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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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신입생 무렵으로 기억한다. 박일문의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반향을 일으킬 제목이 주는 강렬함에 이끌렸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라는 한 마디를 지금도 기억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쓴 시의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빌려왔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니까 브레히트의 시집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무 살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란색 표지의 강렬함과 브레히트의 흑백 사진이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구나 김광규의 번역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나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책이었다. 책꽂이를 뒤적이니 책이 없다. 당연히 그곳에 있을 거라 믿었던 대상의 부재를 확인하는 순간 느껴야 하는 당혹감. 과거의 시간과 그리움들은 그렇게 추억 속에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점을 뒤적였지만 절판되었고 중고책 사이트 고고북에서 검색하니 한 권이 나왔다. 얼른 주문하고 우여곡절 끝에 수원 남문서적에서 열흘 만에 책이 도착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추억에 잠겼고 책장을 넘기다 가슴이 뭉클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 사랑함으로써 행복한 나
1997. 7. 5  蓮

  연필로 휘갈겨 쓴 책 속지의 메모가 왼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연꽃이란 이름을 보아서는 책 주인은 여성이었을 것이고 세상과 삶에 대해 고민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 사랑이 어떤 종류이든 뜨거운 가슴과 열정으로 삶을 진지하게 고민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을 했다. 무슨 연유에서 시집을 헌 책방에 내놓았을까? 삶의 곤궁함이나 힘겨움 때문이 아니라 다만 이상적 꿈에 저당 잡힌 젊은 날에 대한 회한이었을까? 헌 책방에서 구입한 시집 한 권으로 참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브레히트도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짧은 멈춤으로 보인다.
- ‘사랑하는 사람들’중에서

세기를 뛰어넘는 ‘사랑’은 그 느낌과 감각, 대상과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읽혀질 것이다. 영원앞에 사랑은 짧은 멈춤일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와 그래도 사랑함으로써 행복하다고 말하는 어느 독자의 목소리는 분명히 공감하고 있다. 관점과 형식이 다를 뿐.

  1898년에 태어나 20세기를 온몸으로 시작했던 시인은 15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젊은 날의 열정과 뜨거움을 표출하기 시작하면서 세계 양차 대전을 맞이했고 히틀러의 악령을 피해 러시아, 미국, 베를린으로 망명 생활을 하며 끝까지 살아 남았다. 공산당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세상을 간파했다. 지나치게 직설적으로 혹은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비참한 현실과 전쟁의 참혹함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을 시로 토해내고 있다.

  현실참여의 목소리가 지니는 문제점은 거칠고 투박하게 문학을 수단화하는 데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내용과 형식을 분리할 수 없지만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에 대한 지루한 논쟁은 이제 화석이 되어간다. 브레히트는 시의 내용과 영역이 지니는 의미를 넘어 선 자리에 위치한 고급한 문학이 아니다. 설익은 구호는 아닐지라도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참함과 불가해함을 타계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읽힌다. 지나친 냉소와 아이러니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이 되고 직설적인 묘사와 열정에 찬 목소리는 시인의 젊은 날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여러 권의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선집의 형태로 펴냈기 때문에 브레히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맛보기 수준의 작품들을 엄선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시가 전하는 힘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때가 있다. 초판이 발행됐던 1985년을 생각해 보면 이 시집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추억은 사진보다 선명하다.

책을 읽는 친구여, 이 책을 내려놓지 마라.
몇 명의 사내들이 임시 야간 숙소를 얻고
바람은 하룻밤 동안 그들을 비켜가고
그들에게 내리려던 눈은 길 위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는 이 세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착취의 시대가 짧아지지 않는다.
- ‘임시 야간 숙소’중에서

