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행사에 초대받지 않은 오지랖 넓은 방문객이었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12월19일 금요일, 원래 친구들과 송년회를 하고 싶은 날이었는데 뒤로 연기하고 땜빵으로 뭘할까 고민하다가 문학동네 행사 정보를 입수하고 달렸던 것입니다. 서울시청뒤 프레스센터 20층 대회의실에서 문학동네가 이번 행사를 한다하여 퇴근후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제 옆으로 조정래 선생님이 앉아 계셨고, 앞쪽에는 신경숙 선생님, 옆으로 또 박범신 선생님, 멀리에 박완서 선생님, 김윤식 선생님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거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거인들도 여기저기 계셨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기 팍팍 느껴지는 그런 자리였던 것입니다.
문학평론가 류보선 선생님이 재치있는 입담으로 사회를 맡고, 시인이자 문학동네 대표이신 강태형 사장님이 인사말씀을 하셨지요. 건강한 체격의 강 사장님은 이 불황속에서 괴로웠는데 2008년 5월 이후로 좀 견뎌볼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왜? 르 끌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문학동네 매출이 팍팍 늘었던 것이지요. ^^
박범신 선생님께서 박완서 선생님을 대신하여 준비도 덜된 축사를 먼저 하셨는데 대단했습니다.
그 걸쭉한 목소리에 그렇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웃음보 터지게 하실 수 있다는 참된 이야기꾼다웠습니다.
예를 들자면 신인상을 수상하는 젊은 작가와 평론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결혼 주례를 빗대셨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인데... 제 기억이 틀려 의도가 일부 달리 전달될 수도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제가 이제 나이 좀 먹다보니 가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결혼식 주례를 보게 됩니다. 주례석에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면 둘이 죽고 좋아서 못사는 듯한 표정으로 참으로 닭살입니다.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들이 결혼이란 무덤에 뭣도 모르고 들어가는데 말려야 하는 건 아닐까. 이것들이 과연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정말 한심한 것들이 내 앞에서 철없이 웃고 있구나. 그저 첫날밤만 생각하는 구나 이것들이... 중략... 더러는 이혼도 하겠지요. (관중들 자지러짐) 이혼을 안했더라도 살아 남은 몇 놈들은 어떻게 헤어지지 못해 살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요. 누가 진짜 저 철없는 환상을 깨줄 것인가. 결혼이란게 늘 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중략)... 더러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칭찬도 해주고, 극찬도 하겠지만 속지 마십시오.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니 절대로 선배들의 칭찬에 속고 우쭐해 하지 마십시오. (중략) 저도 스물일곱에 중앙일보를 통해 등단했는데, 그때 겁없이 이렇게 당선 소감을 말했었습니다. ´문학, 목메달고 죽어도 좋을 나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렇게 비장했을까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모쪼록 오늘 상을 받고 등단하시는 세 분들이 문학과 결혼하여 가급적 이혼하지 않고 잘 버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평소 참여도가 낮고 말씀 어눌하기로 유명한 신경숙 선생님도 심사위원으로서 수상자들 개개인의 느낌을 듣는이들 즐겁게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특히 면접과정에서 뭔가 질문을 던졌는데 펑펑 울어버린 박찬미 양에 대한 미안했던 기억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거대한 기계´로 소설부문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한 이영훈씨는 춤을 잘 춘다는데 외모가 딱 춤 잘 추게 생겼더군요. ´문학의 시작, 링반데룽의 끝-김연수 소설과 함께 시작하기´로 평론부분 신인상을 수상한 조효원씨는 정말 목사님처럼 말씀도 잘 하시더군요. 압권은 17살의 어린 나이로 장편소설 ´석회´를 발표하여 등단한 박찬미양이었습니다. 박찬미는 무대에 올라 소감을 말하면서 원고 쓰기 편하도록 노트북을 사주신 아빠에게 감사드리며, 모두 자기가 쓴 글이니까 자기 자신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으며, 빨리 상금을 받아 읽고 싶은 책을 몽땅 사야겠다는 당찬 소감을 밝혔더랍니다.
평소 존경하던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님이 무대에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목소리와 표정만 살피느라 정작 무슨 말씀 하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 박사님선생님께서는 송년사 하러 나가시는 길에 수상자석으로 걸어가셔서 박찬미 양의 운동화끈을 묶어주고 무대로 올라가셨습니다. 60년 가까운 세대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지요. 사회자인 류보선 선생님께서 원래 그렇게 신는 것이랍니다라고 웃으며 말씀하셨고, 박찬미양은 쑥스러워 하였지요.
모두에게 와인이 한 잔씩 돌아간 뒤에 박완서 선생님께서 무대에 올라 쑥스러운 목소리로 축배제의를 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였습니다. 50대 때는 40대가 젊어보이고, 60대 때는 50대가 젊어보이고, 70대 때는 60대가 젊어보였는데 이제 곧 80대가 되시는 분이시라 신인들을 보는 시선도 특히 달라 보였을 것입니다.
불청객으로 참석한 행사에서 저는 문학동네가 참으로 위대해 보였답니다. 왜 그런지 아시지요?
일년 뒤에도 문학동네 행사에 반드시 참석하고 싶을만큼 문학동네 행사도 멋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