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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오타쿠의 피가 없다에 이어서 쓴다)


땀이 뻘뻘 날 때까지 버티다가 잠시만 에어컨을 켜고 끄고를 반복하면서 푹 쉬었더니 감기의 80%는 해결된 것 같다. 


유튜브에서 미피를 덕질하는 사람의 영상을 봤다. 본 이유는 학생 때 나도 미피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각인된 미피의 퍼스널컬러는 쨍한 오렌지색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오랫동안 오렌지색 바탕에 미피가 그려진 보조가방을 들고 다녔던 탓일 것이다. 또 미피가 그려진 동아 형광펜 오렌지색만 몇 다스 사서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고급스럽게 스테들러 형광펜을 쓸 때도 나는 미피가 그려진 향기 나는 동아 형광펜 색상도 경박한, 쨍한 오렌지색을 사용했다(미피 형광펜 12색 세트도 사서 써봤는데 역시 미피는 오렌지색이 짱이다는 결론만 얻음). 그런데 미피 덕질러는 무채색 미피만 수집하고 있었다!! 무채색 미피가 있나? 그게 말이 돼? 하면서 호기심을 폭발해서 영상을 봤는데, 무채색 미피가 엄청 많은 것이다. (미피의 퍼스널 컬러는 오렌지라고 오렌지!! 누군가에게 오렌지는 에르메스겠지만, 나에게 오렌지는 미피!!) 또한 미피 덕질러는 검정과 흰색을 중심으로 무채색만 좋아하는 다꾸 마니아였다. 무채색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 미피 덕질러는 무채색으로 된 귀여운 것들을 좋아했다. 반면 나는 귀여운 디자인 보다는 화사한 색상으로 된 물건을 더 선호한다. 볼펜도 자바 0.38 베이비를 다스로 사서 쓴다. 이 볼펜 이름에 괜히 베이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볼펜 케이스 색상이 베이비톤(?)인데, 네 가지 색상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연보라. 유니 제트스트림도 있지만 굵기별(1.0이 제일 좋다)로 있긴 한데 케이스 모양이 너무 흉물스럽. 현재 나에게 남은 미피는 형광펜과 입체 스티커(휴대폰 케이스 바꿀 때마다 폰에 붙이는 용도).


미피 덕질 영상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내가 미피를 사려고 돈을 벌고 있구나."였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돈으로 사고(하고) 싶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돈을 버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내 책상이 내 영역이기 때문이다(바틀비에게 신내림 받았나?). 어리석게도 매일 가서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고양이과 영역 동물이라도 되는 듯이 출퇴근하고 있을 따름이다. 


