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비타 악티바 : 개념사 4
이재유 지음 / 책세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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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평등을 모토로 한 현대 사회에서 계급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쉽다.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철폐되면서 계급도 사라졌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계급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증의 역할을 한다. 명확한 증거와 분류가 어렵게 때문에 더욱 교묘하게 숨어 있는 구분선이다.

  사회학자들은 다양한 방법과 기준으로 계층이론을 제시한다. 경제적 수준이 기준이 되는 계층 이론과 달리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계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원시 공동체 사회이후 소유 관계가 형성되면서 인류에게 계급은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계급사이의 모순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늘 계급 모순이 해결된 상태를 갈망해 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계급에 대한 관심은 나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자유로운 관계와 행복한 삶을 위한 길찾기이다. 이재유의 <계급>은 이런 과정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아내서 역할을 한다. 계급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계급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무엇인지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계급 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계급 문제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답고 행복한 삶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급 문제를 인식하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책장을 열게 한다.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를 거쳐 봉건제 사회를 지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의 형태가 변화한 것은 생산수단과 소유의 관계로 귀결된다. 수많은 사회 경제 학자들이 명멸했지만 또 그것을 분석해 냈지만 완전한 대안이나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진행형인 역사에서 그것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이후에 대해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면 계급 문제 역시 논의가 쉽게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 관점에서 계급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온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와 해결 방안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하게 인문학적 교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거창한 문제의 시작이다.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가 세계사의 주류로 자리잡은 현재 시점에서 계급 문제는 미래를 위한 가장 치열한 담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진보진영의 모임이긴 하지만 ‘세계 사회 포럼’은 브라질에 모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패로 인한 자본주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 흐르는 무의식의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변화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 뿐이다. 지금 이대로 자본주의의 계급 모순이 축적된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용산 철거민 사태는 명백한 국가 권력에 의한 살인행위이다. 고통 받는 다수가 연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분명 그것은 남의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죽도록 일하고 가족 이기주의에 매몰되거나 자식들의 학벌에 올인하는 현실 인식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근면한 일벌레가 찬양되고 휴식은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럽게 노동하는 인간을 미화했다. 내면화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도록 조정한다. 자본의 모순이 계급의식을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애써 그것을 외면한다.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의 분석과 대안들은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개념을 재정립했고 신베버주의는 중간계급에 주목했지만 토대의 변화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희망찬 미래를 가슴에 품는다. 변희재는 우석훈의 세대론에 물타기를 시도하고 조중동은 시민사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지식인이 아니라 그람시가 제시한 ‘유기적 지식인’이 우리에겐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억압적인 교육제도와 보이지 않는 자본의 헤게모니는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것을 타계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인가?

  계급의식의 싹은 가사 노동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족으로 얽매인 우리의 생존 문제는 연대와 참여, 배려와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계급은 어떻게 내면화되었으며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답게,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지금-여기에 서 있는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해 있으며 내 생각과 행동은 그에 맞는 의식을 담보해내고 있는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행간을 건너뛰는 저자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린다.


09013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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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가르치는 기술
야스코치 테츠야 지음, 최대현 옮김 / 두리미디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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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위에서 내려다는 설경은 기막히다. 환경과 개발에 대한 저항감에도 불구하고 겨울만 되면 여전히 스키를 버릴 수가 없다. 신념과 다르게 행동하는 겨울 스포츠 스키. 벌써 10년이 넘어버린 ‘미친스키’ 때문에 겨울을 많이 기다리기도 했다. 스피드와 테크닉을 모두 극복해야 스키의 즐거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이 단계별 훈련과 상위 기술 습득의 열망이 없으면 스키는 그저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따분한 운동이 된다. 스키의 즐거움은 기술 향상뿐만 아니라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엄함이다. 인위적으로 기계의 힘을 빌려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갈 수밖에 없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처음 스키를 가르쳐 준 분은 선수 출신이었고 카빙스키가 막 보급될 무렵이었지만 노말 스키와 카빙 스키의 차이점은 물론 기본자세와 원리를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물론 쉽고 재미있게 말이다. 다른 분한테 스키를 처음 배웠어도 내가 스키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해 본다. 그러다 이번에서 만난 분이 10년 전 그분처럼 티칭 테크닉이 뛰어난 분이었다.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그 원리와 문제점을 정확하게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전문가는 아름답다.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녹여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거의 매년 스키 캠프에 참가한다. 조금 더 잘 타기 위해 강습을 목적으로 캠프에 참가한다. 어떤 연수든 강연이든 배움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스키 강사를 예로 들면 먼저 방법을 설명하고 시범을 보인다. 스키를 잘 못 타는 강사는 없다. 하지만 배우는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설명은 책이나 다른 방법으로도 알 수 있고 시범은 지겹게 볼 수 있다. 시즌 전에 비디오 매체를 통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한다. 굳이 강사가 필요가 없는 부분들이다. 문제는 그것이 잘 안 되는 이유다. 잘 안될 때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다양한 개별적 문제들을 정확하게 지적해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지만 초보자가 아니라면 원 포인트 레슨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단 하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그것을 찾아주고 개선 방법을 가르쳐 주는 강사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스키를 잘 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잘 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쉽게 가르치는 기술>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부모는 아이에게, 상사는 부하에게, 장교는 병사에게, 선배는 후배에게, 고수는 하수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르치고 또 배운다. 가장 확실하게 공부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보다 쉽고 정확하게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고 단시간 안에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배우는 사람은 보다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배우려고 한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이해시켜주고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우선 배우는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글을 쓸 때 예상 독자가 중요하듯이 말이다. 일본인 야스코치 테츠야는 이 책을 통해 20여년간 쌓아 온 티칭 테크닉을 말한다.

