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홍명희문학제가 2008년10월11일 토요일 오후에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되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행사 주최측인 사계절출판사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홍명희문학제가 우리 부부에게는 처음 참석하는 행사이지만 벌써 13회라 하니 어느 정도 자리잡은 행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들른 예술의 전당 한 켠 전시장에서는 충북 근·현대 작고 예술인 특별전이라는 행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정지용, 조명희, 이무영, 권태응, 오장환 등 충북 출신의 문학인과 김복진, 윤형근, 김사달, 박팔괘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작고한 충북 출신 예술인들의 삶과 흔적, 작품 세계를 전시한 것인데 과연 '예술의 달', '예술과 문화의 고장'다운 행사라 생각되었습니다.



벽초의 생애와 문학을 공부하는 자리인 만큼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면 무척 따분할 수 밖에 없는 자리일 것입니다.
한국작가회의 최일남 선생님께서 대회사를 하시고,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장 김승환 선생님께서 환영사를 하는 그 짧은 순간부터 졸음이 밀려오더군요.

강영주 선생님의 사인을 받고 싶었던 '벽초 홍명희 평전'을 만지작거리며 학술 시간을 맞이했지만 결국 기회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 학술 발표시간, 강영주 선생님께서 배포한 '통일시대 겨레의 고전 임꺽정'이란 글과 무관하게 따로 준비하신 슬라이드는 벽초의 생애와 임꺽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근거로 임꺽정은 양주의 백정 출신이라고만 알려졌을 뿐인데 벽초의 뛰어난 상상력이 소설 임꺽정을 통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가치있는 허구의 소산이었노라며 명종실록 속의 임꺽정을 말씀하시는 동안에는 자꾸 눈꺼플이 내려갔습니다. 저 스스로는 졸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일정한 음높이의 차분한 말씀이 고개를 끄덕끄덕(졸려서) 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손가락을 꼬집어 가면서 견디고 견뎠습니다만 앞쪽 측면 객석에 앉은 학생 하나가 몸이 15도 기울어 졸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용기를 얻었답니다. 발표를 하시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객석의 이러한 태도들이 불쾌하실 수 있겠지만 식후의 생리적 현상인데다, 졸림 속에서도 한 마디 한 마디 건져내서 밑줄도 그어 가며 경청했다는 점을 이유로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건축과 김봉렬 선생님이 임꺽정 속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신 것은 전날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 흥미로운 작품 임꺽정을 읽으면서 건축을 묘사한 부분과 그 의미를 찾아 떠나는 한 건축가의 독서는 참 집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먼저 말씀하신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저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던 빅토르 위고의 장편 소설인데, 파리의 세느강을 한복판 시테섬에 자리한 노트르담 성당의 묘사는 제가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 읽기 싫을 정도로 지루했던 묘사가 오히려 매력입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다시 읽었을 때는 바로 그 건축물에 대한 묘사 장면이 가장 압권이었으니 말입니다. 김봉렬 선생님께서 바로 그 작품을 언급하셨을 때, 벽초의 임꺽정이 그것과 비교할만한 영역은 없겠다 싶어 걱정이었는데 역시나 그러한 시작이 강단의 학자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이겠지요. 임꺽정 속에는 기생 소흥이의 동네를 묘사한 장면이나 어느 정도 건축적 매력이 있을 뿐 소설 속 배경이 되는 16세기의  건축적 배경은 존재하지 않고, 벽초가 어린시절을 보낸 19세기말과 20세기초 조선의 건축물 정도가 가볍게 소개되며 보다 깊이 있는 건축과 관련된 글은 다른 역사적 사료들을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의 강좌였습니다. 졸리운 상태에서도 그 강의에 어느정도 집중하고 있었던 저는 시간 관계상 대충 건너 뛰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답니다. 다들 흥미가 없으셨는지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반가우셨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건축학자의 눈에는 그렇게 아쉬움의 발견을 폭로하는 시간이었고, 객석에서는 다들 침묵과 몽롱한 반응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이러한 색다른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매우 찬사를 보낼만 했습니다. 작품을 음악적으로 분석하고, 회화적으로 분석하고, 지질학적으로 분석하고,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건축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홍명희문학제는 다른 우리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참으로 배울점이 많은 의미있는 전통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1992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해마다 순환하는 제17회 한국작가대회와 함께 열렸으므로 전국의 수많은 문인들께서 자리를 제대로 빛내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잘 알려진 소설가나 시인밖에 모르는 것이 일반인으로서 문학에 대한 앎의 척도일까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잘 모를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문인인 도종환 선생님께서도 졸렸다는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께서 2008년판 임꺽정 출판기념회를 간소하게 진행하셨고, 저작권과 관계된 배경 소식을 소개하셨으며, 김태희 팀장께서 홍명희 선생님 캐릭터 앞에 새로운 개정판 책을 한 질 올리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그 책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낭독회...



