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투를 빈다 - 딴지총수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김어준 지음, 현태준 그림 / 푸른숲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외친다. ‘껍데기는 가라’고! 언제 어디서든 본능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직설 화법이 김어준의 트레이드 마크다. 에둘러 표현하거나 복문으로 길게 빼지 않는다. 쨉과 스트레이트 전문이다. 기교파가 아니라 파이터다.

  한겨레를 보다가 김어준이 ‘충고’하는 코너라는 사실을 알고 일단 웃었다. 이후에 여러명이 돌아가며 인생상담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딴지일보와 인생상담과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상담이나 충고는 일단 진지하기 때문이다. 김어준과 진지함을 연결시키기 어려웠다. 그만큼 내게 김어준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철저한 아웃사이더로만 보였다.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고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던 딴지일보와의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카타르시스였고 유쾌, 통쾌, 상쾌함의 극치를 맛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 만남이 강렬했던 만큼 자주 찾지는 않았지만 이후에도 김어준과의 간접적인 만남은 계속됐다.

  신문에서 몇 번 읽다가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싶던 코너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건투를 빈다>가 그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어준이 쓴 책이 아니라 상담을 의뢰한 사람들이 쓴 책이기도 하다. 물론 김어준의 판단과 충고가 들을만한 것인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면 그들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믿을 수 밖에.

  상담 사례를 묶어 놓은 책이 대게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특별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나 감정들도 다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들이 대부분이다. 유사한 사례들이 주변에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는 눈여겨보게 된다. 우리는 언제든 그런 감정이나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내담자의 편에서 상담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김어준의 불친절한 상담자다. 하지만 솔직하고 편안하다. 상담의 기본이 래포(rapport)형성이지만 김어준은 상대를 다독여 줄 마음이 없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풀어나가는 일반적인 방식의 상담이었다면 5분만에 졸거나 책을 집어 던졌을 것이다. 김어준은 가장 삐딱한 상담자다. 내담자가 아니라 상담자가 판단과 기준으로 충고한다.

  한마디로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간결하고 명확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든지 대충 타협하라는 말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지언정 돌려 말하거나 예쁘게 다듬지 않는다. 복문이 없을 만큼 짧고 명쾌한 문장들은 속이 시원하다. 적절한 비유와 예화들은 김어준식 상담의 꽃이다. 스스로의 경험들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충고하기 때문에 내담자는 쉽게 그 진정성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선택이다. 누구나 걸어보지 않은 길에서 망설인다. 멘토는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선택과 결정은 스스로의 몫이다.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단 말인가. 내담자들은 어쩌면 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약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얻고 격려 받고 싶은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매일 매일 경험한다. 그러한 순간들을.

  대한민국 고민의 최소공배수가 이 책에 모여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21세기형 질문들이 모여있다. 이 책은 시대를 읽어내는 또 하나의 생활의 역사가 되겠다. 먼 훗날 이 책을 뒤적이며 이 시대에는 이런 고민들을 했구나 하는 풍속사적 자료가 될 만도 하다. 여하튼 지루하지 않게 타인의 고민을 나의 그것들과 결부시켜 보기도 하고 걱정과 한숨을 나누기도 했으며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삶에 대한 기본 태도를 고민하는 수많은 ‘나’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가족’에 대해, 선택의 순간에 고민하게 되는 ‘친구’에 대해, 개인과 조직의 갈등인 ‘직장’에 관해 그리고 영원한 고민과 갈등의 주제인 ‘연인’에 대해서.

  각각의 장들은 물론 편의상 주제별로 묶였다. 상담 내용과 관련하여 김어준의 짧은 글들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데 내담자의 요구 없이 이 글만으로도 충분히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원한 답이 되기도 하겠다. 연재했던 내용을 묶어내면서 전체가 하나로 엮이지 못하는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경우 특별히 문제없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상담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지만 편들어주기가 좋은 상담은 아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은 좋은 상담자가 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줄 수 있는 사람이 때론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바른 길로만 해서는 안 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그래서 갈등과 고민의 순간을 만난다. 후회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게 사람이다. 그것이 인생의 딜레마다.

  가끔 김어준 같은 사람에게 따끔한 질책과 충고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살더라도 말이다. 살아가면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든 그렇지 못하든 멘토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물론 성격과 상황에 따라 멘토의 필요성도 달라진다.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족, 연인, 소울메이트, 멘토 -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누구인가?

다들, 건투를 빈다. 졸라. - 김어준.


090126-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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