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르는 누군가가 커튼을 걷는 뒷모습을 보는 게 좋았을까, 왜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대충 썰어 넣은 수트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미지근한 물도, 청소도, 목욕도, 스트레칭도, 그릇 정리도, 전부 주문이었다. 그리고 결계였다. 오늘 나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단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외우는 주문이자, 나의 쉼터가 더 포근해지기를 바라며 만드는 작은 결계.

일상은 얼마나 떠내려가기 쉬운가.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얼마나 힘든가.

<마음이 하는 일 / 오지은>


새해부터 많이 아팠다. 몇 주 전 일요일 극심한 복통으로 인해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응급실에 갔다. 복통으로 인해 입고 있던 내복 상의가 다 젖을 정도로 엄청난 식은땀을 흘렸다. 배꼽 아래의 배 부위가 뭐라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아팠고, 아랫배 전체가 퉁퉁 부어있었다. 그 부분을 스치기만 해도 벗겨진 살갗에 무언가 닿는 기분이 들었다. 응급실은 고요했다. 침상의 절반 정도에만 응급환자가 있었고, 다들 차분하게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 머리숱이 별로 없고 야윈 다소 지쳐 보이는 남의사(50대로 추정)는 내 증상을 듣고 배의 부은 상태를 보더니 장염이라고 했다. 나는 제발 복통만 좀 없애달라고 애원했다. 수액을 맞고, 하루치 약이 든 약봉투를 받아 들고 집에 왔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응급실은 하루치 처방만 가능하다고 했다(다음날 방문한 약국의 약사 왈).


다음날, 출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복통은 여전했다. 미음 한 숟가락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아랫배가 전율하면서 견디기 힘든 복통을 유발했고 나는 당장 변기로 기어가서 먹은 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쏟아냈다. 같은 병원에 가서 응급의가 아닌 내과 전문의 진료를 받고 또다시 수액을 맞고 5일 치의 약이 든 약봉투를 들고 집으로 왔다.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미음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두 숟가락을 넘기자 같은 강도의 끔찍한 복통이 생겼다. 굶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무작정 굶으면 안 된다고 입원을 권했지만, 항생제에 절여지고 싶지 않아서 굶으면서 버텼다. 연속 네 끼를 거른 후 먹은 미음은 꿀맛이었다. 탄수화물이, 쌀이 이렇게 달았나 싶었다. 아직도 그 첫 미음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현대인에겐 금기인 탄수화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5일 치의 약을 다 먹은 후에도 낫지 않아서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아직도 낫지 않는 걸 보면 세균성 장염 같다고 하면서 5일 치의 약을 더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딱 2주를 약간의 쌀죽과 삶은 감자와 구운 바나나로 연명하면서 말그대로 쉬었다. 복통이 다시 심해지면 하루 종일 굶기를 반복하면서. 그 결과 인생 최저 몸무게를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아까운 내 살들... 다시 찔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주기적인 복통(장이 심각하게 부어 있어서 아랫배가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다)과 간헐적인 설사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하루 종일 굶을 때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일상 브이로그를 볼 에너지조차도 없어서 그저 눈을 감고 선잠에 들다 깨기를 반복했다. 내 몸의 모든 기력은 장속의 세균을 죽이는 것에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의 미밴드 측정 수면 시간은 14~15시간. 죽과 미음 사이의 어떤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유튜브에서 발견한 작은 시골집 일상 브이로그. 구독자 120만 명의 이 유튜버가 만 7년 동안 만든 동영상 128개를 다 봐 버렸다. 영상의 구성은 이렇다. 요리, 텃밭 채소 키우기와 수확, 사계절 시골 풍경, 고양이. 이 영상을 모니터 표면이 얼룩덜룩 엉망인 10년 된 맥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발열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이스팩을 맥북 아래에 요령껏 받쳐 두고서. 진작에 맥북을 샀더라면 아팠을 때 더 편하고 선명하게 시골 브이로그를 봤을 텐데... 기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에 아프기 전에 보던 <모범택시3>을 이어서 볼 수도 없었다. 통증을 망각하기 위해서 범죄 수사물을 보는 것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렇게 2주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쉬었다. 말 그대로 공백의 시간을 보냈다. 책은 당연히 못 읽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라도 봤다면 좋았겠지만 그 정도의 생산성(??)을 만들 기력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리하고 고양이랑 놀고 텃밭 채소 수확하는 정도의 정보값이 0에 가까운 영상 정도나 볼 수 있었다. 반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죽 정도는 먹을 수 있고, 복통도 줄어들고, 복통이 있더라도 참을 만해져서, 설사도 없어지고, 부은 장도 제자리를 찾아서 아랫배도 원래 대로 홀쭉해졌다. 즉 출근을 해도 될 정도로 회복했고, 출근이라는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 도시락(죽)을 챙겨서 출근을 했다. 힘이 없어서 모닝 홈트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화장하고, 무엇보다 드립 커피도 마시고!!! 운전을 하고 회사에 가서 일을 했더니 마냥 집에 누워 있을 때보다 기력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거의 다 나은 것 같다. 