배워라, 난민 수용소에 있는 남자여!
배워라, 감옥에 갇힌 사나이여!
배워라,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이여!
배월, 나이 60이 넘은 사람들이여!
학교를 찾아가라, 집없는 자여!
지식을 얻어라, 추위에 떠는 자여!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 ‘배움을 찬양함’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열망들에 대해 목숨을 걸 수 있는 특권을 가져본 사람은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겪었던 무수한 시행착오와 삶에 대한 열정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순수함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조폭 영화의 대사처럼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은 강한 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걸까. 옛 전우들은 사라져 버렸고 추억은 흑백 사진처럼 앨범을 장식하고 있는 시대는 아니다. 진행형의 역사는 여전히 도도히 흐르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새벽은 어둡기만 하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가슴에 ‘사랑’이 남은 사람들이다. 친구에 대한, 혹은 삶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남은 생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늘이 생각난다. 그 시퍼런 투명함에 눈을 베이고 마음을 씻어 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을 감사히 여기며 자신을 미워하더라도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고스란히 간직해야겠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07052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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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1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때 한 선배가 선물해줘서 읽은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읽었던 기억도 다 흐려졌는데 <살아남은 자의 슬픔>만 뚜렷이 남았습니다.
요즘은 가끔 생각합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건가. 아니면
살아남은 게 결국 강한 건가...

비로그인 2007-05-21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읽을 때는 그 전에 읽었던 사람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묘한 분위기인데요.

sceptic 2007-05-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 님,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거겠죠?
그래서 슬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承姸 님, 간만에 헌책방에서 책 구입하고 참 많은 생각과 추측과 상상으로 옛 생각을 좀 했고 원래 주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承姸


비로그인 2008-10-1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외국시집이라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리뷰 쓰셨쿤요. 좀 냉소적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슬퍼해야 하는 건 아니길 빌며....Thanks To~~~

sceptic 2008-10-14 13:58   좋아요 0 | URL
살아남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순 없죠...어떻게 살아 남았느냐에 따라 부채감 정도는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은 아닐런지요...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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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을 짓고 사는 동물은 인간만이 아니다. 조류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동물들이 집을 짓고 산다. 다만 기능적인 목적 이외에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을 더해서 집을 짓는 동물은 없다. 더구나 주거공간인 집의 개념을 넘어 예술이 되어 버린 ‘건축’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영역이 되었다. 건축은 ‘공간’이다. 비움으로 얻어지는 공간.

  그릇은 비어있는 공간을 위한 도구이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도자기라도 마찬가지도 실용적 측면에서 보면 빈 공간을 위한 낭비적 요소일 뿐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실용적 목적에서라면 기후나 지형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가장 최적의 공간만을 고려하면 된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주거의 형태와 문화가 형성되면서 집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

  건축은 이제 인간의 행복과 직결된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건축물 안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는지 생각해 보자. 인간의 옷만큼이나 친숙하고 중요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의 조건이다. 그 조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 건축가만의 몫일까?

  철학자보다 에세이스트로 우리에게 익숙한 알랭 드 보통의 신작 <행복의 건축>은 건축에 관한 에세이다. 건축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건축의 학문적 관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전문 건축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필요한 이야기들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건물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역할 그리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들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축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놓여 있다. 단 하나의 개인과 가족을 위한 집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사람을 위한 건물을 짓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위한 건축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건물들은 그 목적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제 역할과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미감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보통은 이 책을 통해 건물을 통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의미를 곱씹게 해 준다. 다소 사색적이고 주관적인 느낌과 개인의 감정과 정서가 객관적 대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으나 저자의 관점은 한 쪽에 치우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큼 삐딱하거나 독선적인 것은 아니다. 건축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과 불행 혹은 건축의 역사와 문화가 각 지역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여유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책의 장점은 뒤집어 보면 단점으로 바뀐다. 건축과 관련된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과 다르게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건물들에 대한 인상 비평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책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을만큼 다양한 색깔을 띤 책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자칫 ‘건축’에 대한 지식이나 건축 관련 서적으로 오해하는 독자에게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을 법하다.

  행복을 위한 건축은 어떤 것일까? 저자는 우선 이렇게 평범하지만 거시적 관점의 주제를 던지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집이라는 사적이고 물질적인 장소와 심리적인 공간으로 변화해온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왜 건축이라는 분야에서까지 인간의 삶과 행복이라는 문제를 연관지어 살펴보아야 하는지 저자는 말하고 있다.