  누구나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하다 보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이고 그것은 특별한 기술이 된다. 저자는 대학생부터 시작한 학원 강사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영어를 가르치며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노력의 결과물 그리고 유명강사가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그의 티칭 테크닉을 찬찬이 들여다보는 일은 단순히 테크닉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보고 누구든 무엇이든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일상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가르치는 사람은 다섯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학자, 배우, 예언자, 엔터네이너, 의사가 그것이다. 공부하기보다 가르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건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스타일이 있고 장점이 있겠지만 골고루 종합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배우는 사람은 고통스럽다. 내가 배웠던 수많은 선생님들을 돌이켜 보았다.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가르쳐 주었던 코치들을 포함해서 무언가 가르침을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 올리며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잘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쉽게 가르친다는 말에 가장 깊이 공감했다. 먼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고 배우는 사람의 유형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가르치는 기술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도 깊이 와 닿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인차가 존재하고 대상과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쉽고 재밌게 가르치기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경험담들이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무언가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야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생존을 위해 가장 본능적으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책은 일반화시킬 수 없는 내용과 특수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내용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읽어야겠다. 나는 오늘 또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돌아본다.


090129-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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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이매진 -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인문학적 상상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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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예술이다. 논쟁은 끝났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수없이 인용되며 끊임없이 논의되었지만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위상과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와 기능은 변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예술과 영화의 관계를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통해 설명했지만 사진과 영화의 복제 가능성 때문에 예술의 범위를 논하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대중문화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것이 오락이든 예술이든 장르의 문제가 아니가 아니라 변화, 발전의 양상과 미래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과 충격과 미적 쾌감을 전해주리라고 굳게 믿는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단 한 순간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며 진화하는 영화는 여전히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매체로 거듭나고 있다.

  영화를 즐기는 방식과 태도가 달라지고 있지만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와 메시지는 여전히 장르의 특성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 프레임 안에 한 장면을 보여주던 방식은 한 장면에 여러 장면을 중첩시키거나 화면을 분할하여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등 영화의 기본적인 전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형식과 내용이 파괴가 영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역동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형식보다는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형식을 벗어나서 논의될 수 없는 분야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읽기는 내용에 집중된다. 이런 관심은 최근 철학자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 칼럼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영화도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되고 어떻게 살 것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싼 수많은 존재들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히 증폭된다. 영화는 늘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 소설과 달리 비루하고 속된 일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영화는 일탈된 상황을 보여준다. 100분 내외의 시간동안 관객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영화의 서사는 소설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일단 보여주기로 시선을 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 CG의 현란한 기술들은 실사와의 구별을 모하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화가 완성될 수는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영화의 오래된 숙제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의 <전함 포템킨>부터 <300>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역사는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발전을 반영해 왔다.

