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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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도 몰라
네모난 아버지의 지갑엔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에 그려진 네모난 학원
네모난 마루에 걸려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네모난 speaker 위에 놓인 네모난 tape
네모난 책장에 꽂혀 있는 네모난 사전
네모난 서랍속에 쌓여 있는 네모난 편지
이젠 네모같은 추억들
네모난 태극기 하늘높이 펄럭이고
네모난 잡지에 그려진 이달의 운수는
희망이 없는 나에게 그나마 기쁨인가봐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도 몰라



  갑자기 화이트의 ‘네모난 꿈’을 듣고 싶었다. 가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노래를 들었다. 네모는 궁글게 사는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둥근 지구가 네모난 꿈을 꾸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현실은 여전히 모호한 환상과 꿈이라는 환각제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한다. 마약처럼 몽롱하게 먼 미래를 부정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뒤로 밀린다. 눈앞의 이익과 단기간의 손익 계산에 머릿속은 컴퓨터처럼 돌아간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비웃기까지 한다.

  이렇게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몇 가지 형태의 삶의 형태로 수렴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학교를 다니는 목적,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 배우자를 결정하는 관점, 직장을 선택하는 방법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 최선은 중요하지 않고 이유도 물을 필요가 없다. 자명한 논리처럼 너무 분명해서 그것들에 대한 질문조차 우습게 들린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우석훈은 네모난 세상보다 무서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생태 경제학이라 명명될 만한 기준과 관점을 유지하면서 우석훈이 진단하는 대한민국은 끔찍하기만 하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경고장이자 진단서에 해당된다.

  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를 살면서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전 국토의 80%가 도시화되었으면서 친환경적인 삶을 외치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돗물로 청계천을 복원했다고 대국민 사기극을 쳐도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이거라도 어디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만이 대안을 찾고 미래의 길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비판 정신이 긍정의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거대한 어항이라고 표현된 청계천을 필두로 토목공화국의 몰락에 대한 경제학자의 우려는 이상적인 관점이나 좌파의 논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화상이다.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과 고민이 진지하다면 언제든 우리는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경제학자 우석훈은 생태와 환경을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는 단순하게 경제 논리와 숫자 놀음이 아니다. 우리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며 미래 사회에 대한 우려와 냉정한 조언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최소한 ‘경제 이성’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 사회가 선택한 것들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은 선택 능력이 없다는 것인가? 판단 능력이 마비되어버린 감각의 제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부정적이기만 한 것인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참 다양한 반응과 대안과 비판과 미래를 그려 낼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좌파든 우파든 무관하게 최소한 이성적인 논의와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과연 현실 정치와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 통용될 것인가의 문제는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만든다.

  우리가 가는 길이 비록 멀고 험해도 가야할 길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행복하겠다. 문제는 그 길조차 모호하며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이미 갈림길을 지나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생태적 사회를 위한 변화는 가능한가? 세상을 바꾸는 힘은 과연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믿어도 될까?

  이 책에서 우석훈 거시적 관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경제학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때로는 좌파는 우파든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그들의 한계와 역량을 난도질한다. 간만에 속이 좀 풀리고 시원한 느낌이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강유원을 만났을 때처럼 큭큭거리며 읽었지만 단순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기뻐할 수 있는 문제들은 분명 아니다. 현실적인 대안이나 미래에 대한 아젠다가 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보면 읽고나서 더 가슴만 답답해졌다.

  그래도 지금 이대로는 아니다. 아닌건 아닌거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책이다. 책은 어쩌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자꾸 읽히고 정작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외면 당하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고민의 끝자락에는 ‘실천’이 남는데 쉽지 않다. 아니 게으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동차 키를 챙기고 기름값에는 아예 눈감아 버리고 정몽준도 아니면서 버스비를 모르고 사는 생활 패턴에는 문제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만으로 용서되지 않는 부분들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책 한 권 읽고 고개만 끄덕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욱 참담하다. 더구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이명박을 보라. 걱정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노무현이 그리웁다면 당신은 이 책의 필독자이다!!!


