간에 같이 나감.

더 이상 옮길 자리도 없다. 남은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첫 번째 자리뿐. 내가 남느냐, 영화가 남느냐, 선택은 이것 둘뿐. 자리를 옮기는 선택지는 이제 없다 ㅜㅜㅜㅜㅜ

오슬로에 갔을 때 하루 시간을 내어, 뭉크 미술관에 갔었다. 오슬로 국립 뮤지엄에서는 한차례 도난 사건 후 금고(ㅋㅋㅋ) 처리된 뭉크의 절규도 봤다(뭉크는 절규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작품화했다. 판화 포함. 왜냐하면 대량 자기 복제로 그림을 싸게 많이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 국립 박물관에 전시된 절규가 가장 우수한(?) 절규로 인정받는 작품임) 내 첫 맥북 이름도 뭉크. 그 정도로 나는 절망 오브 절망의 화가 뭉크를 좋아했었다. 뭉크의 <마돈나>와 <질투>는 실물로 보고 반해버렸다. 뭐라 이루 말할 수 없이 우울했지만 그 속에는 뭔가 병적 의지, 존버의 의지가 보여서 좋았다. 실제로 에드바르트 뭉크는 존버했다. 80세에 죽었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함. 그래서 이 영화를 보기로 한 건데, 이 영화의 감독 피터 왓킨슨(영국)도 나처럼 뭉크 미술관에서 뭉크의 수없이 많은 작품을 보고 매료당했고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시발.... 참자, 참자, 경로자(=약자) 존중, 나도 곧(??) 노인 된다, 참자, 노인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모르니까, 여하튼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참자 참자, 귀가 안 들려서 뽀스락 거리는 소리를 못 듣는 거겠지, 노인이니까 휴대폰 보고 싶은 것 못 참는 거겠지, 영화관에서 본인이 코를 골면서 자는 것에 대한 인식조차도 없겠지, 시발... 시발... 영화를 보러 온 건지, 단돈 4천 원(경로 할인가)으로 두 서너 시간 때울 곳을 찾아온 것인지 모를 노인들 때문에 영화 보는 것보다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주변 노인들을 인내하는 것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에 빡이 쳤다! 
이것은 노르웨이의 우울을 체험하는 영화다. 
4D 노노 이 정도면 6D다!!!!!!!!!!!!!!!! 
이것은 절규 그 차체다!!


시네마테크는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니 어쩌면 시네마테크에 노인이 많은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옛날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고 싶은 노인들은 <군체>보다 시네마테크에서 상영하는 고전 영화가 더 재미있을지도 모를 일. 같은 이유로 요즘 10대 20대들은 <군체>보다는 넷플릭스의 <기리고>나 <참교육> 혹은 <김부장>이 더 재미있을 것이고(경계선 지능 정도로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단순한).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관에는 20대가 거의 없다. 내가 20대였을 때와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얼마 전에 신민아 주연의 <눈동자>(흠... 팟빵 크라임 한 편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신민아는 왜 이런 영화에 주연을 했는지... 여하튼 내 예상과 달리 흥행 중)를 보러 갔을 때도 30대 연인, 부부와 자녀로 보이는 관객 정도가 전부였다. 토요일 오후였는데도 상영관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다.  내가 20대였을 때는 영화관의 주요 관객은 20대(가장 큰 이유는 통신사의 청소년 대학생 할인 프로모션 때문이겠지만, 예를 들면 TTL 영화 할인!)였고, 60대 이상의 노인은 거의 없었다. 시네마테크의 얼마 없는 관객도 주로 20대였다. 

