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정호승의 시 ‘결혼에 대하여’의 마지막 부분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직 다른 대안은 없는 듯하다. 인류의 결혼 형태는 모계사회의 일처다부제, 가부장적 일부다처제를 거쳐 일부일처제로 정착된 듯하다. 인류학자들은 향후 백년 동안 사라지게 될 사회 제도 중 첫 번째로 일부일처제를 꼽기도 한다지만 아직까지는 가장 보편적이고 유효한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결혼은 도대체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은 수천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행복이나 불행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결혼 생활 안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관계와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도전이다. 그러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수분처럼 소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저 남녀 간의 사랑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소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프랑스의 다비드 아비께르는 <오, 나의 마나님>을 통해 결혼한 남자로 살아가는 21세기형 남성 종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제 ‘인간 박물관’을 ‘남자 박물관’으로 오역한 것에 대한 번역자의 말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결혼한 남자의 푸념과 일상이 아니라 혼인 관계를 통해 남자 혹은 인간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소설도 에쎄이도 그렇다고 일기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있는 책이다. 모호한 장르적 특성을 가진 프랑스적 글쓰기의 새로운 변형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희화화 때문에 발생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탁월한 비유와 과장된 표현들이 프랑스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도 재미있다. 옮긴이가 부지런히 주석을 달고 있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도 무방한 정도이다. 유머는 진지한 성찰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무겁고 결론없는 인류학적 고민들을 가볍고 즐겁게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남성이라는 종족의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입장과 상황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지만 때로는 의뭉스럽게 외면하고 때로는 슬쩍 넘겨짚기도 한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가벼운 문장들은 유쾌한 웃음과 느슨한 틈새를 만들어 준다.

  ‘태초에 유아용 콧물흡입기가 있었다’에서 출발해서 ‘인간박물과’으로 끝나는 이 책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남성과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종횡무진 경쾌한 발걸음으로 누비고 있다.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사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야하는 문제가 결혼이지만 이 책은 최소한 문명이 발달한 지구의 몇몇 종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결혼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천양지차이다. 남녀간의 역할 분배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 그리고 가사 노동의 분배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문화적 토양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고 프랑스의 그것이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 향상과 더불어 남성의 역할 축소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이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듯이 인류의 진화 과정이 원숭이에서 남성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에 동의해도 좋을 듯하다. 극단적으로 남성이 없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이 책에서 기술적인 문제나 미래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남성의 입장에서도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 비명이 정도에 따라서는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 책은 어떻게 읽힐 것인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많은 항변과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태를 제공한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와 행동의 차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저자는 이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자신의 아내를 팔아 책을 썼다. 무사한지 그의 건강이 궁금하다.

  결혼한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 결혼할 세상의 모든 남녀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남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심심찮은 책으로 충분히 권할 만하다. 큭큭거리며 읽고 유쾌하게 웃음 지을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3부작 중 하나라고 하니 몇 번 더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08090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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