  영화 이야기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또 다르게 이야기될 수 있다. <진중권의 이매진>은 ‘씨네 21’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연재물이다. 책으로 묶이는 순서는 당연해 보인다. 신문이든 잡지든 좋은 칼럼을 읽게 되면 언제 책으로 나오게 될지 기다리게 된다. 아직도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매체가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책은 영화 잡지에 1년간 실렸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영화에 대한 비평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가지고 노는 이야기이다. ‘담론의 놀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영화가 좋다 나쁘다는 평가도 아니고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문제 삼지도 않는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당연히 언급하게 되지만 미학적 혹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영화의 코드를 뽑아내는 식이다. 가령 친숙한 영화 <슈렉>은 ‘쿨미디어의 뜨거운 하이퍼리얼 효과’로 읽어내거나 ‘과거를 현재화하는 문화적 기억’으로 <화려한 휴가>를 읽어내는 등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영화를 통해 다양한 상상력과 시대와 상황들을 읽어내는 담론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깊은 논의와 몰입의 즐거움은 얻을 수가 없다. 이것은 영화비평의 몫으로 남겨두는 저자의 방법은 타당해 보인다. 전문가 수준 이상의 영화리뷰와 다양한 매체를 통한 영화 분석에 진중권이 굳이 뛰어들 까닭이 없지 않은가. 누구든 자신의 영역과 전문 영역이 있고 그 특징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진중권의 색깔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면서 또 다른 영화의 재미를 읽어낼 수 있게 하는 영화이야기 책이다.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부터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이르기까지 영화 장르와 접속할 수 있는 수많은 담론들이 난무하여 영화를 읽어내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 편의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그것에서 무엇을 얻었는가와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적 상상력과 재미라는 것은 서사의 즐거움과 시각적 효과만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는 아닐까 싶다.

  영화의 죽음, 복제에서 생성으로, 서사의 파괴, 기술과 신체, 시각에서 촉각으로, 미디어와 권력, 이성과 광기, 해석에 반대한다. 영원한 소년, 기억으로서 역사 등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너편의 영화를 묶었지만 주제별로 묶였다기 보다 하나의 관점으로 엮였기 때문에 그 영화들의 공통점을 살피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저자가 이미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에서 보여주었듯이 영화 또한 예술적 상상력이 동원한 놀이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즐겨야 한다. 얼마나 깊고 다양하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는 영화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책 한 권에서 얻을 수 있는 효용과 즐거움이 영화 한 편으로 환산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단 재미있는 영화를 봐야 얘기가 된다. 저자는 우연에 기대고 있다고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영화 리스트가 일단 반갑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에서부터 빔 벤데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에 이르기까지.


09012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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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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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고! 언제 어디서든 본능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직설 화법이 김어준의 트레이드 마크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복문으로 길게 빼지 않는다. 쨉과 스트레이트 전문이다. 기교파가 아니라 파이터다.

  한겨레를 보다가 김어준이 ‘충고’하는 코너라는 사실을 알고 일단 웃었다. 이후에 여러명이 돌아가며 인생상담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딴지일보와 인생상담과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상담이나 충고는 일단 진지하기 때문이다. 김어준과 진지함을 연결시키기 어려웠다. 그만큼 내게 김어준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철저한 아웃사이더로만 보였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고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딴지일보와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카타르시스였고 유쾌, 통쾌, 상쾌함의 극치를 맛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 만남이 강렬했던 만큼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김어준과의 간접적인 만남은 계속됐다.

  신문에서 몇 번 읽다가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싶던 코너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건투를 빈다>가 그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어준이 쓴 책이 아니라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이 쓴 책이기도 하다. 물론 김어준의 판단과 충고가 들을만한 것인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면 그들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상담 사례를 묶어 놓은 책이 대게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나 감정들도 다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유사한 사례들이 주변에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든 그런 감정이나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편에서 상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김어준의 불친절한 상담자다. 하지만 솔직하고 편안하다. 상담의 기본이 래포(rapport)형성이지만 김어준은 상대를 다독여 줄 마음이 없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방식의 상담이었다면 5분만에 졸거나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김어준은 가장 삐딱한 상담자다. 내담자가 아니라 상담자가 판단과 기준으로 충고한다.

  한마디로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든지 대충 타협하라는 말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지언정 돌려 말하거나 예쁘게 다듬지 않는다. 복문이 없을 만큼 짧고 명쾌한 문장들은 속이 시원하다. 적절한 비유와 예화들은 김어준식 상담의 꽃이다. 스스로의 경험들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충고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쉽게 그 진정성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이다. 누구나 걸어보지 않은 길에서 망설인다. 멘토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선택과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단 말인가. 내담자들은 어쩌면 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약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얻고 격려 받고 싶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매일 매일 경험한다. 그러한 순간들을.

