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풍당당 개청춘 - 대한민국 이십대 사회생활 초년병의 말단노동 잔혹사
유재인 지음 / 이순(웅진) / 2010년 2월
절판


그분께 왜 십분 일찍 결제하여 경품을 못 받았는지에 대해 차분히 연대기를 써보시라 권해보겠다.
그러면 오전 열시에 이벤트를 오픈하기로 결정한 우리 사이트 뿐만 아니라, 그분이 십 분 일찍 결제하게 만든 다른 이유들, 예를 들어 그날따라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일찍 깼다든지, 주차가 너무 수월해 사무실에 빨리 들어설 수 있었다든지 하는, "숙명이 그에게 지정했던 위치와 임무"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억울한데 가해자는 모호한, 이 일반적인 운명의 작동법칙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57쪽

언어 같은 매개체 없이 진심이 직접 진심과 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나,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강아지를 기르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원래 주인이 일이 있어서 잠시 그에게 강아지를 맡겼는데, 강아지는 오히려 그 장애인을 주인으로 여겼다. 원래 주인이 와도 컹컹 짖고 떠나지 않았다.
강아지와 인간은 공유하는 언어가 없다. 이를테면 서로가 서로에게 언어상실증 환자 같은 존재다. 이종 간에는 몸짓과 표정만 가지고 대화를 해야 한다. 텔레비전에 나온 강아지가 인간의 상식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다면 원래 주인을 따라나섰을 거다. 하지만 누가 더 자신을 필요로 하는지, 강아지는 알았던 거 같다.-74쪽

무식하고 철없었지만 그때는 내 삶을 담보로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용기라도 있었다. 대학교 때는 새벽 다섯시에 학교에 갈 정도로 분투하며 공부한 적도 있었다. 학점을 잘 받아서 원하는 것이 되려고. 내 의지였다. 멋있지 않은가.
내가 가진 것을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고상한 삶이다.-87쪽

『공감의 심리학』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삶의 비밀이란, 인간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아남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고 거울 반응으로 답해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발견하는 데 있다."-149쪽

오늘날 이십대들이 대의에 시들해진 건 선악 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일 거다.
적이 모호해진 시대에 분노를 배우는 건 어렵다.-168쪽

모모(모하메드)의 분석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은 사색을 안 한다. 비슷한 원리로, 그런 사람은 자기 앞의 책이 하는 말을 알아먹지 못한다.
(.....)
사람과 사람의 인연처럼 책과 사람 사이에도 때가 있나 보다. 그래서 책은 세상을 좀 알고 난 후에 읽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들은 그냥 지금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인생 최고의 책은 먼 훗날 내가 더 많이 겪고 성숙해졌을 때 만나게 될 것이다.
(.....)
경험으로 각인되지 않고 스스로 느끼지 않는 지식은 우유보다도 더 유통기한이 짧기 대문이다.-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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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0-05-0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풍당당 개청춘> 핫하하하~ 제목이 무척이나 재밌습니다.^^

L.SHIN 2010-05-07 09:35   좋아요 0 | URL
내용도 재밌습니다. 리뷰 쓰기 귀찮아서 밑줄긋기 했지만. 유머러스하더군요.^^

루체오페르 2010-05-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 책, 전부터 담아두고 관심 가지고 있던 책입니다.ㅎㅎ
마지막 문구가 날카롭네요.
우유보다도 짧은 지식...

L.SHIN 2010-05-08 09:50   좋아요 0 | URL
네,저는 좋은 말만 쏙~ 골랐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꽤나 유머러스하고 당돌한(?) 20대의
재치있는 글들로 가득합니다. 저는 몇 번 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