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소년 표류기 비룡소 클래식 15
쥘 베른 지음, 레옹 브네 그림, 김윤진 옮김 / 비룡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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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1,2시간 만에 하늘이 회색으로 변하고 폭우가 내리며 잔잔히, 실크처럼 부드럽게 흐르던
    물들이 콰콰콰콱 하고 성난 것처럼 흰 물결을 일으키며 내달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1986년, 많은 어른들과 어린이들과 함께 나는 어느 계곡의 하류쯤의 깊지 않는 물가에서 놀고
    있었다. 조용히 흐르는 물은 햇살을 받아 찬란히 빛나고 있었고 애,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웃음
    소리를 내며 초 여름의 느긋함을 즐기고 있었다. 물가 근처의 자갈밭에서는 이런저런 요리를
    하느라 분주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물 속에서 놀 수 있도록 물길 한 가운데의 큰 바위 위에
    앉혀 주었다. 물살은 그 바위를 쓰다듬듯이 넘어가곤 했는데, 물의 속도나 강도가 세지 않아서
    7,8살 미만의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휩쓸릴 걱정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자연의 어머니는 너무나 다정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갑자기 후두두둑 떨어지는 강한 빗줄기에 사람들은 당황하여 우왕좌왕 하였고, 물길 한 가운데서
    놀던 아이들을 황급히 안전지대로 옮기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의 보호자들은 아무도 몰랐다.
    나 혼자만 물길 한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는 것을. 나는 기다렸다.
    빗속에서 한참을. 물은 불어나 힘이 더욱 세졌고, 폭우 속에서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떨었다.
    아무도 와주지 않았다. 너무나 충격이었다. 모두들 거대한 천막 속으로 들어갔는데, 나만 혼자
    덩그러니 물 한 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이대로 떠내려가는 걸까. 여름비가 이렇게 차가웠던가.
    물이 무서운게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를 잊었다는 것이 슬펐다. 

    나는 울부짖었다.
    살려달라고 외친게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고 울부짖었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나는 아직 여기 있다고! 

    한참 후에 모르는 남자가 달려왔다. 그리고는 나를 안고 물길 속에서 빗속에서 달렸다.
    그래, 그는 달렸을 것이다. 물 속에서 허우적허우적, 빗속에서 탈바닥탈바닥.
    내가 무사히 천막 안에 들어왔을 때야 비로소 보호자들은 나만 혼자 물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고 있던 나를 달래주고 그제서야 챙겨주었지만, 나는 이미 5분 전에 그 물길 속에
    떠내려 가버렸다. 나는 상처입은 마음을 안고 하염없이 물살과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다. 

 

 

    1860년 2월15일, 프랑스인, 미국인, 영국인, 흑인으로 구성된 15명의 소년들은 자신들이 망망대해에서
    폭풍우, 거대한 파도와 싸우며 표류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른 한 명 없이.
    배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축의 소년 1명과 견습선원 흑인 소년 1명 뿐이었다.
    거친 파도와 매몰찬 폭풍우가 매정한가? 바다는 조그만 먼지 하나가 자신의 피부에 붙어 있다고 생각할
    뿐, 그 배에 어린 아이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을줄 몰랐을 것이다.
    아니, 바다는 인간이 뭔지나 알까? 

    그들은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바다의 거대한 힘에 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버텨내야만 했다. 1860년 3월 9일, 표류한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항해를 하려고 했던 배이기에 식량은 충분히 있어서 굶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배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무인도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했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안전하고 따뜻한 동굴을 찾았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언제가 뉴질랜드로 돌아가 가족들의 품에 안기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오클랜드 시에서 가장 좋은 학교인 체어먼 기숙학교로 돌아갔을 때 뒤떨어진 학습을
    놓칠세라 틈틈히 공부하는 의연함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과연 혼자였어도 그랬을 수 있을까?
    아마, 진작에 바다 위에서 죽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그 때, 거친 물살을 가르고 물가로 가려고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너무 작았고 물살은 강했다.
    '죽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그저 저 멀리 떠내려가면 다시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못하리란
    것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혼자 힘으로 물길을 걸을 용기가 없었다.
    물은 바다로 흘렀다가 다시 기체화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그러나 그 때 떠내려 갔던 나의 마음은 바다속 깊이 잠겨졌는지 다시는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메마른 땅 위에서 아직도 표류중이다.
    14~16살 사이에, 나는 [섬]이라는 시를 만난 적이 있다.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런 내용이었다. 어쩌면 내 마음을 그리도 잘 표현했는지!
    그러나 나와 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줄도 몰랐다.
    10대와 20대에 나는 너무나 많은 파도를 맞았다. 그 어떤 파도도 받아들였다.
    가만히 서 있는 암초라면 그 파도들에 맞고 맞아서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는 판자라면 좀 낫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표류할지언정 나라는 존재가 닳아 없어
    지지는 않을테니까. 소금물에 잔뜩 쩔어져 숨이 탁탁 막혔다가도 맑은 비가 내리면 또 갈증을 해소하고,
    때로는 따가운 태양 아래 나와 있을 수도 있으니. 가끔씩 바람이 나를 쓰다듬어줄 때는 또 어떻고. 

    그런데 자꾸 어디에선가 외쳐온다.
    이래선 안 된다고. 이렇게 영원히 표류할 수는 없다고. 

    차라리 바다의 일부가 되자. 세상에 파묻히자. 그래서 어딘가 깊숙히 박혀있을 마음을 찾아내자.
    그리고 저 15소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돌아갈 곳으로 향하자고.
    없으면 만들자고.  

     
                                                                              2009. 4. 10, 산책길에서, 떠날 때를 기다리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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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7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2-1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소년 표류기 같은 모험 소설에서 이런 예쁜 리뷰도 가능한거였군요... 흐미. 엘신님 글쓰기 능력에 감탄 중~ 난 이 소설 읽으면서 그저 먹을거 마련하는 장면만 인상 깊던데.. 나두 먹고 싶다 함시롱~ ㅎㅎ

L.SHIN 2010-02-17 14:47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그...저도 쓰면서 '이건 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뭐 어때, 리뷰란 원래 주관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썼습니다만.^^;

2010-02-17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2-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리뷰에요. 15소년 표류기를 다시 보고 싶네요.
유년의 상처는 아프지만...그렇게 상처받고 또 아물면서 자라니까요.

L.SHIN 2010-02-17 19:29   좋아요 0 | URL
네, 아무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