“유용하고,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건축의 의무다.”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은 그렇게 주장했다. “건축이 단순한 집짓기와 구별되는 것은 장식 때문이다.” 조지 길버트 스콧 경도 그렇게 말했다. - P. 52

  건축과 관련된 옛 문헌들과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저자는 건축의 의미와 역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자주 제공한다. 숨 쉬고 살아가는 공간 전부가 건축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축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치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이제 건축은 우리 생활의 필수 여건이 되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역할을 깊이 생각하거나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다.

  어떤 스타일로 지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말하는 건물에 대한 설명도 저자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건물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비평을 통해 답을 찾아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책이 아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추억의 공간, 이상과 꿈을 실현하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이 책은 빈 들판에 인류가 이룩해 놓은 수직에 대한 꿈들을 점검하고 있다. 수많은 빌딩과 콘크리트 건물들의 삭막함 속에서 건축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어쩌면 사치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삽입된 건물들과 집들이 보여주는 공간과 건축에 대한 생각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적인 한옥이나 옛 공간들이 보여주는 여유를 떠올렸지만 현재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둘러보면 여전히 먼 곳에 위치한 그들만의 담론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예술 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노발리스) - P. 198

혼란과 질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건물에서만 우리는 질서를 세우는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 수 있다. - P. 203

  건축에 대한 다양한 정의 속에서 저자는 “아름다움은 부분들 사이의 일치된 관계의 산물이다.(233페이지)”라는 인상적인 말을 남겨 놓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공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곧 행복과 직결된다. 고정관념을 깨거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그 둘이 잘 조화를 이루거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들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 삽화가 들어간 비닐 하드 커버로 표지를 감싼 책의 디자인만큼만 행복을 전해주는 집에 살고 싶다. 이 책은 손에 잡히는 촉감과 시각적 이미지, 물리적 실용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070520-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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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5-21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저도 구입할까 하다가 미뤄둔 책인데 읽고 싶어집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건축과 인간의 삶 그들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봅니다.

sceptic 2007-05-21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인간을 둘러 싼 모든 것들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건축도 인간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됩니다.

드팀전 2007-06-0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축하해요.^^

sceptic 2007-06-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메일 받고 알았어요...^^...감사합니다...이 달 책 구입비 줄게됐어요...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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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너머 멀리 바라다 보이는 녹음이 짙은 산에 바람이 분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 같은 방향으로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뒤척인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의 나무들이 서로 엉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모으던 숲의 바람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본다.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고 볼 수도 있다. 눈으로 보는 소리도 때로는 마음을 흔든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홀로 잔을 들어 마시니
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
술 또한 내 입을 거스르지 않네
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
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달 것도 없구려
뜻에만 맞으면 즐겁다는 말
이 말을 나는 가져보려네

  세상을 벗어나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시가 아니다. 조선 시대 어느 선비의 시 구절에서 청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대의 지향하는 이상향이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월 따라 변해왔다. 우리 선조들의 지향점을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복고적 현학취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늘 현재에 있지 않다. 과거 우리의 삶과 미래의 희망에 비추어 끊임없이 비교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절대적 척도가 없는 상대적 가치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얼마나 가졌는지 확인하고 나의 행복이나 불행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행복은 이 시를 지은 선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지양의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는 고문서에서 건져 올린 우리 전통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지 묻은 책들 속에서 소리를 건져 올리는 일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귀에 들리는 소리의 느낌들을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상상하게 해 준다. 직접 듣지 않고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백번 읽어도 한 번 듣느니만 못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음악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늘 한겨레에 최장집 교수의 ‘거대 담론’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입맛이 썼다. 논리와 정교함을 비판하기에 앞서 평화나 인권과 같은 거대 담론이 우리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가 그 첫 째 이유였고 그와 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유감스러웠다. 우리 삶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을 쉽게 결론 내리거나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가 없다. 다만 건강한 토론과 논쟁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가치들이 떠오르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론들이 도출된다면 좋겠지만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개인적인 생각때문인지도 모른다.

