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세기말과 신세기의 구분은 의미 없다. 하지만 인간은 늘 무엇인가 정리하고 구분짓고 싶어하는 버릇이 있다. 불연속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가 따로국밥이다. 20세기가 끝났다고 해서, 21세기가 시작됐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 그것은 분명 심리적인 문제일 것이고 하나의 계기를 만들고 싶은 또 다른 욕망일 것이다.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고 매주 다시 맞이하는 월요일에 대한 반복적인 시간 패턴에 적응하는 인간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난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늘 대화는 필요하다. 상대방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눈으로 내가 비쳐지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공존과 대화보다 대립과 갈등이 심했다.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보충하자는 전략적 제휴도 아니고 모르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와는 다른 대화가 진행되어 왔다.

  비판적 지성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주장하는 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 도정일과 안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기초가 된다는 신념을 가진 동물사회학을 전공한 자연과학자 최재천의 만남이 <대담>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특별한 만남도 아니고 출판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지성사 최초의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없지만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생각의 방식과 사물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는 즐거움은 덤으로 얻는다. 우리는 늘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 사물들에게 무심한 눈길을 보내고 선택적 관심과 고정된 시선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인문학을 전공한 나에게는 자연과학적 관점과 시선이 누구보다도 부족하다. 인간에 대한 이해방식과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니 사물과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세상에 대한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라는 전제하에, 많이 안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믿을 수도 없다. 호기심과 끊임없는 앎에 대한 욕망은 사람을 때로는 지치고 힘들게 한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 사람의 긴 대화를 읽어가면서 결국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회귀했다. 문득, 누군가 내게 위선보다 위악이 더 나쁘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유전자를 통해 세상에 태어나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과정과 방법은 실로 경이롭다. 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조차 본질적으로는 아름답고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과학적으로, 아니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속성과 이해가 필요하듯 인문학적 인간에 대한 관심과 통찰은 더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두 가지 성향을 지닌 인간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다.

  박학다식한 두 석학의 지적 유희와 번지르르한 말장난을 우려하지는 않아도 된다. 나름대로 도정일은 폭넓은 자연과학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최재천은 문학 소년이었던 시절을 말할 만큼 인문학과 공감할 수 있는 학문인 동물들의 사회생물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불꽃 튀는 논쟁과 첨예한 대결은 찾아볼 수 없다. 시종일관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고 상이할 것 같은 두 학문 분야의 접점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의미 있을 뿐이다. 서로 놓치거나 구멍이 뚫려버린 부분들을 비추어 주고 중첩되는 부분에 대해서 공유하는 방식은 하나의 사유 방식으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해석과 대안에 일정부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에서 학부제가 운영되는 취지가 제대로 살려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의 학문과 전공의 교육과정이 이렇게 철저하게 분과주의로 흐른 원인도 고민해보고 앞으로의 길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진정한 교양인으로 길러내기 위한 노력을 대학이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사회의 ‘능력있는 공부기계’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점검도 필요하다. 효율과 결과에 집착하고 경제성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대한 반성도 절실하다.

  21세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은 언제나 불투명했다. 인간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두 학자의 말에서 찾아본다.

  저는 21세기의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강의를 많이 합니다. 2003년 1월에 모리 전 일본 총리의 초?받아서 일본에 갔다가 이런 강의를 했습니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도 하고 호모 폴리티구스이기도 하지만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간이기도 하는 내용이었어요. - P. 593
  남미의 이반 일리치 같은 사람도 공생의 지혜와 철학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어요. 일리치는 인간이 가진 대표적인 ‘공생의 도구’로 자전거, 도서관, 그리고 시(詩)를 꼽았습니다. - P. 596(최재천)

  두터운 세계를 꿈꾸는 호모 심비우스,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는 지점도 이곳이고, 과학과 인문학이 손잡고 공생을 추구해야 할 지점도 이곳인 것 같습니다. - P. 597(도정일)


060116 -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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