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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풍경
윤난지 지음 / 한길아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인류의 역사만큼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것이 예술이다. 인간이 이루어낸 어떤 분야든, 변화의 속도가 현기증이 날 정도가 아닌 것이 있을까마는 미술은 어떤 분야보다도 훨씬 민감하고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 준다. 특히 근대 이후의 현대 미술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거나 감상하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설적으로 작가들의 의도는 화이트 큐브로 불리는 박제된 미술관의 폐쇄된 공간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가 이루지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건축에 나타난 미술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은 현실과 거리를 둔 채 일상과는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서구사회를 이전과 구분 짓는 가장 큰 계기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정착, 그리고 이에 따른 대중사회로의 전환이다.”는 작가의 진단은 객관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과 지금 보여주고 있는 풍경은 과거가 아닌 진행형의 미술이기 때문에 훨씬 더 흥미롭다. 그래서 윤난지는 <현대 미술의 풍경>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미술의 역할과 위상을 점검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롤랑 바르트의 말을 인용한 ‘작가는 죽었는가’를 현대 미술의 특징으로 짚어 낸다. 아울러 21세기의 화두로 환경과 생태 문제의 중요성이 미술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설치미술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은 시간의 예술을 넘어 이제는 특정한 장소에 위치함으로써 가치는 독특한 미적 가치를 살펴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국의 구겐하임이 현대미술에서새로운 패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 상황을 점검한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현대 미술의 풍경은 대체로 이러하다. 2부는 현장이라는 제목을 달고 브루스 나우만에서 로스 블렉너까지 지금 현재 진행중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의 작업 ‘현장’을 일별해본다. 직접 보여주는 것만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과천 국립 현대미술관 담장에 거대한 역삼각형 조형물을 설치한 마우로 스타치올리와 올림픽 공원에 설치된 대니 카라반의 ‘빛의 길’등은 관심있게 보고 기억에 남아있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 짐작했던 작품들이었다. 공간과 시간의 흐름속에서 설치 미술이 갖는 의미는 영속성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더 큰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듯하다. 아쉬운 것은 국내 작가는 한명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현대 미술이 걸어온 길도 결국은 사회와 역사의 변화 발전 속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과 미적 가치는 끝없이 변화하는 것이고 미술가의 눈에 비친 세상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무언의 메시지는 한 개인의 작가의 개성을 넘어 시대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죽음’이라는 말에 대한 논의가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미술품의 생산과 수집 매매와 전시, 기획은 모두 경제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구겐하임이다. 자본이 미술에 미치는 영향은 긍 ․ 부정의 논의를 넘어 상상을 초월한다. 구겐하임에 대한 저자의 일갈이다.
구겐하임 신화는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을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만든 영웅 신화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보면 돈을 무기로 전 세계를 미국이라는 문화제국의 영토로 포섭하려는 문화식민 기획의 비화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와 같은 변방 국가에서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미국의 속국이 되어간다는 피해의식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 P. 169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절정이며 서구 유럽화이고 ‘미국화’이다. 사회 경제적 측면 뿐만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거스를 수 없는 주류가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을 우리와 상관없는 논쟁이나 현실과 거리가 먼 문제로 인식하는 우리의 태도는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물론 미술을 사회와 절연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예술은 “문자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미술만의 독특한 서술성임을 증명”하는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무용이든. 문자예술인 문학을 넘어선 자리에 미술이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장르의 우열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대 미술은 전통적인 회화 위주의 박제된 전시공간을 벗어나 좀 더 가깝게 우리들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반성하고 확 과정 속에 서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과천의 산속으로 기어들어가지 않으면 ‘현대 미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르네상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연중 기획으로 외국의 미술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현대 미술에 대한 감상 기회가 적은 것이 아쉽다.
저자의 객관적이고 차분한 설명에 깊이가 있어 읽을 만한 책이다. 주관적 감상과 가벼운 느낌 위주로 산만하거나 흥미위주로 엮어 놓은 책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푸코의 책을 만난 후였지만, 보들리야르를 읽지 않아 개념 설명만으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시뮬라시옹’이 숙제로 남았다.
06011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