충북작가회의 관계자 분의 진행으로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과 한창훈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좌담 형식으로 임꺽정 낭독회 자리를 가졌었습니다. 소설가로서 두 선생님이 읽은 소설 임꺽정의 감동과 매력에 관한 즐겁고 편안한 대화의 자리였지요.

최근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에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올라 내심 많은 판매부수를 기대하셨지만 얼마 팔리지 않더라고 여유로운 미소로 푸념 하시던 현기영 선생님. 현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광주항쟁을 겪은 80년의 겨울에 처음 이 작품을 접했고, 토속어를 공부하는 와중에 특히 중국이나 서양의 영향에서 독립적인 우리 민족의 민중사회사 작품으로써 임꺽정의 매력을 말씀 하셨습니다. 특히,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라는 속담의 등장에 주목해 하시며 임꺽정 제7권의 9쪽 8행에서 10쪽 1행까지, 10쪽21행부터 11쪽 6행까지를 짧게 낭독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기억할만한 현 선생님의 단편 소설 '소드방 놀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필 가장 재미없는 '양반편'으로 임꺽정에 입문하셨다는 한창훈 선생님. 여수 출신답게 전라도 사투리로 꾸밈없이 말씀하시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셨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봤던 한 선생님의 단편 '아버지와 아들'은 생전에 어부이셨던 장인 어른과 처남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그 꾸밈없는 전라도 방언이 무식한 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곽오주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노라고 표현하실 때에 객석의 모든 이들이 졸음을 한 방에 날리며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현기영 선생님께서도 맞장구를 치시며 박재동 화백이 그린 곽오주 캐릭터를 가리키시며 곽오주가 들고 있는 쇠도리깨 그림은 진정한 쇠도리깨 그림이 아니라고 지적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창훈 선생님이 낭독하신 부분은 제5권 의형제편 150쪽 9행부터 152쪽 7행까지였는데, 본인도 낭독후에는 생각보다 별로 재미없는 부분을 발췌하신 것 같다고 머쓱해 하셨습니다.

나중에 현기영 선생님께서 당신의 작품 '순이 삼촌'에 수급불유월(水急不流月)이라는 명문장으로 우리 부부에게 사인을 해주셨는데 아주 행복합니다. 물이 너무 급하게 흐르면 그 위에 비친 달을 담을 수 없다는...


마지막으로 행사장을 빛낸 퓨전 판소리 '부부가'의 두 장면을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첫번째 동영상은 가출한 아내를 그리워 하면서도 집안에서 퇴폐업소 라이타를 발견하여 마누라의 바람을 의심하는 남편의 판소리가 아주 익살스럽고 정겹습니다. 바로 이 남편 역에 소리꾼 서화석 선생님, 고수로는 입담 좋은 김철준 선생님이십니다. 
 

 
자리가 좋아 끝까지 촬영하려 하였으나 바로 앞 빈자리를 찾아 들어 오는 누군가에 의해 당황하여 촬영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자리 등장인물... 알고보니 한창훈 선생님이셨답니다. 앞선 낭독회 마치시고 객석으로 들어 오시던 길이었는데, 거두이십니다. ^^;

그리고, 이 멋진 공연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한창훈 선생님 머리를 열심히 피해가며 촬영한 것이 다음 동영상입니다.
 
 

처음에 뭔가 쪽지를 읽는데, 그것은 소리꾼 부부가 객석에서 아무나 몇 사람을 붙잡고 부부싸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즉석해서 현장 메모한 것들을 읽는 장면이랍니다. 극중에 남편 본명은 남편남(서화석), 아내의 본명은 마노라(조애란)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한 다음 아내는 친정집에 가 있고, 남편은 엉뚱한 곳에서 아내를 찾아 헤매다가 만나게 된 두 부부는 어떻게 화해를 할까요? 아니면 진짜 갈라설까요??