  대한민국 고민의 최소공배수가 이 책에 모여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21세기형 질문들이 모여있다. 이 책은 시대를 읽어내는 또 하나의 생활의 역사가 되겠다. 먼 훗날 이 책을 뒤적이며 이 시대에는 이런 고민들을 했구나 하는 풍속사적 자료가 될 만도 하다. 여하튼 지루하지 않게 타인의 고민을 나의 그것들과 결부시켜 보기도 하고 걱정과 한숨을 나누기도 했으며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삶에 대한 기본 태도를 고민하는 수많은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가족’에 대해,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게 되는 ‘친구’에 대해, 개인과 조직의 갈등인 ‘직장’에 관해 그리고 영원한 고민과 갈등의 주제인 ‘연인’에 대해서.

  각각의 장들은 물론 편의상 주제별로 묶였다. 상담 내용과 관련하여 김어준의 짧은 글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데 내담자의 요구 없이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원한 답이 되기도 하겠다.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내면서 전체가 하나로 엮이지 못하는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경우 특별히 문제없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상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지만 편들어주기가 좋은 상담은 아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은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줄 수 있는 사람이 때론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바른 길로만 해서는 안 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갈등과 고민의 순간을 만난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사람이다. 그것이 인생의 딜레마다.

  가끔 김어준 같은 사람에게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살더라도 말이다. 살아가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든 그렇지 못하든 멘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물론 성격과 상황에 따라 멘토의 필요성도 달라진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족, 연인, 소울메이트, 멘토 -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누구인가?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 김어준.


09012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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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
최현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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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득적 권리를 우리는 인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권력에 의해 이 권리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억압과 순종을 내면화한다. 근대 이후 국가나 사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 중심적인 가치관이나 철학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와 먼 추상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신체의 자유를 구속받는다. 자신의 머리카락 길이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체벌과 폭력이 질서와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국가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인권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일은 특정 단체의 몫으로 돌릴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인종이나 민족 문제로 확산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은 까닭으로 여전히 진보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 보편적인 것 같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나이, 소속, 상황에 따라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리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단순히 고유한 문화적 차원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생각과 고민 자체가 일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주의보다 충과 효를 앞세운 공동체나 국가주의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든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며 당위적 가치라는 사실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시민권 차원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모두가 인정하는 천부적 권리라도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한 것이다. 인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방법론으로 자리잡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책세상’에서 Viva Activa(‘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 시리즈 개념사 1권으로 최현의 <인권>을 펴냈다. 기존의 책세상 문고의 분량이지만 판형을 바꾸고 사진을 삽입해서 편집을 새롭게 한 정도의 책이다. 주요 개념이나 사건들에 대한 주석을 달고 분량에 대한 부담을 덜어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이 책의 초점은 인권과 시민권의 상관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주창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출발한 시민권은 근대적 의미의 인권을 확립했다. 자연법에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사회적 상황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편적 개념으로 확립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고대의 시민권은 노예와 여성을 배제한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바로 근대 인권 사상의 역사이다. 시민권 제도의 발전은 근대 국민 국가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책에서는 홉스와 로크, 루소를 중심으로 근대적 의미의 인간관에 대해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작은 차이와 주장들이 결국 근대 시민권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논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인내천 사상 등 자생적인 개념들이 없진 않지만 그것이 충분히 논의되고 발전되지 못해 결국 유럽 중심의 사상사를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현대 인권은 시민권 이론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한다. 영국의 시민권을 중심으로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소수자의 인권이나 장애인의 인권, 다문화 시민권 등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현실에서도 중요하게 고민해 볼 부분이다. 외국인과의 결혼, 다문화 가정의 사회적 문제,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지구 공동체의 지구 시민권은 ‘꿈’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세계화는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인권’ 측면에서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시민권이 확산되고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지켜질 수 있는 개념들이 확산되는 것은 우리가 함께 꾸어야 할 꿈이 아닐까 싶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권의 기준과 대상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제도와 질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교묘하게 숨겨진 ‘인권’을 찾아보는 일이 우선이다. 나는 인간이며 내가 가진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는 흔히 개념 없다는 말을 사용한다. 책 한 권으로 개념을 가질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개념 있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나만큼 소중한 타인을 위해서도, 타인만큼 소중한 나를 위해서도.


09012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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