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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 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을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도 몰라
네모난 아버지의 지갑엔 네모난 지폐
네모난 팜플렛에 그려진 네모난 학원
네모난 마루에 걸려있는 네모난 액자와
네모난 명함의 이름들
네모난 speaker 위에 놓인 네모난 tape
네모난 책장에 꽂혀 있는 네모난 사전
네모난 서랍속에 쌓여 있는 네모난 편지
이젠 네모같은 추억들
네모난 태극기 하늘높이 펄럭이고
네모난 잡지에 그려진 이달의 운수는
희망이 없는 나에게 그나마 기쁨인가봐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도 몰라
갑자기 화이트의 ‘네모난 꿈’을 듣고 싶었다. 가사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노래를 들었다. 네모는 궁글게 사는 꿈을 꾸었을까? 아니면 둥근 지구가 네모난 꿈을 꾸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현실은 여전히 모호한 환상과 꿈이라는 환각제를 통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한다. 마약처럼 몽롱하게 먼 미래를 부정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뒤로 밀린다. 눈앞의 이익과 단기간의 손익 계산에 머릿속은 컴퓨터처럼 돌아간다. 잘 산다는 것,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가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비웃기까지 한다.
이렇게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몇 가지 형태의 삶의 형태로 수렴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학교를 다니는 목적,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 배우자를 결정하는 관점, 직장을 선택하는 방법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같다. 최선은 중요하지 않고 이유도 물을 필요가 없다. 자명한 논리처럼 너무 분명해서 그것들에 대한 질문조차 우습게 들린다.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우석훈은 네모난 세상보다 무서운 <직선들의 대한민국>에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생태 경제학이라 명명될 만한 기준과 관점을 유지하면서 우석훈이 진단하는 대한민국은 끔찍하기만 하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 책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경고장이자 진단서에 해당된다.
속도가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를 살면서 ‘느림의 미학’을 말하고, 전 국토의 80%가 도시화되었으면서 친환경적인 삶을 외치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돗물로 청계천을 복원했다고 대국민 사기극을 쳐도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이거라도 어디냐!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만이 대안을 찾고 미래의 길을 모색하는 토대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한 일이다.
비판 정신이 긍정의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거대한 어항이라고 표현된 청계천을 필두로 토목공화국의 몰락에 대한 경제학자의 우려는 이상적인 관점이나 좌파의 논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화상이다.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과 고민이 진지하다면 언제든 우리는 귀기울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경제학자 우석훈은 생태와 환경을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는 단순하게 경제 논리와 숫자 놀음이 아니다. 우리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며 미래 사회에 대한 우려와 냉정한 조언이다. 저자가 말하듯이 최소한 ‘경제 이성’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 사회가 선택한 것들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은 선택 능력이 없다는 것인가? 판단 능력이 마비되어버린 감각의 제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연 부정적이기만 한 것인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참 다양한 반응과 대안과 비판과 미래를 그려 낼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좌파든 우파든 무관하게 최소한 이성적인 논의와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과연 현실 정치와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 통용될 것인가의 문제는 씁쓸함을 넘어 분노를 만든다.
우리가 가는 길이 비록 멀고 험해도 가야할 길이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행복하겠다. 문제는 그 길조차 모호하며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이미 갈림길을 지나쳐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생태적 사회를 위한 변화는 가능한가? 세상을 바꾸는 힘은 과연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믿어도 될까?
이 책에서 우석훈 거시적 관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경제학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한다. 때로는 좌파는 우파든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그들의 한계와 역량을 난도질한다. 간만에 속이 좀 풀리고 시원한 느낌이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강유원을 만났을 때처럼 큭큭거리며 읽었지만 단순히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기뻐할 수 있는 문제들은 분명 아니다. 현실적인 대안이나 미래에 대한 아젠다가 제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보면 읽고나서 더 가슴만 답답해졌다.
그래도 지금 이대로는 아니다. 아닌건 아닌거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는 책이다. 책은 어쩌면 필요없는 사람들에게 자꾸 읽히고 정작 읽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외면 당하는 물건인지도 모르겠다. 고민의 끝자락에는 ‘실천’이 남는데 쉽지 않다. 아니 게으르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동차 키를 챙기고 기름값에는 아예 눈감아 버리고 정몽준도 아니면서 버스비를 모르고 사는 생활 패턴에는 문제가 있다. 바쁘다는 핑계만으로 용서되지 않는 부분들이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책 한 권 읽고 고개만 끄덕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욱 참담하다. 더구나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 이명박을 보라. 걱정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노무현이 그리웁다면 당신은 이 책의 필독자이다!!!
080723-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