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창문 너머 멀리 바라다 보이는 녹음이 짙은 산에 바람이 분다. 나무들은 제멋대로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 같은 방향으로 때로는 다른 방향으로 뒤척인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의 나무들이 서로 엉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바람 소리가 들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모으던 숲의 바람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본다. 그렇게 소리를 듣지 않고 볼 수도 있다. 눈으로 보는 소리도 때로는 마음을 흔든다.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홀로 잔을 들어 마시니
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
술 또한 내 입을 거스르지 않네
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
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달 것도 없구려
뜻에만 맞으면 즐겁다는 말
이 말을 나는 가져보려네

  세상을 벗어나 절대 고독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시가 아니다. 조선 시대 어느 선비의 시 구절에서 청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대의 지향하는 이상향이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월 따라 변해왔다. 우리 선조들의 지향점을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복고적 현학취가 아니라 우리들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늘 현재에 있지 않다. 과거 우리의 삶과 미래의 희망에 비추어 끊임없이 비교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은 절대적 척도가 없는 상대적 가치라고 말한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얼마나 가졌는지 확인하고 나의 행복이나 불행도 타인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정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행복은 이 시를 지은 선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지양의 <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는 고문서에서 건져 올린 우리 전통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지 묻은 책들 속에서 소리를 건져 올리는 일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귀에 들리는 소리의 느낌들을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 상상하게 해 준다. 직접 듣지 않고 음악과 관련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백번 읽어도 한 번 듣느니만 못하다. 그런 줄 알면서도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음악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오늘 한겨레에 최장집 교수의 ‘거대 담론’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입맛이 썼다. 논리와 정교함을 비판하기에 앞서 평화나 인권과 같은 거대 담론이 우리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자명한 진리가 그 첫 째 이유였고 그와 같은 논란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유감스러웠다. 우리 삶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을 쉽게 결론 내리거나 어느 한 쪽 편을 들 수가 없다. 다만 건강한 토론과 논쟁들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 가치들이 떠오르고 정치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론들이 도출된다면 좋겠지만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치 지향적이지 못하다는 개인적인 생각때문인지도 모른다.

  책과 관련된 잡다한 비판이나 분석도 마찬가지다 우리 음악이기 때문에 들어야 한다거나 옛것이니까 되살려 전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뼈아픈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작은 소득이다. 듣기 싫지만 우리 음악이니 열심히 찾아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귀에 익숙하고 여러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우리 음악은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우리 옛 음악에 관한 문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수룡음이나 염양춘, 봉황곡, 대취타 등 개별 곡을 통해 역사와 그 주변을 상세히 설명하는 대목은 기억에 오래 남을 수가 없다. 제목만 들어보았거나 처음 듣는 곡들에 대한 설명이 가슴에 남지 않는다. 한 곡 한 곡 찾아 들으면서 이 책을 음미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이 책의 사용법이다. 도산십이곡이나 농부가, 회심곡에 대한 설명들은 가사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소리를 가늠해 볼만 했다. 선비들의 애환과 멋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겼던 곡들도 소개되어 있으며 5장에서는 우리 귀에 가자 익숙한 판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다행스럽다.

  지루한 음악 이론이나 우리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인 서술 방식은 저자 개인의 감상과 역사적인 관점의 해설이다. 객관적 사실들과 주관적인 감상이 적절하게 뒤섞여 지루하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특히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상당한 분량의 그림들이 이해를 돕는다. 듣는 대신 그림을 보며 상상할 수 있다. 다양한 풍속화와 민화, 사진 등 정성을 쏟은 자료들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편집이 돋보이는 책이다. 공을 들인 흔적들은 독자에게 말없이 전해진다.

  노래 가사와 한글 번역 부분들은 들리지 않을 뿐 분위기와 내용을 감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는 ‘회심곡’ 같은 노래는 꼭 한 번 제대로 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저자의 의도는 절반쯤 성공한 것 같다. 알지 못해서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많은 것들이 있다. 들리지 않는 우리의 귀를 조금은 더 열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나 소리를 찾을 수 있는 책이다.


07051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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