왜 사람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하지? 반대로 나는 왜 늘 돈이 남지? 그 이유를 어제 일기를 쓰다가 알게 되었다(이래서 일기를 써야 한다!). 나에게는 오타쿠의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오지은의 신간이 나에게 하등 필요 없는 주제의 책이기에 읽을 이유도 구매할 이유도 못 느끼는 것이다. 권여선의 술안주 에세이도 마찬가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대해서도 쓸모의 유무를 따져 가면서 구매여부와 독서여부를 결정하는데 고만고만한 것들(물건, 인간관계 등등)에 대해서는 어떠하겠는가. 사람에 대해서도, 물건에 대해서도, 서비스에 대해서도 오타쿠적 소비를 하지 않으니 돈이 남는 것이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돈을 쓰는 데 사용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엇에 돈을 써야 할지 정보를 검색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는 게 너무 아깝다. 통장 잔고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돈을 쓰고 싶지도 않은데, 딱히 돈을 계속 모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 귀한 시관과 체력을 돈벌이에 거의 다 쓰고 있는 게 굉장히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샤넬에 간 것이다. 샤넬에서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면 돈벌이(영역 표시)를 그만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샤넬에 갔다. 코로나가 끝나고 샤테크의 시대도 저물어서 샤넬은 한가했다. 대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든 매장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엔 구하기 힘들던 백들도 웬만한 건 다 있다. 다만 지금 구하기 힘든 건 25백 블랙 등 인기 색상. 제니가 나오는 샤넬 광고를 보면서 '저 삼각김밥 같이 생긴 건 뭐래?' 하고 생각했던 25백을 직원이 보여주었을 때도 뭐 이래 생겼어했는데, 어깨에 걸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나 버렸다. 샤넬 매장 속 거대한 거울에 비친 나를 제니로 착각할 정도로 가방이 예뻤다. 하지만 나는 트위드 플랩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산다면 이번 fw 시즌 트위드 플랩백을 사고 싶었다. 샤넬 트위드 재킷은 못 사더라도 트위트 플랩백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는 거 아니냐. 이번 시즌 신상 중 입고된 건은 세 개뿐이었고 셋 다 별로였다. 홈페이지에서 본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건 매장에 없었다. 영화 시간도 다 되었고 해서 다른 백이 입고되면 연락해 달라고 하고 귀걸이 하나 사고 쇼핑을 끝냈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계속 어제 본 25백 생각이 나는 거다. 그래서 다시 샤넬에 갔다. 어제 본 건 다 팔렸고, 대신 오늘은 이번 fw에 새로 출시된 다른 가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것보다 더더 맘에 들었다. 내가 두 번째로 예쁘다고 생각한 신상 트위드 백도 이날 입고 되어서 있었는데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25백에 반해버린 것! 그냥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생긴 가방인데, 어깨에 메는 순간 진짜 예뻐진다! 가방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예뻐짐. 집에서 잠옷을 입고 메어 봤는데 잠옷에도 어울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가방이 있을 수 있지!!!! 25백은 음식으로 치면 최고급 향신료 같은 것!


하지만 역시 25백을 구매할 때 소비한 시간이 아깝다. 나는 시간의 가치를 2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버릇이 있다. 2시간이면 영화 1편인데 영화를 포기하고 쇼핑을 해야 할 가치가 있나? 영화 한 편 vs 뷰가 좋은 해운대 호텔 뷔페에서 나는 영화 한 편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특히 그 영화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영화라면 더더욱. 사람을 만나는 것에서도 영화 1편 보는 것보다 재미없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처음에야 호기심에서 만나겠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알 수 있는 것을 다 알고 다면, 더 이상 우려내도 우릴 것이 없는 이미 사용한 티백 같은 사이라는 결론이 나면, 나는 그런 사람(또는 무리)을 만나는 것에 시간과 체력을 쓰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대체로 혼자 있는데, 나를 스쳐간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오롯이 혼자 쓰는 지금이 제일 만족스럽고 스트레스도 덜 하고, 무엇보다 대학병원 정기 건강 검사 결과가 제일 좋은 나나들이다. 사람, 즉 인간관계가 나에겐 1급 발암물질이었던 것이다. 


요즘 내가 농담처럼 말: 퇴직 전에 주 4.5일제(더 존버하면 주 4일제)는 체험해 보고 그만 두자인데, 존버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샤넬 28백 메고 출근해 보자. 샤넬이 19백, 22백, 25백을 출시한 규칙대로라면 다음 신상백은 28백인데 그때까지는 돈 벌어보자는 거. 근데 번 돈을 어디다 쓰냐, 돈을 쓰고 싶은 데가 없는데. 더욱이 돈을 쓸 시간도 체력도 없는데. 구입한 책도 다 못 읽은 게 더 많고, 개봉한 영화도 제대로 못 챙겨보고 있는데, 쇼핑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여행 갈 시간이 어디 있냐고(사람들이 자꾸 여행 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일단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거 싫고, 관광지에서 관광객들이랑 만나는 것도 싫고(추석에 파리 갔더니 한국인뿐이었다. 한국인 줄 ㅋㅋ) 이미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봤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종이지도와 가이드북 들고 여행 다니던 때가 좀 그립).


