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힘
성석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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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진실과 내가 소설을 통해 찾으려는 인간적 진실은 다르다. 역사와 진실, 인간과 진실이 다른 것처럼. - ‘작가의 말’ 중에서

  역사에 기록된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이라는 개연성 있는 허구의 세계에서 굳이 실존 인물을 되살리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선택이겠으나 소설을 통해 독자가 나눌 대화의 단초는 이미 역사적 사실속에 내재해 있다.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와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선망과 외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채동구같은 인물의 삶이 훨씬 더 흥미롭다.

  이름 없는 역사속의 선비. 초야에 묻혀 일생을 보냈으나 자신의 굳은 신념을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존경 때문이다. 고령 지방의 ‘인간’ 채동구의 삶은 희극적이지도 비극적이도 않다. 작가의 외가, 먼 조상중 하나인 채동구의 고유제를 통해 그의 행적을 돌아보는 형식의 소설은 액자의 형식에 담아내고 있다. 현재와 과거의 진지한 대화가 역사의 소임이라고 믿는듯 한 작가의 태도는 객관적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소설을 통해 찾으려는 인간적 진실은 역사적 진실과 분명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을 것이므로. 400여 년 전, 병자호란(1636년)을 정점으로 네 번의 출도를 가출로 묘사한 작가의 시선부터 확인해야 한다.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스런 순간으로 기억하는 삼전도의 치욕 ‘삼배구고두례’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김상헌 같은 척화파가 명에 대한 의리와 국가에 대한 고매한 충절로 평가되고 최명길 같은 주화파가 욕먹을 짓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실리와 국가의 안위를 담보로 자신들의 좁은 소견과 명분만을 내세운 위정자들의 분쟁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어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당시에 태어나 받았던 교육과 세계관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고결하고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들을 비판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미련스런 고집과 명에 대한 사대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런 상황에서 채동구와 같은 인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머릴 내가 이고 내 뜻을 내가 지킨다.(吾守吾志 吾載吾頭)”는 묘비명은 채동구의 삶과 인간적 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는 것처럼 희극적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다를 것이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의 시선은 그 너머에 있을 것은 분명하다. 과연 소설속에서 인간적 진실은 무엇인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채동구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진실은 ‘인간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잘것없지만 한 인간의 삶의 흔적들이 보여주는 신념과 고집 속에 함유된 맑고 깨끗한 정신 말이다. 역사를 뒤바꿀만한 힘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 인물들과 다른 평범한 양반의 대의명분 뒤에 숨어 꿈틀거리는 개인적 욕망과 가문의 영광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작가는 수많은 기록과 후손들이 기록한 그의 행장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사건에 대해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채동구의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꿔지는데 그 상상력이 바로 성석제가 말하는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적 진실의 핵심이다. 몇 줄로 기록된 한 인간의 행적들로 우리가 알수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진지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가공의 인물이든 역사속의 실존인물이든 한 ‘인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보편성의 문제에 관심이 간다. 400여년 전의 인물 채동구를 통해 현대인의 숨은 욕망과 인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산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그리 녹록치 않은 것이라면 주어진 환경과 시간 속에서 자신이 가진 신념과 일관된 대의명분을 주장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혹은 그 과정에서 겪게되는 인간으로서의 갈등과 이기적 욕망들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확인하는 일은 즐겁고도 고통스런 일이다.

  주인공 채동구와의 비판적 거리두기, 가독성 높은 문체와 해학은 작가 특유의 개성을 다시 한번 발휘한다. 장편으로는 처음 만나는 성석제의 <인간의 힘>은 커다란 문학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게 보이지만 소설의 영원한 주제가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데 동의한다면 작가가 안내하는대로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채동구를 바라보라. 그러면 네 번의 가출을 통해 인간 채동구가 ?변모해가는지 확인할 수 있고 그곳에 ‘인간의 힘’이 숨어 있다는 거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가출하고 싶어진다. 가출이 안된다면 외출이라도……


  가출은 인간에 의한, 인간만의, 인간 스스로의 선택에 따르는 의지의 표상이다. - 서. 전생


060106-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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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생활사박물관 2 - 고조선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2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2권) 지음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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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대 이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은 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본격적인 정착 생활을 시작했던 우리 조상들이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000여 년 전 고조선이라 불리는 나라다. 그래서 단기(檀紀)는 2333년을 더해서 사용한다. 올해는 단기 4339년이다. 단군의 실존 여부를 와 고조선의 역사적 의미는 우리 민족의 국가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다. 평양의 위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근 북한 학계에서 단군의 묘를 발굴하고 실존 인물로 인정한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여겨진다.

