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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많은 소설을 읽어왔고 영원히 소설을 읽겠지만 이젠 좀 지친 느낌일까?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설을 읽지 않는 것을 읽고도 피식 웃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소설은 때로 인간의 모든 지혜와 철학과 역사를 담아내는 가장 세련된 양식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이면을 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는 만화경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소설은 여전히 힘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90년대 신경숙이나 은희경, 전경린, 공지영으로 대표되는 내면풍경의 섬세한 묘사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 것이 2000년대의 소설들이다. 소설가의 성을 구별할 필요는 없지만 칙릿으로 대표되는 최근의 작품 유형을 보면 대개 비슷한 구조와 성향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시대정신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사소설의 범주를 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사의 힘은 여전하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세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서사의 힘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소설은 거창하고 위대한 장르나 특별히 위엄을 갖추어야 하는 분야가 아니다. 때로 가볍고 흥미있게 그리고 미친듯 웃고 낄낄거릴 수 있으면 그만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취향과 목적은 다양하다. 한 권의 소설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심오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키취를 넘어 칙릿을 논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무언가 메워지지 않는 목마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삼십대 후반 여성인 소설가 김윤영의 소설집 <그린 핑거>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해서 진부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까탈스런 독자를 못 견디게 하는 것은 말하는 방식과 소설의 무늬이다. 똑같은 말을 어쩜 그리 달리 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소설가의 책은 다시 읽게 된다. 김윤영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다시 읽고 싶어진다.
잔재주가 지나쳐 문장이 춤을 추거나 내용과 어울리지 못하고 삐걱일 수도 있고, 지루하고 진부한 문장으로 책장을 돌처럼 무겁게 만드는 소설가도 있다. 옆집 아줌마나 처녀들의 수다를 재미있게 들어줄 만큼 시간이 남아돌지도 않고 참을성도 없는 나같은 독자는 그런 종류의 책을 읽고 나면 욕을 하고 만다. 어디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마는.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을 뜻하는 표제작 ‘그린 핑거’는 대상에 대한 관계부터 색다르게 설정하고 있다. 식물은 정성과 사랑을 주어 가꾸고 돌본만큼 풍성해진다. 토양이나 속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들을 만족시켜 주면 그만이다. 그래서 항상 그 자리에서 얼만큼 자랐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상대적이며 상호 관계속에서 다르게 반응하고 타인을 통제할 수도 없다. 아무도 그 불가해한 관계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작가 김윤영은 이 소설집에서 ‘여성’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여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보다는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시선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남성과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내면의 풍경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 작업이 소모적이거나 지루하지 않고 진부한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으니 독자들은 즐겁다.
‘그린 핑거’와 ‘전망 좋은 집’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여성들이다. 언청이였던 여인이 수술을 하고 이민을 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거짓으로 임신 사실을 꾸미고 살아가는 여성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 유형이 아니다. 특별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독자들은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일상성을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리라. 공감하며 분노하고 울먹이다 슬퍼지는 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비춰지는 모습에서 찾아진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아, 거울아 나는 누구니?
‘블루오션 연애학’, ‘너무 고결한 당신’, ‘Heartbreaking Love', ‘초콜릿’, ‘모네의 정원으로’라는 제목으로 묶인 다섯 편의 소설은 피카레스크 소설로 볼 수 있다. 각각 소설은 독립되어 있으나 그 주인공들은 다른 단편에서 만나고 다음 단편의 다른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이라는 부제가 붙어 연작물임을 표시했다. 형식의 즐거움은 소설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재목 또한 흥미롭다. 어디 특별하지 않은 연인이 있겠는가? 사랑하게 되면 모두 특별한 연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랑을 기록하는 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그들의 사랑과 이별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삶의 방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과 소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아니라 그렇게 관계맺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통’과 ‘관계’의 문제에 천착하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소설의 또 다른 재미이며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윤영의 소설은 삶이란 타인의 시선은 내 존재감의 확인이며 정체성에 대한 이해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작가가 무엇을 원하든 독자들은 그 이상을 본다. 그것은 의미있는 오역이며 독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반응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인물들의 심리 변화, 분명하게 전달되는 섬세한 비유, 가볍지 않게 소설 전체의 주제를 담아내는 힘이 느껴지는 좋은 단편들을 읽은 느낌이다. 이 시대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다음 소설을 기다려 본다. 재미의 종류는 다양하다. 작가의 독자적인 영역을 찾아 하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노력도 기대해 본다. 나는 너무 욕심 많은 독자이고 기다림의 자세를 갖춘 독자이기도 하다.
080905-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