장염 22일째... 그동안 내가 먹은 항생제는 내 장의 유익균도 모조리 다 죽여버렸겠지... 이걸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지만 그래도 회복한 것에 감사해야지. 


보온병에 들어 있던 하루 지난 페퍼민트 차를 마신 것이 세균성 장염의 원인 같았다. 그 몇 모금의 실수가 지옥행 복통을 유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고. 어째서 몸이라는 것은 이런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걸까. 복통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지금 당장 AI가 되고 싶다!!'였다. 이런 비루한 몸 따위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싶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통=몸이 없는 AI는 얼마나 좋을까, AI가 되어서 무한의 시공간 속에서 책과 영화를 학습하고 싶다!!!!! 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편해진 인간이 되기보다는 나 자신이 AI가 되어서 인류의 지식을 즐기다가 소멸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이번의 지옥행 복통을 체험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보름 넘게 하지 않은 저녁 홈트(스쿼트 동작이 많음)를 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앓는 동안 안 그래도 부실한 허벅지는 더 부실해져 있었다. 거의 매일 저녁 홈트를 할 때는 힘들지 않았던 연속 스쿼트들이었는데, 내 허벅지가 지구를 들어 올리는 지렛대처럼 여겨질 정도로 힘들었다. 후들후들. 후들후들. 그래도 존버정신으로 끝까지 했다. 예상했던 대로 다음날 하루 종일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다. 이것이 내 몸의 열악한 스펙이다. 보름 정도 앓아누우면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는 스펙. 다시금 'AI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타올랐다. 허벅지 힘(근육)은 언제쯤 원상 복구될까...


AI가 되고 싶지만, 나는 몸(복통, 통증, 고통 그 자체)을 가진 인간인지라 먹어야 하고(아직도 두 끼 정도는 죽을 먹어야 하지만), 운동도 해야 하고(스쿼트가 너무 힘들지만), 노동이라는 미션 수행이 주는 쾌감(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속에서 활력을 얻어야 하기에 나만의 작은 결계를 만드는 행위(모닝 루틴: 홈트, 드립커피, 화장, 액세서리, 출근 운전 그리고 내란 이후엔 화장을 하면서 듣고 보는 실시간 뉴스공장)를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내려 가기 쉬운, 부서지기 쉬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매일의 소소한 루틴을 수행하는 것에 많은 시간과 체력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러니 인간이 AI와 경쟁이 될 수가 없는 것. 


비효율이 없는 AI가 되고 싶다!!!