고수인 김철준 선생님과 아내역의 조애란 선생님은 실제 부부라고 합니다. 확인은 못했지만 고수 말씀이...
첨부한 동영상이 꽤 길지만 사실 전체 공연은 훨씬 길고요. 촬영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더욱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 공연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객석에 앉아 보고 싶은 신나는 판소리 공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도 혹시 이 공연 소식을 듣게 되시면 부부가 함께 손잡고 관람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1박2일 행사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채 김애경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해 일찍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야했던 우리에게 혹시 따로 데이트 하려고 그러시냐는 강맑실 대표님의 다정한 시선은 그 순간만큼 예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서울 집에 도착한 김애경의 컨디션은 아주 좋아졌답니다.
비록 실내 행사밖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든 행사도 의미있고 무탈하게 끝났기를 기원하며 제 추억의 기록은 이렇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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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8-10-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꼭 한번 보고싶네요. 우리 부부가 손잡고 보러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하하하

동탄남자 2008-10-13 10:13   좋아요 0 | URL
주로 충청권에서 활동하는 것 같은데, 기회가 되신다면 저 독창적인 판소리... 아주 괜찮습니다. 손 안잡고 따로 입장하시더라도 손잡고 퇴장 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하필 가장 재미없는 부분만 촬영해서... ^^;;
 

한글날 기념 보너스 링크 걸어봅니다.


1. 네이버 나눔명조체, 나눔고딕체



2. 다음 전용서체 다운로드




3. 서울한강체, 서울남산체 설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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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10-1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늘 무료 폰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찾기가 막막했었는데...감사합니다. :]
 
인생이란...

국민 배우 최진실(40)씨가 우리 곁을 떠났다. 지난 20년간 TV 브라운관에서 울고 웃으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많은 사람이 큰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고민과 모방 자살이 잇따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엇갈리는 교차로에 우리는 서 있다. 이 시점에 김지하(67·사진) 시인을 만나기로 한 것은 그가 줄기차게 펼쳐온 ‘생명사상’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1991년 5월 ‘분신 정국’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에서 “젊은 벗들! 지금 곧 죽음의 찬미를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자살 문화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고 청한 끝에 김 시인과 어렵게 자리를 함께했다. 강한 개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였지만 세월의 탓인지 이젠 표정도 누그러지고, 목소리도 나지막해진 느낌이었다. 최진실씨의 죽음부터 물었다.

-최씨의 자살로 충격이 크다.
“안재환씨도 그렇지만 연예인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이다. 주가 변동처럼 쉴 새 없이 출렁거리는 인기도에 따라 방송국에서 콜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된다. 세상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씨처럼 명성이 자자한 탤런트가 자신이 사채업과 관련돼 있다는 식의 소문을 접하고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 시인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쳤다. 하지만 뒤이은 그의 말은 단호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씨가 남긴 아이들을 생각하면 무책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제 목숨이라고 해서 자기 것만은 아니다. 가족은 물론 사회와 상호 연관돼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배신하고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 아닐까.|
“우울증, 생활고, 기질적 유약성, 사건의 충격, 가족이나 친구의 배신…우리는 자꾸 이런 것들에서 자살 원인을 찾는다. 이른바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들 얘기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저런 원인에 있는 게 아니다. 작은 병리를 가지고 자살의 원인을 판단하는 자체가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기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있는 자살은 없다.”

-자살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다.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모방이 우려되고 있는데.
“모든 형태의 자살은 동기가 무엇이든, 자살하기 전부터 이미 자신을 죽인 상태다. 거기에 명분이나 이유 하나만 걸어 주면 그대로 죽음으로 향한다. 사회가 ‘너의 죽음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줘선 안 된다. 단호해야 한다. 한 해에 몇 명 자살한다고 발표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자살을 보편적 현상으로 여기게 된다. 내가 죽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하고…절망의 에코(메아리)다.”

김 시인이 자신의 자살 기도 사실에 관해 입을 뗀 것은 그때였다. “스물 한두 살 때 대학 다니던 무렵”이라고 했다.
“살기가 어렵고, 세계가 정확히 이해가 안 되고, 그 세계에서 내 자리가 정확하지 않았다. 첫사랑도 일찌감치 실패했다. 도무지 나 자신을 인정할 근거가 없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불면의 밤이 이어지면서 자살 충동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세 번 자살을 기도했다. 죽음 직전까지 가 봤다.”

