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비타 악티바 : 개념사 4
이재유 지음 / 책세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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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와 평등을 모토로 한 현대 사회에서 계급이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 쉽다.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하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철폐되면서 계급도 사라졌다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계급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신분증의 역할을 한다. 명확한 증거와 분류가 어렵게 때문에 더욱 교묘하게 숨어 있는 구분선이다.

  사회학자들은 다양한 방법과 기준으로 계층이론을 제시한다. 경제적 수준이 기준이 되는 계층 이론과 달리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계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원시 공동체 사회이후 소유 관계가 형성되면서 인류에게 계급은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문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계급사이의 모순이다. 인류의 역사는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늘 계급 모순이 해결된 상태를 갈망해 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고 믿는다.

  계급에 대한 관심은 나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자유로운 관계와 행복한 삶을 위한 길찾기이다. 이재유의 <계급>은 이런 과정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아내서 역할을 한다. 계급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계급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그것을 둘러싼 논쟁은 무엇인지 그리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계급 이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계급 문제에서 찾고자 하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답고 행복한 삶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 계급 문제를 인식하고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책장을 열게 한다.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를 거쳐 봉건제 사회를 지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의 형태가 변화한 것은 생산수단과 소유의 관계로 귀결된다. 수많은 사회 경제 학자들이 명멸했지만 또 그것을 분석해 냈지만 완전한 대안이나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진행형인 역사에서 그것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이후에 대해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다면 계급 문제 역시 논의가 쉽게 풀릴 수도 있겠지만 그리 만만치 않은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 관점에서 계급의 문제를 올바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온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문제와 해결 방안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하게 인문학적 교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거창한 문제의 시작이다.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 경제제도로서 자본주의가 세계사의 주류로 자리잡은 현재 시점에서 계급 문제는 미래를 위한 가장 치열한 담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진보진영의 모임이긴 하지만 ‘세계 사회 포럼’은 브라질에 모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패로 인한 자본주의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 흐르는 무의식의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변화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 뿐이다. 지금 이대로 자본주의의 계급 모순이 축적된다면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용산 철거민 사태는 명백한 국가 권력에 의한 살인행위이다. 고통 받는 다수가 연대하지 못하고 자신의 계급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분명 그것은 남의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죽도록 일하고 가족 이기주의에 매몰되거나 자식들의 학벌에 올인하는 현실 인식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근면한 일벌레가 찬양되고 휴식은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자연스럽게 노동하는 인간을 미화했다. 내면화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도록 조정한다. 자본의 모순이 계급의식을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애써 그것을 외면한다.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의 분석과 대안들은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다수자와 소수자의 개념을 재정립했고 신베버주의는 중간계급에 주목했지만 토대의 변화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 여겨진다.

  우리는 늘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희망찬 미래를 가슴에 품는다. 변희재는 우석훈의 세대론에 물타기를 시도하고 조중동은 시민사회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지식인이 아니라 그람시가 제시한 ‘유기적 지식인’이 우리에겐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억압적인 교육제도와 보이지 않는 자본의 헤게모니는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이것을 타계하기 위한 방법은 없는 것인가?

  계급의식의 싹은 가사 노동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족으로 얽매인 우리의 생존 문제는 연대와 참여, 배려와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계급은 어떻게 내면화되었으며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답게,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지금-여기에 서 있는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해 있으며 내 생각과 행동은 그에 맞는 의식을 담보해내고 있는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행간을 건너뛰는 저자의 목소리는 분명하게 들린다.


09013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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