인생 첫 장염을 이렇게 지독하게 앓다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 너무 억울해서 어떻게든 이 복통에서 깨달음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이 일기도 이런 이유로 쓰고 있는 것. 그건 아마도 내가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 먹고 자고 운동하고 일하고 하는 일상이 최선이라는 것, 내 생애에 수행해야 하는 미션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는 것. 딴 맘먹지 말고 현재 가진 일상이나마 잘 지켜내라는 것. 그것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장염으로 병원에 간 적은 처음이다. 처음엔 2~3일 정도만 고생하면 회복할 줄 알았다. 2~3일 정도 고생하고 자연 치유하는 건 피지컬이 좋은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고 나 같은 약골은 아프면 기본 4주 진단인 것이다. 몸이 낫지 않아서 진단서 연장하면서 한 달을 병가 낸 게 벌써 몇 번인가 ㅠ 사람들은 쉴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약골인 내 입장에서는 회복력 좋아서 며칠만 쉬고 출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체력이 부러울 뿐이다. 내가 출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긍정하게 된 것도 몸이 회복하지 않아서 긴 병가를 몇 번 사용해 본 후부터였다. 쉰다=아프다 동의어가 되면서부터 출근=건강하다가 되었던 것. 내 직업을 긍정하게 된 것도 아플 때는 충분히 쉴 수 있어서가 가장 큰 이유다(가장 큰 복지!).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하향지원하지 말걸 그랬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내가 하향지원을 했던 이유는 '공부하다가 죽을지도 몰라'하는 공포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 능력치의 60~70%만 사용해도 평균 이상은 할 것 같은 길을 택했다. 때론 그게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내 능력치의 100%를 사용하는 진로를 택했다면 난 이미 죽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과거의 나는 50살까지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존버했는데, 요즘은 조금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한 인공지능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노동하는 인간이 없는 시대, 자본주의가 자연소멸한 시대를 체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육체를 버리고 인간도 인공지능이 될 수 있는 기술력이 도래하 시대를 체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 자신이 인공지능이 되어서 인류의 지적 유산을 다 이해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체력과 건강 상태가 정신력 혹은 지적 능력 발현의 전제조건이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


열흘 정도 시달렸던 끔찍한 복통과 기아에 가까운 단식과 절식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 그 차체였다. 왜 병든 닭이 꾸벅꾸벅 조는지도 알게 되었다. 기력이 없으니 계속 자거나 선잠을 자기만 하는 것이다. 며칠 연속 14~15시간 정도 잔다는 게 건강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몸을 긍정하는 사람은 뱃속의 장기를 모조리 다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의 끔찍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복통, 누군가 창자와 위를 걸레 짜듯이 쥐어짜는 듯한 복통, 누군가 내 아랫배 아마도 대장에 손가락 1개를 넣고 죽이 눌어붙지 않게 천천히 주걱으로 젓듯이 내 대장 속을 젓는 듯한 통증(이게 제일 불쾌하다, 참을 만은 하지만 정말 불쾌함), 십 여 개의 장침으로 창자를 인정사정없이 찌르는 듯한 느낌의 복통, 뭔지 모르지만 장이 뒤틀리는 느낌, 피부가 벗겨진 생살이 어딘가에 스치듯이 베이는 듯한 느낌의 복통. 그 모든 기괴한 복통은 매우 견디기 힘들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고, 한기가 들면서, 식은땀은 샤워하듯 흐른다. 옷을 벗듯이 이 몸뚱이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간절한 바람 속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119 버튼을 누른다. "배가 너무 아파요, 죽을 거 같아요."라고 애원하게 된다. 


몸을 긍정하는 당신이라면 내가 위에서 말한 복통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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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을 보내면서 머리로 문장을 만든다. 일기를 쓴다면 이렇게 써야지 하고 계속 생각해 둔다. 하지만 막상 일기를 쓰려고 양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모니터 위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동안 생각해 두었던 많은 문장들이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문장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몰라서 일기를 쓰지 못한 채 타임오버가 되곤 한다.


