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2 - 고조선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2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2권) 지음 / 사계절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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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대 이전,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은 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본격적인 정착 생활을 시작했던 우리 조상들이 국가를 형성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2000여 년 전 고조선이라 불리는 나라다. 그래서 단기(檀紀)는 2333년을 더해서 사용한다. 올해는 단기 4339년이다. 단군의 실존 여부를 와 고조선의 역사적 의미는 우리 민족의 국가의 기원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이다. 평양의 위치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최근 북한 학계에서 단군의 묘를 발굴하고 실존 인물로 인정한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여겨진다.

  씨족사회에서 부족간의 전쟁을 거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형성된 시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동기 시대이후 ‘고인돌’의 무덤은 인류의 신산스런 역사를 암시한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생겨나고 원시 공동체 사회의 평등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힘에 겨운 노동과 협동으로 거대한 무덤을 세운 사람들은 자발적 노력과 헌신이었을까? 죽음 이후까지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위정자들은 많게는 1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순장하기도 했다. 주거생활과 농경은 점차 고도로 발달했고 청동기는 농경을 위한 도구 사용을 넘어 전쟁과 살상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의미가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재조명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권력에 관한 이야기와 생성과정은 생략되어 있어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넘어선 힘에 대한, 권력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수천 년 간 지속되어온 전쟁과 국가 간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적 요구와 민중들의 생존 때문이 아니다. 한나라에게 패망한 고조선은 이후 고구려와 고려로 그 국가의 명칭이 살아 숨쉬게 된다.

  여전히 민무늬 토기를 만들고 청동기와 석기가 공존했던 농경 중심의 문화가 이어지던 시대였던 고조선은 우리 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국가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보호해주는 일차적인 목적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전쟁에 동원되기도 하고 삶의 터전이 짓밟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재는 권력자를 위해 복무했던 폭력적인 제도가 아니었을까하는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전쟁과 살육이 반복되는 가운데 국가의 흥망성쇠는 이어진다. 그렇다고 사람이 바뀌거나 생활의 형태가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속한 국가의 명칭만 바뀌어갈 뿐이다.

  직조 기술이 발달하기 베를 짜고 옷을 해 입기 시작했으며 장신구와 치장거리가 만들어지고 과학적인 이성의 혁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고인돌위에 새겨진 별자리는 기나긴 밤시간 동안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신비와 별들의 아름다움을 느낀 결과물이 아닐까. 과학적 영농의 시작은 자연현상의 예측과 대처 방법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에 속한 부분에서 인간이라는 독립적 개체로서 본격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는 시기였을 것이다. 그때보다 우리의 삶은 더 나아졌을까?

  어떤 면에서 인류는 끊임없는 진보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올가미속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천년 전보다 나아진 것은 물질과 생존의 문제 밖에 없을까? 지금도 물질문명의 혜택과 식량과 생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엄청난 수의 인류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잠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많은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생활을 만들고 시대를 이끌며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모두의 오늘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가 되는 것처럼.

  옷을 벗고 뛰어다니던 현생 인류가 이제는 농경과 정착 생활을 거쳐 국가를 형성했다. 다음은 고구려다. 국가와 시대를 뛰어넘는 끈끈한 생활의 역사 속으로 걸어간다.


060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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