08072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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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2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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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모습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한없는 궁금증에 목마를 때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철학적’이다. 인간의 본성과 역사에 대한 고찰 없이는 말할 수 없으며 간단하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도 없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요약되는 그 실체 없는 삶에 복무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 한 복판에 서 있는 것이 ‘경제’이다. 일본의 번역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경제는 생활이며 생존의 조건이며 때로는 생의 궁긍적인 목적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제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전혀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경제를 말하는 방식이 경제학자나 공무원이 다르고 시장 상인이 다르며 월급쟁이가 다르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외치는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죽였는지 모르지만, 언제부터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초지일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통령에게 경제를 살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누구를 위한 경제이며 어떤 방식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 주장과 논리를 듣고 있노라면 경제와 더불어 역사와 정치가 함께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경제를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홍기빈은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통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게 경제를 묻고 있다. 경제는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홍기빈이 희랍의 현자에게 경제를 묻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하다.

  이 책은 경제학에 관한 역사적 고찰에 바쳐지고 있다. 학문적 관점에서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경제학은 실생활에서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시적 관점이든 미시적 관점이든 경제학은 실제 운용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할 수 있을 만큼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또한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 기능할 수도 없다. 정치와 사회 현상을 떠나서 경제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논리이다.

  이 책은 현대 경제학의 정의에 대해 알기 쉽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경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낸다. 물론 독자의 몫이지만 해답이 쉽지만은 않다. 경제라는 말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는 부분도 유용하지만 시장을 발명한 그리스인들의 생활과 ‘행복’에 대해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생과 폴리스의 정치적 상황들을 통해 경제 문제를 풀어내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인간의 경제 부분은 이 책에서 핵심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이미 다른 책을 통해 화폐의 기능과 자본주의의 함수 관계에 대해 이해한 독자라면 흥미있게 접근할 수 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건으로서 화폐와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당연히 유한한 재화 속에서 무한한 욕망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활동을 프락시스praxis와 포이에시스poiesis로 구별한다. 후자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행위’이고 전자는 ‘행위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 P. 111

  인간의 욕망은 프락시스든 포이에시스든 하나로 귀결될 수 없다. 두 가지 욕망의 덩어리로 엉키고 뒤섞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졌다고 해서 갈증이 해소되지도 않고 완성되지도 않는다. 어차피 채워질 수 있다면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지도 않았을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최소한의 노력으로 희소한 가치를 얻으려는 유한한 가치에 대한 무한한 욕망이 인간의 경제 행위의 기본 조건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건 지워지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 독일 역사학파, 마르크스, 베블린, 폴라니, 케인스의 이론들을 소개하며 과연 우리에게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필요한 관점과 행동에 대해 간접적으로 고민을 요구한다.

경제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때로는 정책 입안자와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된다.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과연 어떤 경제가 필요하며 진짜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다같이 고민만 한다고 해결될 일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릴 수 없고 그 시대에 요구되던 상황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수도 없다. 다만 과거에게 길을 묻고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과 가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을까?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목적이 다르게 때문이 아니었을까? 서로의 이익이 다르고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었을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과거의 오래 된 경제에 대한 기억을 들추고 있다. 당대의 삶과 생의 목적을 돌아보는 엉뚱한 작업을 통해 혹은 화폐와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 지금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진짜 경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08072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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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 스파르타인 살림지식총서 173
윤진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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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트로이>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을 기억할 것이다. 그 전쟁에서 트로이에 맞선 그리스는 연합군이었고 그 중심에는 스파르타가 있다. 스파르타는 공교육의 창시, 국가에 대한 충성심, 소박한 생활 방식 등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도시 국가이다. 이에 비견되는 아테네는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로 후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 도시 국가는 정치 공동체인 폴리스는 ‘민주’와 ‘공화’라는 개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이 정치 체제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아득한 역사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찾게 된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며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인 현재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두 나라에 대한 기억은 인류 문화의 기억이며 정치 제도에 대한 반성이다.

  발전이라는 당위적 측면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볼 때 과거보다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이는 현대 사회에서 일종의 패턴을 보여주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와 대의적 민주제도는 반성과 변화를 모색하며 끊임없이 갈등과 충돌을 보여준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물론 국가와 국가의 문제이다.