영화는 확실히 늙어버렸다! 영화의 (고속)노화를 내 눈으로 목도한 것은 최근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디스클로저 데이>다. 영화가 노인 문화가 되어버렸다는 걸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블록버스터 영화의 창시자(1974년작 <죠스>)라는 수식어가 붙는 1946년생 유.대.인. 영화감독의 아마도 마지막 작품일 듯한 이 영화가 영화의 노화(노쇠)를 몸소 보여주었다. 김혜리 영화 기자는 <디스클로저 데이>가 (추격) 영화의 정석이라고 약간의 동정을 담은 호평을 했지만, 그것이 영화의 정석이라면 영화도 이제 끝물이라는 것!!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자동차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씬은 정석이라기보단 얀 드봉의 <스피드>(1994년, 주연 키아누 리브스, 산드라 블럭!)만 생각났음(총 맞은 버스 운전사를 구급차로 갈아타게 하는 장면과 똑같던데!). 1990년대의 미덕은 아무리 잘난 영화라도 2, 3편에서 멈출 줄 안다는 것이다. 박수 칠 때 떠나야 한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반면 더 이상의 아이디어가 없는 2000년대 이후의 (특히 미국) 영화들은 자기 복제를 멈추지 못한다. 디즈니+픽사만 봐도 1990년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토이스토리 5>가 웬 말인가!! 어이 상실. <모아나> 실사라니..(<모아나 2>도 별로 였는데, <모아나 1>은 완벽!!). 개충격. 애니 실사를 만드는 이유는 도대체 뭔데? 제발 그만해, 그만!!!! 10년 만의 속편인 <주토피아 2>도 그저 그랬고, 일루미네이션은 언제까지 <슈퍼배드>를 우려먹을 것인가. 이번 여름에 또 미니언즈 개봉함. <슈퍼배드>의 오랜 팬으로서 이게 이렇게까지 우려먹을 일인가 싶어서 씁쓸하다. 도대체 20년 만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영화가 이렇게 늙었다, 우리가 이렇게 고리타분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얼마 전에 시네마테크 기획전에서 대만 뉴웨이브를 했는데, <타이페이 스토리>(에드워드 양, 1985년), <공포분자>(에드워드 양, 1986년)을 봤는데 충격적으로 새로웠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런 결말인 줄 몰랐기 때문인 이유가 크지만. 왜 뉴웨이브라고 라벨링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작년에 고다르의 <주말>(1967년 작)을 봤을 때도 '아 이래서 누벨바그라고 했구나.' 했는데, 요즘 영화들을 보면(특히 미국 영화) '늙었네, 늙었어.' 하는 생각 말고는 딱히 들지 않는다. 

상영관에는 노인들만 가득하고, 영화들은 자기 복제만 계속하고 있고, 다 늙은 감독이 자신이 젊었을 때 영화 복제해서 영화 찍고(<디스클로저 데이>), 시니어 배우들이 젊은 시절 자기 복제로 영화 찍고(<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새로운 것은 CG, 3D, 입체 음향 같은 신기술뿐. 신기술을 체험하려고 영화를 보려는 건 아니잖아?!!! 현재의 거장 영화감독들은 집단 황동만병 걸렸는지, 드라마 <작은 아씨들> 1화의 대사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한테만 공감을 느끼는 거니까."가 진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마티 슈프림>에 찬사를 보내고 있고(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황동만 한 명 정도는 숨기고 있다는 듯이). 뭔가 처참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티 슈프림> 마지막 장면은 생각할수록 기분 나쁜데, 뭐가 감동적이라는 거야! 마티 마우저라는 주인공이 너무 쓰레기(이런 인물이 요즘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의 정석일지도)라서 처참한 것도 있었다.

지난 4월에는 <크라임 101>(관객 수 2만 명 중에 1인이 나 ㅠ ㅠ )을 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주연 크리스 햄스워스, 마크 러팔로, 조연으로 할리 베리. 출연진이 이러니 믿고 봤는데, 와 놔 진짜 재미없었다. 어쩌면 미국 영화만 홀로 고속 노화해버린 건지도. B급 영국 영화 <콜드 미트>(관객 수 786명 중 1인이 나 ㅋㅋㅋㅋ)보다 재미없었음. 


