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딜레마 여행 -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사고 실험 100
줄리언 바지니 지음, 정지인 옮김 / 한겨레출판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책의 제목은 독자들에게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Essays in love>라는 원제나 <on love>라는 미국판 제목의 책을 보고 우리나라 독자들은 얼마나 그 책을 찾았을까? 우리나라에서 1995년에 <로맨스>라는 시덥잖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말아먹고 2002년에 다른 출판사에서 중역된 같은 책은 제목 때문인지 몰라도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이다. 이 책은 제목이 눈길을 끄는 제목이 아니었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보통’ 붐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쾌한 딜레마 여행>의 원제는 <The pig that wants to be eaten>이다. 일생일대의 목표가 인간에게 잡아먹히기를 원하는 돼지가 있다면 우리는 육식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튼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은 제법 팔리는 모양이다. 딜레마는 진퇴양난이라는 한자성어와 가장 잘 어울린다. 논리학의 용어로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봐도 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다. 책의 성격과 내용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무려 100가지 딜레마를 제시한다. 고대 철학자들이 제시했던 갖가지 역설에서부터 현대적인 의미의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황들을 제시한다. 유사한 말들이지만 모순과 역설, 딜레마와 관련된 수많은 사례 모음집과 같다.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경주부터 영화 메트릭스에 이르기까지 흥미 있는 주제들을 실제 사례와 상황을 만들어 간략하게 제시하고 그와 관련된 책이나 이론들을 표시해 놓았다. 그 다음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내용에 대한 검토와 분석이 뒤따른다. 길어야 2~3페이지 분량으로 하나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보다는 집중력을 요구한다. 길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쉽고 단순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짧고 긴 여운을 남긴다. 철학자의 대중화 노력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철학 입문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간다. 익숙한 상황과 뻔한 일들은 절대 생각하지 않고 습관적인 생각에 뇌를 맡긴다. 돌아보거나 의심하지 않고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으로 규정지어 버린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금방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개인의 이익이나 매너리즘에 젖은 생활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 귀차니즘과 이기주의 완벽한 결합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 돼지와 유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이성이 빠진 상상력은 공상에 지나지 않고 상상력 없는 이성은 빈약하다’는 저자의 머리말은 이 책의 특성을 요약하고 있다. 상상력에 의한 상황 설정이나 가상 시나리오가 모두 이성에 의해 판단하고 분석해 보아야 할 문제로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현실 상황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장면들은 그렇게 지금 우리들 현재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간단한 문제가 남는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거나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그러나 그 순간 모두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환한 미소를 짓거나 승리의 기쁨 따위를 누릴 수 없는 딜레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고 다시 한 번 눈여겨보는 태도를 갖으라는 무언의 충고. 기계적인 선악의 판단 기준과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 낸 기준들이 우리들의 감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속에서 오로지 단 하나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단지 우리의 현재 믿음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 P. 24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다’라는 말은 흔히 나쁜 행동에 대한 빈약한 합리화라고 여겨진다. - P. 35

  저자의 충고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말들에 밑줄 긋다가 포기했다. 책 전체가 던지는 모든 질문들은 지금까지 언급했던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놓칠 수 없는 역작이니 이 책을 꼭 읽으라는 조언이 아니라 어떤 책이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에게는 특별한 책이 된다. 너무 많은 사고 훈련은 오히려 뇌를 지치게 한다. 100번 쯤 얻어터지고 나면 나중에는 코피가 난다. 지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07051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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