그는 어떻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2008년 10월 5일(일) 2:49 [중앙일보] 권석천·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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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한 사람들

사계절출판사가 준비한 임꺽정 3부작 강연회의 마지막은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인 김훈 선생님의 몫이었다.
첫번째 강연을 맡은 이덕일 선생님이 조선조 사회의 포괄적인 분석으로 임꺽정의 활동 배경을 사실에 입각하여 설명 하셨다면, 두번째 강연은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임꺽정 시대를 향한 부러움과 즐거움을 찾아가는 독서 여행 시간이었고, 김훈 선생님은 후배 작가의 관점에서 벽초가 일궈놓은 매력적인 문장의 발견에 초점이 맞춰진 강연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김훈 선생님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행동을 벽초의 소설 '임꺽정'에서 읽었다는 말씀으로 강연을 시작하셨다.
1928년11월21일, 조선일보에 이 소설을 처음 연재하면서 조선의 정조(sentiment, 情操)를 쓰겠다고 다짐했던 벽초의 맹세는 독자 김훈의 관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노라는 평을 받을 수 있었으며,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이 러시아의 자랑이듯이 조선에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있었노라고 매우 뿌듯함을 강조하셨다.



나는 올해 초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간된 제4판 '임꺽정'의 부록 '조선의 임꺽정 다시 날다'라는 책을 통해 칠장사에 관한 김훈 선생님의 이야기가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그 글과 관련된 강의 자료를 전혀 없을만큼 새롭게 준비한 김훈 선생님이 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2008년 10월4일 상상마당에서 내가 들은 김훈 선생님께서 매력을 느낀 소설 속의 몇 장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봉단편

1. 이교리가 배 고파서 똥을 먹는 장면 (제1권 53~54쪽) : 이 장면에서 마치 일식(日蝕)하는 날처럼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일만큼 배가 고픈 인간이 물컹한 똥을 손에 잡고 밥이라고 착각했다가, 똥임을 알고 실망했다가도 똥이라도 다시 돌아서서 그 속에 채 삭지 않은 보리알갱이를 씻어 먹은 후, 그나마 먹고나니 눈에 보이는 물건이 똑똑해지더라던 묘사. 물을 마신 까닭에 목은 타지 아니하나 오장이 당기기는 일반이라는 표현

2.주팔이가 글짓는 대목 (제1권 199~200쪽) : 글쟁이도 아닌 주팔이가 정작 글은 쓰지 못하고 개미를 관찰하는 장면을 보면 '개미들은 혹 혼자 따로 떨어져서 앞발로 수염을 닦달하는 놈도 있고 혹 오다가 다시 서로 만나서 수염으로 인사하는 놈도 있고 그 외에 양기를 받아서 기운을 내려는듯이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놈이 많았다.'는 문장이 있다. 벽초의 관찰력이 얼마나 세밀한가를 알게하는 문장이다.


피장편

1. 꺽정이와 운총이, 천왕동이가 표범을 잡는 대목 (제2권 356쪽) : 표범의 공격자세에 관한 정교한 묘사로  '몸을 훌훌 털고 앞 뒷발을 버티고 허리를 잘록하게 들어가도록 기지개를 켜고 그리하고 어슬렁어슬렁 등성이를 타고 내려간다.'는 표현이 매력적인데, 그 뒤에 펼쳐지는 표범의 공격으로 위험한 순간에 꺽정이 단칼에 표범의 목덜미를 자르는 기지를 보인다. 그러나 운총이는 칼에 베이는 바람에 표범 가죽이 많이 상한 것을 두고 가장 여자답게 말한다. "저 털가죽은 좁쌀 한 말에도 못 바꾸겠다."고... 김훈 선생님은 이 대사를 가장 여성적인 특징을 드러낸 명문장이라며 웃으셨다. 기타 그 순간에 이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티없이 자라나는 도둑 청소년들의 밝은 모습'이라는 꽤나 우스꽝스럽다 못해 매력적인 표현을 쓰셨다.

2.꺽정이와 운총이의 사랑 (제2권 369~370쪽) : '맑은 눈 속에 박혀 있는 이쁘장스러운 눈동자에 천왕의 모양이 비치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이 사랑스럽고도 거룩한 눈동자는 온세상을 다 뒤져야 또다시 보기 어려우리라고 꺽정이는 생각하였다.'는 표현 뒤에 몇 마디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운총이 번쩍 들어 숲속으로 들어가는 꺽정이의 뒷모습은 상당히 매력저이다.