물욕이 0에 수렴해서 무기력증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25백 보자마자 반한 걸 보면 무기력증은 아닌 거 같다. 다만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소비위주의 유희거리들이 내 취향과 맞지 않을 뿐. 어렸을 때는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많아서 일단은 찍먹 해본 것들: 여행(+먹부림), 쇼핑, 우정, 연애, 자동차, 집, 인테리어, 운동(방송댄스도 꽤 오래 배워봄 ㅋㅋ), 악기, (목표가 명확한) 공부 등등. 그 모든 게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내가 미취학 아동~초등 저학년 때부터 좋아하던 것 말고는 없다. 책 읽기, 영화 보기, 일기 쓰기 그리고 약간의 패션(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좋아했었다). 유튜브에 자주 나오는 여행 광고 중에서 에어비앤비던가를 보면 체험하는 여행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 가서 복원팀과 복원 체험, 로마에 가서 피자 만들기 체험, 일본에 가서 일본 라면 만들기 체험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데 볼 때마다  '저런 체험 위주의 여행이라면 난 돈을 줘도 안 간다 안 가.' 하고 광고를 볼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가 '호갱님, 돈을 쓰세요 돈을!' 하고 외치는 것에 내가 딱히 흥미가 없다는 것. 또한 덕질에도 흥미가 없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도 내 관심사가 아닌 주제라면 구입하지 않을 정도니. 옷과 액세서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1년은 365일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입을 수 있는 개수 최대치를 넘지 않게만 소유하고 있다.


다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살이 쪄서 문제라는데 

반대로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살이 안 쪄서 문제고

다든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난린데, 

나는 돈을 쓰고 싶은 데가 딱히 없어서 설마 내가 무기력일까 봐 걱정했다.

(이러다 정말 해탈하여 윤회의 사슬을 끊고 업의 강둑을 넘어 무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이 세상은 정말 나랑 맞지가 않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정된 시간은 최대한 낭비 없이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긴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챙기면서 하루씩 살아내고 싶다. 


ps. 이번에 샤넬을 사면서 체감한 것은 경제상황이 진짜 안 좋구나 하는 것. 백화점에서 명품 살 때 항상 상품권 구매해서 사는데 상품권 할인율은 늘 은행 이자보다 낮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은행 이자보다 무려 0.3%나 할인율이 높은 거다. 그동안 내가 돈을 안 써서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던 건가. ㅋㅋㅋ 경제야, 쏘리. 돈을 쓸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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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다. 온열 질환자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 타이틀을 얼핏 본 것 같다. 감기에 걸렸다. 처음에는 목이 칼칼하니 목소리가 탁한 것 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그래서 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병들을 떠올렸다. 그래봤자 갑상선암이었지만. 검색해 보니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다고 한다. 


다음날, 일어나니 목에 가래가 낀 것처럼 목구멍이 턱 막힌 느낌이었다. 억지로 억지로 에헴 에헴 목구멍에 붙어 있는 무언가를 떠어내어 보니 꾸덕한 버터 같은 가래가 조금 나왔다. 그 외에는 딱히 증상이 없었다.


또 다음날, 샤넬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이런저런 주얼리와 가방들을 착용해 봤다. 더 보고 싶었는데 영화 시간이 되어서 매장을 나왔다. 극장에서는 아랍영화제를 하고 있었는데 <폐허에서 파쿠르>라는 가자 지구 청년의 목숨을 건 파쿠르와 가자 지구 탈출에 대한 다큐를 봤다. 집으로 돌아올 때 자동차의 에어컨 바람이 매우 차갑게 여겨져서 에어컨을 끄고 운전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별로 덥지 않아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샤워하고 바로 잤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벽 2시쯤 오한이 느껴져서 잠에서 깼다. 그때서야 알았다. 이것은 감기, 여름 감기!! 주방으로 가서 상비약이 있는 싱크대를 열어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다시 잤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서 내 몸이 김밥 속 재료라도 된다는 듯이 여름 냉감 이불을  김처럼 둘둘 말고 잤다. 