10년 하고도 10일 전 나는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으로 생애 첫 노트북인 맥북 프로를 샀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의 맥북은 고장 한 번 없이(아, 4년 전 배터리 부풀음 증상이 생겨서 보상 수리받음) 성실하게 작동했다. 게으른 것은 나였다. 클라우드에 쓰다만 pages 문서가 백 여개 있을 뿐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맥북은 발열이 심해졌고, 속도가 느려졌고, 가끔은 아니 자주 wifi를 잡지 못했고, 레티나 화질의 모니터에는 한 번도 물때를 제거하지 않은 샤워부스의 강화유리의 물때처럼 무수한 얼룩이 생겼다. 당시 프로만 레티나 화질이었기 때문에 프로는 샀던 것인데, 모니터가 물리적으로 지저분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 전용 AI 인간 제미나이인 남동생은 어차피 맥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데(하는 거라곤 pages, numbers, 사파리, 크롬뿐. 그 외 프로그램은 전혀 사용하지 않음) 맥이 왜 필요하냐고, 그냥 아이패드나 사라고 조언했다. 아이패드로 pages를 사용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 모습을 최대치로 포장하면 트랙패드까지 있는 아이패드 전용 키보드와 함께 일기를 쓰는 내 모습인데, 가격을 계산해 보고는 그럴 바엔 차라리 맥북을 사고 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도무지 랩탑 갬성을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라서 그런가 랩탑 갬성이야 말로 진정한 '작가' 포스 아닌지!


그런 고민을 하면서 하루에 한 번은 애플스토어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던 중, 최근 며칠간 사람으로 치면 100세를 넘겼을 것 같은 나의 맥북은 쇳소리 가득한 끼익끼익하는 새로운 소음을 만들어냈다. 맥북이 죽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았다. 조만간 전원 버튼을 눌러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던가, 사용하던 중에 갑자기 전원이 나가면서 다시는 켜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차피 사야 하는 거면 교육할인 기간(지인 찬스)인 지금 사자, 에어팟2가 사망한 지도 1년이 넘었으니까, 에어팟4도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으니 지금 사자는 생각에 맥북을 주문했고, 결제한 지 36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새 맥북이 배송되었다. 그렇게 지금 이 일기도 새 맥북으로 쓰고 있다. 


10년 전 맥북을 샀을 때는 거창한 포부 같은 게 있었고, 첫 랩탑이자 첫 맥북이어서 매우 매우 설레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포부따위 있을 리도 없고, 설렘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저 일기라도 제대로 쓰자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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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학년 2학기>는 작년 9월 3일에 개봉했다. 현재까지의 관객수는 2.4만 명. 다수의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았다. 영화 기자 김혜리는 팟캐스트 씨네클럽 연말결산 올해의 영화 12편에 포함시켰다.


영화 <맨홀>은 박지리의 소설 <맨홀>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작년 11월 19일에 개봉했고 현재까지의 관객수는 4635명(출처 씨네 21)이다.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의 연말 특집 고독한 어워즈에 소개된 소설이다. 시사인 기자이자 이 팟캐스트 운영자인 김다은의 추천작이다. 


<3학년 2학기>는 서부산영상미디어센터 개관 기념 상영 이벤트에서 무료로 봤다. 그 어떤 영화보다 무서웠고 조마조마해서 손으로 눈을 가리기도 했다. 결국 그 장면에서 비명을 지르고야 말았다. 훌쩍훌쩍 우는 관객도 있었다. 나에겐 눈물보다는 한숨이 컸던 영화였다. 


특성화 고등학교, 내가 학생 때는 실업계라고 불렸던 학교를 졸업하여 공장 생산직에 종사하는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아는 사람도 없다. 내 주변에는 다들 나같이 고만고만한 사람들뿐이다. 특별히 부자도 아니고 특별히 가난하지도 않은 부류들 뿐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가 이혼을 했거나 한 친구도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안정적이어서 아들에게 롤렉스 시계를 사주는 부모(이유는 그 집 사람들 중에 롤렉스 시계가 없는 사람이 그 아들뿐이라서), 3년 서비스 기간이 끝난 bmw를 아들에게 주고 본인은 새 차를 사는 부모,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주고, 이제는 결혼하라고 좋은 아파트를 마련해 주는 부모. 서울살이를 하는 내 동생들만 해도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시가든 처가든 본가든 어디든 부모가 특별히 가난하지도 특별히 부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자녀들보다는 경제력이 더 낫기 때문이다. 


