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반하다 - 자기성공을 이룬 나르키소스 12인
안병찬.안이영노 지음 / 도요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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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안치환이 불러 유명해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정호승의 시이다. 잠언 형태의 구절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은 이 시에서 외로움을 말했다. 그러나, ‘수선화’라는 꽃을 통해 외로움의 정서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선화의 학명은 Narcissus.

  도도한 자기애(自己愛)로 인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나르키소스의 운명은 외로움과 조금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하는 나르시즘의 어원이 되기도 한 이 신화 속의 주인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에코를 외면한 죄로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지만 결국 나르키소스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사랑에 빠져 보지 못했다. 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불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나르시즘은 자신감의 상징이며 경쟁력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채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 맹목과 집착이 되고 그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는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만 키우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존재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나르키소스는 과연 누구일까? 쉽게 말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언론인이자 언론학자 안병찬과 그의 아들 안이영노는 그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을 만났으며 만나고 돌아와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물이 <나에게 반하다>라는 책으로 태어났다.

  이 책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몇 가지 특별함을 갖고 있다. 안이영노가 세운 문화기획자들의 모임 ‘기분좋은 QX'에서 기획하고 80세 청년 안병찬의 인터뷰로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아들 안이영노와 후일담을 나누며 인물들을 다시 분석한다. 그 과정과 책이 나오는 과정이 하나의 놀이처럼 유쾌해 보인다. 힘겹고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는 저자와 그들을 묶어내는 일들이 즐거움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색다른 작업이 가능한 것은 안병찬의 에너지와 열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그의 추동력은 삶에 대한 열정과 나르시즘 때문은 아닐까?

  아들의 취재 명령에 아버지가 현장을 뛰는 형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책 제목처럼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열 두 명의 나르키소스는 다양하다. 스물 여섯 살의 아가씨 이꽃별,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 예술가의 길에 전부를 건 씨킴, 세상을 누비는 1인 프로덕션 김진혁,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백지연, 가수협회 회원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 우리를 즐겁게 했던 야동 순재 등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가진 끼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종횡무진 시대를 질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인터뷰어에게는 더없이 행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치밀한 준비와 꼼꼼한 분석이 뒷받침되어 인터뷰를 했겠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분량의 소략함이다. 지나치게 요약하고 대강의 인상만을 적었으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분량과 형식의 제약이 선행되는 신문매체의 특성을 잘 알지만 책으로 묶어낼 때는 후일담이나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열 두 명의 초상에서 나르키소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세상과 예술 혹은 타인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모습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든 아니든 그들의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주자로 나선 안병찬이다. 스스로를 나르키소스 열 두 명 중 한 명으로 포함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책의 주제를 강변하고 있다.

  사람을 읽어내는 것은 세상의 어떤 텍스트보다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한 권이 지니는 소중함이나 책 자체의 의미보다 나는 이 책을 만들어 낸 과정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색다른 열정과 실험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모두 나르키소스가 되어 미칠 듯이 자신을 사랑하고 여세를 몰아 자신의 삶은 물론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0809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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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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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 동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보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먼저였고, 잠수함보다 ‘해저 2만리’가 먼저 쓰였다. 상상은 창조의 원동력이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큰 힘을 발휘된다는 사실은 우리는 과학을 통해 확인해 왔다. 예술적 상상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과 결합될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몽사이(夢-sci)'라는 이름으로 ‘꿈꾸는 과학’을 실천하는 모임이 그간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었다. <과학콘서트>를 시작으로 과학의 대중화에 열중하고 있는 정재승이 이끄는 미래의 창조적 과학그룹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팀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은 과학적 토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점검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들인가? 놀이와 상상력은 과학의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리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이유를 찾아간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말도 안되는 상상,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웃음 가득한 여행이다. 하늘에서 주스비가 내린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던 이야기이다. 눈이 아니라 빵이나 떡가루가 내리고 비대신 하늘에서 주스가 쏟아지면 어떨까?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한다. 현재 과학수준에서 어떤 원리로 그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과정은 토론이 아니라 상상의 향연이다.