또또 다음날, 콧물이 좀 나왔고, 콧물 때문에 코가 좀 막힌 것 같았다. 봄에 입던 긴 팔 셔츠와 베스트를 입었다. 마스크도 꼈다.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했다. 어제 쇼핑을 도와준 직원에게 연락하고 샤넬에 갔다. 샤넬에서 최신상  25-26-fw 25백을 샀다. 거대한 쇼핑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가서 트렁크에 쇼핑백을 넣어두고, 쇼핑백 대신 황정은의 신간 <작은 일기>를 꺼내 들었다. 백화점 3층에 있는 메종 키츠네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를 마시면서 내란 수괴 윤 씨가 탄핵되는 날까지의 일기를 읽고 책을 덮었다. 


또또또 다음날, 마스크와 긴 옷 그리고 샤넬 25백으로 중무장을 하고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았다. 몸을 최대한 온수 속에 담그고 반신욕 덮개를 목까지 올리고 욕조에 기대어 앉아 뉴스를 들었다. 내란 수괴 윤 씨가 소송을 한 104명에게 위자료 10만 원씩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위자료 총액이 어제, 그제 내가 샤넬에서 쓴 돈보다 적었다.


몸이 좀 데워졌는지 거실이 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이 거실을 차갑게 만드는 동안 마스크를 쓰고 긴 팔 옷을 입었다. 이름이 참 맘에 드는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에 눕다시피 앉아서 찜 해둔 영화 중에서 뭘 볼지 리모컨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시민 덕희>나 <크로스> 같은 가볍고 통쾌한 범죄 영화가 보고 싶은데 웬만한 건 다 봐서 볼 게 없었다. 거실이 춥게 느껴져서 에어컨을 껐다. <시민 덕희>의 장윤주와 <크로스>의 황정민, 둘 다 나오는 <베테랑 2>를 골랐다. 재미없다는 소문이 있어서 기대 없이 봤는데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었다. 졸렸다. 그래서 30분 정도 남겨두고 그냥 잤다. 모델 장윤주 배우(??)의 연기와 배역은 <시민 덕희>가 10배는 더 나았다. 정해인이 악역하기엔 얼굴에 악의가 좀 부족한 듯도 하고. <비상선언>에서 임시완 악역 같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정해인의 얼굴에는 온기가 많은 듯. 임시완은 서늘한 연기엔 참 서늘해 보임. 


여름 감기는 처음이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여름 감기에 걸린 기억은 없다. 이 폭염에 긴 옷에 마스크라니. 지금도 에어컨 켜지 않고 있다. 뉴스에서는 전국 대부분이 폭염 경보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도 현재 폭염 경보다. 웃기게도 난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처서 즈음의 여름 같다고 생각했다. 요 몇 년 동안에는 처서에도 굉장히 더웠지만 2000년대나 2010년대에도 처서가 지나면 모기입도 삐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처서즈음부터는 시원했다. 처서 즈음에 나오는 아오리 사과가 나의 가장 중요한 절기 음식인 시절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 아오리 사과는 저렴했다. 특히 파장 무렵 시장에 가면 8개에 2000원에 팔기도 했다. 언제던가 마트 과일 코너에서 아오리 사과가 1개에 2000원 하는 걸 보고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물론 좀 더 크고 좀 더 품질이 좋아 보였지만. 


소울 푸드가 죄다 싸구려 음식(아오리 사과 포함)이다. 어렸을 때 먹던 음식들이 그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뜨거운 오뚜기(일본산 고급 고체 커리 말고) 카레가 먹고 싶었다. 아플 때마다 먹고 싶은 건 죄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사소하고 저렴한 음식들이다. 갓 만든 뜨거운 오뚜기 카레(감자, 양파, 당근, 돼지고기, 파프리카)를 에어컨도 없이 긴 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면서 퍼 먹었다. 나답지 않게 두 그릇을 먹었다. 최근 몇 년을 통틀어서 이렇게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얼마 전에도 뷰가 좋은 해운대 고오급 호텔 뷔페에 가서 시식 코너에서 조각 음식 먹듯 먹은 나인데 말이다. 사람들이 스테이크, 대게 등등 비싼 음식을 여러 접시 먹을 때 나는 수삼냉채, 생선구이, 샐러드 한 접시 먹고 끝. 디저트로는 파인애플 2조각, 수박 2조각 먹고 끝. 내가 만든 오뚜기 카레가 호텔 뷔페보다 10배는 넘게 맛있었다.