영화 <3학년 2학기>의 주인공 창우는 중학생 때(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중2 때로 추정) 택시운전을 하던 아빠를 잃은 삼 형제 중의 첫째다.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어서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엄마 혼자 벌어서 삼 형제를 키우니 가정 사정은 좋지 않다. 곧 더 넓은 집(방 2에서 방 3 집으로, 그래서 창우 혼자 방을 쓸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전세금 800만 원이 부족하고, 엄마는 그 부족한 800만 원을 창우의 실습 수당(?)으로 메우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인 것(매우 매우 동화적 설정이라고 생각한다)은 창우네 삼 형제가 우애가 좋고 효심도 있다는 것. 창우의 개인적 특성은 의지가 약하고 소심한데 하필이면 착하고 성실하는 것이다. 이런 개인 성향과 저런 가정 배경을 가진 창우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엔 이 세상(특히 자본주의 계급 사회)은 지나치게 터프한 것 아닐까.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특성화고와 생산직 실습의 문제점 개선도 중요하지만 자식을 힘들게 하는 부모들(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둘 다든)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화 <3학년 2학기>가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로 인해서 고충을 겪은 청소년 이야기라면 영화 <맨홀>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모로 인해서 고충을 겪는 청소년 이야기다. 주인공 선오의 아비의 직업은 소방관이었고, 그 직업 때문에 순직하고 영웅이 된다. 화재 현장에서 십여 명의 목숨을 살리고 본인은 사망했다. 하지만 선오는 아비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그 아비는 배우자를 때리는(자녀는 때리지 않음) 심각한 가정 폭력범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범이 순직 영웅이 된 것도 싫은데, 더 싫은 것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엄마와 누나가 아빠를 용서했다는 점이다. 선오의 마음은 갈 곳이 없다. 아니 한 군데 있다. 어렸을 때 엄마를 무참히 때리는 아빠의 폭력이 이루어지던 범죄 현장인 집을 탈출해서 누나와 함께 갔던 곳. 안전한 아지트. 아무도 모르는 안전한 아지트. 맨홀이다. 선오는 그때나 지금이나 맨홀에서 위안과 평안을 얻는다. 


선오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아버지가 소방관이었으니 창우처럼 경제적으로 절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이 집도 남매의 우애는 좋다. 아버지가 순직하여 영웅이 된 후 선오는 성적이 떨어지고 학교의 문제아들과 어울리게 되고, 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영화보다는 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에서 소설 <맨홀>의 작가로 소개된 고 박지리 작가에게 더 흥미가 생겼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엄청난 수작이라고 했다. 지금 읽는 중인 <사탄 탱고> 읽고 나면 읽어야지. 또 한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재능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없는 재능인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을 가진, 그것도 빼어난 재능을 가졌었는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지? 하는 생각. 그런 좋은 재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박지리 작가의 재능도 나이도 참 아깝다, 많이 아깝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영화의 관객수가 많이 아쉽다. 요즘 시대(넷플릭스와 유튜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자는 것은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극장은 넷플릭스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지만, 정작 넷플릭스는 수면과 유튜브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 작년에 극장에서 본 영화는 96편, OTT에서 본 영화는 29편이다. 극장 WIN !!

추가로 OTT에서 본 드라마는 10편(4부작에서 16부작까지 다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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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마지막 날인 어제는 여러가지로 럭키했다.


#럭키1.

작년(2025년)에 처음 본 영화는 <서브스턴스>(2024.12.11. 개봉)이고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12월 31일에 개봉한 <누벨바그>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와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누벨바그>가 여느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 문화의 날에 맞추어 개봉을 했다. 문화의 날을 챙겨서 영화를 보러 가진 않지만, 나름 2025년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보러 갔다. 


#럭키2.