p.s. 뭉크는 80세까지 살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뭉크 미술관은 모든 뭉크의 작품을 전시할 수 없어서 창고에 다수의 작품을 보관하면서 주기적으로 테마를 만들어 작품을 전시한다. 그래서 모든 뭉크의 작품을 보려면 오슬로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뭉크 미술관을 방문할 수밖에. 지하철(U) 내려서 뭉크 미술관까지 가는 지하도에 뭉크 작품이 장식되어 있다. 지하철 내려서 뭉크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그 길의 설렘을 잊고 있었다가 영화 보면서 다시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뭉크는 요절하지 않았고, 잠시 정신 병원에 자진 입원하긴 했지만, 원하는 작품활동 하면서 장수했다. 나름 잘 산 듯. 물론 최근 작고한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영화를 누린 건 아니지만.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부와 명예, 장수까지 다 누린 호크니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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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KY(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스페인 애니(라고 할 수 있을까? 대사는 전부 영어였다) 한 편 보고 나와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혹시 방금 본 영화 감독님이세요?"라고 묻는 걸 들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나한테 한 말인가?? 뒤를 돌아보니 지난 주에 나를 빡치게 했던 고스트 룩 할머니가 서 있었다. '내 뒷모습이 어딜봐서 영화감독(?)으로 보인다는 거야? 위, 아래 전부 우영미 입었는데! 우영미 셋업으로 입는 영화감독도 있나? 그리고 방금 본 영화 감독은 스페인 사람이라고. 우영미가 글로벌 브랜드라고 해도 스페인 애니 감독이 우영미를 입는 건 좀...꽤... 거리가 먼데.' 라는 생각을 미래의 제미나이보다 더 빠르게 한 후 "아닌데요."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할머니는 영화 어디서 봤냐고 물었다. 뭐 봤냐가 아니라 어디서 봤냐였다. 그래서 *극장에서 **봤다고 하니 할머니는 #극장에서 영화 봤다고 했다. #극장에서는 단편모음 상영했는데, 내가 영화감독지망생(?)으로 보였나... 내 어디가 황동만같았다는 거냐!!!! 와놔!!! 


지난주 토요일 저 고스트 룩 할머니 때문에 영화 <퍼시픽션> 상영관에 2분 늦게 들어가게 되었다. 심술 맞은 할머니라고 생각하고 일기에 욕을 바득바득 적어놨었다. 내 계산대로라면 내가 상영관에 들어가자마자 상영관 조명이 꺼지는 거였는데, 저 할머니가 키오스크 새치기한 후 티켓을 무려 다섯 번(다섯 장)이나 발권하면서 내가 상영관에 늦게 들어가게 된 것. 내 계산이 뭐였냐면, 다른 상영관 영화들은 모두 9시 30분 시작이고 <퍼시픽션>만 9시 50분 시작이라서 영화 상영 직전에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발권을 하는 사람은 <퍼시픽션>을 볼 사람들뿐일 것이고, 토요일 첫 상영에 <퍼시픽션>을 볼 사람은 많이 잡아도 20명... 일 거라는 계산. 그러니 영화 상영 직전에는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발권을 하는 사람도 나뿐일 거라는 계산.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잽싸게 혼자 올라가려고 했는데 1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에 저 고스트 룩 할머니가 타더니 내가 엘리베이터를 먼저 내려서 빠른 걸음으로 키오스크로 가자 뒤에서 뛰다시피 걸어 새치기한 후 키오스크 잡고는 무려 티켓을 다섯 번(각각 5번, 티켓 발권을 위해서는 예매번호 7자리와 생년월일 6자리는 입력해야 함) 발권해 버림. 거의 대부분의 날들에 그랬듯이 키오스크 두 대 중 상습 수리 중인 한 대는 그날도 고장 수리 중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발권을 급하게 하길래 나는 저 할머니도 <퍼시픽션> 보나 했는데, 발권하고 나서는 그냥 로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영화가 죄다 9시 대에 시작했기 때문에 다음 영화는 빨라도 11시인데 뭣 때문에 새치기를 해가면서 까지 뒷사람이 기다리는데도 다섯 번(다섯 장)이나 발권을 하는지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냥 노인특유의 심술 맞음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시작부터 별로였던 기분 탓인지 뭔지 유감스럽게도 이 날 본 영화 두 편 모두 별로였다. <퍼시픽션>도 <마티 슈프림>도 둘 다 길기만 백인 황동만들의 영화였다는 생각만 들었다. '뭐 어쩌라고요.' 하는 생각만 들었다. 