  씨족사회에서 부족간의 전쟁을 거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형성된 시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동기 시대이후 ‘고인돌’의 무덤은 인류의 신산스런 역사를 암시한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생겨나고 원시 공동체 사회의 평등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힘에 겨운 노동과 협동으로 거대한 무덤을 세운 사람들은 자발적 노력과 헌신이었을까? 죽음 이후까지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위정자들은 많게는 1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순장하기도 했다. 주거생활과 농경은 점차 고도로 발달했고 청동기는 농경을 위한 도구 사용을 넘어 전쟁과 살상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의미가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재조명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권력에 관한 이야기와 생성과정은 생략되어 있어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넘어선 힘에 대한,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수천 년 간 지속되어온 전쟁과 국가 간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적 요구와 민중들의 생존 때문이 아니다. 한나라에게 패망한 고조선은 이후 고구려와 고려로 그 국가의 명칭이 살아 숨쉬게 된다.

  여전히 민무늬 토기를 만들고 청동기와 석기가 공존했던 농경 중심의 문화가 이어지던 시대였던 고조선은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국가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주는 일차적인 목적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전쟁에 동원되기도 하고 삶의 터전이 짓밟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재는 권력자를 위해 복무했던 폭력적인 제도가 아니었을까하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전쟁과 살육이 반복되는 가운데 국가의 흥망성쇠는 이어진다. 그렇다고 사람이 바뀌거나 생활의 형태가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속한 국가의 명칭만 바뀌어갈 뿐이다.

  직조 기술이 발달하기 베를 짜고 옷을 해 입기 시작했으며 장신구와 치장거리가 만들어지고 과학적인 이성의 혁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고인돌위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나긴 밤시간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신비와 별들의 아름다움을 느낀 결과물이 아닐까. 과학적 영농의 시작은 자연현상의 예측과 대처 방법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에 속한 부분에서 인간이라는 독립적 개체로서 본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때보다 우리의 삶은 더 나아졌을까?

  어떤 면에서 인류는 끊임없는 진보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올가미속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천년 전보다 나아진 것은 물질과 생존의 문제 밖에 없을까? 지금도 물질문명의 혜택과 식량과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엄청난 수의 인류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생활을 만들고 시대를 이끌며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의 오늘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는 것처럼.

  옷을 벗고 뛰어다니던 현생 인류가 이제는 농경과 정착 생활을 거쳐 국가를 형성했다. 다음은 고구려다. 국가와 시대를 뛰어넘는 끈끈한 생활의 역사 속으로 걸어간다.


060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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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풍경
윤난지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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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것이 예술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어떤 분야든, 변화의 속도가 현기증이 날 정도가 아닌 것이 있을까마는 미술은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민감하고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 준다. 특히 근대 이후의 현대 미술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거나 감상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설적으로 작가들의 의도는 화이트 큐브로 불리는 박제된 미술관의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이루지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건축에 나타난 미술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은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일상과는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서구사회를 이전과 구분 짓는 가장 큰 계기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정착, 그리고 이에 따른 대중사회로의 전환이다.”는 작가의 진단은 객관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과 지금 보여주고 있는 풍경은 과거가 아닌 진행형의 미술이기 때문에 훨씬 더 흥미롭다. 그래서 윤난지는 <현대 미술의 풍경>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술의 역할과 위상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한 ‘작가는 죽었는가’를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 짚어 낸다. 아울러 21세기의 화두로 환경과 생태 문제의 중요성이 미술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설치미술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은 시간의 예술을 넘어 이제는 특정한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가치는 독특한 미적 가치를 살펴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의 구겐하임이 현대미술에서새로운 패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 상황을 점검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현대 미술의 풍경은 대체로 이러하다. 2부는 현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브루스 나우만에서 로스 블렉너까지 지금 현재 진행중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업 ‘현장’을 일별해본다. 직접 보여주는 것만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담장에 거대한 역삼각형 조형물을 설치한 마우로 스타치올리와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대니 카라반의 ‘빛의 길’등은 관심있게 보고 기억에 남아있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 짐작했던 작품들이었다. 공간과 시간의 흐름속에서 설치 미술이 갖는 의미는 영속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더 큰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듯하다. 아쉬운 것은 국내 작가는 한명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현대 미술이 걸어온 길도 결국은 사회와 역사의 변화 발전 속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과 미적 가치는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고 미술가의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는 한 개인의 작가의 개성을 넘어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죽음’이라는 말에 대한 논의가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품의 생산과 수집 매매와 전시, 기획은 모두 경제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구겐하임이다. 자본이 미술에 미치는 영향은 긍 ․ 부정의 논의를 넘어 상상을 초월한다. 구겐하임에 대한 저자의 일갈이다.