양반편

1. 흉년 묘사 (제3권 81~82쪽) : '사람은 고사하고 까막까치까지도 먹을 것이 없어서 인분이나마 먹어보려고 뒷간에 와서 기웃거린즉 인분까지 없어서 뒷간이 비었다는 말이니 이 말이 거의 사실이나 다름 없었다.'는 표현을 읽노라면 가난한 백성들이 도적질이나 거지짓을 아니할 수 없는 불가피한 비참함이 묻어 난다.

2.세도가 윤원형에 대한 아첨 (제3권 168쪽) : '대체 말이나 개의 주인 위하는 충성은 일호 거짓이 없지마는 사람으로서 말 노릇 개 노릇 하는 것은 충성이 곧 거짓이라 말이나 개만 못한 거짓 충성이 주인의 눈 밖에 나서 좋지 못하게 신세를 마치는 것은 첩경 쉬운 일이다.'는 문장이 있다. 아첨도 진실성 있게 보여야 하는 기술이 필요하여, 그 아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가 오히려 신세 망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임꺽정 시대에 백성들은 굶주리는 그 아픈 상황에서도 윤원형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표현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의형제편

1. 박유복이 아버지 원수를 갚고 어머니 무덤에 고하는 장면 (제4권 139~140쪽) :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유복자 유복이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원수인 노첨지를 찾아가자, 노첨지는 유복이를 유복이 아버지로 착각하고, 혼비백산한다. 아버지를 닮았을 유복니가 그렇게 노첨지의 목을 자르는 장면은 일면 잔인하지만 그 시대의 정조 중에 하나라는 것이 학자들의 표현이다. 노첨지의 목을 베어 가져가려는데 피가 넘쳐나서 부엌의 재로 지혈을 해보려지만 그 마저도 실패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만큼 리얼하다.  유복이가 결국 그 목을 가져와서 어머니 무덤 앞에 통곡하는 장면은  '소나무를 흔들어 물 소리를 지어내던 새벽바람도 그치고 죽은 사람의 대가리를 보고 날아와서 근처 나무에 앉은 까마귀들도 짖지 아니하고 유복이의 울음소리만 온 산에 가득하였다.'는 표현으로 더욱 더 뭉클하게 다가 온다.

2. 임꺽정의 관상보는 장면 (제6권 249쪽) : "저렇게 극히 귀하구 극히 천한 상은 나는 처음 보우." 상쟁이가 꺽정를 보고 한 말이다.


화적편

1. 꺽정이의 성격 묘사 (제7권 29~30쪽) : '사람의 머리 베기를 무 밑동 도리듯 하면서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차마 그대로 보지를 못하고 논밭에 선 곡식을 예사로 짓밟으면서 수채에 나가는 밥풀 한 낱을 아끼고 반죽이 눅을 때는 홍제원 인절미 같기도 하고 조급증이 날 때는 가랑잎에 불붙는 것 같기도 하였다.'는 표현은 임꺽정이 얼마나 모순덩어리의 성격을 가졌는지 알게 한다. 김훈 선생님은 이 문장을 읽으며 '살아 있는 생명 속에서 매우 발랄하게 작동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평을 하셨다.

2, 청석골 졸개들 점고 장면 (제7권 379~380쪽) : 당시 생활 밀착형 이름을 통해 작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다. 김훈 선생님은 정조임금 시대의 기록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빗대며 이 이름의 진실성을 역설하셨다. 이 점고 순간에 그 이름들은 허노미, 이노미, 개똥이, 작은쇠, 덜렁쇠,존이, 출이, 녹이, 복이, 동이, 삽살개미치, 자릅개동, 광노, 양필, 맹효, 강아지, 도야지, 부엌개, 마당개, 쥐불이, 말불이, 쇠미치, 말미치 등이 있다.