키오스크 화면에는 고스트 룩 할머니의 예매내역 리스트가 쭉 있었는데 예매한 영화가 최소 열 편이 넘었고, 예매 금액은 모두 무료였다. 발권하지 않은 예매 리스트에는 인디상영관의 독립영화들이 서너 편 있었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는 영화를 좋아하고 할 일은 없는 내가 꿈에 그리던 노년의 삶을 즐기는 그런 할머니였던 것(feat. 노인 특유의 심술 맞음) 골드회원권 뽕을 뽑을 수 있는 그런 시간 부자였던 것. 고스트 룩 할머니는 아마도 골드회원일 듯. (골드회원 연회비 50만 원, 모든 영화 1회 무료 관람 가능) 작년에 극장에서 본 영화가 100편 조금 모자라는데 영화비는 약 31만 원 썼다. 무료 상영, 초대권, 문화의날 그리고 영화지원금, 회원할인 등 할인이란 할인을 죄다 받았기 때문. 100편을 봐도 총 결제비가 50만 원이 못되는데, 50만 원 회원권으로 이득을 보려면 200편은 봐야한다는 건데 무직이라면 한 번은 시도해 볼 수도 있을 거 같다. 올해는 현재까지 영화관에서 52편 봤고 결제금액은 약 15만 원(영화지원금으로 열여섯 편 봄) 출퇴근 하는 노동자가 골드회원권으로 이득을 보기란 불가능. 나도 언젠가 무직이 되면 상영하는 모든 영화 다 보기 & 매일 영화관 가기 해봐야지!!


고스트 룩 할머니를 그저 노인 할인으로 영화관이 시간 때우러 오는 그런 부류(엄청 많다!!)의 노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BIKY에서 봐서 놀랐다.  나조차도 BIKY를 매년 봤던 건 아니고,  BIKY 1회 때부터 봤기 때문에(그때는 일반 상영작은 무료였다, 지금은 8천 원) 애정이 있는 정도라서 마음 내키고 체력 되면 한 편 정도 보는 게 전부. 주로는 해외 장편영화를 본다. 국내 단편 모음 상영은 절대 안 봄. 황동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연습작을 볼 정도로 체력과 시간이 남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나와는 달리 시간 부자인 고스트 룩 할머니는 단편 모음을 봤단 말이지. 무엇보다 놀란 건 노인들은 오후 5시 이후로는 결코 영화관에 있지 않는데 이 할머니는 평일 저녁 7시 상영 영화를 봤다는 거다. 뭐지? 노인들은 조조는 볼지언정 저녁이나 심야 영화는 절대 보지 않는다 걸 불문율로 알고 있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역시 옷차림이 남다르면 행동도 남다른 건가? 


p.s. 고스트 룩 할머니의 남다른 옷차림이란?

시스루 검정 장바구니 두 개(한 개는 그물 조직, 한 개는 그냥 뭔가 비치는 검은색 장바구니, 손잡이는 링)를 들고, 작은 검정 배낭을 메고,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이 늙어서 고스트 룩+로리타 룩을 믹스해서 입었을 법한 레이스+시폰+시스루 믹스 치렁치렁 검정 원피스를 입고, 연한 검정으로 틴팅된 안경을 착용. 복장은 지난 토요일과 같아 보였다. 어쩌면 비슷한 다른 옷일지도.


p.s.2.

