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책상에 앉았는데,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어.
        혹은, 컴퓨터는 있는데 인터넷이 안되는거야.

        자, 기분이 어때?

 

 

 

    단순히 설정만으로는 그저 멍할 뿐, 실감이 없다.
    나는 지난 금요일부터 바로 어제까지 약 1주일간을 인터넷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었다.
    물론 사무실의 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므로, 저녁이나 밤에 방에 돌아와 노트북 할아범을 열면
    언제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대체로 피곤해서 알라딘도 들어오지 못했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첫 날부터 인터넷 때문에 씨름을 벌였다.
    해당 인터넷 회사에 전화를 하고 전화선과 네트워크를 담당했던 사람 부르고, 이틀째엔 공유기를 바꾸기도 하는 등
    인터넷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면서 부산을 떨었다.
    물론 나 역시 인터넷이 안되면 답답한건 사실이나 그 짜증내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여유롭게 유유자적했었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컴만 있으면 해결 가능한 일들부터 해치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혼자 도를 닦았다.ㅋㅋ

    하지만 만약 컴마저 드러누워 버렸다면 나는 머리를 쥐어 뜯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이번에 내가 참을성있게 인터넷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던 이유는 -
    몇년 전 컴퓨터가 정신이 나가 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하고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듯.

    충격 절감 요법은 대단하다. (웃음)

    일하기에 더 중요한 컴퓨터의 부재를 경험한 나는 '그깟 인터넷쯤이야~' 라는 태연한 행동을 할 수 있었지만,
    몇년 전에 컴이 병원에 가 있었을 때는 정말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

    인간은 이제 컴퓨터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중요 문서도 전부 컴에게 저장을 하는데..

    그래서 나는 정말 중요하다 생각되는 자료나 사진들은 따로 플로피 디스크나 CD에 넣어두고, 전화번호 같은 것들은
    수첩에 적으므로 인해 '아날로그 보험' 을 들어두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디지털 시대의 편리와 풍요를 누리고 살지만, 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물건들, 체계들을 더 좋아한다.
    디지털이 가지는 신속성, 정확성은 없었지만 아날로그만이 가질 수 있는 멋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쓰는 편지는 무척 힘들다. 손과 팔이 아프고 머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의 비슷한 속도로 따라올 수 있는
    컴의 타자에 비해 수기 편지는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니까.
    그러나 E-Mail 이나 쪽지 등에 익숙해진 - 손으로 만질 수 없는 - 편지들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오랜만에 수기 편지를
    받으면 대개들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성이 들어간 편지를 누가 마다하랴~

    각종 최첨단 현대 악기 - 신디사이저 등으로 만든 현란하고 기교적인 음악이 쾅쾅 울리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부터 쓰거나 전혀 관심이 없다. 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울림'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진짜 악기의 생 음악 소리는 아무리 어설픈 연주라 해도 귀를 솔깃하게 되고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돌아보게 만드는 아날로그 시대의 고습스런 힘이 있다. 
    초보자가 잘 못 쳐서 띵깡거리는 피아노 소리도 귀엽게 봐줄 정도로 '생 음악'은 인간의 깊은 안까지 닿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비싼 카네이션을 선물해도 '의례적인 행사적 행동'으로만 느껴지던 사람도
    직접 만든 - 정말로 허접하기 짝이 없는 - 종이 카네이션을 주면 감동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는 점점 잊혀져 가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잊혀진게 아니라 단지 귀해졌을 뿐이었다.

    나는 오늘도 아날로그의 힘을 빌려 보려 한다.
    요즘 들어 우울해하는 친구를 위해 화려하게 치장한 컴퓨터 화면상의 꽃이 아닌 실제 살아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생화를 선물할까 한다. 그것도 화분으로. 그래야 매년 이 날을 기억하며 웃을 수 있지 않을까.

 

   
    2007. 09. 08  -  늦게 태어나 찬 바람을 맞는 장미....그래도 너는 아름다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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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3-0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재미있게 봤던 미드 "배틀스타 갈락티카"도 위의 페이퍼의 제목과 일맥상통합니다. 사이런의 침공으로 다른 우주함대는 해킹으로 인해 괴멸되지만.. 구형의 갈락티카만 그 위기에서 빠져나오죠..^^ 암튼 꽤 재미있는 미드입니다. 한번 보시길..(시즌0~시즌3까지 좀 양이 많긴 합니다.)

L.SHIN 2008-03-07 21:38   좋아요 0 | URL
오,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긴데요. 시즌 3까지라니)

Mephistopheles 2008-03-07 23:36   좋아요 0 | URL
아직 완결이 안되었다는..

웽스북스 2008-03-0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인터넷 없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데요
우리 회사에서 30분동안 정전된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요
물론 다 신나서 우르르르 하고 나가긴 했지만 그건 30분이였기에 가능했던일 ㅋㅋ

인터넷 없었을땐 뭐하고 놀았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아쥬 ㅋㅋㅋ
인터넷은 내친구 막이러고 ㅎㅎㅎㅎㅎㅎ

L.SHIN 2008-03-08 21: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인터넷이 안되면 마치 창 없는 방에 앉아 있는 듯 갑자기 답답해지죠.
세상과 소통하는 가상의 창(윈도우와 인터넷)은 이제 꼭 필요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실제로 창문없는 곳에서 일을 하는군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