  꿈을 캠코더로 찍을 있고, 개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생각은 기가 막히다. 사람에게 뿔이 나고 입이 배꼽 옆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 혀가 두배로 길어지고 손가락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방귀에 색깔이 있고 아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상상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배낭로켓을 타고 날아다니고, 태양이 두 개인 세상이지만 밤에는 가로등이 없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희한하며 놀라운 상상력은 롤러코스트처럼 정신이 없다.

  마치 만화책을 보듯 황당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없는 상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듯 하다. 젊은 과학도들과 이런 놀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이 사람들이 어디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겠는가? 도대체 흥분되고 재밌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 같은 이들의 상상력은 분명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도 끝없는 도전과 열망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과학의 발전이라 불렀고 창조적 상상력이라 명명했다. 이 책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고 1점을 위해 목숨 거는 공부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 즐기고 행복해지는 공부가 가능한 방법은 이런 방법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작지만 위대한 실천과 노력의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먼 훗날 우리의 미래에 조금씩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상상 프로젝트는 지속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은 인간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글쓰기 공동체로 독서와 토론을 통해 일궈낸 결과물들이라는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공부의 마지막은 글쓰기이다. 과학을 대중화시켜 인간의 오만함을 자랑하고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과 이를 밝혀내는 과학의 즐거움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의 목표라는 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과정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과학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세계로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주제와 목적들로 실천하는 공동체도 생겨나고 책읽고 토론하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자생적 공부 모임들이 늘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 무엇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결과가 목적이 아닐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즐거운가. 정재승과 ‘몽사이’의 행복한 상상여행이 현실이 될 때까지 흥미진진한 놀이를 지켜보고 싶다. 아니 나도 과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라도 즐거운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08090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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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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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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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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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정호승의 시 ‘결혼에 대하여’의 마지막 부분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직 다른 대안은 없는 듯하다. 인류의 결혼 형태는 모계사회의 일처다부제, 가부장적 일부다처제를 거쳐 일부일처제로 정착된 듯하다. 인류학자들은 향후 백년 동안 사라지게 될 사회 제도 중 첫 번째로 일부일처제를 꼽기도 한다지만 아직까지는 가장 보편적이고 유효한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결혼은 도대체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은 수천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행복이나 불행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결혼 생활 안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관계와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도전이다. 그러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수분처럼 소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저 남녀 간의 사랑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소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프랑스의 다비드 아비께르는 <오, 나의 마나님>을 통해 결혼한 남자로 살아가는 21세기형 남성 종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제 ‘인간 박물관’을 ‘남자 박물관’으로 오역한 것에 대한 번역자의 말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결혼한 남자의 푸념과 일상이 아니라 혼인 관계를 통해 남자 혹은 인간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소설도 에쎄이도 그렇다고 일기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있는 책이다. 모호한 장르적 특성을 가진 프랑스적 글쓰기의 새로운 변형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희화화 때문에 발생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탁월한 비유와 과장된 표현들이 프랑스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도 재미있다. 옮긴이가 부지런히 주석을 달고 있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도 무방한 정도이다. 유머는 진지한 성찰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무겁고 결론없는 인류학적 고민들을 가볍고 즐겁게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남성이라는 종족의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입장과 상황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지만 때로는 의뭉스럽게 외면하고 때로는 슬쩍 넘겨짚기도 한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가벼운 문장들은 유쾌한 웃음과 느슨한 틈새를 만들어 준다.

  ‘태초에 유아용 콧물흡입기가 있었다’에서 출발해서 ‘인간박물과’으로 끝나는 이 책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남성과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종횡무진 경쾌한 발걸음으로 누비고 있다.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사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야하는 문제가 결혼이지만 이 책은 최소한 문명이 발달한 지구의 몇몇 종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결혼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천양지차이다. 남녀간의 역할 분배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 그리고 가사 노동의 분배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문화적 토양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고 프랑스의 그것이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 향상과 더불어 남성의 역할 축소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이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듯이 인류의 진화 과정이 원숭이에서 남성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에 동의해도 좋을 듯하다. 극단적으로 남성이 없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이 책에서 기술적인 문제나 미래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남성의 입장에서도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 비명이 정도에 따라서는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 책은 어떻게 읽힐 것인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많은 항변과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태를 제공한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와 행동의 차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저자는 이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자신의 아내를 팔아 책을 썼다. 무사한지 그의 건강이 궁금하다.