내가 만약 소설가인데, 권여선처럼 음식 에세이를 쓰게 된다면 아마도 여름 감기엔 오뚜기 카레를 처방한다 어쩌고 하는 글을 쓸지도. 권여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생존한 한국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원래 제일 좋아하던 작가는 죽었음. 박완서 소설가이다) 최근작(맞나?) <술꾼들의 모국어>는 사지도 읽지도 않았다. 기존의 음식 에세이 <오늘 뭐 먹지?>와 비슷할 거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는 술과 안주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작자는 가수 오지은 작가(?)인데 오지은의 최신작 <우울증 가이드북>을 사지 않았다. <술꾼들이 모국어>, <우울증 가이드북은> 나에게 있어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와 다를 바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 밝혀진 사실 하나: 나에겐 오타쿠의 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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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 2024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감독: 모함마드 라술라프 (이란)


자파르 파나히(이란) 감독처럼 이란 정부로부터 탄압(출국금지, 징역 8년, 재산 몰수, 태형 ㄷ ㄷ )받으며 영화를 계속해서 찍는 감독의 최신작. 계엄이 성공했다면 수용번호 3617의 부부도 이런 식의 탄압을 했겠지. 신체 훼손 장면(수술 장면도 못봐서 의학드라마도 좋아하지 않고,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을 못 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정책에 항의(히잡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을 죽인)하는 시위대에게 산탄총(쇠구슬 총)을 무분별하게 발사하는 장소에 우연히 있었기에 얼굴에 십 여발의 쇠구슬이 박힌 대학생(여)의 얼굴에서 족집게로 쇠구슬을 꺼내는 장면을 구토감을 느끼면서도 두 눈 부릅뜨면서 끝까지 봤다. 


가부장제의 발명 자체가 인류가 쓸모없이 이기적이라는 결정적인 증거!


영화의 엔딩에 매우 흡족해 하며 극장을 나왔다. 


<페니키안 스킴> 2025. 5. 28. 개봉

감독: 웨스 앤더슨


미국(유럽)의 가부장과 한국(이란) 가부장을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다. 

2000년 이후 서구 가부장은 딸에게도 가부장을 상속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이란)은 아직도 가부장을 아들에게 상속하려고 한다.

어제 영화<특별시민>을 봤는데 2017년 작품인데 호주제가 살아있었던 1997년인 줄(호주제는 2008년 폐지됨).

3선을 노리는 가부장 변종구(2선의 서울시장 역)는 상습 가정폭력범(배우자인 아내를 때림)이며 자신의 뺑소니 사망사건을 딸에게 덮어 씌움. 이 장면에서 아들이었다면 저랬을까 하는 의심이 100% 들었다. 경쟁자인 양진주(라미란 배우)의 하버드 출신의 미국 변호사 아들이 등장한다. 이 구조가 웃겼다. 감독은 풍자적으로 이런 딸, 아들 구조를 썼을까, 아니면 별 생각없는 신념(아들은 하버드고, 딸은 희생양)으로 썼을까 궁금했다. 


다시 영화 <페니키안 스킴>으로 돌아와서 타락한 가부장은 수녀 지망생 딸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점에서 대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서는 갱생 가능성이 1도 없는 가부장이라서 장렬하게 처벌받는다.




<퀴어> 2025. 6. 20. 개봉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하!!!!! 

간지!!!!!!

간지!!!!!!!


경치가 끝내주게 아름다운 적도 근처 섬으로 휴가 갔다 온 기분이 들게 하는 영화. 


엔딩에 대한 호불호가 있던데, 난 절대적인 호!!!

이 감독의 필모에 <서스페리아>가 있는 이유지!!!!


개인적으론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을 멍 때리고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되는데, 이 영화가 그랬다.

걍 힐링됨.


퀴어는 거들뿐.

분위기와 취향이 다 하는 영화.


