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
최현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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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생득적 권리를 우리는 인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나 권력에 의해 이 권리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억압과 순종을 내면화한다. 근대 이후 국가나 사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 중심적인 가치관이나 철학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와 먼 추상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신체의 자유를 구속받는다. 자신의 머리카락 길이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체벌과 폭력이 질서와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국가차원에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인권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는 일은 특정 단체의 몫으로 돌릴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인종이나 민족 문제로 확산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 발전해 오지 않은 까닭으로 여전히 진보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리 보편적인 것 같지 않다.

  앞서 말한 대로 나이, 소속, 상황에 따라 고유하고 기본적인 권리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며 살아왔다. 그것은 단순히 고유한 문화적 차원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생각과 고민 자체가 일천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개인주의보다 충과 효를 앞세운 공동체나 국가주의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 보인다.

  그러나 이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누구든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며 당위적 가치라는 사실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시민권 차원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모두가 인정하는 천부적 권리라도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의한 것이다. 인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방법론으로 자리잡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책세상’에서 Viva Activa(‘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 시리즈 개념사 1권으로 최현의 <인권>을 펴냈다. 기존의 책세상 문고의 분량이지만 판형을 바꾸고 사진을 삽입해서 편집을 새롭게 한 정도의 책이다. 주요 개념이나 사건들에 대한 주석을 달고 분량에 대한 부담을 덜어 쉽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이 책의 초점은 인권과 시민권의 상관 관계에 맞추어져 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주창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출발한 시민권은 근대적 의미의 인권을 확립했다. 자연법에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사회적 상황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지만 보편적 개념으로 확립될 만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고대의 시민권은 노예와 여성을 배제한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것이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바로 근대 인권 사상의 역사이다. 시민권 제도의 발전은 근대 국민 국가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또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책에서는 홉스와 로크, 루소를 중심으로 근대적 의미의 인간관에 대해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작은 차이와 주장들이 결국 근대 시민권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논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인내천 사상 등 자생적인 개념들이 없진 않지만 그것이 충분히 논의되고 발전되지 못해 결국 유럽 중심의 사상사를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현대 인권은 시민권 이론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한다. 영국의 시민권을 중심으로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소수자의 인권이나 장애인의 인권, 다문화 시민권 등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현실에서도 중요하게 고민해 볼 부분이다. 외국인과의 결혼, 다문화 가정의 사회적 문제, 장애인과 성적 소수자,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지구 공동체의 지구 시민권은 ‘꿈’이라고만 할 수 없다. 세계화는 경제적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인권’ 측면에서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의미의 시민권이 확산되고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지켜질 수 있는 개념들이 확산되는 것은 우리가 함께 꾸어야 할 꿈이 아닐까 싶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인권의 기준과 대상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지만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제도와 질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교묘하게 숨겨진 ‘인권’을 찾아보는 일이 우선이다. 나는 인간이며 내가 가진 최소한의 권리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는 흔히 개념 없다는 말을 사용한다. 책 한 권으로 개념을 가질 수는 없지만, 이 책은 사유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개념 있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나만큼 소중한 타인을 위해서도, 타인만큼 소중한 나를 위해서도.


09012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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