  구겐하임 신화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을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만든 영웅 신화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보면 돈을 무기로 전 세계를 미국이라는 문화제국의 영토로 포섭하려는 문화식민 기획의 비화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와 같은 변방 국가에서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미국의 속국이 되어간다는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 P. 169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절정이며 서구 유럽화이고 ‘미국화’이다. 사회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주류가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을 우리와 상관없는 논쟁이나 현실과 거리가 먼 문제로 인식하는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물론 미술을 사회와 절연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예술은 “문자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미술만의 독특한 서술성임을 증명”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무용이든. 문자예술인 문학을 넘어선 자리에 미술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르의 우열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대 미술은 전통적인 회화 위주의 박제된 전시공간을 벗어나 좀 더 가깝게 우리들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반성하고 확 과정 속에 서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천의 산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현대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르네상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연중 기획으로 외국의 미술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감상 기회가 적은 것이 아쉽다.

  저자의 객관적이고 차분한 설명에 깊이가 있어 읽을 만한 책이다. 주관적 감상과 가벼운 느낌 위주로 산만하거나 흥미위주로 엮어 놓은 책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푸코의 책을 만난 후였지만, 보들리야르를 읽지 않아 개념 설명만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시뮬라시옹’이 숙제로 남았다.


0601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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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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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과 신세기의 구분은 의미 없다. 하지만 인간은 늘 무엇인가 정리하고 구분짓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따로국밥이다. 20세기가 끝났다고 해서, 21세기가 시작됐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그것은 분명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고 하나의 계기를 만들고 싶은 또 다른 욕망일 것이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고 매주 다시 맞이하는 월요일에 대한 반복적인 시간 패턴에 적응하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늘 대화는 필요하다. 상대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눈으로 내가 비쳐지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공존과 대화보다 대립과 갈등이 심했다.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보충하자는 전략적 제휴도 아니고 모르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와는 다른 대화가 진행되어 왔다.

  비판적 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주장하는 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도정일과 안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기초가 된다는 신념을 가진 동물사회학을 전공한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만남이 <대담>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특별한 만남도 아니고 출판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지만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생각의 방식과 사물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는 즐거움은 덤으로 얻는다. 우리는 늘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물들에게 무심한 눈길을 보내고 선택적 관심과 고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인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자연과학적 관점과 시선이 누구보다도 부족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방식과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니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세상에 대한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는 전제하에, 많이 안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믿을 수도 없다. 호기심과 끊임없는 앎에 대한 욕망은 사람을 때로는 지치고 힘들게 한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사람의 긴 대화를 읽어가면서 결국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회귀했다. 문득, 누군가 내게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유전자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과정과 방법은 실로 경이롭다. 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조차 본질적으로는 아름답고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과학적으로, 아니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속성과 이해가 필요하듯 인문학적 인간에 대한 관심과 통찰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두 가지 성향을 지닌 인간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

  박학다식한 두 석학의 지적 유희와 번지르르한 말장난을 우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나름대로 도정일은 폭넓은 자연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최재천은 문학 소년이었던 시절을 말할 만큼 인문학과 공감할 수 있는 학문인 동물들의 사회생물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불꽃 튀는 논쟁과 첨예한 대결은 찾아볼 수 없다. 시종일관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고 상이할 것 같은 두 학문 분야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의미 있을 뿐이다. 서로 놓치거나 구멍이 뚫려버린 부분들을 비추어 주고 중첩되는 부분에 대해서 공유하는 방식은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해석과 대안에 일정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학부제가 운영되는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의 학문과 전공의 교육과정이 이렇게 철저하게 분과주의로 흐른 원인도 고민해보고 앞으로의 길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진정한 교양인으로 길러내기 위한 노력을 대학이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사회의 ‘능력있는 공부기계’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검도 필요하다. 효율과 결과에 집착하고 경제성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반성도 절실하다.

  21세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은 언제나 불투명했다. 인간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두 학자의 말에서 찾아본다.