  결혼한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 결혼할 세상의 모든 남녀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남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심심찮은 책으로 충분히 권할 만하다. 큭큭거리며 읽고 유쾌하게 웃음 지을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3부작 중 하나라고 하니 몇 번 더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08090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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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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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소설을 읽어왔고 영원히 소설을 읽겠지만 이젠 좀 지친 느낌일까?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을 읽고도 피식 웃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소설은 때로 인간의 모든 지혜와 철학과 역사를 담아내는 가장 세련된 양식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이면을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는 만화경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소설은 여전히 힘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90년대 신경숙이나 은희경, 전경린, 공지영으로 대표되는 내면풍경의 섬세한 묘사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 것이 2000년대의 소설들이다. 소설가의 성을 구별할 필요는 없지만 칙릿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작품 유형을 보면 대개 비슷한 구조와 성향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대정신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사소설의 범주를 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사의 힘은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서사의 힘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소설은 거창하고 위대한 장르나 특별히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 분야가 아니다. 때로 가볍고 흥미있게 그리고 미친듯 웃고 낄낄거릴 수 있으면 그만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과 목적은 다양하다. 한 권의 소설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심오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키취를 넘어 칙릿을 논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무언가 메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삼십대 후반 여성인 소설가 김윤영의 소설집 <그린 핑거>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해서 진부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까탈스런 독자를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말하는 방식과 소설의 무늬이다. 똑같은 말을 어쩜 그리 달리 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가의 책은 다시 읽게 된다. 김윤영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다시 읽고 싶어진다.

  잔재주가 지나쳐 문장이 춤을 추거나 내용과 어울리지 못하고 삐걱일 수도 있고, 지루하고 진부한 문장으로 책장을 돌처럼 무겁게 만드는 소설가도 있다. 옆집 아줌마나 처녀들의 수다를 재미있게 들어줄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고 참을성도 없는 나같은 독자는 그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나면 욕을 하고 만다. 어디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마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뜻하는 표제작 ‘그린 핑거’는 대상에 대한 관계부터 색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식물은 정성과 사랑을 주어 가꾸고 돌본만큼 풍성해진다. 토양이나 속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만족시켜 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서 얼만큼 자랐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상대적이며 상호 관계속에서 다르게 반응하고 타인을 통제할 수도 없다. 아무도 그 불가해한 관계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작가 김윤영은 이 소설집에서 ‘여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여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보다는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시선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남성과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내면의 풍경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 작업이 소모적이거나 지루하지 않고 진부한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으니 독자들은 즐겁다.

  ‘그린 핑거’와 ‘전망 좋은 집’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여성들이다. 언청이였던 여인이 수술을 하고 이민을 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거짓으로 임신 사실을 꾸미고 살아가는 여성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 유형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독자들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일상성을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리라. 공감하며 분노하고 울먹이다 슬퍼지는 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에서 찾아진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누구니?

  ‘블루오션 연애학’, ‘너무 고결한 당신’, ‘Heartbreaking Love', ‘초콜릿’, ‘모네의 정원으로’라는 제목으로 묶인 다섯 편의 소설은 피카레스크 소설로 볼 수 있다. 각각 소설은 독립되어 있으나 그 주인공들은 다른 단편에서 만나고 다음 단편의 다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연작물임을 표시했다. 형식의 즐거움은 소설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재목 또한 흥미롭다. 어디 특별하지 않은 연인이 있겠는가? 사랑하게 되면 모두 특별한 연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랑을 기록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과 소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아니라 그렇게 관계맺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통’과 ‘관계’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이며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윤영의 소설은 삶이란 타인의 시선은 내 존재감의 확인이며 정체성에 대한 이해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작가가 무엇을 원하든 독자들은 그 이상을 본다. 그것은 의미있는 오역이며 독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반응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인물들의 심리 변화, 분명하게 전달되는 섬세한 비유, 가볍지 않게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아내는 힘이 느껴지는 좋은 단편들을 읽은 느낌이다. 이 시대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다음 소설을 기다려 본다. 재미의 종류는 다양하다. 작가의 독자적인 영역을 찾아 하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노력도 기대해 본다. 나는 너무 욕심 많은 독자이고 기다림의 자세를 갖춘 독자이기도 하다.