이런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p.s. 커리어의 후반부에 이런 아름다운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된 다니엘 크레이그는 어떤 기분일까? 최고의 필모 아닌지. 이런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음, 역시 뱃살 관리 하길 잘 했어.' 하는 ㅋㅋㅋ. 




<노이즈> 2025. 6. 25. 개봉

감독: 김수진(입봉작이라고 한다)


이선빈, 류경수가 출연한다고 해서 기본은 할 거라고 생각하고 예매했다.


퇴근하고 나서, 왠지 의욕이 없었던 날 극장이나 가자하고 가서 본 영화.

집 근처 극장에서 큰 기대없이 한국 공포 장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 처방.


볼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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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런 식이야. 친구가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싸우기를 바라는 거지. 암에 대해 그런 식으로 배워왔으니까. 환자와 질병의 싸움이다. 곧 선과 악의 싸움이다. 행동에도 옳은 방식이 있고 그른 방식이 있다. 강한 대응과 나약한 대응. 투사의 방식과 포기자의 방식. 이기고 살아남으면 영웅이 돼. 지면 글쎄, 아마 온 힘을 다해 싸우지 않은 거겠지. 고약한 멍청이 의사들이 내린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덕에 수년을 더 살 수 있었던 이런저런 사람들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넌 믿을 수 없을 거야. 사람들은 말기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 친구가 말한다. 불치라거나 수술 불가능하다는 말도 그렇고. 그런 건 패배주의적 말이라는 거야. 살아 버티는 한 가능성은 있다 같은 정신 나간 얘기를 해. 의술의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는 말도. 매일 찾아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이런 말도 하지. 교육받았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들 암의 치료법이 금방이라도 나올 거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

<어떻게 지내요 / 시그리드 누네즈>


최근에 2건의 충격적인 투신자살 사건을 뉴스에서 보았다. 투신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4명) 10대였다. 사건 1은 부산 소재 예술고등학교 학생 3명의 동반 투신, 사건 2는 경기도에서 정신의학과 진료 직후 해당 건물의 옥상에서 투신한 사건(지나가던 행인 모녀 2명까지 사망)이었다. 늘 주장하는 거지만 존엄사(안락사) 허가해야 한다. 그만 살고 싶다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반인권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말이 되나? 전인류가 조폭 같다. 조폭이 조직을 떠날 때 신체 일부(주로는 손가락?)을 절단하는 처벌을 받듯,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은 사람을 절대 편하게 보내주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자살하게 방치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말해 뭐 하겠는가. 말기 암 환자에게도 존엄사(안락사)가 불법인데.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봤다. 물론 내가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못 볼 거라는 걸 200% 장담했지만, 한국에서 한국사람들과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봤는데 4화 후반부에서 미지의 엄마가 미지 방문을 때려 부수고(방 문 손잡이를 망치로 때려 부순다. 이걸 연출한다고? 이래도 된다고? 시발 미친. <소년의 시간>에서는 살인범 신병 확보를 위해서 특공대가 그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 부숨. 미지가 살인범이냐?) 미지의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서 미지에게 악다구니를 하면 장면까지 보고 이 드라마를 계속 보는 걸 포기했다. 이런 장면 진짜 싫다! 


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걸까? 연출가와 극본가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왜 부모가 (못난) 자식에게 저딴 식으로 악다구니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거냐고? 미지의 엄마(장영남 배우)는 진짜 최악인 게 자신은 딸들에게 모질게 퍼부으면서, 자신의 엄마에겐 왜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았냐고 또 퍼부음. 윤서결이냐? 하나만 해라, 하나만. 윤서결식 법치 아니냐. 내가 하면 합법, 남이 나에게 하면 죄다 불법. 이런 미친 사패.


tvN 제작의 <미지의 서울>에서의 부모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가 정말 비교됐다. 두 드라마 모두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도대체 한드에서 부모상을 늘 저렇게(피해의식 가득한 부모) 연출하는 이유는 도대체 뭐야? 특히 엄마 역에 대한 연출. <미지의 서울> 엄마 역 장영남 배우(이것과 대조적 엄마역은 연분홍 교감 센세인 김선영 배우인가?), <웰컴투 삼달이> 엄마 역 김미경 배우는 정말 처참하다. 


