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시사회 <이리> 당첨자 발표
온라인 서점 알라딘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배려한 영화시사회를 다녀왔다.
처음 영화 제목을 보고 개나 늑대를 연상시키는 동물 이리를 생각했었는데, 밀양처럼 '이리'라는 지명을 의미하는 제목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31년 전인 1977년 11월11일에 전라북도 이리시에서는 대형 참사가 있었는데, 거기서 비롯된 영화다.
그 사건 현장에는 가수 하춘화와 지금은 작고하신 코메디언 이주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요새 말하는 의도적인 테러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기록되는데, 이리역(현재 익산역)에 정차해 있던 한국화약(현재 한화)의 화물 열차에 실려있던 대량의 폭발물이 관리 소홀로 폭발했던 대형 사건이다. 정식 책임자도 없이 허술한 안전 의식이 불러온 사고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과 맥을 같이 하는 부끄러운 인재였으며 이리역에 지름 30미터 깊이 10미터의 거대한 웅덩이가 파인 규모였다고 한다.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톤이나 되는 대량 폭발이라 이리역 주변 반경 500미터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1,647세대 7,8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영화는 작년 오늘, 그러니까 이리역폭발사고 30주년을 맞이한 추모행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사건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으며, 사건 이듬해에 태어난 1978년생으로 2007년11월11일 현재 서른살인 윤서가 주인공이다.
영화 도중에 중국인 학원선생과 대화중에 윤서 자신이 밝히듯 그녀는 태아 때 그 진동을 느낀 후,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백치이다.
윤서는 동네에서 미친년으로 통하고, 아무나 집적거리는 백치이지만 마음이 곱고 한없이 착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슬픈 존재이다.
윤서는 익산역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 노인정과 기찻길 옆 중국어 학원을 육교로 넘나들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생활하는 백치 처녀다.
택시 기사인 그녀의 오빠 태웅은 그녀를 돌보며 모형 건축물 조립을 유일한 취미로 생활하는 삶이 괴로운 존재이다.
윤서는 노인정과 임금 체불이나 하는 중국어 학원 청소와 잔심부름을 하는 백치지만 오빠와 달리 큰 불만이 없는 삶이 행복한 존재이다.
노인정을 배경으로 전라도 노인들의 사투리가 정겹고, 소외층인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외롭고 또 외롭다.
불법체류자인 노동자가 공중전화 박스에서 아들에게 불러주는 그 자신의 모국어로 된 노래가 정겹고 그의 비참한 처지가 측은했다.
그 지방의 단체 중에 컨테이너를 아지트로 둔 베트남 참전용사들인 노인들의 모임도 참으로 우수꽝스럽고 천박하다.
윤서가 일하는 중국어 학원의 선생님이 고향의 애인과 2년만의 재회를 예고하며 기뻐하는 통화 내용이 애틋 했다.
아빠의 과일가게를 봐주며 공부하던 예진이라는 소녀와 윤서의 우정이 예진의 죽음으로 슬퍼졌던 영화다.
동생 일이라면 타고 있던 손님마저 끌어 내리고 달려가는 태웅, 누구 씨인지도 모르고 유산한 동생을 산부인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는 그의 처지는 어디 호소할 곳이 없다. 동생을 위해 콘돔을 한 뭉탱이 사주지만 윤서는 그러한 상황에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그냥 당한다. 정신과 달리 육체가 건강한 탓인지 그녀는 매번 임신을 한다.
임신한 그녀가 몸이 아파 쓰러져 있을 때 부축해 집(노인정)에 데려다 줬을 뿐인데, 강간범으로 몰린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가 슬프다.
친오빠에게 몸을 바치려다 발길질 당하는 윤서가 괴롭고, 그렇게 지쳐 노인정으로 나와 잠든 윤서의 냄새를 맡던 왕따 노인도 슬프다.
왕따 노인은 윤서의 냄새를 맡던 그날 밤 목을 메달아 세상을 떠나지만 윤서는 노인의 죽음에 별다른 느낌이 없는 백치일 뿐이다.
익산역에 내려 태웅의 택시를 타고 모현아파트 노인정을 찾아가는 노신사, 그는 오래 전 애인을 찾아가는 아름다운 남자다.
옛사랑을 만나 침묵으로 대화하는 두 노인을 바라보는 윤서의 시선이 즐겁고, 그 뒤로 지나가는 할머니 노래패의 '부산정거장'이 즐겁다.
원하지도 않는 털모자 하나 사주고 굴다리로 끌고가 윤서를 겁탈하는 변태 놈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태웅의 택시비를 떼먹고 교회 뒷문으로 달아나는 놈도 참 짠했다. 그렇게 살아 뭐하리...
또 다시 임신한 윤서를 말없이 택시에 태우고 바다로 나갔다가 혼자만 돌아오는 태웅이 무섭다.
태웅을 짝사랑 하는 다방 여종업원의 실수가 용서할 수 없는 보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새로 부임한 중국어 선생이 만난 윤서는 무엇일까?
이 모든 부조리함 속에 조리는 마치 다음과 같이 묻는듯 하다.
"당신들은 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이 낳은 상처를 기억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