  윤진의 <아테네인, 스파르타인>은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의 특징을 요약적으로 잘 정리해 준다. 살림지식총서 시리즈의 특징을 잘 살려 쓰고 있다. 제한된 분량에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상식 수준에서 벗어나 그들의 수호신과 종교, 축제와 운동경기를 비교하고 있다. 사회구성과 교육, 정치와 군사 등 당대의 모습들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간략하지만 잘 정리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들을 통해 당대 사회와 문화, 정치 그리고 각종 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항들이 아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이나 서양의 고전을 접할 때 후륭한 전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당대의 사상이나 역사,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때대로 힘겨울 때가 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기 위해 보다 세심한 노력과 풍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들의 사상은 결국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배태되었을 것이고 그 사상의 효용 또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뛰어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 나라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지니고 있는 두 나라를 아우를 수 있는 생활과 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책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스 도시 국가의 특징과 생활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했고 후대 인류 문화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한 번쯤 관심을 갖게 된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교해 보고 당대의 제도와 종교, 정치와 운동 경기를 살펴보는 일 만으로도 재미있다. 문화사나 풍속사가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도 중요성을 가지지만 그것이 바탕이 되지 않은 사상과 학문의 접근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구 정치사상 고전읽기>를 통해 소개받은 이 책은 다른 책을 위한 레시피로 적당하다. 다양한 지적 토대를 가지고 폭넓은 관점으로 과거 인류의 삶을 이해한다면 또 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그렇게 탄생한 학문과 사상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앎의 방식과 태도는 이렇게 다양하게 종횡무진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야 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다른 책을 위한 디딤돌이나 발판의 역할 만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아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라고 하는 두 도시 국가의 두드러진 특징을 통해 그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바른 이해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상식에 대한 상세한 분석이며 정확한 이해이기도 한 것이다.

  가장 찬란했던 문화와 강성했던 국가를 건설했던 두 나라. 플라톤의 이상적인 국가의 근원이 되기도 했던 그들은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현재에도 그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록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단순한 과거의 미래가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노력과 변혁의 힘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고대 아테인과 스파르타인의 전언은 아닐런지.


0807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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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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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깬 사자처럼 일어서라
쓸러지고 또 쓰러지더라도!
잠든 동안에 그대에게 떨어진
이슬처럼, 사슬을 벗어 던져라.
너희는 다수이고 그들은 소수이지 않느냐!   - 셸리, ‘무질서의 가면’중에서(P. 113)


  어른이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줄 알았다. 나이가 많은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순진했던 시절이 오히려 행복했을까? 세상에 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던 생각이 이제는 부끄럽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는 지도 알게 되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이를 통해 얻게 되는 세상살이에 대한 경험과 통찰의 깊이가 얼마나 깊어지는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두 가지 말이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지만 결론은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백남준이 죽는 순간까지 ‘청년’으로 불린 이유를 생각해 보자. 나는 청년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는가? 나의 꿈은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이다. 몸이 아니라 영혼이. 환갑을 넘긴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흰머리 휘날리며 젊은이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외면하거나 말로만 외칠 뿐 행동하지 않거나 긍정적인 것과 순종적인 것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혼동하거나 안정과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은밀하게 감추거나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신념을 저버리거나 아예 신념이 없거나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거나 이제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고 말하거나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를 늙은이라고 부른다.

  하워드 진은 좌파라고 불린다.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을 욕하는 대표적인 미국 백인이다. 욕만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역사를 전공한 그의 견해는 여전히 유효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고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그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참 아름다운 생이다.

  <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는 ‘청년’ 하워드 진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역사와 정치의 대화라는 원제에 충실한 이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환상을 걷어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이승만으로부터 촉발된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는 미국과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정학적 요충지, 이념 대립의 최전선에서 상호 이익을 위해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언제나 우리는 그들에게 환상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미국이 없는 한국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래된 동맹국과 정치적 역학 관계 속에서 미국의 역할과 외교관계가 불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이 어떤 관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비판적 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적절하고 충실한 질문의 내용과 하워드 진 특유의 날카롭고 분석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의 생각을 잘 이끌어내고 정리하며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어를 칭찬할 만하다. 인터뷰이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충분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터뷰어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다. 과연 세상을 통찰한다는 표현이 가능할 만큼 미국은 대단한 나라가 되었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미국을 알아야 한다.