한드에서의 부모(특히 엄마)는 자녀가 자신의 희생에 보답하지 못하고 자신을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면 악다구니를 퍼붓고 자식을 비난한다(이게 데이트 폭력과 뭐가 다른가? 내가 널 사랑하기 때문에 감시하고 억압하고 때리고 한다고 변명하는 가해자의 논리와 뭐가 다른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애완동물 취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년의 시간>에서의 부모는 자신들의 양육 방식에 잘못은 없었는지 고찰한다. 


나는 또한 이런 식(자식이 부모를 실망시켰을 때, 특히 부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을 하지 못할 때 자식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부모)의 연출이 현재 한국의 부모와 자식들에게 미치는 해악이 크다고 생각한다. 은연중에 부모는 자식에게 퍼부어도 되고, 자식은 부모를 실망시키면 악다구니를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청소년들은 그냥 자살해 버리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구조, 분위기 속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투신해 버리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살로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편리한(비용 0원, 준비물 없음) 방법이 투신이라는 것도 슬프지. 


여름이 되면, 늘 자살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다. 왜냐하면 나는 늘 첫 더위가 느껴지는 날에는 fx의 핫썸머를 들었기 때문이다. 설리가 자살한 후 처음 돌아온 여름날에는 핫썸머를 듣지 못했다. 그다음 해 여름부터는 핫썸머를 들었는데, 노래는 참 흥이 나고 좋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슬프다. 설리는 왜 죽어버렸을까, 설리를 생각하면 세트처럼 구하라가 따라온다. 


ps. 아직 상영 중인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 속의 이란 가족 제도의 현실을 보면서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애가 없는 것은 인류 종특인가 싶기도 했다. 자애가 부족한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는 게 인류의 비극인가 싶기도 했다. 소설 <어떻게 지내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말기 암 환자(영화 <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튼) 역시도 자애가 없는 부모(엄마)의 전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이를 한 명만 낳은 걸 후회해." 이 말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부모 그 자체다. 인간은 순전한 이기심으로 자식을 낳고 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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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노래를 들을까 생각하다가 애플뮤직의 댄스 카테고리를 눌렀더니 제일 먼저 추천된 것은 아비치 2014였다. 언젠가 유명해서 들어봤다기 '내 취향은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제 아비치의 곡들을 듣는데 맘에 들었다. 맘에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슬펐다. 이렇게 흥이 나는 음악을 만든 사람이 자살을 하다니... 최전성기(더 살았더라면 더 높이 오르지 않았을까)에, 28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끝낸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슬펐다. 갑자기 아비치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호텔방에서 와인병을 깨서 목을 그었다고 한다. 데뷔 이후 10년 간 휴식 없이 계속 공연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의 문화예술계 간단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수미에게 "재능과 노력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냐"라고 물었다. 조수미의 대답은 이랬다. "우선 재능은 필수다. 하지만 노력 없이는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재능이라는 계륵."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재능이 없는 것이 사는 것에는 더 편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재능=버리긴 아깝고 그걸 발휘하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 그러니 계륵이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치비의 노래를 들으면서는 계륵이 재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목숨을 연료로 재능의 불꽃을 피우는 게 합리적일까? 탁월한 재능이 없는 내 처지에서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재능을 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이나 방법들을 이해하고 납득할 길을 없지만.


남들이 없는 재능이 있으니 그 재능을 모른 척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쓰는 데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엄청난 보상이 주어진다. 


영화 <페니키안 스킴>에서 딸이 아버지에게 "도대체 이런 무모한 싸움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누가 이기는지 알고 싶어서."이다. 나는 사람들이 싸우고, 노력하는 게 부와 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대사처럼 인간세상의 이 난리법석의 이유는 '누가 이기는지 궁금'해서 일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슬퍼졌다. 


재능을 쓰는 사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재능과 나 자신 중 누가 이기는지 알고 싶어서. 재능에 잡아먹히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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