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홍명희문학제가 2008년10월11일 토요일 오후에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개막되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행사 주최측인 사계절출판사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홍명희문학제가 우리 부부에게는 처음 참석하는 행사이지만 벌써 13회라 하니 어느 정도 자리잡은 행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들른 예술의 전당 한 켠 전시장에서는 충북 근·현대 작고 예술인 특별전이라는 행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벽초 홍명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정지용, 조명희, 이무영, 권태응, 오장환 등 충북 출신의 문학인과 김복진, 윤형근, 김사달, 박팔괘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작고한 충북 출신 예술인들의 삶과 흔적, 작품 세계를 전시한 것인데 과연 '예술의 달', '예술과 문화의 고장'다운 행사라 생각되었습니다.



벽초의 생애와 문학을 공부하는 자리인 만큼 직접적인 관심사가 아니라면 무척 따분할 수 밖에 없는 자리일 것입니다.
한국작가회의 최일남 선생님께서 대회사를 하시고, 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장 김승환 선생님께서 환영사를 하는 그 짧은 순간부터 졸음이 밀려오더군요.

강영주 선생님의 사인을 받고 싶었던 '벽초 홍명희 평전'을 만지작거리며 학술 시간을 맞이했지만 결국 기회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첫번째 학술 발표시간, 강영주 선생님께서 배포한 '통일시대 겨레의 고전 임꺽정'이란 글과 무관하게 따로 준비하신 슬라이드는 벽초의 생애와 임꺽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근거로 임꺽정은 양주의 백정 출신이라고만 알려졌을 뿐인데 벽초의 뛰어난 상상력이 소설 임꺽정을 통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가치있는 허구의 소산이었노라며 명종실록 속의 임꺽정을 말씀하시는 동안에는 자꾸 눈꺼플이 내려갔습니다. 저 스스로는 졸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일정한 음높이의 차분한 말씀이 고개를 끄덕끄덕(졸려서) 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손가락을 꼬집어 가면서 견디고 견뎠습니다만 앞쪽 측면 객석에 앉은 학생 하나가 몸이 15도 기울어 졸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약간의 용기를 얻었답니다. 발표를 하시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객석의 이러한 태도들이 불쾌하실 수 있겠지만 식후의 생리적 현상인데다, 졸림 속에서도 한 마디 한 마디 건져내서 밑줄도 그어 가며 경청했다는 점을 이유로 용서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건축과 김봉렬 선생님이 임꺽정 속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신 것은 전날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 흥미로운 작품 임꺽정을 읽으면서 건축을 묘사한 부분과 그 의미를 찾아 떠나는 한 건축가의 독서는 참 집요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먼저 말씀하신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저도 매우 감명 깊게 읽었던 빅토르 위고의 장편 소설인데, 파리의 세느강을 한복판 시테섬에 자리한 노트르담 성당의 묘사는 제가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 읽기 싫을 정도로 지루했던 묘사가 오히려 매력입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다시 읽었을 때는 바로 그 건축물에 대한 묘사 장면이 가장 압권이었으니 말입니다. 김봉렬 선생님께서 바로 그 작품을 언급하셨을 때, 벽초의 임꺽정이 그것과 비교할만한 영역은 없겠다 싶어 걱정이었는데 역시나 그러한 시작이 강단의 학자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이겠지요. 임꺽정 속에는 기생 소흥이의 동네를 묘사한 장면이나 어느 정도 건축적 매력이 있을 뿐 소설 속 배경이 되는 16세기의  건축적 배경은 존재하지 않고, 벽초가 어린시절을 보낸 19세기말과 20세기초 조선의 건축물 정도가 가볍게 소개되며 보다 깊이 있는 건축과 관련된 글은 다른 역사적 사료들을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의 강좌였습니다. 졸리운 상태에서도 그 강의에 어느정도 집중하고 있었던 저는 시간 관계상 대충 건너 뛰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답니다. 다들 흥미가 없으셨는지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반가우셨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건축학자의 눈에는 그렇게 아쉬움의 발견을 폭로하는 시간이었고, 객석에서는 다들 침묵과 몽롱한 반응의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이러한 색다른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 것은 매우 찬사를 보낼만 했습니다. 작품을 음악적으로 분석하고, 회화적으로 분석하고, 지질학적으로 분석하고, 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건축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홍명희문학제는 다른 우리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참으로 배울점이 많은 의미있는 전통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1992년부터 전국을 무대로 해마다 순환하는 제17회 한국작가대회와 함께 열렸으므로 전국의 수많은 문인들께서 자리를 제대로 빛내주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잘 알려진 소설가나 시인밖에 모르는 것이 일반인으로서 문학에 대한 앎의 척도일까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잘 모를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인 문인인 도종환 선생님께서도 졸렸다는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께서 2008년판 임꺽정 출판기념회를 간소하게 진행하셨고, 저작권과 관계된 배경 소식을 소개하셨으며, 김태희 팀장께서 홍명희 선생님 캐릭터 앞에 새로운 개정판 책을 한 질 올리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그 책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낭독회...



충북작가회의 관계자 분의 진행으로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과 한창훈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좌담 형식으로 임꺽정 낭독회 자리를 가졌었습니다. 소설가로서 두 선생님이 읽은 소설 임꺽정의 감동과 매력에 관한 즐겁고 편안한 대화의 자리였지요.