3. 단천령이 청석골 임꺽정패 앞에서 피리를 부는 장면 (제9권 124~125쪽) : '단천령이 우조를 다 불고 뒤를 돌아보다가 여러 사람 거동을 보고 적이 웃으면서 피리를 다시 불었다. 곡조가 달랐다. 이번 곡조는 처량하였다. 장구치던 기생이 계면조를 모를리 없건만 장구채를 꽂아놓고 가만히 앉았으므로 소홍이가 장구를 끌어다가 끼고 나서서 피리를 따라 장단을 쳤다.' 이 표현에서 김훈 선생님은 단순하게 넘어가지 않으셨다. 우조란 소리의 뼈를 가지런히 추리는 소리로 주어+동사의 느낌이자 글쓰기로 빗대자면 곧 김훈 선생님의 스타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소리의 살을 추리는 것이 계면조라 할 수 있는데, 문장에서는 형용사와 부사가 붙은 것으로 서편제와 같은 장르로 이해하기를 주문하셨다. 만약 심청전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입수가(계면조)를 우조로 부른다면 돈없는 이유로 죽어야만 하는 심청이의 비장함이 느껴질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다. 

강연이 끝나고, 당신의 소설 '칼의 노래'에 나온 맨 처음 문장을 예로 들어 우조와 계면조의 글쓰기 특징을 말씀하신 장면을 마침 동영상으로 촬영하였기에 기록해 본다.

http://video.mgoon.com/1716586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우조: 사실을 냉혹하게 서술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계면조: 관찰자의 주관이 들어간 시선
버려진 섬마다 꽃(도) 피었다. 뽕짝의 느낌이 나는 트로트 같은 글...


많은 어른들이 말씀하시듯 김훈 선생님 또한 자모산성 이야기가 미완으로 끝난 것을 아쉬워 하셨다. 임꺽정과 더불어 실존 인물이었던 서림이가 역사적인 기록에는 조직을 배신하고 스스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말씀 하시며 과연 홍명희 선생님은 자모산성편에서 서림이를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앞으로 당신의 글쓰기도 가능하다면 "앞으로 나는 벽초 홍명희 스타일의 이런 문장을 쓰고 싶다."고 말씀 하셨다.

임꺽정의 문장은 이야기를 나르고, 이야기는 문장을 끌고 가는 형식이다. 모든 문장들은 예외없이 이야기를 향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장은 이야기를 떠받치고 이야기를 실어 나르지만, 그 문장은 이야기가 추구하려는 거대한 담론의 틀 안에서 매몰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음을 강조하신 김훈 선생님의 매우 겸손하게 자신은 도무지 흉내낼 수 없는 경지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그 감동을 우리 평범한 독자들에게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고, 강연은 어느 정도 의도한대로 진행되었다고 본다.

충청도 노론 집안의 아들이 천한 이들의 삶을 어찌 그렇게 잘 알 수 있었는지 경의를 표하면서, 요새 젊은이들에게 쉽게 읽히기 힘들 수도 있는 문장일지도 모르지만, 태백산맥을 통해 전혀 모르던 전라도 사투리를 익히게 된 당신의 경험을 예로 요새의 젊은이들도 임꺽정을 읽다보면 익숙해질 것이며 아름다운 모국어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소설가로서 김훈 선생님은 충무공의 난중일기와 일연의 삼국유사와 더불어 홍명희의 임꺽정을 결코 손에서 떼놓을 수 없는 책이라 말씀하시며 강연을 마쳤다.

P.S.
강연 뒤에 이어진 질문은 김훈 선생님의 명성에 걸맞게 벽초와 임꺽정에 관한 질문 보다도 주로 김훈 선생님 작품에 대한 것이 주류를 이뤘다.

지난 강좌
1.고미숙과 임꺽정의 까르페디엠! http://blog.aladin.co.kr/corelk/2324811
2.이덕일과 벽초 홍명희, 임꺽정  http://blog.aladin.co.kr/corelk/231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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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08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 뒤편 저자의 글에 보면 그동안 난중일기 번역본이 완역이 아니었다고 지적한 것이 생각나는군요.이순신은 전쟁 중 첩을 불러들여 동침한 일까지 일기에 썼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짧은 글


10월입니다. 신영복 서화로 만든 제 탁상달력 10월에는 이 글이 있습니다.
엽락분본(葉落糞本), 잎은 떨어져 뿌리의 거름이 됩니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겠지...'
이 것은 안이한 답습의 언어이며 결코 희망의 언어가 아닙니다.
희망은 추운 겨울동안에 새봄을 경작하는 것이며 그것 역시 나목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나목은 엽락분본(葉落糞本), 곧 잎사귀를 떨구어 그것으로 뿌리를 거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희망을 경작하는 일은 불필요한 허식과 낭비를 걷어내고 우리 사회의 구조를 직시하되,
낙엽으로 뿌리를 거름하는 이른바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歸本)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신영복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하나를 덧붙여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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