08090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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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힘 - 역사의식, 기억과 상상력
하비 케이 지음, 오인영 옮김 / 삼인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은 분명 과거의 기억이 될 것이다. 과거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직선적인 세계관에서 출발한 개념적 환상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과거에 우리는 역사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객관적 기록과 서술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모든 사실을 기록할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을 취사선택한다. 그 과정 자체가 주관의 개입이다. 그래서 모든 역사는 주관적 해석에 불과한 것이다.

  하비 케어의 <과거의 힘>은 역사를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적 공동체의 이념을 특징으로 삼는다. 역사 연구는 현재와 다른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읽혀야 한다. 단순히 숨어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알지 못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잘 알려진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이며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정치와 사회적 관점에서 역사를 어떻게 인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비 케어는 진보적인 역사학자이다. 이 책은 ‘역사학의 위기’라는 1970년 중반 이후의 문제를 심도있게 살펴본다. 1991년에 발간된 책으로 주로 60년대와 70년대의 역사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보여준 현실 정치의 한계와 보수성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보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비판적인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목적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고리타분한 역사서와 거리가 멀다. 물론 2008년의 관점에서 보면 벌써 한 세대 이전의 이야기로 시의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보수화 경향을 감안한다면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소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 이래 미국과 영국에서 등장한 신우익(New Right)과 신보수주의 집단들은 공세적으로 역사의 위기를 공표했다. 그들은 역사 연구의 가치를 자유와 평등 혹은 민주적인 공동체의 발전에 비판적인 안목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권력에 봉사하고 기껏해야 현상 유지를 뒷받침하는 데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의 ‘뉴라이트’를 돌아보게 한다. 역사와 경제 교과서를 통해 교육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제기하는 그들의 기원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기하는 문제는 분과학문의 지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역사 연구의 목적 및 전망 바로 그 자체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말하고 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전체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 장은 역사학의 위기를 개관하고 있다. 학교 교육과 교양 측면에서만 다루어지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2장에서는 역사의 위기를 가져온 현대적 양상들을 60, 70년대 미국과 영국의 정치, 경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3장에서는 역사와 정치의 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고찰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중심으로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교육을 통해 과거를 이용 또는 남용하여 자본주의 헤게모니를 재창출하려는 레이건과 대처 그리고 그들의 동료 정치인들의 생각을 들여다본다. 4장에서는 현대의 전개양상들에 대해 살펴본다. 동유럽과 소련의 혁명적 양상들을 통해 ‘자본주의의 승리’, ‘역사의 종언’을 말하는 보수주의자들과 권력자들의 주장을 살펴본다. 아직 현실 사회주의가 건재했던 시대의 저술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감회가 새롭다. 1994년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목도했다면 이 책은 또 다른 양상으로 정리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급진민주주의적 비전과 부활을 강조한다. 역사가에게 필요한 정치와 사회 사상보다 오히려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당연한 고민이 엿보인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저자는 당연히 역사가를 비판적 지식인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과거의 힘’은 비판적 통찰력과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은 역사를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교육의 측면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로 남겨진다.

  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도구이다.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전락해버린 역사에 대한 연민보다 그것으로부터 올바른 교훈과 가르침을 얻지 못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부터 반성해야 한다. 진정한 과거의 힘은 현실과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등대처럼 빛나야 한다. 현실과 유리된 먼 불빛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미래를 비춰줄 충실한 안내자의 역할과 고민과 의식의 각성제 역할을 함께 해내야 하는 것이 과거 혹은 역사의 힘이 아닐까?


모순적이고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들 이면에서 진정한 동일성을 발견하고,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것 이면에서 실질적인 다양성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데, 이것은 오해받고 있기는 해도 이념을 다루는 비평가들과 역사 발전을 다루는 역사가들에게는 가장 본질적인 재능이다. - 안토니오 그람시(P. 67)


0809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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