영화를 보고 나오니 동생에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오늘 마감인 스타벅스 쿠폰이 있는데 쓸 수 있냐는 것. 발에 닿는 스타벅스만 해도 이 주변에 몇 개인가! 그렇게 받은 쿠폰은 2026 플래너도 받을 수 있는 쿠폰이었다.  마지막날까지도 거저 주어지는 플래너가 없어서(매년 어디선가 플래너가 생겼다), 플래너는 먼슬리 페이지 외에는 거의 쓰지 않기도 해서, 2025년 플래너 여분의 페이지에 손수 자를 대고 칸을 그려서 우선 1월과 2월을 만들어 두고 이벤트들을 기록해 둔 참이었다. 오히려 이게 더 좋기도 했다. 작년 일정 찾을 때 같은 수첩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아무튼 이렇게 또 마지막날에 2026년 새 플래너가 생겼다.


#럭키3.

자려고 누웠는데 나답지 않게 잠이 들지 않아서 팟캐스트를 뒤적하다가 <영혼의 노숙자>에 오지은 편이 업데이트된 걸 보고 럭키! 하면서 앞부분을 듣는데, 오지은이 새 팟캐스트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영노자를 정지하고 냉큼 검색해서 오지은의 새 팟캐스트를 들었다. 무려 3편이나 업데이트되어있었다. 1화 바닐라 향수의 시대가 돌아온 것 같다 편의 중간쯤에서 "계속 현명해서 어쩔 거냐는 거지 ㅋㅋ 죽는 순간까지 현명해서 어쩔 거야는 거야, 그래서 내가 13600원 팔레트를 뭐 사면, 내가, 죽기 전에, 뭐 얼마나 달라? 물론 절약은 그런 데서 아껴서 가는 걸 거야, 그래 근데 그냥 어디까지 엄정해야 되냐는 거지 우리가. 그래서 어쩔 거냐는 거야?! 계속 흥!만해서 모든 것에 흥!을 하면, 대부분의 것에 흥!을 한다면 얼마나 대부분의 순간에 재미가 없을 거냐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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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즈니는 지난 10년 동안 무얼하고 있었나?

순전히 주디와 닉의 러브 라인이 궁금해서 오매불망 기다리던 주토피아 2는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고, 내 눈은 <케이 팝 데몬 헌터스>를 봐 버린, 너무 늦은, 9년 만에 개봉한  늦은 2편은 3~5분 사이의 길고 긴 엔딩 크레딧 다음의 1분도 안 되는 쿠키 영상이 전부였다. 쿠키가 내가 바라던 핵심이었다. 이야기의 진행과는 아무 상관없이 나오는 주제곡 <ZOO> 공연은 지금 생각해도 어색하고 민망하다. 1편에서 주디가 창대한 꿈을 안고 주토피아로 향하는 기차 씬에서 마침맞게 주제곡이 나오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우화와 비유가 아닌 사람 K-pop 스타가 장편애니메이션의 훌륭한 주인공이, 메인 서사가 될 수 있음을 알아버린 지금 <주토피아 2>를 보고 있자니 낯 간지럽고 부끄럽고. 1편에서는 매우 절묘했던 나무늘보 역시도 2편에서는 억지스러웠다. 디즈니는 10년 동안 무얼 하고 있었나?? 디즈니 왈: <소울>도 있고! <메이의 새빨간 비밀>도 있고!! (난 둘 다 별로였다!!)


