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그런 책이 있다. 점점 남은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게 아쉬운 책.
    그래서 자꾸만 남은 부분이 얼마인지 확인하면서 먹는 책. 그런다고 페이지가 늘어날리도 없건만.
    그런데 너무 너무 맛있어서 남은 부분을 쳐다볼 생각도 없이,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 못챌 정도로 후루룩 다 먹고 나서야 '어? 벌써 끝이야?' 하고 입맛을 다시게 되는 책은
    그야말로 진미중의 진미다. 바로 이 책이 오랜만에 나를 즐겁게 해준 진미였다.
    물론, 책 사이즈도 작고 글씨고 크고 쉽게 읽어갈 정도의 부담없는 내용이라 후다닥 먹어치울 수
    있었지만 '이걸 당장 먹어치우지 않으면 안되겠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흡인력을 가지는 책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게다가 한 권의 책에서 서너번이나 소리내어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기특한
    맛의 녀석에게는 별 네 개를 박아줘 버려야지. 빵.빵.빵.빵. ★★★★

    남들 다 하는 유행따위 따라하기 보다는 내 맘대로의 멋을 내는 것을 더 좋아하고,
    남들 다 '와~' 감탄하면 '흥, 그게 뭐-' 하며 건방지게 콧방귀를 뀌며 관심 뚝 끊고,
    남들 다 아는 연예인, 유명인사 혼자만 몰라도 '난 관심없어' 하고 오히려 당당하게 내뱉는 내가
    " 결국은 보게 만드는군 " 이라는 말을 하면서 사서 읽게 만들 정도의 훌륭한 리뷰를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나를 배부르게 해줄줄 몰랐다. (감사합니다, 네꼬님)

    난쟁이 아버지, 베트남 어머니, 가난한 집, 매일 괴롭히는 담임 선생, 사는게 그다지 재미없다고 느끼는
    주인공 완득이, 노동을 착취 당하고도 변변치 못한 대접을 받는 이주노동자들.
    이렇게만 나열해 놓고 보면 충분히 어두운 사회속의 이야기들이 오고갈텐데도 이 책,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건가? '나'라는 1인칭 주인공이 혼자 중얼거리듯 내뱉는 혼자의 생각들, 전개 상황들의 표현력이,
    정 뚝뚝 떨어트리는데 타고난 재주를 가졌을 것 같은 담임 선생의 까칠한 대화들이 어찌 그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더럽게 솔직한 감정, 생각 표현들 덕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키히히힛' 하고 이상한 웃음 소리를 내게
    만들기도 하는 이 녀석, 분명 맛있게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지는 것은 나의 뇌가 완전 집중해서 신나게 먹는
    바람에 6시경에 든든히 먹어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죄다 끌어 써서 그런가 본다. (이기적인 뇌 같으니라구)
    빌어먹을, 1시간 산책 갔다 왔더니 위장이 쪼그라들어 뭐 좀 처먹으라고 난리다. (그게 산책이냐, 경보지.=_=)

   

   
   '정말 이러시기에요? 가시관에 머리가 찔려서 잘 안 돌아가세요? 똥주 하는 꼴 좀 보라고요.
  학생 집에서 술 퍼마시고, 꼴리는 대로 학생이나 패고, 선생이라는 작자가 인성교육이 안 돼 있으니까
  학생들한테도 그런 교육을 못 시키잖아요. 다시 어린애로 돌려서 교육시킬 수도 없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죽여주세요. 이번 주에도 안 죽이면, 나 절로 갑니다. 하나님 안 믿어요!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담임이 싫다고 죽여달라고 기도를 하는 완득이가 (그것도 소원 안 들어주면 절로 가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던)   