약 4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상영관에 십여 명의 관객만 영화를 보니 매우 쾌적했다. 어른 혼자 온 관객은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는데 영화제 목걸이를 하고 있었기에 일반 관객은 아닌 걸로 보였다. 다른 관객들은 모두 부모와 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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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사후의 명성에 앞서 보통 또래들 사이에서의 최고 인정이 있기 마련이다. 카프카가 1924년에 사망했을 때, 그가 출판한 몇 종 되지 않는 책들은 200권 이상 팔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문학 친구들과 그의 짧은 산문에(그의 장편소설은 아직 한 권도 출판되지 않았다) 거의 우연히 발부리가 걸린 소수의 독자들은 그가 근대 산문의 대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신했다. 발터 벤야민은 일찍이 그와 같은 인정을 얻었다.

(중략) 우리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 천재 같은 게 있는지, 아니면 그런 것은 천재가 아닌 자들의 백일몽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후의 명성이 그런 자들의 몫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합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 /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가 쓴 <발터 벤야민> 밑 줄 그어가면서 백 번 정독해라. 아니 필사해라. 동만아. 


황동만 좀 잊으려고 했더니 미국판 황동만 마티 마우저(<영화 마티 슈프림> 주인공)가 나타나서 또 나를 환장하게 하네. 열등하기에 주변인들 괴롭히고 자신을 어떻게든 우월의 자리에 올려두려는 인간들, 너무 지긋지긋하다. 가상 인물로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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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다면 망가져서라도 나를 증명하겠다고 외치는 황동만과 달리 아메리칸드림의 시대 미국 뉴욕 태생의 마티 마우저는 오직 잘 나서 나를 증명하겠다고 러닝 타임 149분간 질주한다! '와 씨... 또 황동만이다. 망했다.' 이번엔 미국판 황동만 즉 외향형 나르 ㅜㅜㅜㅜ 아무리 티모시 샬라메라도 이건 너무 하잖아. 진심 견디기 힘들었고, 고문 같은 영화였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봐라. 지옥이 따로 있나. 황동만이 내 주변에 있는 나날이 지옥이지. 


극단적으로 충동적이며 이기적인 마티 마우저 같은 인물이 성공했다 치자. 늙으면 어떤 인간이 되어 있겠는가? 그건 바로 홍명보다. 


황동만이나 마티 마우저 같은 열등감 나르성향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게 요즘 유행인가? 최악의 유행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참 졸렬하다고 생각했는데 클로이 자오 감독(<노매드랜드>)은 엔딩이 아름다웠다고 하니 좀 충격적. 역시 번식이 최고인가? 다자녀 기르시고요.


한 달 동안 황동만, 마티 마우저.... 정신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기분이다.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마티 마우저의 꼼수와 잔머리가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 정도. 그것이 재미라면 재미 일까도 싶지만, 마티 니가 잔머리를 쓰니까 그런 거 아녀. 정당한 노동을 하라고 노동을!! 탁구라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나는 특별 대접받아야 해 하는 거 자체가 병이라고. 탁구라는 재능과 꿈이 있는 나는 특별하고 죽마고우이면서 여자친구인 유부녀 레이첼(직업은 팻샵 종업원 년 수입 1500달러)을 하찮다고 생각하는 너의 그 나르가 정말 역겹다. 그러니 인생이 제대로 못 풀리는 거 아니냐? 레이첼의 난자와 자궁까지도 이용해 먹는 양아치 새끼 그게 마티 마우저임. 도대체 어디가 아름답다는 거냐? 어휴...느닷없이 정자들이 질주하더니 난자를 만나고 그 난자가 탁구공이 되는 장면이 영화 도입부에 나오고 영화 엔딩은 그 수정란인지 탁구공이 인간 아기로 태어나는데, 게 수미쌍관의 묘라는 건가...ㅉ 한시를 쓰던가 그러면. 아주 그냥 번식 장려 영화라고 홍보하지 그러니? 


p.s. 티모시 샬라메 피부 분장은 칭찬한다. 잡티 재현은 뭐 할 수 있다고 해도 여드름 자국은 어떻게 재현한 걸까 몹시 궁금.


p.s2. 자나깨나 황동만 조심. 성공한 황동만도 망한 황동만도 모두 조심. 엮이는 순간 인생 지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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