  책과 관련된 잡다한 비판이나 분석도 마찬가지다 우리 음악이기 때문에 들어야 한다거나 옛것이니까 되살려 전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작은 소득이다. 듣기 싫지만 우리 음악이니 열심히 찾아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귀에 익숙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우리 음악은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우리 옛 음악에 관한 문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수룡음이나 염양춘, 봉황곡, 대취타 등 개별 곡을 통해 역사와 그 주변을 상세히 설명하는 대목은 기억에 오래 남을 수가 없다. 제목만 들어보았거나 처음 듣는 곡들에 대한 설명이 가슴에 남지 않는다. 한 곡 한 곡 찾아 들으면서 이 책을 음미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이 책의 사용법이다. 도산십이곡이나 농부가, 회심곡에 대한 설명들은 가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가늠해 볼만 했다. 선비들의 애환과 멋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겼던 곡들도 소개되어 있으며 5장에서는 우리 귀에 가자 익숙한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다행스럽다.

  지루한 음악 이론이나 우리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서술 방식은 저자 개인의 감상과 역사적인 관점의 해설이다. 객관적 사실들과 주관적인 감상이 적절하게 뒤섞여 지루하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특히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상당한 분량의 그림들이 이해를 돕는다. 듣는 대신 그림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다양한 풍속화와 민화, 사진 등 정성을 쏟은 자료들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편집이 돋보이는 책이다. 공을 들인 흔적들은 독자에게 말없이 전해진다.

  노래 가사와 한글 번역 부분들은 들리지 않을 뿐 분위기와 내용을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는 ‘회심곡’ 같은 노래는 꼭 한 번 제대로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저자의 의도는 절반쯤 성공한 것 같다.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들리지 않는 우리의 귀를 조금은 더 열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나 소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07051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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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상상초월 동물생활백서
비투스 B. 드뢰셔 지음, 이영희 옮김 / 이마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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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의 진화론은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의 가치체계와 과학적 질서의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과학의 발전과 진보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한 계단씩 올라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지식 체계와 세계관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줄곧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다윈의 자연선택은 기본적으로 개체 차원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어왔다. 반론이나 다른 차원의 이론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동물행동 연구가들의 지속적인 연구 결과 자연선택은 개체 차원이 아니라 ‘집단선택’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비투스 B 되뢰셔의 <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라는 우스꽝스런 제목의 책은 최근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

  솔로몬 왕이 끼고 있던 반지를 돌리면 동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제목을 가져와 <솔로몬 왕의 반지König Salomons Ring>라는 원제가 삽화가 곁들여져 <하이에나는 우유배달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책 표지나 편집 의도는 친근하고 재미있는 과학 상식 백과의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어쩐지 가벼워 보인다. 흥미 위주의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조금 동떨어져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케팅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저자의 수고로움은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수십 년 간 온몸으로 쓴 흔적과 노력들이 곳곳에 땀방울로 맺혀있다. 동물행동을 연구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지루하고 긴 인내력의 싸움이며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대화이다. 끊임없는 관찰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면밀하게 분석하고 검토한 결과 하나의 패턴을 발견하고 원인과 결과를 이끌어 내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고개를 숙이는 과정이 연구 성과로 나타난다. 다른 과학 이론과 달리 동물행동 연구이론들은 그래서 모두 귀납적이며 가변적이다. 또 다른 행동을 보이는 개체가 나타날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 패턴을 완벽하게 관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서 발견한 어떤 결과보다도 긴 시간을 견디며 위험을 무릅쓴 과정들이 인상적이다.

  동물들의 언어능력, 결혼제도, 암컷의 지위, 자녀 양육법, 유희 본능, 영장류들의 인간적인 모습, 죽음에 대한 의식, 생존 전략, 사막 생존법, 겨울나기, 폭력성, 균형 메커니즘, 비밀 병기를 거쳐 조화로운 삶의 기술로 책을 맺고 있다.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며 긴 여행을 다녀 온 것처럼 나른하고 피로한 느낌이었다. 마치 책으로 보는 ‘동물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들을 다룰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 자연 생태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행동과 삶의 과정 혹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마치 동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거대한 망원렌즈처럼 보인다. 지구 곳곳에 위치한 동물들의 세계는 잘 짜여진 교향곡처럼 완벽하고 조화롭게 연주되고 있다.