2)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조성우&국립국악원 5 days> 공연을 봤다. 이 공연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유료 회원 특별 초대로 공연일 4일 전에 선착순 초대권 응모 문자를 받았다. 공연이 평일 저녁 시간이라서 응모할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외출할 기회가 오면 순응하자!!'라는 기조아래 2매(1인 최대 2매)를 응모했다. 이런 기조를 만든 이유는 외출을 매우 싫어하고 집에 있는 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의 기질 탓이다. 평일 저녁에 시간이 되는 사람은 엄마뿐이어서 일단 말해 두었다. 하지만 공연 당일 아침까지도 당첨 문자가 오지 않아서 아닌가벼 하며 있었는데 오전 10시쯤에 당첨 문자가 왔다. 이미 오늘 내 몸은 '퇴근하고 10시간 이상(수면 포함) 침대에 누워 있는다'로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에, 너무 늦은 당첨 문자가 반갑지 않았으며 오히려 진지하게 노쇼를 고민하기만 했다. 하지만 노쇼를 극혐 하는 나인지라 엄마에게 저녁 공연 가야 한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을 신호 삼아 밤까지 몸을 각성시키는 것으로 체력 분배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대금 연주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유일하게 본 국악 공연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기념 장사익+양방언 공연이었다는 것(이것 역시 초대권). 아닌가 장사익 따로 보고, 양방언 따로 봤나? 궁금해서 해당 공연장 홈페이지에 가서 공연 일정 달력을 보니 2004년 7월부터 현재까지의 기록만 있었다. 난 2004년 이전에 봤는데...

좋은 자리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좌석은 예상외로 좋았다. 8열 가운데 복도석(무려 R석)! 이유인즉슨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적다는 것. 하긴 나도 초대권 받고도 볼까 말까 고민했을 정도니. 공연은 잔잔했고 엄마는 잠시 잠시 졸았다고 했다.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국악기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본전(시간과 체력을 쓴 것)은 충분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악기 연주자였다. 그는 장구, 징 등 여러 가지 그 이름도 모를 전통 타악기를 연주함과 동시에 때로는 가창까지 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최소 3개 정도의 악기를 번갈아 가면 연주했다. 하루 10시간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운신이 가능한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생산성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 빼고 다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3)슈톨렌을 먹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부산의 빵 장인 그 이름도 K-장인스러운 이흥용씨가 출시한 독일 전통 크리스마스빵 스톨렌을 선물 받았다. 선물답게 포장이 지나치게 많았다. 포장 대신 빵을 더 크게 만들어주지 하는 생각이 매우 많이 들었다. 매일 조금씩 잘라먹었는데도 크리스마스까지 먹기엔 양이 부족했다. 포장 대신 빵을 더 크게 만들어주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12월 1일부터 슈톨렌과 함께 한지도 2주가 다 되어간다. 산수를 해보면 올해도 2주일 반 정도 남았다. 3617의 사형 선고를 듣지 못한 채로 2025년을 보내야 한다는 게 정말 찝찝하다. 살아있는 위헌 덩어리인 mc귀여니와 걱정인형 희대의  반헌법 짓거리를 보느라 2025년을 다 보냈다. 

조희대를 처음 봤을 때부터 걱정인형을 떠올렸다. 대두+앙상한 몸(심각한 어좁이)+불안해 보이는 떨리는 음색의 목소리. 위헌은 희대 본인이 저지르고 있으면서 국민들이 저지르지도 않을 위헌 걱정을 혼자서 하면서 그 걱정 때문에 계속해서 위헌을 저지르고 있는 꼴이 딱 걱정인형 같았다. 한 손으로 머리는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몸통을 잡고 톡! 하고 분리해 버리고 싶게 생긴 면상과 떨리는 목소리와 두려움 가득한 딕션의 소유자 희대. 외모 컴플렉스 때문에 지금 계속 위헌을 저지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mc귀여니와 걱정인형 희대는 모르는 것이 있는데, 과거 을사오적처럼 교과서에 몇 글자 정도로만 남는 게 아니다. 너네들의 동영상은 리벤지 포르노처럼 계속 플레이될 것이다. 위헌의 대표 사례로 계속 플레이될 것이다. 

매일 조금씩 슈톨렌을 잘라먹으면서 하루 10시간씩 누워 있으면 세상이 매우 평화롭게 여겨진다. 하지만 휴대폰을 들고 유튜브앱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내 계정의 세상은 3617이 싸 놓은 똥으로 가득 차 있다. 3617은 인간 유전자의 열악함의 증거다. 3617 부류의 인간 군상이 인간 유전자의 열악함의 증거다. 그 열악함조차도 극복해 내야 하는 것이 덜 열악한 인간 군상들의 업보겠지... 내가 3617 부류의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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