  구 소련의 붕괴로 현실 사회주의가 사라지면서 힘의 균형이 깨지고 미국의 패권주의가 독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은 세계의 깡패 국가가 된지 오래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그들의 논리는 모순되며 거짓과 위선은 만천하에 폭로되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감추고 버티기를 계속하고 있다. 부시의 임기가 끝난다고 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했던 이명박 정부의 지난 5개월을 돌아보라. 끔찍하기만 하다. 아직도 4년 7개월이 남았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다는 김규항의 말이 이제는 저주로 들린다.

  대량 살상 무기로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과 자원 전쟁의 더러운 내막을 알고도 모른채 최대 인원을 파병한 대한민국 정부는 영혼의 샴 쌍둥이에 불과하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추악한 뒷모습을 엿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하다. 자본주의 위기는 구조적인 위기라는 자명한 이야기로 이 책의 인터뷰는 시작된다. 지배계급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왜 비판적 사고와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하워드 진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스터즈 터클은 미국인이 국가적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는 거지요. - P. 32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는 하워드 진은 역사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지나온 인류의 발자취 속에서 아무것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망각은 미래를 위한 시금석이며 디딤돌이다. 그래도 저자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믿음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국경없는 세계’는 그렇게 하워드 진의 꿈이 되었다.

선생님은 아주 소박한 이유 때문에 역사를 공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그 목표를 얼마나 성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P. 248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한 사람에 의해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하워드 진은 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을 믿고 있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것을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생애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직스럽고 존경할 만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불리워질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적 활동을 중단하신 리영희 선생님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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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즈 터클은 미국인이 국가적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는 거지요. - P. 32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는 걸 미국 국민에게 깨우쳐주기 때문입니다.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조직화된 운동을 통해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 P. 35

권력자는 폭력으로써 사람들이 비폭력적 행위에 참여하는 걸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면,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저항해야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더라도 말입니다. - P. 57

잠을 깬 사자처럼 일어서라
쓸러지고 또 쓰러지더라도!
잠든 동안에 그대에게 떨어진
이슬처럼, 사슬을 벗어 던져라.
너희는 다수이고 그들은 소수이지 않느냐!   - 셸리, ‘무질서의 가면’중에서(P. 113)

지식은 주관적이고 역사도 주관적이어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내 해석은 그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관점, 즉 ‘생각을 파는 시장’에서 내 관점은 한 모퉁이를 차지할 뿐이라고요. 물론 ‘생각 시장’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실물경제 시장처럼 ‘생각 시장’도 소수의 강력한 집단이 지배하고, 나는 그 시장에서 작은 수레를 밀고 다니며 학생 손님들에게 “이걸 맛보세요. 괜찮은지 맛보세요!”라고 외칠 뿐이라고 말합니다. - P. 214

회의주의(skepticism)는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심어줘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입니다. 지금껏 신성하게 여겨왔던 것이 결코 신성한 것이 아니며, 지금껏 우러러 공경했던 것이 반드시 공경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깨닫게 해줄 때 회의적 사고가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낭만적이고, 이상적이고, 훌륭한 행위로만 받아들였던 정부의 정책을 면밀히 조사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마땅하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합니다. - P. 216

내가 꿈꾸는 세계는 국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 예컨대 매사추세츠에서 코네티컷으로 이동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 다닐 수 있는 세계입니다. 여권이나 비자, 이민 할당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는 세계입니다. - P. 246

인종과 종교와 국가라는 경계가 더 이상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는 세계입니다. 문화의 차이와 언어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런 차이가 서로를 미워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원인으로 발전하지 않는 세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P. 247

선생님은 아주 소박한 이유 때문에 역사를 공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그 목표를 얼마나 성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 P. 248

조라는 백인이 해주길 원하는 것도 하지 않고, 흑인이 해주길 원하는 것도 하지 않을 거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했습니다. 조라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해줬다는 조언은 이렇습니다. 태양을 향해 뛰어 올라라! 태양에 닿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땅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 P.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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