   
    나는 똥주를 계속 바로 업으며 달려야 했다. 옥탑방에서 큰길까지 이렇게 먼 줄 처음 알았다.
  죽지 마, 죽지 마!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냥 다 잘못했다고요! 똥주 좀 살려주세요.
  생각해보니까 동주가 별로 나쁜 사람 같지 않아요. 나쁜 놈들 세상에 깔렸잖아요.
  지금까지 살려줬으면 계속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도둑으로 오인해서 킥복싱으로 다져진 자신의 무릎으로 쳐대 갈비뼈가 부러진 담임을 들처 엎고 달리며
    저렇게 변덕을 부린다. 그렇게 하나님한테 죽여달라고 기도하게 만들었던 담임이 그래도 미운 정 들었다고
    엎고 달리는 완득이의 착한 마음과 담임이 죽지 않은걸 확인하자 눈물 핑 도는걸 바람 탓으로 돌리는 귀여움이
    나는 왜 그렇게 좋은지.
    '씨블놈'으로 시작해서 '씨블놈'으로 끝나는 이 놈의 지독하게 솔직한 현실 사람들의 표현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평소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더라.
    늘 가던 길을 개와 함께 산책하면서 멋진 광경을 두 개나 보고 말았으니까 말이다.
    공부, 컴퓨터 게임으로 집 안에서만 틀어박혀 있는 요즘의 청소년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 - 야외 농구대 하나를
    놓고 늦은 저녁 서로 몸을 부딪히며 뛰어 노는 중학생 남자애들이 이뻐 보인건 절대 가로등 불빛 때문만은 아닐테지.
    유유히 흐르는 개천 물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기타와 하모니카로 연신 신나는 연주를 해대며 5월의 밤을 즐기는
    어떤 아저씨가 멋있어 보이는건 이 책의 영향 때문인가.
   
    어쩌지. 자꾸 사람들이 좋아지면 안되는데.
    제길, 세상은 아직 이렇게 멋지다니까. 큰일이잖아.
    얼마나 더 지구에 정을 붙이라고?
    회사 건물 새로 지어서 이전하던 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건물의 이곳 저곳을 봐주던 공사 현장직 아저씨들과
    이사를 도와주던 이삿짐 아저씨들 드시라고 정수기 위에 커피와 율무차를 놓아주며
    " 4스푼 넣으니까 맛있더라구요~ "
    라고 말했던 나에게 아저씨가 건넸던 싱거운 농담이 떠오른다.
    " 오늘 토요일이죠? 복권 사서 당첨되세요. 하하하하 "
    나도 덩달아 하하하핫.
    사회적으로 무시받기 일쑤인 직업을 가진 아저씨 입장에선 그 작은 호의가 고마웠나 보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아저씨?
    아저씨의 그 싱거운 농담이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주었는지.
    칭찬 받은 기분이었거든요. 내가 한 작은 행동에 대해서.
    쳇, 인간을 좋아하면 나만 손해인데 말야, 하하핫.
    멋진 금요일이군.
    아, 이제 토요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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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5-2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젠장- 신나게 쓰고 있는데, '인터넷 익스플로워 오류' 라고 뜨는 바람에 한번 나갔다 다시 와서 쓰니
쓸데없는 박스가 내 글들을 뚝뚝 끊어버렸다. ㅡ.,ㅡ..
그래도 '임시 저장' 기능이 있는 덕에 '빌어먹으으으으으을~~~!!!' 하고 머리를 쥐어뜯지 않게 된 게
얼마나 고마운지. 이래서 알라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니까.(웃음)

마노아 2008-05-24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로 저 박스가 멋진 디자인을 구성해 주었는 걸욤^^
아, 이 책 봐야 하는데...하고 계속 침만 삼키고 있어요^^

L.SHIN 2008-05-24 01:52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이 책 아직 안 샀다면 다음에 제가 빌려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막 권하고 싶어지는 책이라니까요.^^

그런데..요즘 다들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깃발(?)을 들고들 계시잖아요.
그래서 헷갈려요, 늘~ 이미지로 사람을 구분했던 저는. ㅋㅋ ( -_-);
순간 다른 사람인줄 알았다는.

순오기 2008-05-24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완득이도 S님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깃발을 펼쳐들고 있는 순오기~~~ㅋㅋ

L.SHIN 2008-05-25 19:4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깃발을 멋지게 들고 계시는 오기님도 멋집니다! ^^

치유 2009-07-2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도 남들이 좋다 좋다 하면 더 느긋하게 있다가 결국엔 보는데...
그래도 완득이는 조금 일찍 볼수 밖에 없었어요..맛깔스런 책을 읽고 난 후엔 한참 헤맸다는게 큰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