  인간의 존재가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동물들의 삶을 알아야겠다. 위험한 존재로서 자연을 파괴하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인간에게 자연을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서부터 그들의 공동체 생활의 지혜를 살펴보는 일은 마치 인류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커다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은 얼마나 위대하며 하찮은 존재인가 하는 극단적인 의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수십 년 간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인간이 알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역할에 충실하다. 그 과정을 통해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 이 책의 내용이지만 단순한 보고서의 형식을 넘어선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 독자들의 몫이다. 그것은 바로 솔로몬 왕의 지혜이다. 그 지혜의 원천이 바로 동물들의 세계라는 말이다. 개체 중심의 자연 선택이 아니라 집단선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하는 문제이다. 조화로운 삶을 이끌어내는 공동체적 삶의 지혜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결국 동물들에게, 자연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놓여 있었다고 읽는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이 책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미로 읽든 결국 그것도 독자의 몫이겠다. 흥미 있는 자연과학 서적임에 틀림없는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동물들의 행동이 보여주는 의미는 사회학적,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로 끊임없이 그 외연이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수도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 진정한 삶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유통을 매고 배달에 나선 하이에나의 애교스런 표지보다 훨씬 진지하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인간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던 책이다.


07051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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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딜레마 여행 -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사고 실험 100
줄리언 바지니 지음, 정지인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은 독자들에게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Essays in love>라는 원제나 <on love>라는 미국판 제목의 책을 보고 우리나라 독자들은 얼마나 그 책을 찾았을까? 우리나라에서 1995년에 <로맨스>라는 시덥잖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말아먹고 2002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중역된 같은 책은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이다. 이 책은 제목이 눈길을 끄는 제목이 아니었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보통’ 붐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쾌한 딜레마 여행>의 원제는 <The pig that wants to be eaten>이다. 일생일대의 목표가 인간에게 잡아먹히기를 원하는 돼지가 있다면 우리는 육식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튼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은 제법 팔리는 모양이다. 딜레마는 진퇴양난이라는 한자성어와 가장 잘 어울린다. 논리학의 용어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봐도 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무려 100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고대 철학자들이 제시했던 갖가지 역설에서부터 현대적인 의미의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한다. 유사한 말들이지만 모순과 역설, 딜레마와 관련된 수많은 사례 모음집과 같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부터 영화 메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흥미 있는 주제들을 실제 사례와 상황을 만들어 간략하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을 표시해 놓았다. 그 다음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뒤따른다. 길어야 2~3페이지 분량으로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집중력을 요구한다. 길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쉽고 단순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짧고 긴 여운을 남긴다. 철학자의 대중화 노력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철학 입문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익숙한 상황과 뻔한 일들은 절대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인 생각에 뇌를 맡긴다. 돌아보거나 의심하지 않고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으로 규정지어 버린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금방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매너리즘에 젖은 생활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귀차니즘과 이기주의 완벽한 결합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돼지와 유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이성이 빠진 상상력은 공상에 지나지 않고 상상력 없는 이성은 빈약하다’는 저자의 머리말은 이 책의 특성을 요약하고 있다. 상상력에 의한 상황 설정이나 가상 시나리오가 모두 이성에 의해 판단하고 분석해 보아야 할 문제로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현실 상황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장면들은 그렇게 지금 우리들 현재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간단한 문제가 남는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거나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러나 그 순간 모두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환한 미소를 짓거나 승리의 기쁨 따위를 누릴 수 없는 딜레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고 다시 한 번 눈여겨보는 태도를 갖으라는 무언의 충고. 기계적인 선악의 판단 기준과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 낸 기준들이 우리들의 감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속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단지 우리의 현재 믿음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 P. 24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다’라는 말은 흔히 나쁜 행동에 대한 빈약한 합리화라고 여겨진다. - P. 35

  저자의 충고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말들에 밑줄 긋다가 포기했다. 책 전체가 던지는 모든 질문들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놓칠 수 없는 역작이니 이 책을 꼭 읽으라는 조언이 아니라 어떤 책이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에게는 특별한 책이 된다. 너무 많은 사고 훈련은 오히려 뇌를 지치게 한다. 100번 쯤 얻어터지고 나면 나중에는 코피가 난다. 지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07051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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