최근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에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올라 내심 많은 판매부수를 기대하셨지만 얼마 팔리지 않더라고 여유로운 미소로 푸념 하시던 현기영 선생님. 현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광주항쟁을 겪은 80년의 겨울에 처음 이 작품을 접했고, 토속어를 공부하는 와중에 특히 중국이나 서양의 영향에서 독립적인 우리 민족의 민중사회사 작품으로써 임꺽정의 매력을 말씀 하셨습니다. 특히,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라는 속담의 등장에 주목해 하시며 임꺽정 제7권의 9쪽 8행에서 10쪽 1행까지, 10쪽21행부터 11쪽 6행까지를 짧게 낭독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기억할만한 현 선생님의 단편 소설 '소드방 놀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하필 가장 재미없는 '양반편'으로 임꺽정에 입문하셨다는 한창훈 선생님. 여수 출신답게 전라도 사투리로 꾸밈없이 말씀하시는 것이 참으로 매력적이셨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봤던 한 선생님의 단편 '아버지와 아들'은 생전에 어부이셨던 장인 어른과 처남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그 꾸밈없는 전라도 방언이 무식한 무리들 중에서도 가장 무식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곽오주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노라고 표현하실 때에 객석의 모든 이들이 졸음을 한 방에 날리며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현기영 선생님께서도 맞장구를 치시며 박재동 화백이 그린 곽오주 캐릭터를 가리키시며 곽오주가 들고 있는 쇠도리깨 그림은 진정한 쇠도리깨 그림이 아니라고 지적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창훈 선생님이 낭독하신 부분은 제5권 의형제편 150쪽 9행부터 152쪽 7행까지였는데, 본인도 낭독후에는 생각보다 별로 재미없는 부분을 발췌하신 것 같다고 머쓱해 하셨습니다.

나중에 현기영 선생님께서 당신의 작품 '순이 삼촌'에 수급불유월(水急不流月)이라는 명문장으로 우리 부부에게 사인을 해주셨는데 아주 행복합니다. 물이 너무 급하게 흐르면 그 위에 비친 달을 담을 수 없다는...


마지막으로 행사장을 빛낸 퓨전 판소리 '부부가'의 두 장면을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첫번째 동영상은 가출한 아내를 그리워 하면서도 집안에서 퇴폐업소 라이타를 발견하여 마누라의 바람을 의심하는 남편의 판소리가 아주 익살스럽고 정겹습니다. 바로 이 남편 역에 소리꾼 서화석 선생님, 고수로는 입담 좋은 김철준 선생님이십니다. 
 

 
자리가 좋아 끝까지 촬영하려 하였으나 바로 앞 빈자리를 찾아 들어 오는 누군가에 의해 당황하여 촬영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바로 앞자리 등장인물... 알고보니 한창훈 선생님이셨답니다. 앞선 낭독회 마치시고 객석으로 들어 오시던 길이었는데, 거두이십니다. ^^;

그리고, 이 멋진 공연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한창훈 선생님 머리를 열심히 피해가며 촬영한 것이 다음 동영상입니다.
 
 

처음에 뭔가 쪽지를 읽는데, 그것은 소리꾼 부부가 객석에서 아무나 몇 사람을 붙잡고 부부싸움의 이유가 무엇인지 즉석해서 현장 메모한 것들을 읽는 장면이랍니다. 극중에 남편 본명은 남편남(서화석), 아내의 본명은 마노라(조애란) 두 사람이 부부싸움을 한 다음 아내는 친정집에 가 있고, 남편은 엉뚱한 곳에서 아내를 찾아 헤매다가 만나게 된 두 부부는 어떻게 화해를 할까요? 아니면 진짜 갈라설까요??

고수인 김철준 선생님과 아내역의 조애란 선생님은 실제 부부라고 합니다. 확인은 못했지만 고수 말씀이...
첨부한 동영상이 꽤 길지만 사실 전체 공연은 훨씬 길고요. 촬영되지 않은 부분이 오히려 더욱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 공연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된다면 다시 한 번 객석에 앉아 보고 싶은 신나는 판소리 공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서도 혹시 이 공연 소식을 듣게 되시면 부부가 함께 손잡고 관람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1박2일 행사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채 김애경으로 컨디션이 좋지 못해 일찍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야했던 우리에게 혹시 따로 데이트 하려고 그러시냐는 강맑실 대표님의 다정한 시선은 그 순간만큼 예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
다행스럽게도 서울 집에 도착한 김애경의 컨디션은 아주 좋아졌답니다.
비록 실내 행사밖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나머지 모든 행사도 의미있고 무탈하게 끝났기를 기원하며 제 추억의 기록은 이렇게 마칩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양물감 2008-10-13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꼭 한번 보고싶네요. 우리 부부가 손잡고 보러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하하하

동탄남자 2008-10-13 10:13   좋아요 0 | URL
주로 충청권에서 활동하는 것 같은데, 기회가 되신다면 저 독창적인 판소리... 아주 괜찮습니다. 손 안잡고 따로 입장하시더라도 손잡고 퇴장 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하필 가장 재미없는 부분만 촬영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