  저는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합니다. 2003년 1월에 모리 전 일본 총리의 초?받아서 일본에 갔다가 이런 강의를 했습니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도 하고 호모 폴리티구스이기도 하지만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간이기도 하는 내용이었어요. - P. 593
  남미의 이반 일리치 같은 사람도 공생의 지혜와 철학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어요. 일리치는 인간이 가진 대표적인 ‘공생의 도구’로 자전거, 도서관, 그리고 시(詩)를 꼽았습니다. - P. 596(최재천)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지점도 이곳이고, 과학과 인문학이 손잡고 공생을 추구해야 할 지점도 이곳인 것 같습니다. - P. 597(도정일)


060116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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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온 편지 작가정신 소설향 23
장정일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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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선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내 경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 혹은 ‘하이퍼링크’ 방식으로 이름 붙여 놓은 방법이 있다. 책을 읽다가 꼭 보고 싶은 책이 눈에 띄거나 저자가 소개를 하면 그 책으로 갈아타는 방식이다. 영역과 장르를 넘나들며 읽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같은 분야에서 다양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주변에서 얻어지는 책에 대한 정보들이다. 한겨레 서평이나 추천 목록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전자보다 위험하다. 출판사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이나 주례비평의 낚시 바늘에 걸려들기 십상이고 특히 검증되지 않은 신간에 대한 불안감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장정일의 <중국에서 온 편지>는 첫 번째 방법으로 선택한 책이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에서 저자가 적극 추천했던 두 권 중의 하나다. 나머지 한 권도 읽고 있다. 탁선생이 추천한 이유는 세상에 대한 시선과 관점을 위해서다. 소설은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엉뚱한 이야기가 된다.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시점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고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3류 쓰레기 통속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의 서술자가 점순이였다면 사춘기 시골 소녀의 일기장이 되어버린다. 고정된 관점과 시선은 얼마나 위험한가.

  중국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 진나라의 시조 진시황에게는 스무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중 가장 출중하고 명석했던 큰 아들 부소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마천의 ‘사기’를 토대로 장정일은 다양한 문헌을 뒤적이며 역사의 ‘구멍’을 찾아냈다. 그 구멍은 호기심의 블랙홀처럼 모든 상상력과 추측을 빨아들이는 대신 어둠속에서 선명한 한 줄기 빛을 내뿜는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을 역사속의 인물을 되살려내는 전지전능하신 작가는 타당한 이유를 독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분명히 이 글은 소설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부소이자 부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가면이라고 선언하는 서술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을 따지거나 소설의 잣대를 거부한다. 분명한 것은 어떤 형식의 이야기든 아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이 책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주 훌륭한 소설이다. 개연성 있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고 부정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됐든 독자의 오감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책을 뒤늦게나마 만나서 다행이다.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부소가 아버지 진시황의 견제를 받아 만리장성까지의 먼 길을 떠나야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기록도 희미하고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소가 떠난 지명조차 밝혀놓지 않았으나 작가의 구라는 들어줄만 하다. 변방의 만리장성을 쌓아가며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천하통일의 일등 공신이었던 몽염에게 보내 희생양으로 삼는 전략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눈이 멀어 몽염에게 도착한 부소는 극진한 치료와 대접을 받고 다시 시력을 회복하며 몽염과 사랑에 빠진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몽염에게로 옮아갔다고 볼 수 있다.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부소는 아버지와 죽음을 통해 이세 황제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변방에서 허망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제목처럼 편지의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끝없이 떠벌이는 형식은 단 한 번의 휴지기 없이 한 호흡으로 길게 하소연한다. 말없이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아버지와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지껄이는 아들 부소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1인칭 서술자의 끊임없는 언변에 혀를 내두르도록 만들어버린 역사적 상황과 틈새에 있지 않다. 중요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은 이 소설의 내용을 채우고 있는 기본 토대라면 아버지와 비교를 통해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삶의 진정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항변으로 들린다.

  진시황의 무덤에서 출토된 실물크기의 병마용들을 전시했던 코엑스 전시회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 그 엄청난 규모와 부장품에 놀란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한 인간의 욕망이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절대 권력에 오른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이 역사를 이렇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닐까 싶다. 부소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지만 이 책은 어쩌?아버지 진시황의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토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다른 역사적 인물을 살려내서 진시황에 대해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이 들었다.

  가정법이 통용되지 않는 역사를 뒤집어보는 일은 철지난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같을까? 우리의 관심은 확인되지 않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호기심일 것이다. 기록된 역사의 구멍과 간극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상상력이 소설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자유롭게 지껄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만은 사실 아닌가?


0601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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